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tation on Bible/Corinthians 1(고린도전서)

고린도전서 - 박영선 - 제9장

Four Seasons Daddy 2022. 1. 18. 22:32

 

사랑에 더한 사명

 

 

(고전 9:01 - 14)

나를 목적으로 하는 하나님의 일하심

 

l  8장은 지식에 관한 문제입니다. 그전에는 분파.시집 장가가는 문제,우상재물 이번 9장은 사명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l  신앙의 고급한 경지가 우리가 알고 있는 자유를 권리로만 이해하지 않고 책임으로 이해하는 자리에 가야 되는 것과, 마지막의 가치가 다만 지극함과 치열함으로 확인되는 것과 혼동하게 됩니다.

 

l  자유를 유보하는 스스로 절제하는 것과, 무속신앙에서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지극함과 치열함이 다인, 신앙의 대상이 요구하는 진정한 내용과 방향,목적지와 무관한 우리끼리 정한 최고의 가치 희생과 다릅니다.

 

l  우리 많이 오해하는 것, 철야기도,금식기도, 지극정성으로 하나님을 항복시키려고 드는 것은 하나님이 항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확인될 뿐입니다. 무엇을 한 것 같죠. 그 당시의 표현으로는 그랬습니다.

 

l  회개가 더 이상 씻을 것이 없도록 껍질을 벗긴 것으로 만족하는 자기 확인이여서는 회개가 아니고, 하나님의 원하시는 것에 일치해야 하는 것입니다.하나님의 목적지와 하나님의 길에 자기를 항복시키는 것을 회개라고 하지 자기 시원하게 하는 것이 회개가 아닙니다.

 

l  사도바울은 자기가 간 길이 충분히 하나님을 위하여, 또 하나님이 그에게 맡기신 일로서 충분히 항복하는 고백이고, 동일한 고백이 묶인 곳에도 충만합니다.

 

l  우리의 인생을 보면 자식 때문에 비굴해지는 자리까지 비로소 오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 때문에 거기까지 오십니다. 거기까지는 비난과 배신과 누명과 모욕까지 오십니다. 거기에 기독교의 위대함이 있습니다.

 

l  우리를 왜 이렇게 대접하십니까? 묻는 건 어리석은 질문입니다. 이미 있는 우리의 존재와 인생을 하나님이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이 크고,깊게 대접하고 요구하고 일하고 계시다는 것에 대하여 항복해야 됩니다.

 

l  세속성이란 하나님이 없어도 의미와 가치가 생길 수 있다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 아닌 것으로도 행복이 만들어 질 수 있다는 것이 세속성입니다. 예를들면 건강,도덕,지위,명예 등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 세속성이고, 세상이 말하는 거짓말입니다. 안심,평화,정의도 다 그렇습니다.

 

l  하나님 만이 가치를 만드시고,유지하시고,채우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만들고, 의도하고 생각하는 것의 차이입니다.

 

l  그렇다면 금욕이라는 것은 방탕한 것을 사양하는 것이 금욕이 아닙니다. 금욕이라는 것은 하나님 없이 즐거움을 거부하는 것이 금욕입니다.우리는 금욕이 이렇게 자신의 권리를 사양하고 욕심을 거부해서 현실과 컨텍스트를 외면할 수 있습니다.

 

l  금욕적이다라는 말은 현실에서,현장에서 도망가는 것으로 사용하지 마시고 현장 속에서 어떻게 내용을 담아내는 싸움인가로 끌고 오셔야 된다는 것 그렇게 하기 위하여 나에게 채우고 그 전 단계에 까지 온 사람들이 보호받고 격려 받게 하기 위하여 짐을 더 지는 자리까지 가는 너희 자유가 믿음이 어린 사람들에게 올무가 되지 않도록 양보해라 절제해라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l  자기의 짐을 옆 사람을 위해 더 질 수 있는 것이 겸손입니다. 그 자리를 도망가지 않은 것 내 옆에를 비난하고 비교하여 자기를 확인하지 않는 것이 교만하지 않는 것입니다.

 

l  교만은 불리되어 절대적 비교를 하자고 덤비는 것입니다.

 

l  22

 

l  베드로가 배신의 자리까지 가봐야 하는 것일까요. 진심은 있으나 실력이 없었죠. 진심도 없고 실력도 없는 사람은 도울 방법이 없습니다. 실력이 없는 사람을 진심이 없는 것으로 몰고가는 자는 자기도 실제로 겪어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l  진심과 명분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그게 사람을 키워야죠. 누가 기다리고 편을 들어줘야 올거아닙니까.

 

l  교회의 무서움은 앞선자들이 뒤따라 오는 자들을 위해서 보호막이 되거나 도움이 되거나 보호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명분만 시퍼렇게 살고 앞선자들이 비난밖에 할 줄 모르는  그런식의 일들로 교회사 내내 고난을 겪습니다.

 

l  무엇이 정답인지는 빨리 배우는데, 그렇게 하는 것은 평생이 걸리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 무슨 책임이 드냐면 결별하지 않도록 합니다. 가족에게도,교회에서도 시대에서도, 나라에서도 그렇습니다.

 

l  시간과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시행착오의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l  성경이 무엇을 증언하고, 그 증언이 어떻게 생생하게 우리의 현실인줄을 알아야 합니다. 보편적인 현실 각각의 경우 여러분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을 추구하는지 보십시요, 무엇을 답으로 알고 있는지. 바울마져도 이것이 최선의 길이라고 얘기할 때는 배타적 유일한 길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간 길에 대한 백프로 만족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l  내가 상대적으로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무한하심에 대한 무지입니다. 그러니 금욕,희생,헌신 이런 단어들을 살리지 마시고 그런 것을 추구하는 하나님의 일하심의 실제적인 각각의 인생에서 하나님의 일하심과 묶이면 나는 다시태어나도 이길을 걷겠다 하는 말이 나와야 맞는 것입니다.

 

l  너희가 목적이란다. 하나님의 일하심의 목적과 대상으로 살아내라. 하나님이 일하고 계신다 최선의 조건으로 내 인생을 준비하시고 내가 그 길을 걷는다 그렇게 아셔야 합니다.

 

 

                                       

 (고전 9:15 - 23)

 바울의 사명에 대한 이해. 예수를 믿는 정체성 (고전 9:15 -23)

 

l  바울의 그가 한일에 대하여 보상을 요구하지 않고 자신의 사명으로 이해한 것을 쓰고 있습니다. 어떤 정황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스며드는 자로 살았습니다.

 

l  우리가 가지는 복음에서의 우리의 내용을, 우리의 삶에서 담아내야 할 내용을 그릇 컨텍스트를 치장하는 것과 혼돈하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을 담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l  진심,성실,욕심없슴,정직 등이 내용이 될 수 없습니다. 내용을 담을 수 있는 방법일 뿐입니다.

 

l  사명, 숙명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다시 말하면 이것이 나의 정체성이다 라고 합니다.

 

l  우리의 신앙도 하루에 성경을 10장을 보고, 기도를 30분이상 하고,하는 일들이 우리가 가야하는 일들의  보이는 이정표가 될 수 있어도 목적지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 화살표가 가르키는 방향으로 가서 예수를 만나십시요. 예수로 충만해 지십시요

 

l  같은 정황속에 있으므로 해서 소통이 되고, 소통이 되야 안내를 받고 유익을 얻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바울은 내가 전하는 복음은 이익이나 댓가나,보람의 문제가 아니라 진리와 생명과 구원에 문제라는 것을 차별화하기 위하여 내가 다른 모습을 가지기로 했다 입니다.

 

l  고후 12:7-9  여기가 그리스도 신앙에서 넘어서기 힘든 문턱입니다. 사도바울의 사명이며, 본인의 정체성이라고 합니다.

 

l  우리는 그런 정체성,운명,사명,그런 영광의 사람들이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l  11 17

 

l  이삭은 날 수 없을 때 낳은 아들입니다. 생물학적으로 생겨난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의 창조와 나의 약속의 신실한 결과로 생겨날 것이다.아브라함과 이삭이 알게 되는 것입니다. 없어도 되는 자로 서있다. 없어도 되는 구체적인 실존입니다.

 

l  아무것도 아닌자. 내가 한 일로서 보상을 받아내는 자가 아닌, 내가 없어도 되는 일을 하는 자로 왔다는 것을 보상을 사양함으로써 증언하겠다 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l  나는 이미 내 안에 본문을 담고 있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받아서 내 손을 다른 것으로 채울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고 이렇게 증언하는 것입니다.

 

l  여러분이 바꾸어 달라는 여러분의 정황,조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맞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거기, 하나님이 아무것도 아닌 거기에다가 하늘의 별,바다의 모래를 만드실 수 있다.로 서 있는 것입니다.

 

l  신앙생활의 어려움은 이런 보상으로 확인하는, 대가로 확인하는, 누가 알아주는 것들에 묶여서 내가 실제로 가지고 있는 것이 내가 만든 것이 아니고, 내가 보상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의 목적이요 뜻이요 능력이요 기적이라는 것을 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이해도,깨우침도 자랑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l  우리가 못 만드는 예수,부활,영광,생명을 우리가 그것으로 가로 막고 있지 않습니까!!

 

l  교회에 나오는 사람의 처지와 상황은 다 다릅니다. 그들은 그 각각의 자리로 보내어 지고 있습니다. 열심히 살고, 더 많이 배워서 죽어버릴 것 같은 이 시대에.

 

l  우리는 교회 모였을 때 신앙고백의 일체성 때문에 같이 모였어도, 흩어지면 하나님이 보내신 각각의 정황으로 갑니다. 거기서 동일한 조건 속에서 그 영혼의 하나님의 아는 지식을 생명을 복음을 가지고 있는 자가 그 정황을 해석해 내는, 예수와 십자가를 담아내는 자로 반응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안된다라는 것입니다.

 

l  우리는 자주 공허한 기도를 합니다. 이 시대를 주시옵소서,세계를 주시옵소서, 땅끝까지 가겠습니다. 그 끝은 여러분이 가 있는 삶의 현장입니다. 그곳에서 신앙인이 될 수 없다면 아무곳에도 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여러분의 그 지위를 알아채지 못합니다. 오늘 본문이 그 이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다.

 

l  고후 4:5

 

l  그리스도를 전파하기 위하여 우리가 너희에 종이 된다 그래요. 권력을 가지고 들어가지 않고, 그들의 밑사람처럼 들여 보내진다구요. 여러분이 보내진 자리에서 세상지위와 권력으로 우월하지 않은 그 중의 하나로 들어갑니다.

 

l  어두운 곳에서 빛을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창조,창조를 하나님이 행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없는 것에서 있는 것으로 만드십니다. 모르자들을 깨우치게 할 것입니다. 그 눈을 뜨게 하실 것입니다. 그 영혼을 깨우치실 것입니다. 그것을 믿습니다.

 

l  신자의 인생을 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항상 예수의 죽음을 짊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해되고 무시되고 왜곡되고 모욕받고 배신당하는 인생을 삶니다. 거기다가 하나님이 얼마든지 담을 수 있다는 말은 우리보고 각오 해라라든가, 이런 희생과 고통을 명분화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조건에서도 담을 수 있다면 어디서든 담을 수 있다고 합니다.

 

l  질그릇 같은 삶에, 아무것도 아닌 삶에, 하나님의 능력을 담아내십니다. 신자의 인생을 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의 죽음을 항상 짊어지어야 합니다.

 

l  무한한 하나님의 담으심. 이러한 모습 속에도 담으실 수 있는데 어떤 조건인들 아니겠습니까.

 

 

 

 

                                               

 (고전 9:19 - 27)

나를 세상에 묶으심, 나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 (고전 9:19 – 27)

 

l  승부를 다투는 자는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철저히 집중하고 훈련하고 기어코 이겨내야 된다 라고 합니다. 인생을 사는 것이나,예수를 믿는 것도 그런 것이다. 목적을 위한 절제를 해야한다.

 

l  5:18

 

l  집중하라, 복음에 내용을 가지고 있는 인생의 집중. 죄가 왕노릇 하고 있는 세상 속에서 결단코 우리 자신을 방임할 수 없다. 죄에 길에서 거슬러올라 우리가 가야 되는 길을 가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을 희생해야 합니다.

 

l  많은 사람에게 유익, 유용해야 한다는 것은 능력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나 해결사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복음을 세상에 던진것같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찾아온 것 같이, 너의 인생이 가지는 시간과 공간과 이웃에게 던져진,보내진 자로 묶여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너를 보내 너와 만나게 한 시대와 세상에 하나님이 은혜아래 묶으시려 한다.

 

l  우리가 기독교인으로 살면서 나의 자유를 유보하고,희생하고,기꺼이 순종하는 것으로 바꾼다. 라는 요구에 담겨있는 내용입니다.  

 

l  우리는 우리가 살고있는 시대와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에 하나님이 보낸 선수입니다.

 

l  12:3

 

l  우리는 전체가 아닙니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십시요. 팀이 져서 비난을 받을 때는 같이 받아야 합니다.

 

l  내가 항복할 수 없는 일로 우는자, 내가 만족할 수 없는 일에 웃는 자 속에 보내지고 있습니다. 이 시대 나의 인생 정치 경제 사회에 대하여 저주하지 마십시요. 그 속에 아멘하셔야 합니다.

 

l  우리의 인생에서 해결할 수 없는 일은 매일 있습니다. 그것을 여러분의 가슴의 무게로 깊이로 담으셔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으로 감수해야 합니다.

 

l  22:24

 

l  예수가 제자들의 그 자리까지 내려오셨다. 당신이 자신을 내어주어 팀의 승리를 이끄셨다. 이런 믿음이 없습니다. 이것이 자유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낸자리가 내가 기꺼이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하나님의 뜻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방법으로 보냄을 받은자로서의 지위라는 것을 알 방법이 없습니다.

 

l  기독교 신앙이 가장 많이 도전을 받고, 신앙인이 가장 많이 넘어지는 대목이죠.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내 인생이 고달픈가! 고달픈자에게 보내졌다고 합니다. 그들과 우리를 묶으셨다는 것입니다.

 

l  예수님도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비켜주시옵소서 기도하셨던 일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반복해서 내리시는 결론은 아버지의 기쁘신 뜻을 행하고, 아버지께서 나를 혼자 두지 아니 하셨느니라.이렇게 고백하고 있죠

 

l  다른 무엇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일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것은 우리의 명예와 자랑입니다. 누리셔야 합니다. 고통과 슬픔을 누려야 한다는 모순된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지 않는다는 헛된 것입니다.

 

l  예수를 믿는다는 고백으로 그의 부르심을 받아 가지게 된 믿음이 어떤 위대한 것인지 아는 그 믿음을 가지게 되셔서 여러분 인생이 더 크고, 더 놀라운, 여러분이 있어서 이 나라가, 자손들이 복이 있는 인생이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