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tation on Bible/ROMANS(로마서)

로마서 2부 그러나 이제는

Four Seasons Daddy 2018. 3. 31.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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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그러나 이제는

 

이제는 율법 외에

 

                            로마서 3:21~31

믿음으로 의롭게 됨 롬3:19~31    

                                             

그러나 이제는

 

l  1:1에서 3:20까지를 요약하면, 사도 바울은 로마교회의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자기가 복음의 종이 되었고 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 마음이 불타고 있다고 말합니다. 간절히 그들을 보기 원한다는 마음도 전합니다

 

l  바울은 이 서신을 쓰는 이유를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에 내가 너희의 믿음을 듣고 고마워한다, 이제 이 편지를 써서 너희를 격려하고 그 내용을 한 번 더 확인시키고 싶다. 라고 밝힙니다

     

l  바울은 왜 복음이 능력인가를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있는 인류의 참모습에 대해 풀어냅니다. 인류는 하나님과 맞서고 불순종하여 스스로 멸망의 자리에 들어갔다. 모두가 죄를 짓고 악하게 산다,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으며, 찾더라도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을 드리거나 하나님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에 급급하다.여기에 예외인 사람은 없다

 

l  율법이 있는자는 율법을 알면서도 지키지 못했고 율법이 없는자는 무지한 채로 하나님을 외면하고 살았다. 그리고 나서 20절에 이런 결론이 등장합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l  이런 설명후에 그러나 이제는(But Now)”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이제는은 예수님이 오신, 지금부터는 예수이전과 예수 이후는 확연히 다른 세상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신 구원

 

l  바울은 3 21절에서 인류의 현실에 대해 그러나로 뒤집습니다.하나님은 우리로서는 어떻게 할 수 없고, 아무런 해결책도 없는 곳에 길을 내고 답을 내셨습니다. 그렇게 죽음과 사망과 멸망의 자리에서 승리를 만들어 내는 하나님의 능력, 그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l  우리에게 자격이 있거나 우리가 이해해서 합의해야 구원이라는 결과가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이루어 놓으셨다는 사실이 먼저있고, 이 사실에 기초해서 나중에 우리가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l  너희가 그 베푸신 구원의 혜택을 받고 인생을 살기 원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미 만들어 놓으신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으로 나눈 역사는 번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역사라는 시간 속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취소할 수 없습니다

 

l  하나님은 구원을 성취하셨습니다. 그것을 역사 속에서 허락하셨습니다. 우리의 불순종 때문에 예수의 죽으심이 나중에 취소되거나 무효로 되지 않습니다

 

이미 시작된 새로운 세상

 

l  예수 이전에는 인류가 가는 길이 사망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망이 최고의 권세이고 운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가 오신 이후에는 사망으로 끝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예수가 가져온 하나님 나라로 말미암아 이 세상은 믿는 자들에게는 영광과 승리가 펼쳐질 장소가 되었습니다.

 

l  오늘이라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가 세상 권세의 영역이어서 우리는 죽은 후에야 하나님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온 세계가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바로 여기 이 자리에,새롭게 시작된 세계가 있습니다.

 

진리로 묶으셔서 주시는 복

 

l  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심판 아래 묶으셔서 아무도 도망갈 수 없게 품으셨습니다. 심판하여 버려두는 것으로 그치지 않으시고 진노 중에라도 묶으시는, 하나님의 간섭이 모든 인류로 하여금 도망갈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l  이제는 율럽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3:21~22

 

l  믿음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신실하심, 능력, 자비와 복을 주시는 거룩하심입니다. 이 모든 것을 담으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와 약속이 이천 년 전의 역사 속에 실현되었습니다. 번복할 수 없고 훼손할 수 없고 무엇으로도 돌이킬 수 없는 사실로 역사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l  그러니 누리십시오. 순종하고 충성하고 복된 삶을 사십시오. 긴가민가하고 구경만 하지 마시고 들어오십시오. 그리하면 여러분의 인생은 놀라워질 것입니다.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로마서 4:1~12)  

믿음으로 의롭게된 아브라함1~25

 

율법과 은혜

 

l  우리에게 일어난 구원은 하나님의 의지와 지혜에 의한 것입니다.’율법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말은 우리 스스로는 구원을 만들어낼 수 없다는 뜻입니다.

 

l  죄란 다만 도덕성에 저촉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에 대한 거부와 외면이 죄의 핵심 되는 내용이라고 바울은 지적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불경이 죄입니다

 

l  율법이라는 기준에 비추어 불경한 인류 전체가 예외 없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 아래에 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321그러나 이제는이라는 말로 국면이 크게 전환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보내어 율법 외의 하나님의 한 의로 말미암는 예수 안에서의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l  이는 은혜에 속하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세우심으로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l  그렇다면 율법은 이제 쓸모없는 것인가, 원칙은 깨진 것인가? 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4장에서는 이 은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해 나갑니다.

 

l  율법이 우리를 심판으로 몰고 간 것은 율법의 잘못이 아니라 죄인인 우리가 율법을 지킬 수 없어서 생긴 일입니다. 율법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l  은혜는 이러한 우리를 하나님께서 당신의 능력과 신실하심으로 완성하시며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전합니다.

 

l  율법과 은혜는 같이 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경과 불의를 행하는 자들에게 임한 것이 결국에는 은혜라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율법과 은혜가 함께 가고 있다는 것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것이 구원입니다.

 

l  율법은 하나님의 공의이고, 이 공의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방법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지는 일이 구원입니다. 바로 십자가 입니다.

 

 

 

아브라함이 부름받은 배경

 

l  아브라함의 등장 이는 무엇을 뜻합니까? 이 대책없고 희망 없는 인류의 현실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으로 새로운 일을 시작하신다는 것입니다.

 

 

복 받음의 대표인 아브라함

 

l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자손이 하늘의 별 같이 많아질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 제가 이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하고 아브라함이 묻자, 하나님께서는 제물을 가져다 놓으라고 하십니다.

 

l  제물을 둘로 쪼개어 놓은 사이를 하나님이 언약 당사자가 되셔서 지나가십니다. 약속을 깨는 자는 제물이 쪼개진 것같이 저주를 받아야 한다는 맹세를 직접 하신 것입니다. 굳센 약속이죠. 그런데 거기를 하나님이 지나가십니다. 아브라함에게 지나가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하신 약속입니다.

 

l  그러므로 이 모든 일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이 일의 시작과 주도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한 일은 그런 하나님께 붙잡힌 것 밖에 없습니다.

 

l  아브라함에게 어떤 특별한 원인이 있을 것이라고 여기면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말하고 싶다면, 그리하기 전에 믿음이 왜 등장했는가를 먼저 보아야 합니다.

 

l  로마서에서 우리는 할 수 없었다. 우리는 끝났다. 우리는 대책이 없다자기 스스로 믿으면의 자리로 들어올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구원을 이루셨다. 입니다.

 

l  이것이 바로 믿음이라는 말에 담긴 내용입니다. 이처럼 믿음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가리킵니다

 

l  아브라함은 어떻게 믿음의 조상이 되었읍니까?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세우셔서 내가 인류를 축복하고 내 능력과 신실함과 은혜로 말미암아 내 백성으로 기어코 만들고 말겠다는 의지의 첫 번째 대상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l  그가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는 것은 그가 인류에게 복을 실행하시고 구현하시고 완성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여주는 대표가 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이 해내셨음을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l  우리가 이해하는 믿음을 아브라함이 가지지 않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믿음은 결과이지, 조건으로 등장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일하셔서 아브라함에게 이제 믿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셔서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순종이 그에게 처음으로 생겨난는 것입니다.

 

이미 변화된 세상

 

l  내가 믿어서 예수가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내가 믿기 전에 예수께서 이미 죽으셨습니다.이미 구원을 이루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죽으셔서 구원을 이루신 일이 역사적 시간 속에서 이미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보십시오

 

l  구약 내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타날 때에 하신 나는 너희 조상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말씀은 나는 너희와 무엇을 하려고 이제야 온 하나님이 아니라, 너희의 운명을 위하여 모든 것을 이미 준 하나님이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l  시간의 차이를 두고 이미 일어난 과거, 번복할 수 없는 과거, 지금 내가 내리는 결정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 과거에 이미 역사하신 분으로 하나님이 당신 자신을 소개하고 계십니다.

 

l  하나님이 어떻게 이 큰 틀을 바꿔 놓으셨는지를 모르면 예수가 오셨다는 말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게 됩니다. 세상이라는 판이 예수로 말미암아 바뀌었다는 말입니다. 이미 아브라함에게서 시작된 구원이 예수 안에서 구체적인 성취와 실체를 보이는 것입니다.

 

l  그러나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라고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심과 죽으심과 부활이라는 것으로 판이 바뀐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부활세상을 삽니다.

 

l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는 새로운 현실 속에 있다는 말입니다. 죽어서 가는 천국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자로 이미 천국을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l  17:1~5

 

l  아브람이 아직 이삭을 낳기 전에, 열국이 생기기 전에 아브라함의 후손의 열국이 만들어지기 전에 아브람은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이미 가졌습니다. 우리는 이미 성도요, 신자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로마서 4:13~22)

믿음으로 의롭게된 아브라함1~25                               

 

은혜의 예시인 아브라함

우리와 방불한 아브라함

 

l  아브라함은 그가 어떻게 남들과 다른 믿음을 가지고 경건했느냐를 보여주기 위해 등장한 것이 아닙니다.

 

l  하나님이 희망이 없는 세상에 당신의 구원을 성실하심으로 지키기로 작정하시고, 망할 수밖에 없는 인류의 역사에 개입하셔서 멸망의 길을 뒤집어엎으시고, 당신의 신실한 약속과 승리를 성취하기로 하셨는데, 이 일을 대표하는 이가 아브라함인 것입니다.

 

신앙의 주인이신 하나님

 

l  하나님이 인류에 대하여 율법의 차원에서 요구하셨던 것을 뒤로 하시고, 이제 새로운 차원에서 하나님의 의와 신실하심과 자비와 긍휼과 능력으로 우리와 당신의 관계를 정상화하시는 방법이 바로 믿음입니다

 

l  성경은 믿음을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조건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믿음에서는 하나님의 의지와 능력과 은혜와 자비에 강조점이 있습니다.

 

l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듯이 우리를 부르시고, 아브라함의 생애를 책임지듯이 우리의 생애도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며 또한 너희 하나님이라는 말로 붙들고 계십니다

 

아브라함을 보라

 

l  성경은 아브라함이 믿음, 곧 하나님의 일하심에 붙들려 있었던 자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 합니다. 아브라함은 보이는 것도 없고 도망 갈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다는 말은 그가 하나님에게 붙들려 있었다는 말 외에 다른 표현으로 바꿀수가 없습니다.

 

l  하나님께서는 그를 본토 친척 아비 집에서 끌어내어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시고 나그네로 살게하셨습니다. 한심하게 사는 것입니다.

 

l  예수 믿고 제일 넋이 빠지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엄청난 약속과 축복 속에 있는데 우리의 현실은 한심하나는 것이죠. 그러나 이 한심한 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믿음의 방식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l  율법으로 하지 않고 믿음으로 하는 하나님의 방식, 이것이 복으로 가는 하나님의 신실한 손길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l  하나님은 이삭을 잡아서 바치라고 하여 네가 이삭을 만들지 않았다. 이 이삭은 원래 없어도 됐다는 것을 다시 확인시켜 줍니다. 아마 아브라함이 그때쯤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이삭은 없는 존재입니다. 이삭이 없어도 이 일은 이루어집니다. 내가 낳을 수 없는 아이를 낳은 것입니다이것을 확인시켜 주는 사건입니다.

 

l  예수님은 동정녀의 몸에서 탄생합니다. 처녀가 낳은 자라는 것은 태어날 수 없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예수를 보내어 너희가 낳지 않았다 너희가 만들지 않았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l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우리의 인생과 운명에 그리고 세상의 역사와 운명에 뛰어들어 오십니다. 이것이 로마서 4장에서 아브라함을 등장시킨 이유입니다. 아브라함을 보라, 그를 보면 하나님의 일하심을 알 수 있다고 하십니다. 아브라함이 우리와 방불한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포기하시지 않는 하나님

 

l  105:17~19 “그가 한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l  우리의 아슬아슬함은 요셉의 처지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요셉의 결과는 우리가 알지만, 우리의 결과는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결과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승리가 중요합니다.

 

l  아브라함의 믿음을 논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을 붙드신 하나님은 죽은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l  하나님은 우리를 처음 창조하셨을 때의 목적대로 우리를 당신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것이 복음의 자랑인 것입니다.

 

l  믿음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믿음은 우리의 각오나 결심이나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지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인생이 무엇인지, 여러분이 누구인지를 이 안에서 확인하십시오예수를 믿는다는 고백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기억하고 여러분의 삶을 사십시오

 

l  로마서 4:19에서 아브라함이 자기 나이가 백 살이라는 것과 자기 아내의 태가 닫힌 것을 보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않았다는 말은, 하나님이 그를 놓아 주시 않으셨다, 외적 조건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삭을 기적적으로 주셨으나 이삭이 없어도 되는 일이었다,

 

l  여러분은 복의 근원입니다. 여러분을 축복하는 자를 하나님이 복을 주시고 여러분을 저주하는 자를 하나님이 저주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존재입니다, 그러니 가슴을 펴고 신자답게 살아내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로마서 4:23-5:4)

의의결과 5:1~11

하나님이 하신 일

 

l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으로 예수 이전의 인류와 예수 이후의 인류를 양분하신다는 것이 로마서의 중요한 주제입니다.

 

l  율법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을 우리는 율법대신에 믿음을 조건으로 내놓아야 한다고 잘못 생각합니다. 믿음이라 그것으로 할 수 없는 것을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l  믿음은 율법과 행위의 반대편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을 설명하는 병행 단어가 은혜입니다

 

l  믿음이라는 단어는 예수를 말하지 않고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인데 예수는 이미 오셨다고 강조되는 것입니다

 

취소될 수 없는 구원

 

l  내가 눈을 뜨게 되.고 볼 수 있게 된 그때에 내가 지금 보고 있는 눈앞의 사물이 그제야 생긴 것이 아닙니다. 이미 그 자리에 있었는데 내가 몰랐던 것뿐입니다.

 

l  예수를 믿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우리가 구원을 경험하는 순서인데, 하나님은 이미 이천 년 전에 예수께서 모든 인류를 위하여 죽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시대가 바뀌었다고 합니다. 이제는 새 시대다, 은혜의 시대다, 이렇게 성경은 선언합니다

 

l  우리는 나중에 태어나지만 우리의 운명과 결과가 이미 과거에 완료되었기 때문에 도망갈 데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이야기하는 구원입니다.

 

아브라함처럼 우리도

 

l  이삭을 바치라는 말은 무슨 뜻 입니까? 아브라함더러 이 이삭은 내가 만든 자식이 아닙니다라고 인정하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말들 수 없ㅇ도 하나님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자기가 얻은 결과를 스스로 만들어 낼 아무 조건도 가지고 있지 않은 자, 그가 아브라함입니다.

 

l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4:23~24.

l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예수는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시고 징벌과 심판을 받아야 할 모든 인류를 이 죽음 안에 싸안고 없애 버리신 셈입니다.

 

예수로 누리는 하나님과의 화평

 

l  예수 안에서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이 이제 우리에게는 현재입니다. 예수님이 못 박히신 자리에서부터 현재인 것입니다. 우리가 믿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없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l  로마서 5: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l  바울은 그 어떤것도 우리에게 주어진 승리와 우리의 완성을 방해할 수 없으니 환난과 고난 속에서도 이런 운명을 가진 사람답게 주어진 현실을 살라고 합니다.

 

l  2절에는 우리의 운명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l  이미 결정된 우리의 운명과 승리와 영광을 예수 안에서 펼치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펼치십시오. 그것은 책임이기도 하고 하나님의 뜻이기도 하고 우리의 영광이기도 합니다.

 

l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당신의 지혜와 충만을 시간과 역사와 우리의 삶에서 구체화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의 영광을 위해서 말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말합니다.

 

예수기 역전시킨 인생

 

l  빌립보서2:5~11 “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뚜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름을 예수의 이름에 끓게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도리게 하셨느리라

 

l  하나님이 너무나 감사합니다. 우리의 자리까지 찾아들어오시는 하나님,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부정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께 저는 항복합니다

 

화목하게 되었은즉

 

(5:1~11)

의의 결과 5:1~11

 

삯이 아닌 은혜

 

l  하나님이 너희가 죄인이었을 때에도 너희 편을 들어주고 은혜를 베푸셨다면, 너희와 화목하게 된 다음에야 얼마나 더 큰 은혜를 베푸시겠느냐, 하는 이야기입니다.

 

l  기독교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소원이나 진심보다 우선합니다.

 

l  로마서 52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를 읽을때, “내가 믿었으니 은혜에 들어가는구나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은혜를 받기 위해 조건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이미 은혜가 아닙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다

 

l  나는 네가 백 살이어도 자녀를 줄 수 있는 하나님이다,네가 낳을 수 없을 때에도 줄 수 있는 하나님이다 그래서 이삭을 준 것이다. 그러니 이삭을 잡아라 네가 자녀를 낳을 수 없어도 네 후손은 하늘의 별 같이 될것이다.

 

l  네가 자식을 만들 수 없음을 확인한 자리에서야 비로서 내가 하나님으로 일하는 줄 네가 알게 되리라. 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랐습니다.

 

l  하나님이 언제 구원을 베풀었나 보십시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의 의미

 

l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5:7-8

 

l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무엇일까요. 원래 사랑이란 사랑을 베푸는 자에게 이유와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번복될 수 없는 신자의 운명

 

l  지금은 예수 이후의 시대입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역사가 예수 이전과 이후로 나뉩니다. 예수는 이미 오셨고 이미 죽으셨습니다. 이는 역사적 사실이라서 뒤집힐 수 없고 번복될 수 없으며 취소될 수 없습니다.

 

l  다만 이쁜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5:3~6)

 

l  하나님의 사랑이 이미 증명되었고  그 사랑이 우리에게 남김없이 쏟아 부어졌는데, 도대체 무엇이 겁이 납니까, 무슨 환난이 겁이 납니까, 무슨 고통이 겁이 납니까 라고 묻는 말씀입니다.

 

l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 이제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랄 수 있다 현재에 대한 안심과 미래에 대한 확신이 비로소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무슨근거로 그런 안심과 확신이 생깁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수를 이미 죽이고 살리신 과거로 말미암아, 완료된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확신과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l  밤낮 조마조마하며 자신의 실력만큼만 하나님이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그보다 더하십니다. 부모가 되면 못난 자식 대신 죽을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증언

 

l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 바울은1:1

 

l  여기에 바울의 헌신,바울의 준비,바울의 감동,바울의 의지 같은 것은 하나도 들어 있지 않습니다. 사도바울은 아무런 조건도 없는 곳에서, 아니 정반대의 조건에서 하나님께 붙잡힌 사람입니다.

 

l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입니다. 우리는 못났어도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l  딤전 1:12-16

 

l  비방자,박해자,폭행자였던 자신을 하나님이 붙드셨다는 것입니다. 죄인 중에 괴수인 자기를 하나님이 오래 참으시고 붙들어 놓으셨다고 합니다

 

l  고후 6:1~10

 

l  하나님의 영광을 임입어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자 세상의 거짓된 영광들을 정면으로 관통할 수 있게 되었다는 고백입니다.

 

신자의 명예

 

l  우리는 전에는 이것이 없으면 안 된다고 고집하던 것을 이제는 손에서 놓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답이 없는 길을 이제는 마치 즐거운 길을 걷는 것같이 걸을 수 있습니다. 억울함을 당하는 것, 열심히 노력했으나 보상이 없는 것을 감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l  이것이 전부다, 이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세상에서 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압니다. 신자의 명예는 어디에 있습니까? 이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길을 가는 데에 우리의 명예가 있습니다.

 

l  무슨 설명을 한다 해도 세상은 알아듣지 못합니다. 은혜가 찾아오기까지,눈이 열리기까지, 영혼이 살아나기까지 아무 말도 안통합니다. 주께서 다시 오시기까지 우리가 누구인지, 예수의 죽으심이 무엇인지 세상은 알지 못합니다.

 

l  영광과 욕됨이라는 정반대이 평가를 받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오해를 받으며, 속이는 자 같지만 진실로 참된 자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실 유명한 자이지만 무명한 자로 살아가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억하는 자녀인데 사는 형편을 보면 죽은 자 같이 보일 수 있습니다

 

l  지고 양보하고 보복하지 않고 세상이 하는 식으로 싸우지 않고 빼앗아서 채우지 않는 것이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입니다. 우리의 명예이고 영광입니다. 그러니 현실을 겁내지 마십시오 이것이 평화와 영광으로 가는 길이라는 확신이 여러분의 삶을 붙들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위대해지십시오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5:12~21) 

                                           아담과 그리스도의 대조(5:12-21)

 

대표 원리

 

l  인류의 조상인 아담의 행위와 결정이 그의 모든 후손에게 영향을 미친 것같이, 둘째 아담 곧 하나님이 인류의 대표자로써 세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아담의 범죄로 인류에게 미친 비극과 멸망이 종식되고 그의 부활로 새로운 인류가 시작된다는 원리입니다

 

l  구원에는 감사가 있을 뿐, 자신을 자랑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믿음을 가진 자기 자신을 자랑하고 싶어 합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었다는 이류로 타인과 구별되고 싶어 합니다. 나는 믿었고 어는 안 믿었다

 

l  하나님은 세상과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아담의 범죄로 망가진 창조를 하나님이 회복하십니다. 인류를 전부 쓸어버린 후에 새로 만들지 않으시고 망가진 세상에 하나님이 뛰어들어 오셔서 상황을 역전시킵니다

 

 

추상명사가 아닌 인격

 

l  성경은 구원을 하나의 법칙으로서 제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어떤 법칙을 쓰시지 않고 실제로 역사 속에 직접 쫓아 들어오셨습니다.

 

l  인격이 가지는 피와 눈물과 땀과 한숨과 찢어지는 가슴을 안고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실을 자꾸 놓칩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빈틈없이 신실하신가를 보여주는 것이 구원입니다

 

l  여러분은 기독교를 교양이나 철학이나 명분이나 보험 정도로 여기지는 않습니까? 성경을 읽고 또 읽어도 하나님의 무시무시하심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까? .

 

감수하며 사는 새로운 인생

 

l  믿는자는 안 믿는자와 달라야 합니다 십자가를 세우신 하나님을 아는 실력을 갖는 것으로 달라야 합니다. 삶을 감수해야 합니다. 우리를 회복하시는 분은 하나님뿐이십니다. 우리는 스스로 회복할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회복된 자로서의 온유와 겸손이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속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아는 삶

 

l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입니다. 신이 우리에게 자신을 밝히십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설명하시고 당신의 일을 우리에게 나타내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계시라고 합니다.

 

l  하나님이 존재를 만드시고 내용을 채우시며 결국 이를 완성하십니다. 하나님이 먼저 일하신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나중에 이해하고 순종하게 됩니다.

 

l  하나님이 앞서서 일하신다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면 신생을 순종할 수 있게 됩니다. 신앙생활은 순종입니다. 순종은 명분이나 덕목을 실천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l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믿고, 우리의 인생을 통하여 하나님이 기쁘신 뜻을 이루실 것이라는 데에 우리의 생각과 소원을 두고, 자신을 맡기는 것이 순종입니다. 지금같이 이해할 수 없는 인생을 감수하는 것, 이것이 순종입니다. 고단하고 이해가 안되는 길입니다

 

 

 

 

 

 

 

 

 

 

 

 

 

 

 

 

 

 

 

 

 

 

 

 

 

 

다시 살아난 자같이

 

                                       (6:1~14) 

                                       성화의 원리 ( 6:1~14)

 

그럴 수 없느니라

 

l  6장은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라는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그럴 수 없느니라고 분명하게 답합니다.

 

l  죄가 넘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는 말씀은 하나님이 예수안에서 이루신 구원이 우리가 저지른 모든 죄를 뒤엎어 회복하고 만회할 만큼 크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은혜란 지우개같이 죄를 지우는 물건이거나 존재했던 것을 없었던 것으로 소각해 버리는 장치가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

 

l  43:1~7

 

l  내가 너를 창조하였은즉’,’내가 너를 사랑하므로와 같은 표현은 하나님의 의지가 듬뿍 배어 있는,무한한 하나님의 성실하심과 창조자로서의 권위와 책임과 능력이 깃든 말씀입니다.

 

l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구원이 이루어진 방식을 은혜라고 합니다. 잘못한 자리에서 잘한 자리로 나온 것은 우리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것입니다

 

돌아갈 수 없어서 복된자리

 

l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이 일은 완료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과거가 해결되어 지금은 하나님과 화목한 자리에 있습니다. 이미 얻었으니 이제는 누리자고 합니다. 이것이 현재입니다

 

l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5:2)’이니 은예 속에 들어간 현실을 완료형으로 표현했습니다.

 

l  은혜는 우리를 어떤 곳에서 이자리로 오게 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과 불화한 자리, 모두 죽을 수밖에 없었던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지금의 자리, 하나님의 영광을 약속으로 받아 소망 속에 살 수 있게 된 지금의 인생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l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5:9)’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는 완료시제이며, 구원을 받을 것이니는 미래 일어날 일의 묘사입니다.

 

l  우리에게 무슨일이 일어났습니까? 하나님 없이 살던 필멸의 자리에서 벗어났습니다.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자리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으로 바라보는 자리입니다. 그러니 믿음으로 살자고 합니다

 

l  68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예수께서 죽음으로 끝날 우리의 자리에 뚜어들어 오셔서 우리와 함께 죽음을 나누셨고 우리의 과거를 끝내셨다면, 그의 부활에 우리도 묶여 살아날 것이 아닌가,하는 것입니다

 

l  죽음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자리에 예수께서 들어오셔서 우리의 죽음에 동참하신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우리를 당신과 묶기 위해서입니다.

 

l  69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알기 때문입니다

 

l  10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에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죄에 대해서는 죽었기 때문에 죄와의 관계는 없어졌습니다. 죽었던 내가 다시 살아나서 예수로 말미암은 새종족이 되자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자가 됩니다 우리가 예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l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6:10-11)

 

l  바로 여기가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설명되는 부분입니다. 마치 시간이 그렇게 흘러온 것처럼 은혜가 우리를 과거에서 현재로 옮겨 왔고, 현재에서 저 약속된 미래를 향하여 또한 옮길 것입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것같이 은혜도 되돌릴 수가 없습니다

 

누적되고 채워지는 현재

 

l  우리는 현재를 불안해합니다. 자신의 모습을 살피며 늘 잘했다,못했다는 기준만 들이댑니다. 이런 우리에게 성경은 말씀합니다. “좋다 네가 그렇게 어리석게 말해도 좋다. 그러나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l  얼마나 다행입니까, 예수 안에서 얻은 구원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늘 원망하고 늘 다른 것으로 자신을 확인하는 바람에 안심과 불안,자랑과 수치밖에는 왕복할 자리가 없는 한심한 인생인데도 우리는 구원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l  하나님이 일하고 계시다고 하면, 우리는 꼭 그럼, 내가 뭐 할게 있나요?’라고 되묻습니다. 이렇게 반문하는 것에 대한 엄중한 대답이 바로 로마서 6장입니다.

 

l  은혜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 줄 알라,네가 과거를 돌아보고 울고 버틸 때에도 하나님은 너를 끌고 가신다는 것을 기억하라, 이게 그만 칭얼대라

 

l  이사야 556~11

 

l  비가 내려 헛되이 하늘로 되돌아가지 않은 것같이 내 말과 내 일은 하나도 헛된 것이 없다. 하나님의 일하심의 엄정함과 신실함을 인생에서 확인하지 못한다면 그 인생은 정말 헛된 것입니다.

 

l  이런 확인은 특별한 경험이나 기적으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살면서 누적되는 인생의 무게와 영혼의 깊은 갈증에 대해 답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다면, 인생은 정말 허무합니다.

 

l  창조에서 심판까지 하나님이 지으시고 목적하시고 채우시는 현재가 있습니다. 기독교 세계관은 우연이나 체념에 모든 것을 떠맡기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감싸서 더 나아가는 것입니다. 눈물과 실패를 가지고도 일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l  예수를 믿는다는 고백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는 구절에서 보듯이 시간과 공간에서 구체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알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각각의 인생 속에 적용되는 성육신

 

l  고후 5:13-16

 

l  고후 5:16-17 ‘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l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역사의 분기점을 지나오게 됩니다. 더 이상 죄안 된 과거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물론 우리 눈에 보이는 현실은 궁극적인 하나님의 영광이 아직 완성된 상태는 아닙니다. 그것은 미루어져 있습니다

 

l  특히 예수께서 우리를 권하기 위하여 성육신하신 것이 우리의 삶을 통해 연장됩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시간적으로 이미 끝났으면서도 개인의 현실과 실존 속에서는 지금 적용되고 있습니다.

 

l  우리가 그렇게 구원을 받았고 우리가 우리 이웃들에게로 가 그들에게도 이 구원이 적용됩니다 성공했으면 성공한 자 옆에, 실패했으면 실패한 자 옆에, 잘난척한 사람은 잘난 척하는 자 옆에, 억울하면 억울한 자 옆에 보냄을 받습니다. 그것 없이는 이웃이 될 수가 없습니다.

 

l  여러분이 이게 뭔가, 하고 한숨짓는 자리가 하나님이 일하시는 자리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오해와 수난 속에 살고 있듯이 꼭 그렇게 예수님이 사셨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l  5:1~2

 

l  내가 서있는 자리를 수용하기 바랍니다. 거리서 현재를 살아가십시오.과거에 무엇을 했으며, 지금 무엇을 하고 있고, 장차 어디로 갈 것인가를 아는 자의 늠름함과 넉넉함을 가지십시오

 

l  여러분의 구체적인 인격과 생애를 동원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기적을 보이실 것입니다.

 

 

 

 

 

 

 

 

 

 

 

 

 

 

 

 

 

 

 

 

 

 

은혜 아래에 있으니

 

                                   (6:12~23) 

                                   성화의 실천(6:15~23)

 

은혜에 대한 더 깊은 이해

 

l  하나님이 예수를 보내어 자신의 행위 때문에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을 끌어모아 그 존재들을 멸하셨습니다. 예수는 우리와 함께 죽으셨습니다. 그렇게하여 자기 마음대로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 버린 종족을 멸하신 것입니다.

 

l  사망으로 끝이 난 우리를 끌어안고 죽으신 바로 이 연합, 이 하나 됨으로 말미암아 또한 우리는 예수와 함께 살아났습니다. 예수의 부활과 함께 우리를 새롭게 부활시켜 이제는 아담의 후손이 아니라 예수의 후손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이 구원은 하나님이 이루셨습니다.

 

l  구원을 은혜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격과 조건을 요구하시지 않고 그분의 신실하심과 자비하심과 능력으로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은혜라는 말 속에는 잘못을 용서 받았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스스로 책임지는 사울의 인생

은혜가 세우는 다윗의 인생

 

l  삼상 30:1-6

 

l  다윗은 더 이상 이스라엘에 있을 수 없어서 블레셋까지 몰려간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의 현실입니다. 이런 현실에 대하여 다윗은 우는 것입니다. 하나님, 그 큰 영광과 명예를 주신 당신께서 어찌하여 나를 이토록 부끄러운 자리로 떠밀어서 이렇게까지 답이 없이 살게 하십니까? 이것이 다윗의 통곡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원망스럽습니다.

 

l  성경에서 말하는 다윗과 사울의 놀라운 대조가 여기 있습니다. 사울은 끝 간 데 없는 황폐함 속에 방황하며 쇠락의 길을 걷습니다. 결국에는 어쩌지 못하는 인생의 무게와 운명에 그의 삶이 묻혀 버립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의 삶이 거기에 묻히지 않도록 하나님이 붙잡고 계십니다.

 

l  하나님께서 다윗의 형편을 바꿔 놓으셔서 그가 평탄한 기로만 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 눈물의 자리에서 죽음으로 가는 길을 막고 그를 붙드신 것입니다.

 

l  사울은 전쟁터에서 결국 자결했지만 다윗은 돌이킵니다. 다윗이 어떤 마음을 먹고, 어떤 결심 속에 돌아선 것인지 우리는 모릅니다. 이것이 핵심은 아닙니다. 다윗이 죽지 못해 돌이켰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l  절벽에서 뛰어내리면 돌바닥이 물로 변하고 칼로 찌르면 칼이 부러지고 머리를 부딪히면 벽이 무너지고 그래서 할 수 없이 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l  삼하7:1-17

 

l  네가 나를 위하여 집을 짓겠다고 하느냐, 네가 나를 위하여 할 수 있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그런 생각하지 마라, 주는 자는 네가 아니라 나다, 나는 부족한 것 없는 하나님이다. 나는 너를 복 되게 하는 하나님이다, 내가 하나님이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은혜란 무엇인가

 

l  은혜란 하나님의 통치 아래 머물도록 우리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자비와 복 주심의 보호 아래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잘못한 것을 용서해 주는 것보다 더 큰 일입니다.하나님의 복 주심과 영광의 자리로 들어오게 하는 것입니다.

 

l  삼하7:18-29

 

l  이것이 은혜를 아는 자의 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행하셨고 우리에게 이 길을 허락하셨으니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원합니다 내가 그 길을 가겠습니다. 라는 것입니다.

 

l  은혜는 지위이며 기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름으로 존재하는 기회인 것입니다.

 

l  죄 짓지 말라는 정도의 권면이 아닙니다. 너희 인생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기회를 받았는지 알아라, 그러니 한번 멋지게 살아 보라는 말씀입니다.  현실의 위협 앞에서 더 이상 못살겠습니다, 어쩌면 이럴 수가 있습니까,로 끝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l  그러지 말고 피와 땀과 눈물과 우리의 몸뚱어리를 가지고 시간과 공간이라는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사람은 어떤 영광과 명예를 가지는가를 드러내며 사는 구체적인 기회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은혜의 시대를 살라

 

l  갈라디아서 5 22-23

 

l  은혜의 시대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주신 지위와 기회이며, 절대 실패로 끝나지 않는 인생의 시대입니다. 이제 이런 말은 할 수 없습니다. 은혜를 받았으니 이제는 다 됐고 가만히 있어도 된다. 죄를 지어도 된다.

 

l  말씀대로 살아 보아야 합니다. 놀라운 기회입니다. 위대한 삶을 살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l  5:24-26

 

l  성령으로 산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성령은 예수가 죽고 부활해서 드디어 오신 분입니다. 성령은 능력이나 경험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하신 일에 대해 지금도 우리에게 생생한 증언을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그런 성령과 함께 살며 그분과 함께 행하는 존재입니다.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7:1~6) 

                                             성화의 율법(7:1~25)

 

죄에 대하여 죽다

 

l  7장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서 하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더 분명하게 설명하기 위해 의미있는 비유를 듭니다. 남편이 죽으면 부인은 남편에 대해서 자유롭게 됩니다

 

l  로마서 6장에서 강조하는 것은 예수와 우리의 연합입니다.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살았다는 말씀에서 드러나듯이 함께라는 말이 거듭 강조됩니다..

 

l  아내가 죽으면 남편에 대한 아내의 책임도 없어진다, 그러니 우리가 예수와 함께 죽으면 우리는 죄한테 아무 책임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자요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자로 여길지어다(6:11)’

 

l  죽어 버린 우리는 이제 하나님께만 책임이 있게 되었습니다. 죄란 무엇입니까? 하나님 없음이 죄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 없음을 선택했습니다 그렇게 인간이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보호와 복에서 벗어나고 이탈하자 사망이 찾아옵니다.

 

l  하나님의 은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영생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보호 아래에서는 영생과 영광과 승리가 결실되며, 하나님의 통치가 없는 곳에서는 결국 부폐와 왜곡과 소멸과 멸망밖에는 열리지 않습니다.

 

부재(不在)에서 임재(臨在)

 

l  로마서는 이 모든 잉을 예수께서 이미 이천 년 전에 이루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죽음의 자리까지 함께하셨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 속에 살게 되었으니 더 이상 죄 아래 종노릇하지 말라고 합니다

 

사라진 하나님의 부재

 

l  은혜는 지위이며 기회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제부터 기쁨의 인생이 펼쳐진다, 너희가 하는 모든 일은 명예로 가는 길이다, 이것이 예수를 믿는다는 말에 담긴 뜻입니다

 

l  너는 내 아들이라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말 안 들으면 버리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너는 내 아들이라고 할 때에는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너 혼자 두지 않는다, 그러니 멋지게 되라는 말입니다.

 

l  예수를 믿었으니 이제 너 자신을 죄에게 바치지 말고 하나님께드리라는 말씀은 영광스러운 초대입니다. 헛고생할 것 없다. 내 인생을 살아라, 내가 너를 울륭하게 인도할 것이다. 이런 말입니다.

 

l  우리 주 예수를 우리에게 보내신 이후 하나님이 우리 곁을 떠나계신적은 없습니다. 그의 부활과 함께 모든 성도들에게 성령을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l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라(8:26)’

 

신자의 멋진 삶

 

l  7:4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임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l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l  만사형통하고 고민할 필요가 없는 삶 속에서가 아니라, 아직도 자기가 주인인 것같이 굴며 우리를 속이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삶인지,우리에게 준 영광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l  삶은 멋지고 위대한 것이라는 생각을 해야합니다. 우리를 하나님께 드리고 죄에게 넘겨주지 않는 싸움을 해야 합니다. 실패하거나 혹 넘어지더라도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일어나야 합니다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 7:7~13) 

                                     

 

경기를 위해 존재하는 규칙

 

l  오늘 본문은 율법에 관한 것입니다.기독교 신앙이 말하는 구원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죄,율법,은혜에 대해 잘 알아야합니다

 

l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10절 법은 옳고 그른 것을 구별하게 해주는 어떤 눈금이자 경계입니다.

 

l  벌을 주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경기를 계속 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입니다. 벌점은 먹고 경기를 계속 해라, 그것입니다

 

법칙보다 크신 하나님의 일하심

 

l  42:1-4

 

l  내가 메시아를 보내겠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고 하십니다. 즉 인격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인격은 법과 다른 존재입니다.

 

l  하나님은 인격으로 일하십니다. 우리의 존재와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시고 우주와 역사에 목적을 가지신 이가 인격으로 일하시는 것입니다. 그 인격의 가장 대표적인 성정이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34:6 는 말씀에 잘드러납니다

 

l  이 점을 놓치면, 인격적이신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이 인격과 성품에서 벗어나 언제나 사람을 잡는 무기가 될 뿐입니다.

 

l  너희는 내가 나의 형상을 따라 만든 나의 백성이며 나의 자녀이다. 내가 너희를 만들었고 완성할 것이다. 너희를 창조할 때 가졌던 그 목적을 이룰 것이다. 나는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며 타협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이름을, 내 영광을 다른 자 곧 우상에게 주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의지를 가지고 계십니다

 

l  우리는 율법을 지키는 일에서 패배할 수 있습니다. 게임에서 패배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승리하면 살아남고 패배한다고 해서 끝장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l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통치와 구원과 영광을 잘잘못의 법칙으로 가두지 마십시오. 그것보다 큽니다. 잘한것은 잘한것이고 진 것은 진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부모가 자식의 편을 들어주듯이 더 큰 사랑이 있는 것입니다.

 

l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분명하게 깨닫지 못하면, 하나님을 대신하여 헌신, 사랑, 감격 같은 것들이 우리를 붙잡고 늘어집니다. 마치 신앙의 궁극적인 목적인 양 행세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신앙을 그토록 놀라운 하나님의 넓이와 깉이에 도달하지 못하게 합니다

 

l  우리에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의 필요를 스스로 채우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러니 대강 살아도 되겠다고요? 그럴 수 없습니다.

 

원칙을 넘어 위대함의 자리로

 

l  히브리서 12장에서는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자기 자식을 징계하지 않는 아버지를 보았느야, 징계하지 않으면 사생자요, 자식이 아니라고 합니다

 

l  하나님이 다만 법대로만 집행하는 심판자에 불과하다면 은혜를 베푸는 일이란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분이 은혜롭고 자비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고 인자와 진실이 풍성하신 인격자라야가능한 일입니다

 

l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의로우시고 거룩하시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우리의 복과 명예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모든 의지를 동원하여 성실하심과 긍휼하심과 기다리심과 용서와 이해로 우리 안에 이 일을 만들고야 마십니다

 

넉넉함으로 베풀게 되는 삶

 

l  이런 배경에서 요한복음13 34-35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l  사랑이란 이해하고 기다려 주며 될 때까지 정성을 바치는 것입니다. 왜 사랑하라고 하는 걸까요? 하나님이 우리에 대해서 그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겁먹지 마라, 정죄하고 다니지 마라, 인상 쓰고 다니지 마라. 네가 가진 자인 줄 알아라, 넉넉해라 이것이 바로 사랑하라는 말에 담긴 뜻입니다

 

l  사랑은 불타는 것이 아니라 넉넉해서 흘러넘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하다면 기독교 신앙은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그러나 알면 패배 속에서도 명예가 있을 것입니다

 

l  여러분의 현실, 여러분이 직면하는 조건과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누리는 넉넉한 성숙과 영광과 명예가 있기를 바랍니다. 결코 패배할 수 없는 인생으로 부름 받았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원함은 내게 있으나

 

                                   ( 7:14~23) 

                                  

 

하나님 없는 자의 현실

 

l  본문은 모든 자연인 곧 하나님 없이 사는 인간의 현실을 아주 통렬하게 지적하는 대목입니다.그 현실이란 마음에서 선과 악이 싸우고 있고 그 싸움에서 늘 악이 이기는 현실을 말합니다

 

l  우리는 죄의 권세 아래에 있기 때문에 선을 행하려는 의도 속에서도 악을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우리는 옳을 때에도 죄를 짓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는 선을 생산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l  우리는 성공하든 실패하든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성공한 자들은 은혜를 베풀기가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 보상을 요구합니다. 실패하면 억울해 합니다. 둘다 죄를 짓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현실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없이 살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구체적 해답인 성육신

 

l  성경은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를 말하고 싶어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한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외면하는 것을 선택하여 하나님 없음의 자리로 내려왔습니다. 멸망과 부패를 자초한 것입니다

 

l  하나님의 부재 가운데에 있는 우리의 자리에 하나님이 쫓아 들어오셔서 이 부재를 없애 버리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임마누엘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다 곧 성육신입니다.

 

l  구원은 하나님께서 이천 년 전에 역사 속에서 이미 이루신 일이지만, 이 구원은 각자의 생애 속에서 적용되고 확인되고 구체화됩니다.

 

l  예수를 믿고 사는 것은 단지 구원을 얻은 정도에 머무르지 않고 구원을 누리는 영광의 길이고 명예의 자리라고 거듭 설명했습니다

 

l  2:5-11

 

l  예수의 죽음, 그의 순종을 본받으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의 기쁘신 뜻으로 자신을 채우였습니다. 이것이 성자하나님이 성부 하나님에대해 가지신 항복이요, 기쁨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l  하나님은 당신의 정체를 자비와 긍휼과 성의와 사랑으로 드러내시는 분이라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드러난 증거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입니다.

 

l  은혜가 없으면 우리의 마음과 육신에 선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하는 비극밖에는 남는 것이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드러낸 것이 십자가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이 당신을 십자가로 자랑하신다고 합니다.십자가야 말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어디까지 올 수 있는가를 보여 준 구체적 증거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에게서만 오는 실력

 

l  1:17~22

 

l  너희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너희가 알기 원한다, 너희를 지으시고 너희를 위하여 당신의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이 누구신지 너희가 알기 원한다, 그분이 너희를 위하여 무엇을 하셨으며 이 일이 얼마나 굉장한 것인지 알기를 원한다, 라고 하는 바울의 기도입니다

 

l  3:14~19

 

l  죄는 하나님 없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없으면 부패와 왜곡과 멸망의 길을 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예수 안에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셨고, 예수 안에서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묶으셨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손에서 우리를 끊을 것이 세상에 없습니다.

 

l  그 큰 하나님의 능력과 성실하심이 우리를 그분의 자녀로 매일 매일 기르십니다. 우리가 어떠한 경우에 처하든 그의 영광을 우리와 함께 나누십니다. 그것을 알라고 하십니다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아래에 있으니

 

                                         ( 7:21~8:11)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l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7:24 예수를 믿지 않았을 때에는 모르고 그랬을지라도 이제는 예수를 믿었으니 선을 지향하며 의롭게 살아야 하지 않는가,하는 문제입니다

 

l  신앙은 내가 옳기 때문에 하나님이 내 편을 들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예수 믿는 것으로 자기 안에 자랑과 근거를 갖게 되는 싸움도 아닙니다.

 

l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 말들으사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죄인을 부르러 예수가 오셨음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로우시다를 찬송하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예수로 누리게 된 승리

 

l  예수 이전에는 우리가 다 죄의 노예였다. 설사 선한 일을 소원하더라도 할 수가 없었다. 죄가 주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지금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 따라서 결코 정죄함이 없다,라는 것입니다

l  우리의 현재는 예수 안에서 이룬 새 생명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부활을 운명으로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사망을 이기고 승리하는 운명을 가진 자로 살게 된 것입니다.

 

l  우리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자기 증명을 하여 안심하려 합니다. 예전에는 금식이나 금욕과 같이 잘못에 대한 대가를 스스로 치러 심리적 안정을 얻으려는 노력이 가장 흔했습니다. 과도한 헌금을 작성하거나 분쟁 중인 이슬람 지역에 선교사로 지원하는 것처럼 지나친 서원을 해서 안심하려고 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해도 자신의 신앙이 확인되지 않더라는 거죠

 

l  고전 15:55~58

 

l  승리는 밖에서 옵니다. 우리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김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일은 이 승리를 누리는 것뿐입니다 여러분이 만나는 정황과 인생에서 승리를 누리기 바랍니다.

 

l  12:2-3

 

영으로 산다는 말의 의미

 

l  영으로 산다는 말의 의미는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로 보이신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세상 속에서 그분의 통치에 따르는 운명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l  1:3~6

 

l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기쁘신 뜻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당신의 영광을 찬송하도록 목적하셨다.이 일을 방해할 수 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l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이는 다만 의도나 이상이나 환상이 아니라 구체성을 말합니다. 예수가 인간의 몸을 입고 시간과 공간 속에 들어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망의 자리까지 내려갔다가 부활하셨습니다.

 

l  성령은 예수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은 결과이기 때문에 성령으로 인도를 받는다는 것은 예수로 말미암은 선물입니다. 성령의 임재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 속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l  이길 때까지 하는 것입니다. 이기지 않으면 끝이 아닙니다. 승리를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현재입니다.

 

l  예수님은 벌써 일을 다 끝내셨습니다. 성령께서 결과를 낳으시려고 선물과 약속과 현실로 우리에게 와 계십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8:12~17) 

                                  

 

더 이상 정죄가 없는 지위

 

l  우리가 더 이상 정죄를 받지 않는 지위와 운명에 이미 들어와 있다는 것이 로마서 8장의 이야기입니다. 법을 기준으로 하면 정죄가 나오지만, 사랑을 기준으로 하면 심판이란 있을 수 없다

 

l  예수 안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화된 다음에는 이 관계가 깨어지는 법은 없다. 잘못하면 혼나더라도 구원은 취소되지 않는다. 이렇게 더러움과 부끄러움과 못난 자리에서 영광과 명예로 나아가도록 인도 받는다,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로마서가 제시하는 큰 틀

 

l  로마서 1장에서 시작하여 8장에 이르는 내용을 개관해 보면

 

l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정의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믿음이라는 방식으로 주어지고 있음을 가리킵니다.

 

l  믿음은 율법과 대조되어 구원을 받는 자가 스스로 어떤 자격이나 조건을 충족하여서 구원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시는 분이 은혜와 선물이라는 방식으로 구원을 주신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l  복음이 왜 필요할까요? 118절에서부터 320절까지 보면, 우리가 하나님 없이 살아 부패하고 왜곡되고 죽음의 상태에 있다고 선언합니다 롬 310~12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l  320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라고 하여 인류에게 희망이 없다고 단정합니다

 

l  그리고 마침내 복음이 등장합니다. 321그러나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한 의는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으로, 차별이 없다고 설명합니다.

 

l  이렇게 선언된 구원은 우리가 만들어서 얻는 보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로 다른 표현으로는 믿음으로 주신 것입니다. 4장에서 아브라함을 언급하여 이 믿음을 더 깊게 설명합니다

 

l  아브라함에게 의롭다고 하신 것은 아브라함의 실력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받은 의는 하나님의 의요 하나님의 자비였다, 이것이 복음이 성립되는 방식이다

 

l  이어 5장에서 대표 원리로 구원을 설명합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 모든 인류가 아담의 우손으로서 암담의 법죄에 갇힌 건이 그토록 영향력이 큰 사실이었다면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안에서 인류에게 일어난 일은 어찌 더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안겠느냐

 

l  이어 6장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하리요, 은혜로 구원을 얻었으니 아무렇게나 살아도 좋은가? 그럴수 없다 죽음을 향해 가던 인생에서, 못나게 살던 인생에서 불활과 영광으로 새 생명을 얻었으니 이제는 바로 살아야 할 것 아니가.

 

l  하지만 우리는 예수를 믿고 복음을 받아들인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하나님이 인류와 역사와 운명에 개입하셔서 인류에게 반전 곧 부활의 승리를 예수 안에서 이루신 일이 얼마나 놀라운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l  그래서 이 구원을 자신에게 적용할 때면 각자의 선택을 확인하고 자격을 고민하여 늘 7장으로 갔다,8장으로 갔다 하는 것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로 가서 죽어나다가 어느 날 은혜를 입으면 8장에 온 것같이 생각되고 또 다시 어려운일이 생기면 6장으로 돌아가서 하나님 내가 예수 안에 있다는데 무슨 고생을 이렇게 시키십니까?라는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l  사망은 우리를 위협할 것이며 유혹할 것입니다. 우리는 아마 여러 번 넘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이 넘어짐은 넘어짐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를 다시 일어서게 만들 것입니다 그 넘어짐이 우리를 더 단련하고 더 깊게 만들어 갈 것입니다

 

고난으로 보내시는 하나님의 부르심

 

l  복음의 놀라운 점은 하나님이 당신을 외면한 인간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시고 당신의 아들을 보내셨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l  그리고 성경은 이러한 구원을 고난과 연결하여 설명합니다 로마서 8 17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닫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l  우리를 구원하신 사실만이 놀라운 것이 아닙니다. 또 하나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당신의 의지와 성의와 능력을 동원하여 죄 가운데서 꺼낸 당신의 백성을 고난으로 집어넣는다는 사실입니다.

 

l  우리는 이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를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5:1~2)’

 

l  이렇게 끝나야 맞습니다. 그러하 이뒤에 3절이 붙어있습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롬 5:3~6)

 

l  우리를 죄와 사망의 자리에서 은혜와 능력으로 불러내신 하나님은 우리를 환난으로 보내십니다, 고난으로 보내십니다. 참으로 신비로운 부르심이라서 우리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입니다

 

l  8:12~14 ‘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l  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l  2:1~4

 

l  2:5~11

 

l  로마서 817절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삶은 고난의 삶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권면하는 삶이 빚어지려면 고난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영을 따르는 삶을 이루시기 위해서 우리를 예수처럼 십자가와 고난의 길로 인도하실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이렇게 이해해야 합니다.

 

 

외면당하며 살아야 하는 인생

 

l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던 당시에도, 그러했듯이, 인류의 역사는 지금도 세상의 창조주이시며 배신한 인류를 위하여 오신 구원자이신 그분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예수와 같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인생 속에 묻혀서 아무것도 아닌 일을 하며 사는 것이 신자의 마땅한 의무입니다

 

l  복음이 무엇인지 아는 자들은 세상에 묻혀 외면당하는 인생을 기꺼이 걷게 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이 신비 곧 고난으로 인도하십니다

 

l  우리의 분함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그저 욕먹는 것이 싫습니다. 예수를 믿어서 세상보다 우월한 지위와 평가를 분명하게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지 못한 것이 억울합니다

 

l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충만을 예수 안에 담아 세상에 보내셨다이것을 모르면 여러분은 기독교을 모르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여러분의 존재가 실은 얼마나 큰 존재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l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남에게 빼앗아 오고, 나만 못한 사람을 꺾어서 분풀이 할 뿐 기독교인에게 주어진 진정한 능력과 신비와 명예와 자랑은 헤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l  그러니 다시 읽고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는 기도가 무엇인지를, 예수님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확인하십시오, 이미 주신  , 이미 가져 세상이 빼았을 수 없는 것을 확인하고 누리십시오.명예로운 인생인 것을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l  하나님의 가장 큰 능력과 기적이 바로 여러분 자신이요, 여러분의 인생인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 충만함과 넉넉하게 부어 주시는 은혜가 여러분의 인생이고 여러분의 현실이고 여러분에게 준 자리라는 것을 기억사십니오.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

 

                                         ( 8:18~27) 

                                  

 

고난으로 채원지는 시간

 

l  오늘 본문에서는 고난,영광,소망이라는 단어가 중요합니다. 고난에 대해서는 18절에서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라고 합니다.

 

l  영광에 대해서는 21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라고 언급합니다.

 

l  24절에서는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라고 소망을 강조합니다

 

l  위 세가지는 17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에 이어져 나옵니다

 

l  5:1~2

 

l  화평은 이루어 졌고 하나님의 영광은 약속되었습니다.이미 완료되고 정상화된 하나님과의 관계와 기다리며 바라보아야 할 하나님의 영광 사이를 하나님께서 무엇으로 채우시는지 봅시다. 3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l  하나님은 예수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여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고 당신의 영광의 찬송이되게 하시겠다는 목적을 고난을 통해 성취하겠다고 선언하십니다.

 

고난과 정황

 

l  하나님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자 가장 기뻐하시는 방법은 예수와 십자가입니다.우리를 완성하시어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는 방법도 고난으로 정하였다고 이야기합니다.

 

l  2:9~10

 

l  예수는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완성하십니다. 십자가, 수치와 고통,그리고 죽음입니다

l  죄란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이 없는 상태이고 이는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생명과 진리와 승리와 영광의 근거가 없어집니다 이 모든 것이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나오기 때문입니다.

 

l  우리는 고난을 부정적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고난은 잘못했을 때만 받는 벌로 생각하여 누군가 고난을 당하면 무언가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하나님이 그것으로 일하신다는 생각은 못합니다.

 

l  고난은 우리 인생 전반에 걸쳐 있는 현실합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를 이 모양으로 놓아두실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몸체를 키우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때 자랍니다. 키가크고 체중이 늘고 지능이 늘고 많은 것을 경험합니다

 

l  철학과 사변으로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도망갈 수 없는 현실을 삶에서 너무나 충분히 확인하게 됩니다 나의 한계가 무엇인가, 내가 어디에 속했는가, 그리고 내가 속한 사회가 무엇인가를 이때 배웁니다

 

l  우리가 어느 시대에 태어나 어떤 정치 경제적 조건 속에 있었는가, 어느 부모 밑에서 어떤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는가는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것은 모두 컨텍스트(context) 이기 때문입니다

 

l  여기서 말하는 컨텍스트는 자기 자신의 정황,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주신 정황을 가리킵니다. 나 라는 존재를 만들어 낸 환경, 유전, 유산이 컨텍스트입니다 우리를 담는 그릇입니다. 급한성격,착한마음,무지, 경솔 같은 각자의 성정도 또한 이 그릇입니다

 

l  중요한 것은 이 그릇에 무엇을 담고 있느냐, 하는 것이죠 그릇이 내용물을 만들지 않습니다. 이는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습니다. 생명과 진리,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은 하나님만이 주십니다.

 

어떤 정황 속에서도 만들어지는 본문

 

l  그 무엇도 만들어 낼 수 없을 것 같은 억울한 모든 정황, 여러분이 겪은 고난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이 자리에 하나님이 본문을 넣을 수 있다면, 여러분이 겪는 고난은 오히려 하나님이 뜻을 이루시려 여러분을 보내신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죽음의 자리까지 찾아오셔서 본문을 넣으신 것처럼 말입니다.

 

l  죽음보다 못한 정황은 없습니다. 십자가란 인간이 만들 수 있는 최악의 경우이며, 인간의 배신과 무지로 만든 수치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자리와 이런 정황에도 본문을 담으셨다면, 우리의 인생에야 얼마든지 본문을 채우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고난이란 결국 본문을 만들어 내고야 마는 하나님의 일하심의 현장인 것입니다.

 

l  고후 4:5~7

 

l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다고 합니다. 의역하면 이 보배를 질그릇 같은 삶에 가졌으니입니다. 우리의 정황은 보잘것없습니다. 우리의 지위나 능력이나 영향력도 보잘것없습니다.이런 질그릇이 보배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질그릇 같은 정황으로 보내십니다.

 

l  고후 4:8~12

 

l  우리는 유능하고 흠 없고 진실하고 헌신적인 컨텍스트에만 텍스트가 담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릇을 멋있게 만드느라 보냄을 받은 자리를 외면합니다. 보냄을 받은 이 자리 말고 어디로 가고 싶으십니까?

 

l  하나님은 우리 없는 자리가 한 군데로 없도록 우리 모두를 각각 온갖 삶의 정황 속으로 보내십니다. 이 모든 자리에서 우리는 무엇을 겪게 될까요?

 

l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고,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우리에게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본문이 있습니다

 

l  8:18~23

 

l  하나님은 우리 개개인을 구원하는 정도를 넘어 창조 세계 전체를 회복하려고 하십니다. 모든 피조물의 획복을 목적으로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l  예수를 믿고 나서 받게 되는 보상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동참하게 되는 일입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와 장소는 이미 그곳에 사는 이웃들 앞에 우리가 보냄 받은 컨텍스트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과 동일한 조건 속으로 들어 갑니다. 같은 컨텍스트인 억울한 자리, 무능한 자리, 무명한 자리에 들어 갑니다.

 

l  이해할 수 없는 정황에서도 여러분이 본문을 품고 있으면 여러분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 일에 소망을 품어야 합니다. 완성될 때까지 중단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이해를 갖고 우리의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우리의 자리

 

l  오늘 우리가 서 있는 자리는 아무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어제를 살수 없고 내일을 살 수 없습니다.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매일 이웃을 향한 하나님의 손길로 서 있으십시오 이 모든 경우와 정황 속에서 여러분의 믿음을 발휘하십시오

 

l  고전1:18~14

 

l  8:26 ‘이와 같이 성렬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l  우리가 보냄을 닫은 자리는 탄식하며 걸어야 할 만큼의 자리입니다. 우리는 인생이 어쩌면 이럴 수 있을까 하는 자리까지, 죽음을 맛보시는 예수의 자리까지, 설마 여기는 하나님이 안 돌아보시겠지, 하고 생각하는 자리까지 보냄을 받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이모든 것에 얼마나 진심을 다하시는지 지켜보십시오

 

l  우리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깊은 자리까지 간다는 것과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그 누구보다 더 큰 성의와 의지로 일하신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것이 기독교의 힘입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 8:26~30) 

                                  

 

모든 것이 합력하여

 

l  로마서8장은 신자의 삶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예수를 믿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신자는 이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며 살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신앙의 여정을 걷는 구체적인 과정은 고난으로 준비되어 있습니다.

 

l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그리하셨듯이, 우리에게도 영광된 승리의 자리까지 가는 과정을 고난이라는 방법으로 인도하십니다.

 

l  우리는 이런 것이 겁이 납니다. 예수를 믿으면 안 믿을 때보다 좀 나아져야 할 것 같은데, 믿어서 더 힘들게 된다고 하면 가능한 한 늦게 믿는 것이 나을 것 아닙니까?

 

l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l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표현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부추겨 채찍질하고 노력하여 도달하는 결국을 이야기하지 않고, 우리의 능력이나 책임의 한도를 넘어선 어떤 운명을 분명히 제시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l  8:29~30

 

l  미리라는 표현에서 우리의 이해, 우리의 결단, 우리의 노력,우리의 업적보다 앞서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한 일에 대한 보상이나 심판을 받는 것보다 더 큰 하나님의 의지가 언제나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l  미리 아신자들이란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셨기 때문에 아신다는 뜻입니다. 내가 너를 나의 뜻과 목적을 가지고 만들었다 그래서 내가 너를 안다.

 

l  미리 정하신 그들을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이미 이루어진 우리의 운명이며 현실입니다

 

l  이미 시작되었고 완성되고야 말 하나님의 작정과 의지와 약속 가운데서 오늘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입니다. 우리는 이 과정을 성화라고 부릅니다

 

l  신자에게 이 과정은 목적지를 향해 전진하는 완만한 상승곡선이기보다 부침이 심한 굴곡진 곡선으로 경험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진전보다 퇴보가 더 많고 낙관할 상황보다 비관할 때가 더 많은 그런 인생입니다. 그런데도 성경은 목적지가 변경되거나 취소되는 일은 없다, 결코 하나님은 타협하시지 않는다.라고 분명하게 단언합니다

 

개혁주의 성화관

 

l  성화로 표현되는 이 과정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개혁주의 성화관을 이해하기 위한 전제로 성화에 대한 다른 교파의 교리를 요약하면, 루터교는 구원을 더 깊이 이해해 가는 것이 성화라고 합니다. 감리교는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 앞에 자신을 드리는 생애가 되는 것을 성화라고 이해합니다.오순절성령파는 성화를 신자의 존재와 삶에 대한 성령의 분명한 왁인으로 이해합니다. 신비주의에서는 깊은 내적 성찰과 명상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는 신비하고 환상적인 영적 체험을 성화라고 이해 합니다

 

l  개혁주의 성화관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고 말합니다.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는 새로운 삶을 의미합니다

 

l  6:4,5~11

 

누적되어 충만해진 인생

 

l  이 모든 고난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에게 충만히 주신 것을 각각의 삶 속에서 확인하고 채우고 누리는 싸움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니 책임 있게 살라

 

l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은 완료된 과거입니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이루어진 구원입니다. 예전에 시간의 역순을 언급하면서 이는 변개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의지를 나타낸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는 이미 성화의 길에 들어왔으며, 결국 영화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l  그러니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 묻는 것입니다. 성경은 잘 살라고 이야기합니다. 잘 사는 것은 책임 있게 사는 것을 말합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책임있게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명예를 알고 사는 것입니다. 너희 삶이 하나님의 성실한 손에 있다 그러니 넉넉하게 살아라, 걱정말고 울어라 삶을 맘껏 향유하고 누리라고 합니다

 

l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을 외면했을 때에도 당신의 아들을 주실 정도로 은혜를 베푸신 분이신데, 하물며 우리가 이제 그를 믿고 아는 차원에 있다면 우리에게 무엇을 아끼시겠는가, 하는 말씀입니다.

 

l  5: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끊을 수 없으리라

 

                                         ( 8:31~39) 

                                  

 

우리를 붙드시는 사랑

 

l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구원은 이천 년 전에 이미 십자가를 통해서 확정하신 것이요 절대 취소될 수 없는 하나님의 의지라는 것을 여기서 확인하게 됩니다.

 

l  미리 아신 우리를 미리 정하셔서 부르셨고 의롭다 하셨으며 장차 영화롭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이미 완성되어 있습니다. 이미 부름 받은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영광과 승리의 완성에 이르는 길을 현재 걸어가고 있습니다

 

l  이미 완성된 구원을 각 개인에게 적용하시는데, 신자 개개인이 겪는 이 신앙생활의 현실은 고난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고난 때문에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난 구원과 소망에 대해서 늘 흔들립니다 흔들리는 우리에 대해 로마서 5장에서 이런 말씀으로 권면합니다.

 

l  5: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l  사랑이 우리를 붙들고 가니 걱정마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붙들고 있으니 아무도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8:31절 이하에서는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라며 우리를 위로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면 충분하고도 남습니다.

 

대상이 있어야 하는 사랑

 

l  이 본문에서 중용한 부분은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는 선언입니다. 31절을 다시 봅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l  여기서는 하나님의 사랑,하나님의 의지,하나님의 능력 그 자체에 강조점이 있지 않습니다. 이 모든 하나님의 속성이 바로 우리를 대상으로 하시 것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l  대상을 빼놓고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은 다 거짓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우리라는 단어가 여러 번 나옵니다. 32절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에서 우리가 등장합니다. 34,35,39절에서도 우리가 반복하여 나옵니다

 

l  하나님의 상실하심과 큰 능력만 강조하고 성경이 강조하는 우리를 간과하면 이 둘의 간격만 너무 넓어질 뿐, 우리 자신에게는 아무 힘이 되지 않습니다.

 

l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장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음이다 오래 참음이란 상대를 참아주는 것이다. 이처럼 사랑에 대한 정의가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게 되어 있습니다.

 

l  사랑에는 대상이 있습니다. 사랑은 홀로 멋진 것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대상 없이 자신을 혼자 지칭하는 말로는 쓰일 수 없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대상으로 하고 있고, 우리를 위하여 찾아오신 사랑이며, 우리를 놓지 않으시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현실을 묶으신 예수처럼

 

l  5:7~10

 

l  예수가 육체로 오셔서 육체의 동료가 되십니다. 그의 부활로 그와 묶인 육체는 부활할 수 있게 됩니다, 그가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그가 오셨던 자리에 있던 사람들, 그가 함께한 모든 자들은 그 안에 함께 있게 됩니다.하나님께ㅓ 예수 그릿도를 보내신 거슬 사랑이라ㅗ 이야기하는 이유입니다.

 

l  예수는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합니다. 화를 내고 억울해 하고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경외하심으로 인생을 감당합니다. 하나님과 사랑으로 묶여 있는 분이신데 눌물과 통곡으로 간구해야 하는 자리에 오셨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존재와 자신을 묶으신 것입니다.

 

l  예수는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며 대제사장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근거가 되어 우리는 누구의 가족으로, 누구의 동료로 이 시대와 이 나라에 사랑의 존재로 서 있는 것입니다.

 

l  예수의 성육신과 고난과 죽음과 부활이 모든 인류를 묶은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이요 방법이듯, 우리가 이 시대를 살고 이 나라에 살고 누구의 이웃이 되는 것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누군가와 묶으십니다

 

l  마태복음 28 1819절에 나온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네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는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이 땅끝에 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 있는 자리가 땅끝입니다

 

l  우는 자리,할 말 없는 자리,억울한 자리,견딜 수 없는 자리에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께서 우리를 보내신 것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l  여러분이 서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이 무엇을 하시는지, 여러분이 거부하고 싶은 여러분의 인생으로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확인하고 자랑하는 복을 누리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