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 Friendship
l 나는 네가 미국 문화 때문에 타락할까 봐 염려는 하지 않아. 너는 샘과 조의 아들 아니니. 그들은 네가 진짜 영국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할 뿐 아니라 네 삶이 아름다움,선함,진리로 둘러싸여 있게 해 줄 거야. 달리 표현하자면, 네가 하나님을 예배하게 할 거야
l 미국인들은 미국식 교육과 정치 제도와 돈이 있다면, 모든 사람이 미국인처럼 되고 싶어 할 거라고 확신하지. 이런 추정 때문에 미국인들은 아주 위험한 국민이 되었단다.
l 같은 이유로 미국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아주 위험한 곳이 되었어. 미국적 ‘이상’과 기독교적 실천을 혼동할 위험이 있거든. 종종 미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민주 사회와 정부를 세우기 위해 오셨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단다.
l 그들은 교회가 미국에서 ‘자유롭다’고 생각해. 그리스도인들에게 대단히 위험한 생각이지. 왜냐하면 이런 생각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면 그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거든. 그 결과, 미국 그리스도인들의 국가에 대한 충성이 교회의 일치를 위협하는 상황이 되었단다.
l 네가 덕을 올바로 이해한다면, 덕의 취지는 우리를 보호하기 위한데 있지 않고 우리가 처한 세상의 여러 위험을 헤쳐 나가도록 돕는 데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거야.
l 그래서 나는 네가 자라면서, 적어도 미국에 있는 동안에는 가장 중요한 덕이 우정의 덕이라고 생각한단다.
l 우정은 이상한 덕이야, 그것이 덕인지 분명하지 않거든.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정이 “덕이거나 덕과 함께 가는 것”이라고 말했지. 그가 우정이 덕인지 확신하지 못한 이유는 우정의 습관을 통해 몸에 무엇이 익는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야. 결국 우정은 관계인데, 습관이 어떻게 관계의 자격을 얻을 수 있을까? 아리스토텔레스는 바로 이 부분 때문에 우정이 “덕과 함께 가는”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그 덕을 우정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단다.
l 사실, 그는 이어지는 대목에서 우정이 “삶에서 가장 필요한” 덕이라고 말하기까지해. 아마도 좋은 우정을 뒷받침하는 힘이 모든 덕의 시금석이라고 제대로 믿어서인 듯해
l 그의 이러한 믿음이 대단히 중요한 이유는 미국인들은 아주 우호적이지만 친구 노릇을 썩 잘하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우정, 적어도 덕에 해당하는 우정은 알고 보면 아주 부담스러워.
l 아리스토텔레스는 대부분의 우정이 쓸모나 즐거움을 위해 존재한다고 말하지, 더 이상 서로가 필요하지 않거나 같은 즐거움을 누리지 않을 때 친구 관계는 끝이 나거든. 미국인들은 그런 우정을 다른 무언가로 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하든 듯하단다.
l 하지만 아리스토넬레스는 오래가는 형태의 우정이 있다고 생각했어. 그는 친구들이 덕에 대한 사랑을 공유한다면 우정이 오래갈 거라고 믿었지.
l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친구라고 부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어. “너희는 내가 명하는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15:14-17
l 예수님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이해하지 못했을 방식으로 우리와 예수님이 친구가 될 수 있고 우리 서로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시지. 이 일은 하나님의 아들, 삼위일체의 2위이신 그분이 해와 별들을 움직이는 사랑으로 우리를 자기 것으로 삼으시는 덕분에 가능해.
l 예수님이 우리를 친구로 삼으실 수 있다면, 너와 나는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그 차이 때문에 서로 친구가 될 수 있단다.
l 하나님이 우리를 친구로 삼기 원하신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야! 이건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나는 이 문제에 만족스러운 답을 내놓을 수 있는 척 가장할 생각은 없다만, 그 답에 기도를 배우는 일이 포함된다고 확신해.
l 우정이 덕과 함께 간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옳다면, 기도는 우정을 가능하게 만드는 일종의 습관임이 분명해. 기도를 배우는 일은 우리 삶이 하나님께 민감해진다는 뜻이야. 하나님을 섬기는 데는 시간과 인내가 들고, 우정을 나누는 데도 똑같이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단다.
l 친구가 되려면 놀랄 준비를 해야 한단다. 하나님이 어떻게 나타나실지 예상할 수 없 때문이지. 하나님이 예수님으로 나타나실 줄 어느 누가 예상했겠니?
l 하나님이 예수님으로 나타나실줄 어느 누가 예상했겠니?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의인들’에게 그들이 그분을 영접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신단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기 때문이야
l 그리스도인들은 낯선 이들과 친구가 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환대의 덕에 힘입어 그리스도인들은 낯선 이들과 친구가 되기를 바랄 수 있지.
l 그리스도인들은 낯선 이들과 친구가 되기를 바랄 수 있지.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에게 있는 줄도 몰랐던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는단다.
l 우정이란 건 네 이야기가 없이는 내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고, 할 수도 없다는 발견 아니겠니?
l 교회에는 성령의 일하심을 통해 가능해진, 시공간을 넘나드는 여러 우정이 있어. 너는 그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으니 네 삶이 평생에 걸쳐 발견하게 될 우정의 네트워크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게 될 거야
l 그런 우정의 네트워크가 미국의 힘을 상대하기에 충분한지 의문이 들기도 할 테지. 분명히 말하지만, 네가 지는 편에 있다는 타당한 생각이 들 때가 온단다. 하지만 절망하지마. 모든 친구가 네가 덕스러운 선행을 덕답게 행하도록 도와줄 거야.
'Book Reading Club > Stanley Hauerwas'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덕과 성품 (절제 Temperance) (0) | 2023.05.15 |
---|---|
덕과 성품 (인내 Patience) (0) | 2023.05.11 |
덕과 성품 (진실함 Truthfulness) (0) | 2023.05.07 |
덕과 성품 (자비 Kindness) (0) | 2023.05.05 |
덕과 성품 (세례를 받는 너에게) (0) | 2023.05.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