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4부 로마행로
하나님이 시련을 주신다 |
(사도행전 20:17~38)
마게도냐에서의 사역20:1~5,드로아에서의 사역20:6~12,
밀레도에서의 사역20:13~16,에베소장로와 이별20:17~38
l 사도 바울은 로마로 갈 각오를 하고, 로마에 가기 전에 먼저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려고 합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 어떤 길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l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20:22~23)
l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20:29~30)
l 빌립보교회는 아직 어립니다 그래서 놓고 가면 어려운 일이 생길 것이 뻔합니다 또 자기가 가는 길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길이며 어려운 길일것이라고 당연히 예상합니다
l 신앙이 좋으면,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일을 하면 하나님이 당연히 좋은조건으로 인도하실 거라고는 꿈도 꾸지 말라는 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정황의 반전은 없다
l 동일한 정황과 동일한 요구, 동일한 짐 속에서 우리가 가진 기독교 신앙이라는 내용으로 한 인생을 살아서 어떻게 세상의 도전에 답하는가를 보이는 것이 우리가 지고 있는 기독교 신앙의 실천이며, 그것이 바로 텍스트가 되는 것입니다
l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l 우리가 가졌던 소원을 이루어주기 위한 정황의 반전은 없습니다. 심지어 믿기로 결심한 나마저도 옛날과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갈등이 생긴 것만 달라졌습니다
급유를 받아 걸어가라
l 직장에 나와서 첫 시간에 성경부터 펴서 읽지 말고, 손 씻고 소매 걷어 부치고 일을 해야 합니다. 기도하고 성경보는 것으로 때우려고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기도하고 성경보는 것은 그것으로 우리의 현실을 때우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급유를 받아서 현실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이중적인자리
l 예수님을 죽인 그 세상이 우리를 죽이는 그 자리에 우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슈퍼맨으로 살지 않습니다. 초월적인 힘을 가지지 않습니다. 믿음을 갖고 있을 뿐입니다.
l 예수님을 믿었더니 만사가 형통하고, 말만 하면 열매가 맺힌다는 것들 이상한 꿈들입니다 이런 것은 필요하다면 하나님이 언제든지 하실 수 있는 것들입니다
l 예수께서 공생애를 사시는 동안 많은 기적을 보이셨는데, 세상과 정황을 바꾸기 위해 기적을 동원하신 것이 아니라 표적을 보이십니다. 당신이 무엇을 위해서 왔고, 무엇을 가지고 왔는가를 보이기 위해 표적을 사용했지, 당신의 생애에서 죽음을 피하는 것으로 그것을 쓰지 않습니다
l 그 정황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도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l 예수님을 믿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우리를 어디로 끌고 가시며 어떻게 끌고 가시는지를 아십시오 늠름하게 사십시오
성령이 이끄신다 |
(사도행전 21:1~16)
두로에서의 사역 21:1~6, 가이사랴에서의 사역 21:7~16
l 바울의 계획은 소아시아에서 전도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고, 실제로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그를 붙들어 마게도냐로 인도해 그곳에 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l 여러 어려움을 당하고 이제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로마로 가기 위하여 먼저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마게도냐에서 연안을 따라 배를 타고 가서, 터키 연안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불러 작별을 고하고 교회를 부탁하고, 두로에 상륙하여 가이사랴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는 긴 여행길이 지금 소개되고 있습니다
환란은 필수
l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20:22~24)
l 환난은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는 하나님의 방법이랍니다. 그래서 모든 신자가 당연히 환난의 길을 걸어야 한답니다. 환난의 길이라는 것은 신자들만 아는 현실에 대한 이해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을 환난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경기장으로 이해할 뿐입니다.
l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5:3~4).
l 환난은 예수님을 대적하는 이 세상이라는 정황입니다. 사도바울은 마게도냐에서 로마까지 가야할 사명과 성령님의 지시를 받고는, 날개를 달고 날아오지 않습니다. 배를 타고 험한 항해를 합니다. 사람들을 만나고, 일어날 일들의 비관적 예상들을 염려하고 걱정하면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자기의 길을 걸어냅니다
삶으로 답하라
l 신앙인은 두 개의 텍스트를 가진다고 합니다. 하나는 성경입니다.그리고 다른 하나는 현실입니다 매일의 도전들에 스스로의 삶으로 대답하는 텍스트로 서야합니다.
l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하나님의 종인 내가 어떤 고난과 억울한 길을 걷고 있는지를 본다면 너희가 거기에서 힘을 얻을 것이다
l 우리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예수님의 오심은 우리를 위하여 오시는 것이고,결국 우리의 영생과 우리의 구원과 진정한 하나님의 영광을 결실하게 하는 찾아오심이었습니다.
성령이 주도하다
l 성령이 우리에게 명령하고 예수께서 걸으신 길로 우리를 인도하는 것이 환난입니다. 예수님의 길의 영광, 하나님이 하시는 방법, 거기에서 만들어지는 것들에 대한 증거의 대표자가 성령이십니다
l 성령이 오셨다는 것은 예수님 안에서의 승리의 결과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이루신 부활의 승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러니 걱정 말고 환난을 감수하라.
l 빌4:8~9
l 여러분이 거부하는 사소하고 범상한 것, 싫어하는 것, 가난한 것이든지 억울한 것이든지, 여러분의 한계든지 눈물이든지 후회든지, 무엇이든지 거기에 다 넣으십시오. 그 모든 일에 참되시고 경건하시고 정결하며 사랑받을 만하게 하십시오
l 큰일 한 번 해서 책임과 보상을 얻어가려는 생각을 버리시고 여러분 각각의 존재와 각각에게 허락된 조건과 인생이 귀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여러분 만의 유일하고 독특한 존재와 실존을 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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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하나님이 드러나다 |
(사도행전 21:27~36)
예루살렘을 방문한 바울 21:17~26, 바울의 체포21:27~39
l 바울이 체포되어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 황제 앞에 재판을 받기 위해 로마로 압송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차별화하는 죄
l 바울을 잡는자는 로마가 아니라 아시아로부터 유대인들이 와서 성전에 있는 바울을 잡고 있습니다
l 그들이 바울을 이스라엘과 율법과 성전을 비방하는 자 혹은 훼방하는 자라고 지칭해서 그를 반대하는 명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독특한 차별화된 우월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l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의식과 하나님께서 친히 율법을 주셨다는 것과 하나님을 모시는 성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전하는 복음에 의해서 그런 것들이 다 무가치한 것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분노하고 있습니다
l 기독교인도 자신들이 예수님을 믿었다는 어떤 선택이나 결단을 강조해서 기독교 신앙을 폐쇄적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모두를 향해 열린 문을 닫아버리고 ‘나는 믿었고 너는 안 믿었다’라고 차별함으로써 유대인이 바울에게 대드는 것과 동일한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은혜로 구원하심
l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6~29)
l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아무런 가치도 없는 존재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붍들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지, 우리가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종교를 확보하고 그 내용을 가짐으로써 그렇지 않은 자와 우리를 차별화할 실력을 가진 자들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라는 것입니다
l 에수를 믿는 것도 현명해서 선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하나님이 은혜로 불렀다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l 십자가란, 세상이 예수를 거짓이라고 하여 죽인, 그가 진리도 아니고 메시아도 아니고 하나님은 없다고 내린 판결입니다.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그 길로 나가야 합니다. 십자가만 자랑하겠다는 것은 이제는 억울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l 억울함으로 하나님이 부활을 만들어 내셨으니 우리는 억울함을 사람들에게 풀거나 사람들에게 해결을 요구하거나 그 대가를 요구할 필요없이 십자가 안에서 짊어지는 것입니다
못난 사람을 위한 종교
l 예수 믿은 죄가 뭐냐면 보복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만 못난 사람을 위한 종교입니다. 스스로가 못난 것을 아닌 것이 구원이요 믿음이요 은혜인 줄 우리는 압니다
l 죄를 이야기할 때, 옳고 그른 것보다 더 큰 기준이 있답니다. 믿음을 따라 하지 않는 것이 죄라고 합니다. 믿음이란 예수님 안에서 허락된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목적과 연결되지 않는 것은 다 죄입니다
오직 예수로 말미암아
l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당신의 영광을 구체화하셨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으로 말미암는 것만 있습니다. 그 안에는 모든 것이 있습니다.
l 예수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의와 진리와 능력과 자랑과 기적이 되었습니다 이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라는 보잘것없는 존재와 실존이 지적의 자리,은혜가 넘치는 자리, 하나님이 일하시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울의 이 마지막 여정입니다
l 억울해 하지 않으며, 얻어맞고 욕먹고 붙잡혀 로마로 갑니다. 우리 모두의 생애가 동일한 하나님이 일하시는 기적의 손길인 것을 기억하는 명예와 믿음과 순종과 진정한 자랑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불러 보내셨다 |
(사도행전 22:6~21)
바울의 변론 21:40~22:29
l 유대인들이 바울을 적대하고 그를 처벌하려 하는 이유는 그가 이스라엘 백성과 율법과 성전을 훼방하는 자이기 때문이랍니다 그렇게 붙잡힌 바울이 변명하는 장면입니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
l 유대인들은 바울이 말하는 것을 알아 듣지 못했습니다. 바울도 전에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제 돌아와 알게 되어 유대인들의 몰이해, 적개심, 분노를 감수하게 됬었습니다. 바울은 아무도 알 수 없는 길을 가는 것입니다.
거룩함으로의 구원
l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율법을 가진 것을 가지고 자기네가 자격이 있고 자기네는 다르다고 생각했고, 그 다르다는 우월감이 하나님의 일하심을 막아버렸습니다.
l 우리의 본성도 동일하게 사람을 믿는자와 믿지 않는자로 밖에는 구별할 줄을 모릅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데 자기를 맡기는 것이 아니라, 감동시키고 설득하고 위협해서 하나님의 일을 막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비교밖에 만들어 낼줄 모릅니다
l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출20:1)
l 어떤 속박과 고난과 억울함에서 꺼내준 것이 다가 아니라, 무엇으로부터의 구원이 다가 아니라, 훨씬 크게 무엇을 위한 구원, 하나님의 자녀라는 영광으로의 구원입니다
l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출3:15)
l 역사의 하나님, 성실하신 하나님,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 복 주시기 위하여 그의 능력을 동원하시는 하나님, 그가 사랑하는 그의 백성들을 부르시고 축복하여 영광을 드러내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으로 등장합니다
하나님이 일하신다
l 창12:1~3 아브라함에 대한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봄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게 됩니다. 한 인생, 그 후손들, 그렇게 만들어진 나라, 그 나라의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그가 약속한 복을 이루심을 보여주는 것이 구약성경입니다
l 창28:10~15 이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알아들으라고, 회개하라고, 결정하라고 보낸 것이 아닙니다. 그것보다 더 크게 하나님이 책임지고 결과를 만들기 위하여 역사와 인생에 뛰어들어오신 것이 예수님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바울이 기꺼이 무지와 몰이해와 거부와 분노와 적대 속을 걷는 이유입니다
l 바울이 앞으로 벨릭스,베스도,아그립바 앞에서 그리고 궁극적으로 가이사 앞에까지 가서 그들이 알아들을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시는 손길이 되어가는 길을 갑니다.
은혜를 누리며 나눈다 |
(사도행전 23:12~22)
공회앞에 선 바울22:30~23, 바울을 죽이려는 음모 23:12~35
다만 비명이면 된다
l 로마서 1:16“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l 뜻밖에도 복음을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합니다. 하나의 조건이거나 규칙이거나 수단인 것이 아니라 능력이라고 합니다
l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입니다 믿는 것이 진심, 이해, 납득, 헌신, 결단과 같은 조건들을 말한다면 부른다는 것은 다만 비명이면 된다는 뜻입니다. “나를 홀로 두지 마시옵소서”이런 비명이요
복음이 위대하다
l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10:15
l 그 소식을 전하는 사람에게 위대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전해야 하는 내용에 위대함이 있습니다. 바울이 위해한 것이 아니라 바울이 들고 간 복음이 위대하며, 그 복음이 성립된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하신 일이 위대한 것입니다
l 나이가 든다는 것은 특별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늙어서 죽음을 앞에 두면 정말 가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한 당연한 이해가 생깁니다 세상이 약속했던 영원한 승리, 영원한 영광, 영원한 자랑이 없습니다
l 믿음을 가진자가 늙어서 거울을 보면 예수님이 나옵니다. 주름과 주름 사이 그늘진 어둔 골짜기마다 십자가가 서 있고,굴곡진 피부에 불황의 빛이 반사됩니다
l 내가 유익해서 살아있다거나 무익해서 죽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일이라고 느껴서 살아있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것이 책임인 줄 아는 것입니다
살아서 계속 고생
l 바울은 당시에 고생만 한 사람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는 다만 고난과 수고뿐일 것입니다. 그러나 위대한 길입니다 그 길에서 우리는 늙어서 거울을 모면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렇지 않다면 거짓말을 만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끝없이 기다리신다 부르신다 |
(사도행전 24:10~23)
벨릭스 앞에 선 바울24:1~27,
l “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그들이 이단이라 하는 도를 따라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 24:14~15
l ‘부활 이있으리라’는 말 때문에 반대를 받고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합니다
부활로 인해.
l 부활이란 기독교가 가지는 중요한 신앙의 기둥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에는 죄의 용서와 죄인의 승리가 들어있는데, 그 내용은 죄인으로서 가지는 승리가 아니라 죄인이고 심판받아야 하는 자에게 주는 용서를 넘어 그 용서 후에 가져오는 영광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활입니다.
면제되지 않음
l 바울은 고함지르지 않습니다. 지금 이기는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그리하셨던 것처럼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 모두의 승리를 위하여 지금은 일하는 때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l 예수님의 생애에 이런 많은 기적이 있었지만 자기의 책임을 면제받는 기적은 없었습니다. 그는 죽으셔야 했습니다. 백성이 놀랐던 것은 죽은 자를 살리고 바다를 잠잠케하는 이가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l 예수님을 믿으면 승리 했다고 할 때 이 승리는 보이는 승리입니다. 좋은 학교 간 것, 좋은 직장 가진 것, 헌금을 많이 한 것, 예수님을 믿어서 선한 일 많이 한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의 본질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본질은 예수의 죽으심입니다
l 우리는 늘 은혜 아래에 있고 복 아래에 있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명예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억울할 수 있습니다
깊이 물어보는 자리
l 예수 믿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렵습니까? 보이는 증거와 보이는 권력을 안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입 다물고 사는 것 입니다. “방법이 없구나. 하나님이 일하신단다. 부활이 있단다. 역전이 있단다.’믿고 사는 것입니다
l ‘너는 틀리고 나는 맞다’하는 싸움에 말려들지 말고, 다른 사람을 쫓아다니며 ‘넌 왜 그렇게 사니?’그러지 말고, 조용히 각자의 인생을 살며, 하나님이 세상과 이웃 앞에서 일하신다는 것을 믿기로 하는 것입니다 비명 지르지 말고, 도망가지 말고, 각자의 삶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무의미한 시간은 없다 |
사도행전 25:13~22
베스도 앞에 선 바울 25:1~12,아그립바와 바울의 대면25:13~27
l 하나님의 일을 이룰 특별한 소임을 받은 바울이 무고한 죄인으로 구금되어 골방에 버려져 있는채로 이태가 그냥 흘렀습니다. 새로 부임한 베스도는 바울이 누구인지,죄목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들이 사실해 보니 오직 자기들의 종교와 예수의 부활 같은 하찮은 일뿐이더랍니다
도망갈 수 없는 자리
l 그냥 뒷방에 버려둔 신세가 되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이것이 대부분 신자들의 인생과 방불한 모습입니다.
l 바울은,교회는, 신자들의 현실은 이렇게 아무런 관심의 대상이 되지도 않을까요? 이것이 바로 사도행전이 증언하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l 우리가 주도권을 가지지 않습니다. 큰 세력이 되어 믿음과 하나님의 약속 안에 세상을 다 담아내는 권세와 지위를 가지지 않습니다.여전히 세상은 지위와 권세를 가지고 모두를 그 앞에 무릎 꿇리며 우리로 하여금 그 속에서 피해 다녀야 하고 숨어다녀야 하는 식으로 일하십니다
l 마6:26~32
l 우리에게 주어진 정황, 주어진 도전 앞에 서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도전이요, 공중의 새를 먹이시며 백홥화를 입히시고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입히시는 하나님이 정해놓은 정황입이다
l 거기에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과 콘텍스트 속에서, 그 요구와 도전 속에서 우리의 인생을 바치라는 것입니다
l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예배니라”롬12:1
l 바울은 잡혀 있습니다. 잡혀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태를 그렇게 있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릅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거룩함으로 가야 함
l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롬 11:32
l 그들이 불순종한 까닭은 이해가 안 돼서 그랬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풍년, 건강, 평화, 부국과 같은 것들을 구했습니다. 하나님은 그건 것을 주는 것으로 타협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거룩함으로 끌고 가십니다
l 당신의 사랑을 받으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그들이 따라오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거기에서 타협하시지 않고 그만하시지도 않고, 그들의 불순종과 몰이해를 뛰어넘어 기어코 그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드러남
l 우리의 소원보다 큰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영광됨으로의 부름을 아는 자의 기쁨, 그것을 증거하며 그것을 가지고 사는 자의 자랑을 모르면 우리는 하루도 살 수 없습니다.
l 하나님이 매일의 도전과 시험 속에 깨어 있으라는 이 방법으로 답 없는 길을 믿음을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술에 취해서 가는 자와 방불해 보이는 현실을, 세상 사람들은 쉽게 가는 길을 깨어서 가는 것입니다
l ‘하나님이 무언가 큰일을 하고 계신다’이렇게 깨어있는 정신으로 하루하루 믿음을 가지고 아슬아슬하게, 조마조마하게 비명을 삼키고, 분노를 삼키고 그렇게 살아가십시오 여러분이 바울입니다. 복음을 안에 품고, 믿음을 안에 품고 하나님을 아는 자로, 그의 자녀로 아무 아름 없이 숨어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품고 한계 속에 산다 |
(사도행전 26:24~29)
아그립바 앞에서의 바울의 변론 26:1~23
베스도의 반응 26:24~32
l 베스도 총독과 유대인의 분봉왕이였던 아그립바 앞에서 바울이 행한 자기변호입니다. 바울은 억울하게 잡혀있으나 비분강개하지 않고, 어떤 논리성으로 상대방을 압도하지도 않습니다. 기록한 누가도 담담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선포적 신앙
l 기독교 신앙의 힘은 논리성이나 열정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와 사실에 있습니다. 추상적인 개념으로의 진리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 지금도 일어나고 있고 결국 완성될 하나님의 일하심이라는 사실 위에 서 있습니다.
l 예수를 품고 산다는 것은 그 다음부터 형통하게 되었다거나 멋있어졌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이름 하나로 감수하지 못할 것이 없다’는 것으로 하나님은 예수 안에서의 구원, 하나님의 뜻,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선포하십니다.
한계 속에 살다
l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합니다. 지혜 있는 체하지 말라고 합니다. 다 이해하고, 다 설명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모르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l 그것은 선포입니다 선포란 타협한 것도 아니고, 합의한 것도 아니고, 상대방이 이해해야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상대방이 방해한다고 해서 소멸되는 것도 아닙니다
l 그것은 하나님이 자신의 뜻과 의지와 목적을 우리의 인생과 존재로 증언하시는 예수 안에서의 하나님의 진정성입니다
l “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4:5~7)
l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다는 말을 유진 피터슨 목사님이 풀어서 번역한 메시지에는 “이 보배를 일상이라는 질그릇에 담았으니”라고 번역해 놓았습니다. 일상이란, 누구에게나 있는, 반복되는 별 것 아닌 매일의 삶입니다 이 보배를 그 일상에 넣으셨답니다.
l 우리는 예수를 품고 살라고 부름을 받은 자들입니다. 가슴에 예수를 품게 되면, 그가 어느 형편, 어느 조건에 있을지라도 이미 위대한 사람입니다
l 그간 우리는 믿음은 결국 소원을 이루는 하나의 조건에 불과하고, 좀 더 좋은 조건을 가져야 자신의 존재도 확인이 되고 자존심도 지키고, 좀 자랑하고 살고 싶은 우리의 욕심이 범벅되어 있습니다
l 말로 하지 말고 몸으로 해야 합니다. 삶으로 해야 합니다. 삶에 넣어 놓은 보배입니다. 우리가 직접 걸어가야 합니다
십자가를 보라
l 우리가 가야할 길과 그것을 하나님이 어떻게 사용하시는가는 구별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곤고한 인생과 감추어진 존재가 얼마나 쓸모 있을지, 얼마나 효과 있을지 우리는 모릅니다.
l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창12:1~3
l 창22:15~17
l 하나님의 일하심의 놀라움, 부활의 능력, 무한한 은혜, 그의 약속의 신실함 그것이 십자가보다 더 잘 나타날 수는 없습니다
l 그러니 우리는 우리의 길을 기꺼이 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 길을 통해 이 보잘것없는 나를 써서 십자가의 기적과 능력과 은혜를 잇고 계시다’’네 씨가 하늘의 별 같고 바닷가의 모래 같으리라’ 믿으셔야 합니다
믿음으로 현실을 가로지른다 |
(사도행전 27:39~44)
바울의 로마여행 27:1~26,항해 중의 전도 27:27~44)
l 바울이 로마로 압송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가이샤랴에서 배를 타고 구브로를 끼고 돌아서 가다가 맞바람에 어려움을 겪고, 그다음에 유라굴라라는 태풍을 만나 배가 파선하여 멜리데라는 섬에 내리는 내용입니다.
전부를 걸어라
l 우리의 신앙이 설득이거나 권력이거나 감동이기 이전에 근본적으로 선포라고 했습니다. 선포란 고함 한번 지르고 정답 한번 이야기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믿는다고 이야기한 것에 자기의 인생을 맡기는 것입니다
l 결혼이 그렇고, 세례가 그렇습니다. 결혼식에서 서약하면 함께 살아야 합니다 ‘나는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을 선언합니다’ 예수 믿는 자로 살겠다는 선포가 세례입니다.
l 빌 2:1~8
l 우리가 우리의 생애와 우리의 운명과 우리라는 존재를 이 고백과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찾으심 속에 내어 맡기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신앙고백을 스스로가 믿지 않는 것입니다.
l 예수께서 그리하신 것처럼,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는 그 현안한 자리, 영광의 자리를 놓고 자기를 비우고 종의 형체로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사람이 되어 찾아오십니다. 인생을 걸으십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촉구하는 신앙입니다.
l 고전 2:1~5
l 사도바울이 처음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을 만나 복음을 전할 때, 예수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했다고 합니다.
l 목사님들은 자기 운명과 자기 인생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합니다. 한심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인생을 걸고 있는데, 그 앞에서 심사위원 하시면 안 됩니다. 심사위원하지 마시고 자기 인생을 거십시오
만물의 찌꺼기같이
l 진심을 바치면, 인생을 바치면, 운명을 걸면 하나님이 마땅한 것으로 보상하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씨꺼기 같이 취급될 수 있다고 합니다.이것이 선포의 어려움입니다
l 고전4:6~13 9절에서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같이 끄트머리에 두었다고 말합니다.
l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같이 되어서 들어갑니다
손해 보지 않는다
l 고전 15:55~58
l 마 16:17~19
l 우리의 충성과 미련과 게으름과 비겁함과 최선과 억울함과 눈물과 한숨 모두를 가지고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자랍니다. 손해 보는 일은 없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는 자의 자랑이요 영광입니다.
l 믿음은 변명하라고 준 것이 아닙니다. 모든 현실을 가로지르라고 준 것입니다 세상이라는 현실만이 아니라 그것을 가로질러야 하는 나를 가로지르라고 준것입니다.
l 가십시오, 삐뚤삐뚤 가십시오, 비명지르고 가십시오, 울면서 가십시오, 가셔야 합니다.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로 존재하는 그 모든 경우, 그 모든 지위, 그 모든 형편이 하나님의 손길인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래서 어느 날 주의 부활이 가진 영광과 능력을 확인할 날이 올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보는 바울서신들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영광된 현실입니다.
위대한 것은 복음이다 |
(사도행전 28:16~22)
로마에서 바울의 증거28:16~31
l 바울은 드디어 로마에 갔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28장은 이렇게 끝납니다.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28:30~31.
l 사도행전의 저자가 보는 바울의 행적을 보면 그는 기독교 신앙을 자기 성취의 어떤 요건으로 삼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행복해진다거나 어떤 문제가 해결되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l 바울을 통해서 보듯이,우리의 실제적인 신앙생활에서 보듯이 예수님을 믿어서 문제가 풀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만나 문제가 생깁니다,
예수님의 고난
l 예수께서 고난을 받고 영광의 자리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고난은 필수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53:7~8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고난을 야기하는 현실
l 빌 3:10~11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l 사도바울은 복음이 어느 자리에서, 누구를 위하여 만들어졌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적국에 들어가야 하고, 적군 속에 들어가 내가 누구인지를 밝혀 그들의 칼을 받고 그들의 총에 맞아야 합니다. 고난은 필수입니다. 적대적 상황에 뛰어 들어가야 하니까 고난은 당연합니다
l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의 완성, 완벽함을 무엇으로 설명하느냐 하면,”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라고 설명합니다.
복음을 담은 질그릇
l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 1:7~8)
l 복음은 바울로 인하여 완성되었거나 바울로 인하여 도움을 받고 있지 않습니다 바울은 다만 복음을 담은 한 그릇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바울이 있어야 되었던 일이 아니고, 없으면 손해 보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 안에서만 시작되고 완성된 것입니다
l 이 나라, 이 땅, 이 시대, 우리 민족 이런 것 갖다 붙이지 마시고, 여러분이 우선 잘 사십시오. 체념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잘난 것으로 확인하려 들지 마시고, 아무것도 아닌 인생 같지만 그것이 위대한 신앙의 길인 줄 알고 잘 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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