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miliar History/Korea

[주환성의 한국역사] 한국의 붕당정치

Four Seasons Daddy 2010. 3. 18. 10:40

 집권당의 내분이란 5공 이전까지만 해도 대단히 이례적인 사태였다.그러나 과거 집권당이었던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그리고 지금의 집권당인 한나라당에 이르기까지 집권과 더불어 권력이 분열하고 대립하는 현상은 일반적인 현상이다. 과거 군사정권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현상이다. 정치의 민주화에 따라 알게 모르게 정당 민주화도 진전돼온 증좌인 셈인가?

 

그러나 세력투쟁의 측면도 아주 없지는 않아 보인다.왜 특정인 또는 그룹이 집권당의 권세를 오로지 하면서 대다수 구성원을 들러리로 전락시키느냐는 불만이 ‘당정쇄신’의 구호에 묻어 나온다.당내 유력자들의 집단이 주자를 지원함으로써 대선 후보 결정과정을 왜곡시키려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강하게 작용하는 듯하다.   이러나 저러나 생각할 수록 참으로 희한하다.

 

그간 몇 차례 정권교체기에 목격해 온 집권당의 내분은 갈데없는 조선시대 붕당들의 분열상이다.이처럼 흡사하게 흉내내기도 쉽지 않을 터이다.  상식이지만 조선시대 붕당정치엔 일관된 경향이 있었다.집권하면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분당이 뒤따랐다.선조 8년(1575) 이조전랑의 임명을 둘러싸고 대립하면서 재조 사대부들은 동·서 두 세력으로 분열했다.이 분당 사태를 수습하려 애쓰던 이이(李珥)의 죽음을 계기로 권세가 동인 쪽에 실리자 금방 이들 내에서 남인과 북인분파가 생겼다.  임진왜란 후 북인이 정권을 잡으면서 대북·소북으로 갈라졌다.

 

광해군 재위 때 그의 왕위 계승을 지지한 대북이 정권을 장악했는데 이 당은 골북·육북·중북으로 분열했다.그리고 선조 때까지 대북과 함께 집권했던 소북은 청소북과 탁소북으로 나뉘었다.   1623년 인조 반정으로 서인이 집권하게 됐다.권력을 장악하기 무섭게 이들은 반정에 가담한 공서(훈서)와 가담치 않은 청서로 갈라섰고 공서는 또 노서와 소서로,후에는 원당·낙당으로 쪼개졌다.한편 청서는 훗날 산당과 한당으로 분당했다. 

 

효종 즉위(1649) 직전 송시열·송준길 등이 서인을 통합하고 남인을 눌렀다.남인들은 계속 기회를 노리다가 현종 원년에 왕족의 복제 문제를 싸고 정권에 도전(1차 예송)했으나 실패했다.그러다 숙종 즉위의 해(1674)에 다시 복제 논쟁을 벌여 마침내 서인을 몰아내고 정권을 차지했다.이 때부터 경신대출척(1680) 때까지 남인은 탁남·청남으로 분열돼 있었다.  경신대출척으로 남인을 몰아내고 정권을 되차지한 서인은 1683년쯤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섰다.이 노소의 대립이 사도세자의 죽음(1762)을 초래했다.이후 노론은 사도세자의 죽음에 동정적이었던 시파와 영조의 처사를 지지한 벽파로 갈렸다. 

 

베껴 쓰면서도 헷갈리는데 읽는 사람들이야 오죽하랴.정권을 잡으면 예외 없이 분당을 하게 된 까닭은 어렵잖게 짐작할 수가 있다.적대 세력이 위축되면 잠재하던 내부적 갈등 요인이 부풀어 오르게 마련이다.게다가 요직은 한정된 데 비해 사람은 넘쳐난다자연 관직 쟁탈전이 당내에서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분열의 핵심적 요인은 아무래도 집권 세력의 오만과 권력의 경직화가 아니었을까 추측된다.타협과 배려에 인색하고 변화의 요구를 수용하지 못한 탓에 분파 욕구가 부추겨졌을 것이다. 

 

어쨌든 어지러울 정도로 거듭됐던 조선시대의 당파 분열도 대한민국 정당들의 현란한(?) 이합집산에는 어림없이 못 미친다.조선시대의 당파 분열은 2백수십년간에 걸쳐 일어났던 일이다.이에 비해 한국의 정당정치사는 겨우 50여년.그 사이에 명멸해간 정당은 그 수를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그래도 역대 집권당은 결속력을 자랑하지 않았느냐고 말하겠는가.단지 강권통치에 눌려 있었던 때문이었음은 6공 이후의 집권당들이 입증해 보인 바다.민자당 때도,신한국당 때도 집권 세력은 심각한 균열상을 드러냈고 마침내 정권을 놓치는 사태에까지 직면했다.  과거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그랬는데 한나라당도 그 전철을 밟고 있는가?  

 

한나라당이 정권 재창출을 하고 못하고는 관심 밖이다.다만 우리 정치인들의 행태나 의식이 어쩌면 그렇게 왕조시대의 선배들의 판박이처럼 보일 수 있는지 그게 신기해서 하는 말이다.분열은 권력 상실의 시작이었다고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바로 직전의 집권당이 보여준 바도 다르지 않다.

 

 

 

자료출처 : 이진곤컬럼 당쟁이야기  2001-11-07 국민일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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