요한복음
제1장
개요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과 참 메시야, 세상의 구주로 믿는 우리의 믿음을 확증하게 하여, 그리스도를 우리의 선지자와 제사장, 왕으로 영접하고 의지하며, 우리 자신을 드려 그리스도의 다스림과 교훈과 구원을 받도록 하는 데 있다
성령의 영감을 받은 저자 자신이 그리스도에 관해 증거하는 내용 1-5절에서 그것을 먼저 책 전체의 구도로 제시하고, 10-14절과 16-18절에서 거듭 증언한다.
침례 요한이 그리스도에 관해 증언한 내용(6-9,15절) 그의 증언은 19-37절에 구체적으로 소개된다.
그리스도께서 안드레와 베드로(38-42절), 빌립과 나다나엘(43-51절)에게 자신을 나타내신 내용
1-5절
I 기자가 전하려 하는 분
말씀 (로고스) 이 단어는 요한의 저작에 고유하게 쓰이는 관용어이다(요일1:1,5:7 계19:13) 그런데 어떤 이들은 행20:32, 히4:12, 눅1:2의 예를 들어 말씀이 그리스도를 뜻한다고 생각한다.
유대인들조차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과 같다고 배웠다.
복음서 기자는 강론의 한 부분을 마치면서(1:18) 자신이 그리스도를 말씀이라고 부른 이유를 분명히 밝힌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본래 말(word)은 이중의 구조, 인식한 말과 발언한 말로 구성된다. 이것은 지성(intelligence)와 발언(utterance)이라 옮길 수 있다.
인식하는 말 곧 생각이 있다. 이것은 영혼(생각에 의해 이루어지는 모든 작용들)의 처음이자 유일한 직접적 산물인 인식(conception)이며, 영혼과 동일하다. 따라서 삼위일체의 제2위를 가리켜 말씀이라 함이 마땅하다.
그분은 마치 영혼이 자신의 생각을 지니듯이 여호화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가지셨던 영원한 본질적 지혜(Wisdom)이시기 때문이다.(잠8:22)
우리에게는 우리가 생각한다는 것보다 더 확실한 것이 없는 반면에, 색각이 발생하는 경위를 누가 확실히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영원한 정신의 발생들과 출생들은 우리가 그 바닥을 잴 수 없는 신성의 위대한 신비로 놔둔 채 그 깊음을 앙모할 수밖에 없다.
발언한 말이 있으며, 이것은 마음을 가리키는 가장 주되고 자연스러운 표시인 발언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그리스도께서는 말씀이시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그분을 통하여 말씀하셨고(히1:2), 우리로 그분 말씀을 들으라 분부하셨기 때문이다(마17:5)
인간의 말이나 발언이 자신의 생각을 자신이 원하는 만큼 알리듯이,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에게 알리셨다.
침례요한은 소리였으나, 그리스도께서는 말씀이셨다. 말씀이시므로 진리시요, 아멘이시며, 하나님의 마음에 대한 신실한 증인이시다.
II 요한이 그리스도에 관해서 전하는 말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아무런 모순없이 입증하기에 넉넉하다.
(1)
말씀은 태초부터 계셨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그리스도께서 성육신이전뿐 아니라 시간이 있기 전부터 계셨다는 뜻이다. 만물이 창조되어 존재하기 시작한 태초(시간의 시작)에 이미 이 영원하신 말씀이 존재하고 계셨다.
세상은 태초로부터 존재 했지만, 말씀은 태초 안에 계셨다. 산이 생기기 전,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시 90:2, 잠8:23
(2)
말씀은 아버지와 함께 계셨다.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면 그것은 곧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것과 같다.
본질과 실체의 관점에서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말씀은 독자적인 위격 혹은 실체이시다.
만족과 복됨의 관점에서 그리스도께서 창세 전에 하나님과 함께 가지셨던 영화와 행복이 있었다 17:5. 아들이 아버지 품에서 누리신 행복은 무한했고, 아버지가 사랑하는 아들로 말미암아 얻으신 기쁨도 무한했다 잠 8:30
경륜과 계획의 관점에서, 인간이 성육신하신 말씀에 의해 구속되는 신비는 창세 전에 하나님 속에 참추어져 있었다. 엡3:19
따라서 인간을 하나님과 화목케 하는 이 원대한 사역은 영원부터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서 조율되었으며, 이 일에 관하여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신다 슥6:13, 마 11:27
아들은 이 일을 위하여 항상 아버지 곁에 계셨다 잠8:30 이처럼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그러므로 아버지에게서 나오셨다고 언급된다.
(3)
말씀이 세상 창조에서 수행하신 일 3절,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시되, 그로써 영원부터 하나님의 경륜을 익히 잘 알고 계셨을 뿐 아니라, 태초에 하나님이 하신 일에 적극 참여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종속된 도구가 아닌 협력적 주체로 삼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다 히 1:2 그 방식은 노동자가 도끼로 다듬는 것이 아닌,몸이 눈을 통해서 사물을 바라보는 것에 해당한다.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히 3:4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는 종종 만물을 지으신 이 사실을 들어 친히 하나님이심을 입증하셨다 사10:12, 28:41,렘 10:11
(4)
말씀 안에 있는 근원적이 생명과 빛 :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4절 말씀은 원래부터 생명을 지니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참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이기도 하시다.
모든 살아 있는 피조물들은 말씀 안에 생명의 근거를 둔다. 창조 만물의 물질만 말씀에 의해 지으심을 받지 않고, 창조 만물 안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을 생기게 하신 분이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창 1:20, 행 17:25
그분은 인간이 밥보다 더 크게 의지하여 살아가는 말씀이시다 마4:4
이성은 지닌 인간들은 말씀으로부터 빚을 얻는다. 인간들의 빛인 그 생명이 말씀으로부터 온다. 인간 안에 있는 생명은 다른 피조물들 안에 있는 생명보다 더 위대하고 숭고한 것이다.
인간이 생령이 되었을 때, 그의 생명은 빛이었고, 그의 기능과 역량은 소멸하는 짐승들과 확연히 구분되었다. 인간의 영혼은 주님의 등불이었으며, 이 등불을 켜시는 분이 영원하신 말씀이었다.
이 사실은 말씀이 우리의 구원을 담당하기에 적합하심을 입증한다. 생명과 빛, 영적인 생명과 영원한 생명과 빛은 사망과 어둠의 권세에 찹혀 있는 타락한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두 가지이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인간들이 타락함으로써 어둠이 되었을지라도, 하나님에 관하여 알만한 것들이 그들 안에 나타나 있다 롬1:19,20
자연의 빛은 어둠을 비추는 이 빛이다. 모든 인간은 창조하실뿐 아니라 명령하시는 신적 말씀의 권능의 일단을 아는 내면의 감각을 지닌다. 만일 이것이 없다면 세상은 철저한 흑암에 덮인 지옥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자비로 인하여 아직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중보자로서, 영원하신 말씀은 구약의 모형과 예표들의 어둠을 밝히시며, 시초부터 메시아에 관해 되어졌던 예언과 약속들을 비추신다.
세상의 빛더러 어둠을 비추라 명하셨던 분 자신이 내내 어둠을 비추는 빛이셨다. 다만 이 빛에는 수건이 덮여 있었다 고후 3:13
타락한 세상은 이 빛을 받을 수 없었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대다수 사람들은 이 빛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는다.
인간 세상은 자신들의 이성에 있는 자연의 빛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영원하신 하나님과 영원하신 말씀에 관해 생각이 허망하여졌다 롬 1:21,28 오류와 죄의 어둠이 이 빛을 덮어 가렸다
구약의 빛을 지닌 유대인들도 그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깨닫지 못해ㄸ다. 모세의 얼굴을 수건이 가렸던 것처럼, 사람들의 마음에도 수건이 덮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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