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miliar History/Korea

심의겸과 김효원

Four Seasons Daddy 2010. 3. 19. 08:47

심의겸(沈義謙, 1535년 ~ 1587년)은 조선시대의 문신이며 척신이다. 자는 방숙, 호는 손암, 본관은 청송이다. 인순왕후(명종의 비)의 동생이며 이황의 제자로, 명종 때 급제하여 병조좌랑·부수찬·교리·이조참의 등을 지냈다.

 

척신 출신이지만 구세력을 대표하는 인물로 사림들간에 명망이 높았다. 외숙부 이량이 사림들을 탄핵할때 반대로 외숙부 이량을 탄핵하기도 했다. 1572년 김종직 계통의 신진 세력으로서 김효원이 이조정랑에 천거되자, 그가 일찍이 권신이던 윤원형의 집에서 묵은 사실을 들어 권력가에 아부했다 하여 반대하였다.

 

1574년 결국 김효원은 이조정랑이 되었고, 이듬해 심의겸의 동생인 심충겸이 후임 이조정랑에 추천되자, 이번에는 김효원이 반대함으로써 두 사람은 대립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구세력은 그를 중심으로 서인이라 했으며, 신진 세력은 김효원을 중심으로 동인이라 하였다. 그 후 당쟁이 커질 것을 염려한 이이의 조정으로 개성부 유수가 되었다가 사직하였다.

 

1584년 이이가 죽은 후 동인이 득세하고, 서인이 몰락하자 파직당하였다. 그의 날카롭고 비타협적인 성격은 당쟁의 실마리를 만들어 조선 왕조의 치명적인 적폐의 요인이 되게 하였다.

 

김효원(金孝元, 1542년~1590년)은 조선 중기의 학자이며 문신이다. 이황과 조식의 문인이다. 호는 성암이다.김효원은 1542년에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현감 김홍우(金弘遇)이다. 생원시를 거쳐 1565년 알성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그뒤 병조좌랑·정언·지평을 지냈으며  사헌부 지평으로 재직 중 김효원은 문정왕후 윤씨가 죽고 척신계가 정계에서 몰락하면서 새로이 정계에 진출한 신진 사림파의 대표적 인물로 부상하게 되었다.

 

1572년 이조전랑으로 오건(吳健)이 추천하였으나 과거 문정왕후의 동생 윤원형의 문객이었다는 이유로 이조참의 심의겸이 반대하여 실패하였다.1574년 이조전랑을 지냈고 이듬해인 1575년 심의겸의 동생 심충겸(沈忠謙)이 이조전랑으로 추천되자 이번에는 김효원이 전랑의 관직은 절대로 척신의 사유물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반대하였다.

 

심의겸과의 대립은 사림의 분열로 이어지고 점차 심해지자 우의정 노사신과 부제학 이이 등은 분쟁 완화의 조정안으로 두 사람을 한성을 떠나 외직으로 보낼 것을 선조에게 건의하여 김효원은 경흥부사로, 심의겸은 개성부유수로 전보되었다.

 

그러나 김효원이 더 먼곳의 외직에 배치되었다는 동인의 반발로 그 조정안은 실패로 끝났다. 청의(淸議)를 주장하여 사림으로부터 선명성을 인정받고 동인의 영수로 추대되었다. 안악군수, 영흥부사로 승진하여 재직 중 사망하여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삼척의 경행서원(景行書院)에 제향되었다 주을천 옆 묘소 입구에 신도비가 세워졌으며 이준(李埈)이 짓고 김세렴(金世濂)이 글씨를, 허목(許穆)이 전액하여 1743년에 설립하였다.

 

안악군수, 영흥부사로 승진하여 재직 중 사망하여 묘갈명은 갈암 이현일이 썼으며 '(조정에 있을 때 정색(正色)과 직언(直言)으로 조금도 거리낌이 없었다. 그래서 일시의 권간들이 모두 다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자료출처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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