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miliar Classic Music/Franz Peter Schubert

슈베르트에 대하여

Four Seasons Daddy 2010. 3. 6. 21:05

프란츠 피터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

 

가곡의 왕

 
출생-사망
1797. 1.31 (오스트리아) – 1828.11. 19

경력
1818 P.A.에스테르하지 백작가 하계(夏季) 음악교사
빈 궁정예배당 합창아동 
슈베르트에 대하여
 
음악활동
1815 18세 때에 그의 재능을 아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수백 곡의 가곡을 썼으며, 괴테의 시에 곡을 붙인 《마왕》, 《휴식 없는 사랑》, 《들장미》 등의 명작도 이 해에 작곡되었다. 그가 지은 가곡 중 일부는 지인들의 도움으로 책으로 편집되었다. 1819년 라이바하 사범학교의 교사가 되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부친의 학교에 머물러 있으면서 많은 작품을 작곡하였다. 가곡 <유랑인>이나 <5교향곡> 등이 이때의 작품이다. 그의 친구 쇼바는 그의 재능을 사랑하여 슈베르트를 자기집에 살게 하였다. 이때부터 그의 방랑생활이 시작된다. 이 무렵 당시 최고의 성악가이자, 25세 연상의 친구였던 포그루에 의하여 슈베르트의 가곡이 많이 불려진 결과 점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1818년에는 가곡 《죽음과 소녀》, 《송어》를 작곡하였으며 에스테르하지 공작 집안의 두 딸의 가정교사가 되어 한여름을 첼리즈에서 보냈다. 1823년에는 《유랑인의 환상곡》, 《로자문데》 등을 발표했고 그 해 여름, 친구의 집에서 읽은 뮐러의 시에 감동하여 《아름다운 물방앗간 집 처녀》를 작곡하였다. 1827 30세가 되자 자신의 인생이 겨울을 맞았음을 아는 듯 《겨울 나그네》를 작곡하였고, 이듬해인 182811 19일 장티푸스로 빈에서 죽었다. 베토벤의 사후 약 1년 만이었다. 당시 그는 둘째 형의 보살핌을 받았으나, 기억력마저도 나빠질정도로 건강이 매우 나빠져 있는 상태였다. 그의 정신적 스승은 베토벤으로, 18273 26일 베토벤이 죽자 그의 장례에 참여하였으며, 죽은후에는 유족들의 뜻에 따라 베토벤의 유해와 함께 빈의 중앙 묘지에 나란히 묻혔다. 별세한 해에 만들어진 최후의 가곡 14곡을 모은 것이 《백조의 노래》이다.

작품

슈베르트는 그 짧은 일생에 수많은 가곡과 기악곡, 교향곡 등을 작곡하였으나, 그의 이름을 유명하게 한 것은 가곡이다. 650곡에 이르는 가곡들이 모두 훌륭하다는 평을 듣지만, 특히 《겨울 여행》이나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소녀》, 《백조의 노래》 등이 특히 뛰어난 작품이며, 자유로운 표현력을 지니는 멜로디의 아름다움, 그리고 화성의 미묘한 변화 등 낭만주의의 특색을 잘 나타내고 있다. 교향곡에서는 제8번의 《미완성》이 특히 유명하나, 9 교향곡의 아름다움도 잊어서는 안된다. 피아노곡에서는 《방랑자 환상곡》, 《악흥(樂興)의 한 때》 등이 알려져 있고, 실내악곡에도 《죽음과 소녀》나 《송어》 등 걸작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