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tation on Bible/Matthew(마태복음)

마태복음 - Stanley hauerwas (short - cut) - 1장 태초에

Four Seasons Daddy 2023. 3. 6. 21:01

마태복음 1장 태초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l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창세기가 하늘과 땅의 계보를 제공하듯이(2:4), 마태는 예수님의 족보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곧 우리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을 때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예수님의 족보를 이해해야만 되었다.

 

l  창조는 이스라엘의 선택, 왕정, , 추방, 그리고 구속을 포함하는 그 이야기의 첫 운동이다.

 

l  마태복음은 물론 모든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역사의 요약이 되시고, 그로 말미암아 유대인과 이방인이 이제는 똑같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 수 있게 된다.

 

l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이야기가 새로운 창조의 이야기라고 믿는다.

 

l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해 창조하시고 구속하시는 세상으로 보는 것을 배워야만 한다.

 

l  마태복음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을 보도록 돕는 계속 진행 중인 훈련인 것이다.

 

l  마태에게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분이요, 우리가 새로운 창조의 백성으로 살려면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요구하시는 분이다.

 

l  마태는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 곧 그분의 제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 이 복음서를 썼다.

 

l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하나님께서 변화시켜 오신 세상에 증인으로 사는 것이다.

 

l  창조는 마태복음의 첫 문장의 주제로서, 하나님의 창조의 운명이 메시아이신 이 사람 예수님의 삶에 달려 있다고 제안한다.

 

l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함으로써 마태는 이스라엘의 신앙을 증언하고, 아브라함에게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그분을 통해 모든 백성이 복을 받게 하심을 강조한다.

 

l  창세기의 처음 열한 장에 걸쳐 묘사된 대로, 죄 많은 인간의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아브라함을 그의 고향에서 불러내셔서 새로운 백성의 조상이 되게 하신 것이었다.

 

l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게 하신 것이다. 그리고 열방 가운데서 사는 것을 배우면서 그들의 안전을 위해 오직 하나님만 신뢰하도록 이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율법이 주어질 것이었다.

 

l  이와 같이 한 백성이 거룩하고 성별되도록 부름을 받았고, 나아가 그들의 존재 자체로 하여금, 만일 그들을 불러내어 열방의 빛으로 삼으신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으신다면 이해될 수 없도록 하셨다.

 

l  예수님께서 다윗의 자손,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규정되시는 것은 바로 그분께서 이스라엘의 삶을 요약하여 보여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l  마태복음은 우리들, 곧 마태의 독자들을 예수님께서 그분의 제자들을 훈련시키셔야만 했던 것처럼 훈련시키고자 한다.

 

l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그분의 정체성을 설명해 준다.

 

l  베드로처럼 우리 또한 이삭의 이야기가 우리를 아주 불쾌하게 만든다고 고백해야 한다. 왜냐하면 현대인으로서 우리에게 희생제사라는 것이 도대체 납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l  실제로 희생제사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려는 우리의 바른 열망을 표현하는 탁월한 행동이다.

 

l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사람의 모양으로 겸손해지시고, 죽음-심지어 십자가에서의 죽음-까지도 순종하시는 아들을 보내셔서, 그분의 십자가로 말미암지 않은 모든 희생제사에 영원한 종지부를 찍으셨다.

 

l  헤롯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래서 마태복음은 세상의 권력의 정치에 대해 대안을 제시하는 예수님의 정치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l  신학적으로 마태를 읽는 것은 교회야말로 세상의 정치에 대한 대안적 정치임을 재확인하는 것이다.

 

l  신학적으로 좀 더 엄밀히 말하자면, 다윗의 자손,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님의 정치적인 특성은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이 분리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l  바르게 이해된 성육신이란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이 분리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생명의 새로운 길에 참여하도록 하심으로써 구원하시기 때문이다. 그 생명의 길의 이름이 교회다.

 

l  예수님 안에서 초래된 구원에 관해 마태가 서술하는 것그분의 탄생, 제자들과의 관계, 가르침과 논쟁, 기적, 십자가 처형과 부활을 포함하는 예수님의 삶을 완전히 공개하기를 요구한다.

 

l  마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통해 존재하는 모든 것으로 구속을 시작하셨다는 것과, 그 구속은 거룩하도록 부름받은 백성의 창조를 수반한다고 믿는다.

 

l  마태는 이 사람 예수님의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이야기가 어떻게 이방인을 포함하는 데 열려 있는지를 우리로 하여금 알게 하려고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l  이것이 마태복음의 첫 구절에서 이 사람 예수님, 아주 오랫동안 기다려온 메시아시자 다윗의 자손,아브라함의 자손이신 분 안에서 시작된 새로운 시대의 창조에 관한 이야기를 말하고자 하는 마태의 의도가 선언되는 이유다.

 

l  중요한 점은 마태가 족보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이스라엘의 이야기이다. 첫 번째 족보의 역사는 국가로서 이스라엘의 승리에 관한 이야기를 말하는 데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마태가 분명하게 이스라엘의 역사의 절정을 대표한다고 생각한 다윗왕으로 끝내고 있기 때문이다.

 

l  하지만 마태가 족보에서 말하고자 하는 역사는 또한 상실의 역사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두 번째 단락이 바벨론 포로, 심지어 팔레스타인에 돌아와서까지 이스라엘의 삶을 맴도는 추방에서 절정에 이르기 때문이다.

 

l  족보의 마지막 단락은 예수님의 탄생을 통한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메시아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단지 이스라엘을 대표하신다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율법의 갱신이시며, 그분께서 약속의 땅이시며, 그분께서 성전이시라는 의미.

 

l  예수님께서는 오랫동안 고대해 오던 왕이시다. 그분께서는 이스라엘을 약속된 백성으로 만드는 모든 것의 회복이시다. 요셉이 입양함으로써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족보에 들게 되었고, 이스라엘을 위해 세상의 왕들과는 다른 왕이 되신다.

 

l  예수님께서는 과거의 이스라엘에 관해 말하는 마태의 족보 이야기의 절정으로서, 이스라엘의 존재의 범주를 심오하게 변화시키심으로써 단번에 이스라엘의 이야기를 대표하신다.

 

l  마태의 족보에는 다말(38), 라합( 2), , 그리고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삼하11-12, 왕상 1) 등 네 명의 여성의 이름들이 포함된다 마태가 이 여성의 이름들을 거명한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의미심장한 일이다.

 

l  마태복음 곳곳에 나타나는 이방인들의 역할을 고려해볼 때, 마태는 다른 방식에서 이스라엘에서 배제된 외부자들인 여성들을 거명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약속받은 백성을 유지시켜 가시기 위해서 이들을 어떻게 사용하셨는지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l  이 여성들은(그들이 여성이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스라엘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 이방인에게로 퍼져나가는 부인할 수 없는 실재를 대표한다.

 

l  마태의 족보는 하나님의 계획이 항상 경건한 사람들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격정적이면서 전적으로 평판이 좋지 않은 사람들을 통해서도 수행된다는 점을 극명하게 드러내다.

 

l  마태의 족보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 28:19-20)라고 임무를 부여하심으로써 실현가능해진다.

 

 

예수님의 탄생

 

l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는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에 관해 마태가 말해야만 하는 기이한 이야기를 명료하게 해준다. 요셉과 정혼한 마리아는 성령으로한 아기를 임신하게 된다.

 

l  이것은 완전히 우리 중 하나가 되심으로써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가 성육신의 신비로 묘사하기 위해서 배워야 할 것 앞에 서게 된다.

 

l  시간에 제약을 받지 않으시는 분께서 시간에 맞추어 삼위일체의 제3위이신 성령님의 사역을 통해 잉태되셨다. 마태에게 성령님의 사역은 그리스도의 인성을 가르키는 것이다.

 

l  하나님께서 우리 중 하나가 되시는 것은 확실히 불가능하다고 가정할 때, 우리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성령님이 반드시 필요하는 것은 놀라운 것이 아니다.

 

l  성부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해 마리아의 아기를 수태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창조를 통해 행하신 것과 다른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에 개입하실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한시도 창조에 부재하신 적이 없기 때문이다

 

l  창조는 저기 뒤쪽에 back there”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존재하도록 뜻하셨고, 계속해서 뜻하시는 하나님의 지속적인 사랑이다.

 

l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고 큰 감동을 주는 것은 마리아가 처녀였다는 사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내버리시기를 거절하셨다는 점이다.

 

l  니케아공의회와 칼케돈공의회에서는 삼위일체와 성육신을 설명하지 않고, 대신 설명없이 하나님의 신비를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가르쳐 준다. 따라서 니케아와 칼케돈은 복음서들의 특성을 재생산할 뿐이다.

 

l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에 대해 말하는 유일한 길은 이야기, 요셉과 마리아가 서로를 알지못했는 데도, 마리아가 아기를 가진 것을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다.

 

l  마태는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의 임무라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가 예수님의 수태와 탄생의 빛 안에서 어떻게 살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임무라고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