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tation on Bible/ACTS(사도행전)

사도행전 3부 선교여행-박영선목사

Four Seasons Daddy 2017. 12. 2. 12:35

사도행전 3부 선교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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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것으로는 증명하지 못한다(사도행전 13:1~3)

                                          바울과 바나바의 파송(13:1~3)

                                          1차전도여행시작13:4~12

 

l  안디옥 교회에서 성령의 뜻을 따라 바울과 바나바가 선교사로 파송이 됩니다.하나님이 바울을 보내어 하신 일이 성공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 사도행전을 볼 때마다 이 사건을 긍정적으로 낙관적으로 보게 마련입니다

 

직접 걸어가야 

l  그 이후에 바울의 서신서들을 보면 그는 매우 고생한 사람입니다. 그의 선교여행은 순탄하지도 않았고 성공적인 것으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l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서 베푸신 구원을 모든 인류에게 나누어주시기 위하여 바울을 세웠다는 것에는 성경이 말하는 것과 우리의 이해가 일치하지만, 하나님이 그 일을 어떤 방식으로 했느냐는 데에는 대부분의 경우 성경이 이야기하는 것과 성도들이 이해하는 것 사이에 커다란 차이를 보입니다. 

l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9:15~16) 

l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고후 4:5~12) 

l  죽임의 길을 걷는다는 것, 예수를 죽인 그 세상을, 그 권력을 꺾기 위하여 예수께서 죽음으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 구원을 이루신 것같이 그의 종들은 동일한 길을 걸어야 한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으로 예수의 생명이 또한 너희에게 나타나는 방법으로 하나님은 일하고 계신다. 이말입니다 

l  바울이 간 길을 우리가 직접 걸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를 죽이고 바울을 괴롭힌 세상 속에, 그 권력과 적대감을 아직 심판하시지 않은,그러나 그 속에서 구원을 이루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증거하신 하나님의 방법이 아직도 유효한 그 길을 말입니다. 다른 방법은 없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를 믿는다는 고백에서 바울을 위대하다고 평가하면서 벌써 이미 도망가고 있습니다.

 

 

바울이 걸어간 길 

l  고전 4:6~13 “…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l  얼마나 부끄럽고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자리입니까? 하나님이 사도를 그렇게 쓰시더랍니다. 중요한 이해입니다 그러나 교회사 내내 이 이해는 외면됩니다.

 

사랑은 오랜 고통 

l  우리가 종교를 가지는 첫번째 이유는 고통을 면하기 위해서입니다.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이 기본적인 종교성입니다.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며 우리에게 복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이소원들 최소한의 소원들이 말 그대로 최소로 굳어집니다. 

l  남에게 아쉬운 소리 안 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더 깊은 경지를 막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름, 그의 영광의 찬송이라는 약속들로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어떤 편견이 되고 고집이 됩니다.   

l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고후 12:7~10) 

l  우리의 성공과 실패 우리의 유능과 무능이 하나님의 일하심에 절대 조건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나 다행한 일입니다. 

l  십자가란 고통이며 비난이며 오해며 수치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은 우리 모두 알다시피 단 하나의 이 조건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3:16 

l  고전 13장에 사랑은 오래 참는거다’ ‘Love is long-suffering’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사랑하는 자가 졌습니다 아들을 주고 아들을 죽이기까지 지십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l  우리가 잘못한 것 같고,우리가 망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예수도 그렇게 알았습니다. 예수가 잘못했고, 예수가 틀렸고, 예수가 무력해서 죽었다고 역사는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압니다. 

l  우리에게서 사도바울이 걸었던 그 길이 우리의 현실과 인생에 그대로 중첩될 수 없다면 재현될 수 없다면 우리는 기독교가 무엇인지 아직 모르는 것입니다. 

l  사랑한다는 것은 명예로운 일입니다. 위대한 일입니다. 그것과 바꿀 수 있는 가치는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고백이 갖는 힘과 위대함을 여러분의 삶에 붙드십시오. 그리하여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름이 갖는 명예와 담대함과 기적을 사시는 복된 여러분의 존재와 인생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안에서만 보인다

                                          (사도행전 13:26~41)

비시디아안디옥에서의사역 13:13~52

 

다윗약속과 예수 

l  비시디아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서 이스라엘 사람들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행한 설교입니다. 이 설교는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인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l  삼하 7:8~12 에서 다윗에게 승리와 영광을 약속하고, 그 자식으로 대를 잇게 해서 다윗 왕권을 영원하게 하겠다는 약속입니다  다윗왕권을 영원하게 하겠다는 것은 왕권을 가지는 그 한 가문에 관한 약속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영원한 번영과 승리와 안녕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l  예수님이 오셨던 시대는 로마의 속국으로 사는 현실이었는데 그 나라를 회복시키고 정치적,군사적인 독립과 성공을 가져와야 할 메시아가 로마의 관리들에 의하여 채찍 맞고 십자가에 죽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생각했습니다. 

l  최소한 이스라엘을 정치적으로 독립시키고 군사적, 사회적, 경제적인 어떤 성취를 가져와 다윗 왕권에서 이루었던 번영을 회복하는 것이 그 약속의 성취어야 하는데, 예수께서는 힘없이 죽으셨습니다. 

l  많은 능력을 행사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차원에서는 전혀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대에 걸맞은 다윗 왕권의 회복이 의도된 적이 없습니다. 

l  그러니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은 저들의 역사와 저들의 이해 속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l  예수께서 부활하심으로 다윗에게 허락한 언약의 진정한 주인공이며 열쇠며 하나님의 약속의 구체적인 증거로 그가 메시아이심을 나타냈다이것이 바울의 설교 요지입니다.

 

정치적 승리가 아니다

 

l  이 설교의 청중은 이스라엘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오늘 우리식으로 이해하면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한 설교입니다.

 

l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하여 올바른 믿음과 이해를 가져라.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너희는 놀라고 망할 수밖에 없다하박국 선지자는 유다가 망하기 직전에 선지자로 활동한 사람입니다

 

l  유다는 분명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이 선택한 나라임에도 불의와 악행이 너무 심해서 그 사회가 도덕적, 종교적으로 너무 혼란스러워져서 하박국 선지자가 하나님 앞에 호소하고 한탄하는 장면입니다.

 

l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하여짐이니이다”(1:2~4)

 

l  하박국선지자가 요구했던 것은, 다른 나라는 언급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하나님이 선택한 나라만은 정의, 율법, 평화가 시행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답은 그렇지 않다 더 놀라운 일도 볼것이다

 

l  하나님이 약속하시는 나라가 이스라엘과 보이는 것으로 목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웁니다.

 

죄를 극복한 나라

 

l  바울의 설교 요점은 세상이 궁극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끝이 있다는 것인데, 끝이 있다는 것은 살다가 끝장이 난다는 뜻이 아니라 주인 되시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다는 뜻입니다.

 

l  우리 눈에 보이는 이 시공간보다 더 큰, 말하자면 영원한 나라라는 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이 훨씬 큰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약속의 구체적인 확인은 예수밖에 없습니다.

 

l  역사적이고 실제적인 증거,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이란 사망을 이기는 것입니다. 사망은 죗값입니다. 누군가와 싸워 이겨서 세운 나라가 아니라 죄를 극복한 나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성된 나라입니다. 그것이 바울의 설교입니다.

 

지금은 과정

 

l  이사야 55장에는 다윗에게 한 약속이 우리의 생각보다 얼마나 큰것인지, 그것이 왜 예수 안에서만 이해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l  하나님이 지금 하시는 일은 잘잘못의 문제보다 큽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이 지금 성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간적으로 보이는 현실이 바로 지금이라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보이는 것보다 더 큰 영역에서, 그리고 장차 이루어집니다 그것이 장차인 이유는 지금은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l  우리가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현실이 다만 옳고 그르고, 응답을 받고 못 받고의 싸움보다 더 큽니다. 하나님이 다윗에게 한 영원한 약속,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하여 그 아들을 보내신 것처럼 하나님 쪽에서 가지는 성의와 신실하심과 능력과 자비와 긍휼에 대한 것이랍니다

 

l  죽을 것 같습니다. 누구나 그렇습니다. 진지하게 현실을 사는 모든 이들에게 현실은 어렵습니다. 마음 같이 되지 않고,법대로 되지 않고, 상식으로 되지 않습니다. 사회가 그렇고 이웃이 그럴 뿐 아니라 스스로가 그렇습니다. 살아 보면 자기 자신에 대하여 자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절망스러운 현실입니다

 

l  거기에 대하여 기독교가 말하는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다윗의 영원한 약속의 후손이 된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다

 

                                      (사도행전 14:8~18)

                                      이고니온에서 루스드라까지 14:1~18

 

자기 소원을 위한 우상

 

l  1차 선교여행에서 터키 남부지방에 이르러 루스드라에서 발을 못 쓰는 사람을 고치는 장면까지 오게 됩니다. 이 일로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바나바와 바울을 제우스와 헤르메스라고 오해하고 제사를 드리려하자 바울과 바나바가 펄쩍뛰는 장면입니다

 

l  예수님이 행하신 큰 기적들에서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시는 일의 결과를 원합니다 예수께 있는 능력, 떡을 만들어 내고 병자를 고치고 행복을 주시는 것은 수단으로만 필요한 것입니다. 성경은 그런 일을 행한 자가 누구냐, 그 기적이 무엇을 증거하는 것이냐를 묻습니다.

 

l  예수님이 죽은 자를 살리는데, 그가 누구이기 때문에 그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라는 것이 표적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에서도 계속해서 사도들이 행한 모든 기적이 표적과 기사로 나타납니다.

 

l  예수님으로 인하여 결과된 중요한 내용에 대한 증거로서 그 기적들이 제시되는 것이지, 예수님을 믿으면 무엇이 주어진다는 식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의 소원 성취의 방법으로 예수님을 찾도록 되어 있지 않습니다.

 

l  사도행전 8장에서의 시몬이라는 마술사가 돈 주고 성령을 받게하는 그 능력을 사겠다고 했던 사건과 14장의 바울과 바나바가 행한 일을 인하여 그들을 신으로 섬겨 자기네들이 소원하는 바를 이룰 힘으로 삼으려 한 것이 동일합니다

 

소원이 아니라 관계

 

l  사도행전14장에 나오는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알고 있지만 그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가에 대하여 아직 분명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들을 대상으로 할 때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그의 약속의 진실성, 구체성을 드러냈습니다.

 

l  하나님이 친히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당신의 자녀로 우리를 부르고 계시다는 증거로 예수님을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부른다는 것을 우리는 다른 식으로 우리는 구원을 받았다, 죄 사함을 받았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l  하나님과 어긋난 우리를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통해 다시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내 이야기한 것과 같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지라하는 약속이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져서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그의 자녀가 됩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l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이 가지는 크기를 모르니까 예수님의 이름을 들먹여서 무엇을 달라 그러는 것입니다. 도덕성을,죄책감을 없애달라고, 성공을 달라고 합니다. 예수님으로 자존심을 지킬 수 있게 해달라고 하고,예수님으로 고개 숙이지 않게 해달라고 그럽니다

 

l  시작을 그렇게 할 수는 있습니다. 아파서,억울해서,괴로워서 문을 두드리기 시작해서, 그렇게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이 누구신지 배우실 것입니다.

 

l  잘 먹고 잘 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광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 인생이 되십시오. 그 앞에가서 은혜를 구하시고 복을 받으시고 행복한 운명을 맞이하십시오 그것이 사도들이 가서 한 증언입니다

 

 

 

 

 

 

 

 

 

 

 

 

 

 

 

 

 

 

 

 

 

 

 

 

 

 

예수님으로 충분하다

 

                                      (사도행전 14:19~28)

                                      안디옥으로의 귀환 14:19~28

 

박해 받는 교회

 

l  바울과 바나바가 행한 기적으로 놀랐던 바로 그사람들에 의해서 돌에 맞아 죽습니다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14:19)

 

l  그리고 처음 갔던 길을 되돌아서 안디옥으로 옵니다. 하나님이 일하심이 그러하신 것처럼 뚜벅뚜벅 바울은 자기 길을 걸어 많은 일을 하고 돌아왔다고만 보고가 되고 있습니다.

 

l  부흥기에는 성공한 기독교, 승리한 기독교, 전하고 받고 함께 기뻐한 기독교로만 읽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다시 읽어 보면 사도행전 내내 교회는 고생합니다 숱한 어려움을 겪고, 12장 끝에 한구절로 설명합니다

 

l  하나님의 말씀은 흥황하여 더하더라”( 12:24)

 

l  13장에서도 박해하는 무리가 더욱 세력이 컸읍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13:52)

 

l  14장에서도 제사를 지내려 했던 바로 그 무리가 바울을 쳐 죽입니다 사도행전은 바로 이런 환경 속에서 일이 진행되는 것을 보고합니다

 

고난 속에 사는 바울

 

l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9:15~16)

 

l  고난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자기 생애 내내 그 고난을 받습니다. 고난을 당한다는 것, 이것이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을 믿은 후에 넘어야 할 첫번째 문턱일 것입니다

 

l  안 믿던 시절에 하나님을 몰라서 행했던 죄들을 회개하면 그전보다 나아져야 할 것 같은데, 예수님을 믿고 나면 바로 첫 번째 시험이 닥쳐옵니다. 예수 믿기 전보다 어려운 인생을 맞이하게 됩니다

 

l  1:12~21 “ …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l  바울은 옥에 갇혔습니다. 빌립보 교회 개척후 도와줘야 하고 붙들어 줘야 하는데 바울은 로마감옥에 갇혔습니다.

 

l  그러나 바울이 붙잡혀 들어오니까 그가 돌아다니면서 한 것보다 더 많은 결과가 일어났답니다. 빌립보 교회는 더 힘 있게 믿음에 굳게 섰습니다.

 

l  그래서 바울이 잡힌 채로 죽지 않고 살아날 것이라고 기대하는 이유는 더 큰 기회가 주어져서 더 큰 능력을 가지고 더 많이 헌신할 수 있기를 바라서가 아니라, 살아있는 것이 고난이고 환란이라는 것을 감수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l  오해받을 수 있게 되었고 억울할수 있게 되었기에 살아나겠다고 말하는 대목입니다.

 

l  죽은것도 유익하니라하는 말씀이 죽어도 좋다고 결사각오를 했다고 자꾸 생각합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좋게 이야기 해도 죽음에는 긍정적인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것까지도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이라고 깨닫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런 죽음까지도 당할 수 있게 된것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

 

l  우리는 얼마나 많이 우리가 믿는 기독교가 소유하고, 분명하고, 우세하고,확실하길 바랍니까? 우리 자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고 있는데도 끊임없이 그것을 바랍니다.

 

l  우리는 무명합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다는 것을 확실하고 분명하게 보여주는 그런 증거는 우리에게 없습니다. 그러나 안 믿을 수가 없습니다.

 

l  사도행전이 무엇을 말하는지 잘 들으십시오. 여기에서 살겠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병신이 되겠다는 이야기입니다. 가는 곳마다 약자가 됩니다 공공연히 그를 박해해도 되는 사람으로 여겨집니다. 돌로 쳐서 죽은 줄 알고 내다 버리는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거기에 대고 어떤 대꾸도 하지 않습니다.

 

l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53:7) 이 길을 갑니다.

 

l  1:27~3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l  하나님의 종의 보편적인 모습입니다. 오해받고, 억울하고, 힘들고, 부족하고, 원하지 않는 일을 당하고, 바울이 너희에게도 깉은 싸움이 있다고 합니다.

 

l  예수를 잘 믿는다는 것을 무엇으로 확인합니까? 형통한 것으로, 유용한 것으로 확인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안 믿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볼 때는 아무것도 아니고 오히려 거북하고 당혹스러운 이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이랍니다

 

l  빌립보서 2:1~4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마을을 품어…”

 

l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라 세상이 구원을 얻게 하려는 것이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반대하는 자들 속에 뛰어들었습니다. 반대하는 자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뛰어들어서 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반대를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환난이 있습니다

 

l  전도할때에 그 사람이 못 알아듣는 사람이라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는 게 아니라, 그를 나보다 낫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을 구원하라고 나를 보낸 것 아닙니까? 그러면 나는 사환이고 그 사람이 주인공입니다

 

l  그 마음을 가지지 않으면 기독교 신앙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사는 현실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사도행전은 전부 그 이야기입니다.

 

다 가질 필요가 없다

 

l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2:12

 

l  하나님이 얼마나 무서운 길을 제시하고, 실제로 행하셨고, 요구하고 있는지 알라는 것입니다. 그 길을 가야 합니다

 

l  바울이 무엇을 했습니까?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경건한 사람들이 와서 돌로 쳐 죽였습니다. 여러분이 가는 예수 믿고 사는 인생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 아시겠습니까? 우리는 멋있게 살고 싶습니다. 훌륭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안 하신답니다

 

l  정말 훌륭하고 위대하신 분은 예수님입니다 세상에 있는 어느 것도 예수님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예수님이 무엇을 하셨는지,예수님이 증거한 것이 무엇인지, 예수님이 무엇을 끌어안으셨는지 보고, 우리가 그 길을 가라고 합니다. 이것이 사도행전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고 우리 삶입니다

 

l  예수 믿는 것은 결심보다 더 큰 것입니다. 붙잡힌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외면을 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과 구별된다

 

                                    (사도행전 15:3~21)

                                    예루살렘 공의회 15:1~21

 

l  안디옥에 있을 때도, 예루살렘에 와서도 예수 믿는 유대인들이 할례를 받고 모세의 율법을 행해야 한다는 요구를 강하게 해서 사도들이 그 문제를 의논하는 장면입니다

 

조건인가 구별인가

 

l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 하는 것이 옳으니”(15:20)

 

l  자격과 조건이 아닌 것, 구원의 걸림돌이 되지 않는 것, 구별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와 그렇지 않은자 사이의 구별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로서 가져야 하는 정체성에 관한 것입니다.

 

l  믿음이 연약한 자를 받아라 그것이 너한테는 괜찮은 것이지만 그에게는 오해가 되고 시험이 되는 것이라면 네가 절제하라’(고전 8:7~13 참조)

 

l   성수주일과 십일조는 당시의 문화와 신앙 수준에서는 성도들이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진심이었을 것입니다.

 

l  사도행전 15장이 요구하는 구별, 너라는 존재와 네 인생이 네 것이 아니고 네 마음대로 할 수 없고 너 좋은 대로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의미에서의 절제와 그리하여 구별하여 증거하는 정체성과 예수를 믿으면 이래야 돼라는 조건으로 제시되는 것과의 구별을 무엇으로 할 것이냐는 것입니다.

 

도덕성이 아니라 정체성

 

l  세상에 나가면 불안하니까 다 다른 무언가에 기댑니다. 길일을 택하고 점을 치고 그런 것이 바로 더러운 것입니다 인간이 스스로를 낮추는 것입니다.

 

l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거룩하심과 그 영광과 그 수준을 알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정체성의 문제요. 고급한 책임 있는 구별입니다

 

l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그들의 총명이 어두어지고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4:17~19)

 

l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진리가 예수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4:20~24)

 

l  신자는 막막하게 살고,그냥 시간을 죽이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의심하고 체면하고 포기하고 누군가에 뒤집어씌우는 것 외에는 할 수 없는 데서 벗어납니다

 

l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말고 오직 지혜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까라 때가 악하니라술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5:15~18)

 

l  술 취하는 것은 방탕한 것이라고 합니다. 흘려보낸다. 낭비한다는 뜻입니다. 성령충만은 깨어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분별하는 것입니다. 매 순간을 살라는 말입니다. 어디에 벗어 던지지 말고 하루를 살아라

 

l  현실이라는 도전 앞에 구별된 사람으로 서 있으십시오.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해결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고 이런 것을 뛰어넘어서 어려움을 어떻게 당하는가, 힘에 넘치는 일을 어떻게 감당하는가, 내가 져야 할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그런 모든 것을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는 사람으로서 매 순간을 계속 살아내셔야 한다. 그말입니다

 

l  우리가 사는 인생 속에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느냐에 관한 문제입니다. 24시간을 다 이렇게 살아내는 사람은 몇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내야 한다는 것은 알야야 합니다

 

l  예수를 믿으면 다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무슨 싸움을 하고 있는지, 어떤 역할로 보냄을 받았는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열매 맺는 나무가 되어야

 

l  갈라디아서에 가면 성령충만이 무엇을 해결하고,능력을 가지고,기쁘고, 만족하고의 싸움이 아니라 충성의 싸움이라고 합니다

 

l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5:16~21)

 

l  방탕,우상숭배,음행 여기에 다 나옵니다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육체를 따라 사는 삶입니다.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은 이렇게 소개됩니다

 

l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5:22~23)

 

l  기도 많이 해야한다. 성경 많이 읽어야 한다. 전도 많이 해야 한다. 봉사 많이 해야한다.’이런 말 없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물론 이런 것을 해야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니고 여러분의 하는 일에 이런 열매가 있느냐고 묻습니다

 

l  이 열매는 모든 삶의 정황에서 나타나는 열매입니다. 아이 보는 일,공부시키는 것, 청소하는 것, 직장 다니는 일, 한 인생을 한 가족의 일원이 되어 사는 것들 말입니다. 아버지가되고 어머니가되고 아들이되고 딸이되고 이웃이 되고 누구의 친구가되고 아무런 구별된 지위와 신분과 존재가 없는 속에서도 이 열매는 나옵니다

 

l  나무가 자라야 열매가 생깁니다. 이 열매는 열매를 달라고 기도해서 열리는 열매들이 아닙니다. 과일 도매상이 되라는 것이 아니라, 그 나무가 되었느냐를 묻는 것입니다.

 

l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14:9~12)

 

l  자기가 아는 식으로 신앙생활을 하십시오 누구를 비난하고 정죄하고 경멸하는 것이 자랑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도 되는 것을 절제할 수 있는 이 특권이 얼마나 큰 것인지, 예수께서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믿음의 자랑과 만족이 생깁니다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십시요

 

 

 

 

 

 

 

 

 

 

 

 

 

 

 

 

친구로 부르신다

 

                                 (사도행전 15:36~16:10)

                                  2차전도여행15:36~41

디모데를 택한 바울16:10

 

l  우리는 늘 옳은 일을 하고 멋진 일을 하면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 된다고 생각합니다.바울은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려가는 문제로 바나바와 심히 다투어 헤어집니다. 바나바는 바울과 비교해서 조금도 부족할 것이 없는 훌륭한 하나님의 종입니다

 

l  그렇게 갈라선 후에 바울이 루스드라에 이르러 디모데를 제자로 삼습니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는 유대인이고 아버지는 헬라인이었습니다.

 

l  이 복음은 유대에서 시작했지만 헬레니즘 문화에 속해 있는 모든 세계의 모든 사람에게 퍼져야 했습니다, 그런 정황에서, 말하자면 디모데는 가장 필요한 존재였습니다.

 

바울과 디모데

 

l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 2:1~5)

 

l  능력이 필요 없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디모데는 그런 조건을 가지지 못했다고 이야기하고, 자기는 혹시 그런 조건이 있었을지라도 그런 것이 필요헚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l  그럼 바울과 디모데는 무엇 때문에 서 있는 것입니까?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복음,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구원을 증거하기 위해서 예수께서 하신 것처럼 복음을 전하는 자가 예수님의 성육신과 동일하게, 우리 가운데 우리의 형편 속에 보내진 말씀으로 서 있습니다.

 

l  가장 중요한 조건은 동일한 경우, 동일한 형편, 동일한 자격, 동일한 능력 속에 있는 자를 통해 하나님이 복음을 전한다는 것입니다.

 

l  바울이 사도가 된 조건은 스데반을 죽였다는 것입니다. “그게 뭔지 나도 옛날에는 몰랐다이 말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의 조건이였읍니다.

 

 

친구는 종이 아님

 

l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9:1~3)

 

l  신앙이 이데올로기가 되면 가장 근본적인 윤리를 깨버립니다. 하나님이 인류를 사랑해서 자기 아들을 인류에 포함시킵니다 그래서 인류를 외면하려면 자기 아들을 외면해야 하는 것이 됩니다

 

자신있개 틀려라

 

l  만인제사장론이란 예수께서 성육신하여 우리 옆에 오셔서 우리와 하나가 되심으로 만질 수 있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에 오신 것같이 우리 모두가 누군가의 이웃으로 서서 같이 삶으로써 성육신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l  하나님이 이 예수님을 보내어 하신 일들을 내 생에 속에서도 하신다는 것을 믿고 그 삶을 지켜야 한다고 합니다.

 

l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라는 말씀은 무엇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너는 말씀이 되어라라는 뜻입니다

 

l  바나바와 바울이 싸운 것이 우리의 조건입니다. 바울이 스데반을 죽인 것이 우리의 조건입니다. 제대로 예수 믿는 것같이 살지 못하는 것, 훌륭하지 못하며 다른 것으로 자랑하거나 발언권을 가질 수 없는 것, 이런 것이 조건입니다

 

l  우리는 매일 매일 흠 없고 쓸모 있기를 바라서 자책합니다. 내 인생은 묶여 있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밤낮 유명한 사람 이야기만 합니다, 어거스틴,칼빈,아브라함

 

l  우리의 한계와 못남과 실패와 무지와 게으름과 편견과 실패 속에서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셔서 자신있게 틀리십시오

 

 

 

 

 

 

 

 

 

 

자유를 사용하지 않다

 

                                  (사도행전 16:19~40)

빌립보에서의 사역 16:11~40

 

l  바울과 실라가 두아디라에 와서 복음을 전하고, 루디아라는 여자가 회심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어떤 귀신들린 여종을 만납니다. 그 귀신을 쫗아내어 수입원이 끊긴 주인이 그들을 고소하여 옥에 가둡니다

 

l  그 밤에 지진이 나서 옥문이 열리고 쇠사슬도 풀렸는데, 나가지 않습니다. 간수는 죄수들이 다 도망간 줄 알고 자결하려 했으나, ‘우리가 도망가지 않고 있으니 죽지마라간수는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으리이까하니 주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답이 나옵니다

 

죄에 매인 인생

 

l  죄를 안 지으려면 도덕성이나,분별력이나,의지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신분이 자유로워져야 한답니다. 죄를 짓는 것은 죄에 묶여 있기 때문이랍니다.

 

l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5:16~21)

 

자유를 주러 오신 예수님

 

l  예수님은 자유를 주러 오셨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의 자유라고 성역이 설명합니다

 

l  바울과 실라는 자유를 베풀러 왔고,하나님의 은혜를 전하러 왔는데 사실은 오해받고 고난을 당합니다. 그런데 바울과 실라는 그것을 기껴이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옥문이 열리고 나갈 수 있으나 나가지 않습니다

 

기가 막힌 우리 인생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사도행전 17:22~34)

                                   데살로니가와 베뢰아에서의 사역 17:1~15

                                   아덴과 고린도에서의 사역 17:16~34

 

l  아덴에서 바울이 행한 설교입니다. 바울의 설교는 두 개의 단어로 내용이 요약되어 있읍니다. 17:16바울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라고 합니다 32절에는 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어떤 사람은 조롱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 일에 대하여 네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l  이 설교는 예수를 믿지 않는 삶에 대하여 믿는 자로서 가지는 어떤 감정, 그리고 예수를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차이에 대하여 가장 분명한 핵심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공전이 아니라 직선

 

l  16절의 그의 격분은 그들의 행동에 대한 정죄하는 의미의 격분이 아니고 하나님을 몰라서 어쩔 줄 모르는 불안과 걱정과 무지의 처참함 속에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같은 인간으로서 분노하는 것입니다

 

l  삶이 허망한 것이라고,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면 무슨 노력이 필요하며 정직하며 성실이 무슨 소용입니까! 동양 사상은 대표적으로 인생은 공전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로 영원한 직선적인 지향점이 있다고 복음을 제시합니다.

 

l  역사는 우연에 의해 조작돤 것이 아니고 인격자인 하나님에 의해 계획되며 진행되며 완성된다고 이야기 합니다

 

오늘은 내일이 결정

 

l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 내일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6:33~34)

 

l  종말은 세상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의 뜻을 완성하시는 날입니다.

 

l  우리는 우리의 끝이 무엇인지 압니다 그 끝을 향하여 지금 일이 진행된다는 것을 아니까 그 연속성 속에서 오늘은 내일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내일을 확보하기 위하여 오늘을 살면 우리는 세상에서 힘을 가지려고 할 밖에 없습니다.

l  바울의 아덴에서 한 설교가 바로 하나님이 계시다. 그분만이 주인이시다 그분만이 진정한 평화와 안심을 주신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를 믿는다. 그 예수는 죽음을 부활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과 신실하심의 살아있는 증거다입니다

 

주 안에서 헛되지 않다

 

l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이 약속하고, 하나님이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명을 만들어 내는 존재가 아닙니다. 생명은 하나님이 주십니다.

 

l  신앙생활이란 자책을 없애는 정도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과 우리의 존재의 결국이 무엇인지 아는 것입니다. 잠시 사는 세상에서의 도전과 시험 앞에서 훈련받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서 보이신 부활의 능력과 승리를 우리의 것으로 주실 것입니다

 

l  그러니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우리의 못난 것이 우리의 실패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난이 필수이다

(사도행전 17:30~31)

                                    아덴과 고린도에서의 사역 17:16~34

 

l  신자는 죽기 전부터 죽은 다음에 완성되는 영원한 나라의 삶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 완성의 날을 시작하는 것은 지금이라고 오늘 본문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현실에 대한 소극적 이해

 

l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1:7~10)

 

l  회개를 하고 전에는 몰랐던 신앙을 가지게 되고 이해를 새롭게 하게 되고 헌신하고 변화되었는데 보상이 없는 것입니다.

 

l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 않습니까? 세상에서 하나님이 보호를 해주시고 특별한 대접을 해주셔야 거룩하게 살고 쓸모 있게 살겠는데, 이렇게 현실에 붙들려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끼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다 내세로 밀어놓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고난이 요구된다

 

l  우리가 해결하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는 이 현실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예배니라” (12:1)

 

l  삶으로 드리는 재물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몸으로 살아내라 정신으로 하지마라. 이념으로 하지마라. 소원으로 하지마라. 이상으로 하지 마라. 몸으로 살나내라이런 이야기입니다

 

l  몸으로 살아내야 할 우리의 현실은 고단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고단한 인생을 살아내라고 합니다 그것이 어려운 인생이 되리라는 것은 성경이 이미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l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8:17)

 

l  실패자의 현실을 사는 것, 죄인 된 몸으로 사는 현실이 우리에게 요구됩니다. 예수께서 부활로 역전을 이루시기 전에, 그 앞에 육체로 오신 예수님의 고난이 있었습니다.

 

l  빌립보서 1:27~30 “…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지금 바울도 고난받고 있습니다. 이 서신도 그가 옥중에서 쓴 것입니다

 

l  그리스도를 믿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해야 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감수해야 합니다. 고난을 감수하는 것이 어떤 진심,각오 어떤책임 같은 것들을 비장하게 묻는 것인 줄로 알았습니다

 

l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14)

 

l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능력이 인격안에, 육체안에 구체화되었다는 것입니다

 

l  우리가운데 거하신다는 것은 우리와 동일한 조건과 현실 속에 들어오심으로써, 말씀으로 천지를 지으신, 생각만 하시고 뜻만 가지시면 모든 것을 이루시는 분이 우리가 만지고 보고 확인하고 이해할 수 있게 실체가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셔서 함께 삶을 사신다는 것입니다

 

l  53:4~6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l  예수님을 믿고 기도하고 성실히 살지만 하나님이 여러분의 인생을 편하게 해주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걸으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이야말로 말씀이 육신이 되는 것입니다

 

l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권능을 실체화하는 것이 우리 예수믿는 사람들의 인생입니다. 그래서 대단히 위대하고 대단히 놀라운 경이로운 존재가 됩니다

 

인생 이해의 유일한 열쇠

 

l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5:7)

 

l  예수님이 육체에 계신다는 것은 제한 속에 계셨다는 말입니다. 자신을 시간과 공간의 제한 속에, 바로 육체가운데 묶으셨습니다. 그래서 그 제한 속에서 울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던 인생을 사셨습니다.

 

l  예수께서 그렇게 걸어서 시간과 공간과 육체의 연약속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실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 인생이 그렇다고 이야기하는 대목이 지금 바울의 설교입니다

 

l  우리는 그 속에 속하여 그 전체 속에서 특별한 것이 없고 두드러질 것이 없고 주목받지 못하는 가장 평범한 자리, 많은 제한과 감추어진 것들 속에서 예수님이 그리하신 것처럼 그 길을 걸어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들이라고 이야기합니다

 

l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 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5:8~10

 

l  고난으로 순종을 배운다고 하고, 그것으로 온전하게 된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신 제한, 부족, 고난, 자기 길을 걸으시는 것으로 하나님이 그의 뜻을 이루시는 길을 걸었다는 말입니다. 고난으로 순종을 배웠다는 것은 순종으로 고난을 감수했다는 말입니다.

 

l  실제로 예수님의 순종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실패가, 그 수치가 부활을 만들어 내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영광을 나타내심을 기억하여 이제 모든 성도를 이 예수님 안에서 그 길을 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l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은 우리 모두의 인생을 이해하는 유일한 열쇠입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현실, 내 기대와 다른 현실에 대한 유일한 이해입니다

 

l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14:12)

 

l  주께서 하신 일을 우리가 하고 그보다 큰일도 한답니다. 그것이 성도들의 인생입니다 위대한 길입니다. 놀라운 인생입니다 경이롭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전능자의 손길이 되는 인생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자리에 옵니다

 

l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 15:57~58)

 

 

 

 

 

 

 

 

 

 

 

 

 

 

 

 

 

 

 

 

 

 

 

 

 

 

 

 

 

 

 

 

 

 

 

 

 

 

 

 

 

기꺼이 죽음의 길을 간다

(사도행전 18:24~19:7)

                                    2차전도여행의 마감18:18~28

                                    3차전도여행 18:23~19:22)

 

l  초대교회서도 그렇고 지금 우리가 사는 현대에서도 이 성령세례라는 문제는 대단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내용이 되었습니다.

 

l  오늘 본문에는 두가지 세례가 등장합니다. 요한의 세례와 성령세례입니다 요한의 세례는 예수님을 준비하는 세례의 사역이였습니다 예수님이 진정한 구원자이며 주인공이라는 것을 준비하기 위하여 회개의 세례를 주었고,

 

l  성령세례라는 것은 예수님으로 인하여 성취된 어떤 것입니다 이둘이 가지는 연속성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요한의 세례와 성령 세례

 

l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사람은 언번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18:24

 

l  요한의 세례를 예수님의 세례와 혼동하는 이들은 대부분 유대주의적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이미 하나님과의 관계는 성립됐고, 이제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율법과 책임을 지키느냐 마느냐가 관건이 된다는 말입니다

 

l  신명기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가르침같이 하나님을 순종하고 그 말씀을 지키면 복을 받을 것이요, 하나님을 외면하고 불순종하면 벌을 받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잘못을 회개하는 것,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는 것,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l  이 일은 유대주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복음이 이방인에게 전파된 후에도 교회 안에 늘 있는 반복적인 오해입니다

 

l  예수님을 믿은 다음에도 기독교 신앙을 잘못된 것에서 돌이키는 것이 전부인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은 의외로 많습니다. 예수님을 믿어서 은혜의 복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죄를 씻는 것 사이에 어떤 연속성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대단히 많습니다

 

l  양심과 도덕에 비추어 부끄러울 것이 없게 되는 것이나 죄책감에서 해방되는 것이 전부라면 그것은 예수 믿는다는 말을 모르는 것이요 예수님이 죽음으로 성취한 결과로서 주어진 성령 세례의 가지를 전혀 모르는 것이 됩니다

 

l  14:5~14 “…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l  성령의 오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재 증명이라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시지 않는 것이 중요할까요?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이땅에 오셨다는 것을 전제하는 이야기 입니다

 

l  예수께서 지금 안 계시는 이유는 세상이 그를 죽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부활하여 죽음을 이기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가셨읍니다. 성령의 오심은 이것에 대한 증명입니다

 

성령이 오심으로 확증

 

l  성령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고, 죽으셨고, 부활하셨고, 승천하셨고, 영광된 자리에 앉아 아버지께 구하여 성령 하나님을 보내셨다는 데까지 연결되는 이 복음의 핵심,최종적으로 예수께서 한 일이 무엇인지를 인치고 확증하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l  그래서 성령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모든 예수 믿는 자들의 죄를 속량하시고 부활하게 하셔서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고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시는 사역이 실패하지 않도록 붙잡고 계신 분이라고 정리 할 수 있습니다

 

l  성령의 임하심은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구원이 다만 죄를 씻어 주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특별한 존재가 되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l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으로 약속된 존재요, 그 아들을 주실 수 있는 존재요, 그의 영으로 우리 안에 내주케 하여 우리의 존재와 삶이 다만 우리 혼자가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의 운명에 동참하시는 존재라는 것이 성령 세례가 가지는 뜻입니다.

 

l  하나님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하여 자기 자녀로 삼는 자들에게 어떤 구원, 어떤 약속을 한 것인가에 대해 성령 세례보다 더 강력한 증거와 설명은 없습니다.

 

l  17:21~23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살아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 소이다

 

l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의 그 긴밀한 연합에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주께서 우리를 품으사 예수님 안에 우리가 있게 하고, 우리 안에 예수께서 거하사 아버지와 아들이 가졌던 관계를 우리에게로 확장하고 계시며, 그 일을 인하여 아버지께서 아들을 보냅니다

 

l  성령 세례는 성령의 나타나심과는 다른 것입니다. 성령의 나타나심은 은사로, 감동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 때는 예수님으로 인하여 새 시대가 열렸다는 것을 세상의 역사에 알리기 위해 성령의 임재를 나타내셨습니다.

 

l  그리고 역사가 지나고 경험이 쌓이면서 성령의 임재는 나타남보다는 내주하시는 역사가 더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이라도 방언,예언,기적의 치유가 있을 수 있으나 그건 것은 부수적이며 종속적인것입니다

 

l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예수님을 주라고 시인할 수 없다는 성경의 지적입니다.(고전12:3)

 

l  여러분 스스로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굉장한 것인지를 아셔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2장에 바울이 설명하는 신앙에 대한 이해입니다

 

l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l  나라는 존재의 모든 속성이나 소원 같은 것들이 다 예수님 안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과 구원으로 허락된 은혜와 축복들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는 이야기입니다

 

l  나라는 존재는 뚜렷하지만 내가 온전히 예수님 안에 드러난 하나님의 목적과 뜻에, 그 내용에 항복한 자로, 만족한 자로서 나 자신의 자유로운 의지, 소원이 믿음으로 표현된다는 것입니다.그것이 기독교신앙입니다

 

죽음심을 본받아 부활로

 

l  우리의 운명과 가치에 대하여 더 이상 겁날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l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8:9~11)

 

l  우리는 주의 영이 거하는 존재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못남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실패될 수 없는 존재라고 합니다 그러니 마음대로 살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우리의 죄된 본성 때문입니다

 

l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노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인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3:10~12)

 

l  알면 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야 합니다 하루를 살고 일 년을 사십시오 우리에게 준 길을 가십시오 그것이 영광의 길인 줄 아셔야 합니다

 

l  나는 예수께 잡인바 된 사람이라고 세상 사람들에게 의문의 도전을 남기십시오 저 사람들은 다르다 도대체 왜 저 히생과 저 성의를 가지고 사는걸까, 하고 묻게 만드십시오

 

 

 

 

 

 

 

 

 

 

 

 

 

 

 

 

 

 

 

 

 

 

 

 

 

 

 

 

 

 

 

 

 

 

하나님의 방식을 따라간다

(사도행전 19:21~22)

                                    데메드리오의 소동 19:23 41

 

l  사도행전 19장은 바울이 에베소에서 사역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바울이 거기에 있는 회당에서 오랫동안 가르치는 동안 많은 기적이 일어납니다. 19장 후반부에는 에베소 도시에서 섬기던 아데미 여신 모형을 만들어 팔던 장사꾼들이 소동을 일으키고 바울과 함께 있던 사람들을 잡아가는 사건도 나옵니다

 

l  그럼에도 불구하고 19:20절에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l  교회가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주의 말씀은 힘이 있어 많은 사람이 믿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l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19.21

 

l  바울이 로마까지 가겠다고 합니다 아무 준비도 없고 한심해 보입니다 그냥 전도여행을 하면서 어려움을 당합니다

 

본문은 예수님

 

l  누가복음 4장에 가면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광야에 가서 금식하시고 마귀에게 시험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l  예수께서 이땅에 오셨을 때 이 땅은 죄가 관영하고 죄가 세력을 잡은 상태에 있었으므로 그 배우의 주인은 마귀입니다 세상권력을 마귀가 갖고 있습니다

 

l  예수님은 그런 정황 속에, 그 체제와 그 조건 속에 한 존재로 들어오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말입니다 예수님은 내용입니다 (텍스트)

 

l  정황은 영어로 콘텍스트(context)입니다 본문은 정황을 벗어나면 모호해집니다 정황이 있어야 본문이 실체가 되고 구체적이 됩니다

 

정황이 반드시 필요

 

l  세상은 끊임없이 이 정황으로 우리를 압박하고 위협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황을 바꾸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기 사작하면 우리는 시험에 듭니다.

 

l  정황을 바꾸려고 하는 것, 에수 믿는 것이 쉬워지기를 바라는 것, 아니면 세상이 해주지 않는 것을 예수님을 믿어서 기도만으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 말입니다 이것을 음모라고 합니다. 음모란 정황과 본문의 연결을 끊는 것입니다

 

인생은 확인하는 시간

 

l  28:10 ~15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

 

l  놀라운 축복입니다 그런데 이 축복에서 복 주시는 내용이 지금의 현실과는 거리가 멉니다

 

l  그리고 지금부터 앞으로 이십 년 이상의 세월과 하나님이 하신 약속사이에 있는 시간적, 공간적 거리는 사실 풍성케 하시는 시간이요 구체화 하시는 시간입니다

 

l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령께서 오시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살면됩니다 세상은 가장 무섭게 굴고, 자기가 답을 줄 수 있는 것같이 것같이 굴어서 우리를 벗기고 밀고 끌고 가지만 세상은 답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살아가면서 거듭거듭 반복해서 깨닫게 됩니다

 

l  우리 인생은 그것을 확인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확인된 모든 하나님의 성의와 무한하신 사랑과 복 주심이라는 약속 속에서 그것을 만나도록 하십니다

 

l  우리가 돌아다닌 모든 지경, 우리가 만난 모든 정황, 우리가 경험한 모든 세월이, 그 크기가,그 깊이와 넓이가 헛된 것이 아닙니다

 

l  에베소서 3:14~19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릅을 꿇고 비노니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l  우리가 가지는 아주 작은 소원이 있습니다 그저 남에게 욕먹지 않고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지 않으시겠다고 작정을 하셔서 우리 인생이 고단한 것입니다

 

l  누구를 사귀고, 무슨일을 만나고, 어디를 다니고,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경험을 하는 것 모두가 우리 것이 될것입니다. 충만한 하나님의 지혜와 은혜의 결실이 될 것입니다

 

l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3:20~21

 

l  우리의 소원, 우리의 욕심보다 더 넘치도록 주시는 우리 하나님을 말하고 있습니다.우리가 겪는 일들을 우리는 다만 고통을 기준으로, 자존심을 기준으로 생각하는 것이 다인데, 그것보다 더 크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l  무엇이 정황이고 무엇이 본문인지를 아십시오. 여러분의 신앙을 여러분이 좋은 데서 여러분이 원하는 것으로 만들지 말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데서 하나님이 만드시는 방식대로 따라가십시오

 

l  힘들 것입니다.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그리고 막막할 것입니다 너무 커서 다 안보입니다 그러니 이 믿음을 가지십시오

 

l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이 모든 일에 분명한 증거가 됩니다 그의 죽으심이 사실인 것처럼, 그가 채찍에 맞으신 것이 사실인 것처럼,그가 능욕을 당하신 것이 사실인 것처럼, 그으 부활이 사실이며 우리의 모든 삶의 현실에 동행하시는 것이 사실입니다

 

l  그래서 바울은 자기가 로마까지 간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정신없는 이야기로 들립니다. 아무런 준비가 없습니다. 그러나 결국 갑니다 그리고 우리한테까지 왔습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인생을 사십시오. 귀하게 여기시고 그 기적을 확인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