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 Kindness
l 폭력적인 세상에서 자비롭게 사는 건 아주 위험하지만, 다행히도 너는 네가 자비로운 사람으로 살 운명을 타고 났음을 깨닫게 될거야. 자비하신 성령은 세례 때 너를 적신 물을 통해 역사하셔서 네가 어렵지만 보람찬 여행에 나서게 하셨단다.
l 네 주위에는 네 어머니 아버지, 여동생이자 친구인 제나 그리고 무엇보다 너의 개 코니가 있지. 온유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자신과 비슷한 이들과 다른 이들 모두를 돌보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도록 만드셔서 그 관계를 통해 자비를 배우게 하셨단다.
l 난 지금 자비를 베풀도록 노력하라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야. 시간이 흐르면 너는 스스로가 자비롭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거야. 이상하게도, 보통은 덕스러워지려고 노력해서 덕을 갖추게 되는 것이 아니란다. 덕은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삶의 형태에 실려 찾아오지
l 말하자면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이 우리 안에서 덕을 끌어내는 것이지. 그렇기 때문에 자비를 베푸는 일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거란다. 우리는 자비롭게 살도록 창조된 거야
l 우리가 중세라고 부르는 시기에 줄리안이라는 비범한 그리스도인이 노리치에 살았단다. 그녀는 놀랍고도 무시무시한 하나님의 환상을 보았어 그리고 이런 유명한 주장을 했지. “만사가 잘될 것이다. 모든 일이 잘될 것이다.”
l 이 주장은 놀라운 것이었어. 그녀가 살던 세상은 ‘잘되는’ 것과는 딴판이었거든. 그녀는 “하나님의 존재 자체가 자비하시기” 때문이라고 말했단다.
l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과 부활 안에서 우리와 ‘동류(kind)가 되셨기 때문에 그녀는 하나님의 자비(kindness)를 알 수 있었던 거야.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자 사람이시라는 이 위대한 신비를 ‘성육신’이라고 부른단다
l 우리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자비롭게 대하도록 창조된, 자비하신 분의 피조물이야, 자비와 긍휼을 구분하기는 때로 어렵단다. 바울은 골로새서에서 둘을 구분하고 있는 듯 보이는구나(골로새서 3:12-17)
l 자비는 상대가 고통을 받는 상황이든 아니든 우리가 그와 맺어야 할 관계를 나타내지. 긍휼은 좋은시기뿐 아니라 힘든 시기에도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고, 고통을 나누어야 한다고 말하고,
l 자비롭다는 건 후회 없이 다른 피조물과 함께하는 피조물이 된다는 뜻이란다.
l 자비롭다는 것은 두려움 없이 하나님의 선한 창조 세계에 끌려들어 가는 걸 의미하고, 말 그대로 삶을 가능하게 만드는 다른 이들의 선물을 신뢰하는 거야.
l 자비의 가장 큰 적은 감상주의란다. 감상주의는 진실하지 않고도 자비로울 수 있다는 생각으로 확대 해석할 수 있는데, 이렇게 되면 덕스러운 삶을 크게 위협하게 되지. 감상주의는 공적 관심의 표현과 진정한 배려를 혼동하게 만들어 자비를 조롱한단다.
l 하나님은 자비로 가는 길을 찾는 데 필요한 것을 모든 사람에게 주실 거야. 우리는 그렇게 믿는단다. 하나님이 그분의 아들을 주신 이유가 선의를 명분으로 다른 이들을 잔인하게 대하고 싶은 유혹에서 우리가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라고 믿는다는 말이야, 이제, 네가 받은 삶에서 기쁨을 누리려무나. 기쁨은 자비의 길을 가능하게 만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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