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tation on Bible/Corinthians 1(고린도전서)

고린도전서 - 박영선 - 제11장

Four Seasons Daddy 2022. 1. 18. 22:42

 

교회내의 나의책임 지위

 

 

(고전 11:01 ~ 16)

 

역할과 책임

 

l  여성에 대한 역할의 내용, 그것은 하나의 증언입니다, 하나의 역할,배역입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는 하나의 역할이지요.지위가 낮고 신분이 낮은 것이 아니라,

 

l  5:22

 

l  교회와 그리스도의 연합과 같이 남편과 아내는 결합되어 있는데, 아내에게 복종하라는 거와 똑같이 남편에게 아내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랍니다.

 

l  복종과 사랑을 대비시키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오해를 불러 일으킵니다. 둘은 동일한 것을 역할에 따라서 표현을 다르게 쓴 것입니다.순종하는 역할을 맡긴 것과 더 적극적인 헌신을 하는 역할이 맡긴 것입니다.

 

l  분수를 안다는 내용은 자기에게 주어진 권리가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배워서 못 배운자를 비교대상으로 삼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며,가져서 못 가진자를 비교대상으로 삼을 필요가 없고, 성실해서 게으른자를 앞세울 필요가 없습니다.

 

l  자신의 성실함,부지런함,영민함은 본인에게 책임으로 본인에게 이해되야 합니다. 그것이 성경이 하고 싶은 이야기 입니다.

 

l  우리는 시간과 공간에 붙잡혀서 역사 속에 어떤 사회에 이렇게 묶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기회이기 보다, 언제나 지나한 현실이 됩니다. 남자와 여자의 문제가 아닌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괴롭습니다.

 

l  자기가 가진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 인생을 누구나 삶니다. 불평할 수 없습니다. 남들이 부러워하고, 내가 저 조건이라면 나는 절대 불만이 없겠다는 그가 상대가 가진 것이 권리라고만 생각해서 입니다. 그것이 책임인줄을 모르죠

 

l  우리는 내 책임을 누구를 비난하고 정죄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l  교회의 지위와 신분은 교회가 세상속으로 들어와서 세상이라는 커다란 틀과 권력 구조속에 세상질서와 가치를 거부하는 역할을 맞아서 늘 오해 받습니다.

 

l  어느때에 어떤식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교회를 통해서 구원할 지는 하나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 모르는 길을 묵묵히 다니고 그 비난과 손가락질 속에서 묵묵히 지키는 것은 여성의 지위와 아주 흡사합니다.

 

l  요즘에 교회에 대한 시각은 비영리단체화 되어 봉사나하고 구제나하고 헌금한거 투명하게 까발려서 들어온 것 만큼 말이되는 일에 다 썻나 보자, 그렇지 않습니다.

 

l  교회는 믿는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지지고 볶아 일하는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 입니다. 그것으로 무얼했느냐는 그들이 물어볼 권리가 없습니다.교회안에서 지켜보고, 교회안에서 그 유익을 나누며, 그 책임을 가지는 일로 사회가 항복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과 맞서 있는 것입니다.

 

l  고함을 지르거나, 힘을 휘두르지 않고, 비난과 왜곡과 오해 속에 자리를 지키고 있는 여성들의 지위와 이렇게 흡사할 수 없습니다.교회는 가장 여성적입니다.

 

l  16:16

 

l  교회사 내내 예수는 메시아가 맞느냐? 이 시비가 이어오고 있습니다.‘세상이 기대하는 그런 권력,그런 방법으로 천국열쇠나 그런 큰 약속이 주어저 있지 않다입니다.

 

l  예수가 죽으심으로 이루어질 약속들이 세상이 이해하는 단어들과 다른 뜻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하나님의 비밀이요,능력이요,구원인 그리스도가 죽어 그 일을 이루신 것과 같이 교회는 교회사 내내 이 모순을, 이 고난을, 이 오해를,이 재앙을 안고 가는 것 입니다. 여성들의 지위와 흡사하다니까요

 

l  교회가 폭력을 휘두르면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지는 방법을 택합니다. 기꺼이 그래야지죠. 교회에 속해서 무교회 주의자 같이 각각 알아서 믿자,그러면 화음이 없다니까요. 그러면 팀웍이 없습니다. 그러면 큰 내용을 담을 수가 없습니다.

 

l  교회와서 이러자 저러자는 얘기는 받아들여지고 안받아드려지고 자기 맘에 드느냐 안드냐 하는 문제가 아니고 건의를 하시고, 전체가 합의하는 누군가는 양보하고,감수하고, 누군가는 받아지는 일이 교회의 재미입니다.

 

l  맘에 들면 웃었다가, 맘에 안들면 화냈다가, 이렇게는 최소한의 인간조건에 부족한것입니다. 교회에 나올 때는 웃으셔야 합니다. 교회 나올 때 인상쓰고 나오면 안됩니다.

 

l  여러분이 왜 교회에 나오는 지를, 다만 말씀듣고 다만 은혜를 받는 이기적인, 개인주의적인 이상의 책임을 의식하지 않으면 안됩니다.교회는 힘을 잃습니다.

 

l  여러분 모두가 교회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일원이여야 합니다. 이렇게 책임을 나누고 구성원으로서 전체를 위한 자기의 지위를 알고, 자기의 소원이 만족스럽지 않는 곳에서 신앙을 지켜내는 책임있는 지위를 가지고 있을 때에야 여러분이 교인인 것입니다.

 

l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 신자,성도와 대등하게 교인이라고 불리는 이유입니다. 여러분의 조건과 여러분이 소속된 여러분의 정황을 받아드리셔야 합니다. 그곳에서 내 책임이 무엇인가,어떻게 해야 되는 가 입니다. 내 주장이 옳고,내 소원이 성경적이다라는 것 하나로 되지 않습니다. 예수도 죽습니다.

 

l  여러분의 신앙을 점검하십시요. 교회에서 만이 아니라 여러분의 주어진 여러분의 현실,가족, 직장,사회,국가, 이웃에 자기 책임을 하고 있는 지 보십시요.

 

l  자기 책임 그것이 무엇이죠 할 수 있는 만큼의 한계, 그러나 구체적인 여러분의 현실입니다. 교회에 먼저 믿은 사람으로, 나이 먹은 값을 해 주십시요

 

l  교회에서 서로가 웃어야 합니다.

 

 

 

 

 

(고전 11:17 ~ 26)

성찬

 

l  역사내내 교회는 권력의 우의에 서지 않고 여자의 역할처럼 지내왔다.교회의 만찬을 먹을 때마다 우의의 싸움을 했다. 못난자들과 자신을 차별화해서 배타적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으냐 하는 것입니다.

 

l  교회는 교회만이 만들 수 있는 일에, 교회 만이 가지면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만드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교회가 할 일은 예수 믿은자의 창조의 영광을 회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l  우리는 끈임없이 조건을 바꿔 달라고 합니다. 진심이 있으니 그렇게 해달라고 합니다.

 

l  교회 안에서 우리의 봉사와 진심이 효과가 있는지 보상이 되는지 우리는 알수가 없습니다. 이걸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알고 해야 합니다. 원래 그런 법입니다.

 

l  우리가 옳은 말을 해서, 교회를 옳게 만들고, 사회를 옳게 만들자 해서 자기 책임이 끊나지 않는다. 해야 하는 일을 말로 면책을 가지게 된다는 시험을 기억해야 합니다.

 

l  같이 울고 같이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같이 편들고 같이 책임질 사람이 없다면 그러면 교회는 금방 교회가 만들어야 할 걸 놓치면 교회의 본질적 책임이 외면된 다른 것이 들어옵니다.

 

l  교회의 모든 권력과 방법과 힘을 가지는 것으로 자기 시대에 자기는 혜택만 받고 아무 짐도 없고 고민도 없는 사람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십자가를 모르는 것도 없습니다.

 

l  자기가 소속된 것을 바꿀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보낸 자리 입니다. 이 나라 이 시대 이 교회에 보내셨습니다. 그렇게 쉽게 손을 떼시면 안됩니다. 싸우자하고 내 주장을 이야기 하는 것으로 내 책임이 끊나지 않고 같이 멍에를 지셔야 합니다. 책임있게 구셔야 합니다. 예의와 성의

 

l  지금 주신 조건, 나를 보내신 곳에서 내가 빛이고 생명일 수 있게 해달라고 당연히 순종을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예수가 죽었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l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을 위하여, 자기를 오해하고 도망가고 십자가에 메단자들을 위하여 죽으십니다 그곳에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다면 승리를 영광을 은혜를 담을 수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불평해야 합니까!

 

 

 

 

(고전 11:17 ~ 34)

성찬

 

l  성찬에 관한 바울의 이해, 가르침입니다. 성찬식 자체이기보다는 고린도교회의 분쟁에 대한 문제점에 대한 바로잡는 일에 대한 인용이였습니다.

 

l  11장의 전반부는 남녀의 역할에 대한 문제에 대한 내용이였습니다.

 

l  배타적 부정적 소극적 정체성이 아니라 원래갖어야 하는 긍적적 적극적인 신앙의 정체성을 갖어야 한다 하는 것이 바울이 가르치려는 것이고 그것은 매우 여성성을 갖는다.

 

l  여성성을 갖는 것이란 권위아래 순복하는 약자의 자리같고 소수의 자리 같은 그런식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려는 것들을 채우는 따라가는 모범적인 성격이다 이야기 하면서 성찬으로 끌고들어와 설명을 합니다.

 

l  예수는 자신이 죽음으로서 우리를 구원하였습니다. 우리가 가진 실력에 보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죽는 방법으로 그렇게 하나님이 일하시는 우리가 보기에는 지는 것 같은 그렇게 일하셨습니다.

l  죄는 틀린 주장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옳은 주장을 할 때도 죄는 들어온다는 사실입니다.죄는 옳았을 때는 더욱 힘을 씁니다. 마태복음 6장 산상설교에 나옵니다. 너희의 행위를 사람들 앞에 보이려고 행하지마라. 구제 기도 금식이 얼마나 떳떳한 명분이매도 불구하고 죄가 따라오는지 보라

 

l  우리가 성찬예식을 행하는 것은 그 기쁨 그 기념이 주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죽으신 것을 기념하는 것이며,그래서 우리가 새 언약의 백성으로 새롭게 태어나 신분이 동등해 졌다는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그곳에는 세상이 나눌 수 없는 동등한 존귀함이 있어야 한다 예의가 있어야 한다. 하는 것입니다.

 

l  성찬은 여러분이 한 교회에 모일 때 무슨 생각 무슨 책임으로 모이는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l  5 : 아나니아와 삽비라

 

l  교회는 잘 난사람들이 모인 동호회가 아니다, 죄인들이 모임이다,예수께서 대신 죽은 모임. 세상적인 가치를 두고 그 영광을 위해 속였느냐. 교회에서 세상인생살이에서 우리가 쓸모 있어야 자존심을 확보하는 것 같이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교회와 다른 것이냐 하는 그런 뜻입니다.

 

l  신앙이 좋다는 것을 확보하고 싶으면 웃으십시요, 누가 강제했습니까 누가 교회를 나오라고 총칼을 들이댔습니까, 누가 헛된 보상을 요구했습니까 아닙니다. 여기오면 주의 부르심을 받아 주의 십자가로 인하여 동일한 고백을 하게 된 형제를 만나, 나만 일어난 내 오해나 내 잠간의 환상이 아니라 이것이 역사적 사실이요 보편적 진리라는 함께 위로를 받으며 함께 격려하면 세상에서 시험을 받는 모든 것들을 그것이 폭력을 갖고 있을 뿐이지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 받는 위로와 격려가 있는 곳으로 즐겁게 모이는 것입니다.

 

l  여러분이 아무것도 아닌 것을 내 놓는 것이 죽음을 내 놓는 것과 같이 가장 큰 것이며, 가장 큰 것을 만들어 낸다는 약속 속에 그 가치를 서로 공유하는 것 속에 교회가 존재하죠. 그 신앙의 위대함을 못 누리고 있어서 이것 아닌 것이 자꾸 우리를 시험합니다.

 

l  예수님이 자신의 생애와 자신의 죽음에서 보이셨는데, 예수를 믿는다는 고백을 우리 현실속에 도무지 끌어다가 붙이지는 못해서, 말은 그렇게 하고 실제로는 자존심과 우월함과 능력과 과시와 그래서 반대급부로 생기는 어떤 열등감과 후회와 원망으로 자질어 듭니다. 그러시면 안됩니다.

 

l  자신있어야 합니다. 자신있게 무능하시고 없으이 여김을 받으시고 자신있게 나와 제자리 앉아서 졸으싶시요 무한한 은혜와 능력이 여러분의 존재와 인생을 통하여 증언될 것 입니다. 그것이 없다면 기독교가 아니라 다다른 것 믿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가 가져야 하는 보상을 받아야 하는 것들에 시험을 받고 있는 것이지요.

 

l  자신의 조건과 자신의 형편을 만족하는 이것으로 하나님이 일하신다고 자랑하지 않으면, 예수가 없으면 안되는 것 같이 내가 없으면 안되는 내 역할과 존재와 가치에 대하여 감사하고 항복하고 충성하고 인내하고 기뻐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