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tation on Bible/Galatians(갈라디아서)

갈라디아서 - 박영선 - 제4장

Four Seasons Daddy 2022. 3. 18. 12:39

 

 

 갈라디아서 4:28~5:01

 

진정한 자유를 주시는 예수그리스도

 

l  갈라디아교회에 할례문제, 인간에게 자격과 조건을 만들어 복음의 진정한 은혜성을 감소 왜곡시키는 문제로 인하여 사도바울이 보낸 편지를 살펴보고 있는 것입니다. 할례문제가 율법의 의미로 보고 꾸중하고 있습니다.

 

l  율법이 자신에게 근거를 가지려고 사용되는 것을 맹렬하게 꾸짖고 있는 장명입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율법에 매여있지 않고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십자가의 은혜를 입은자라,두 대조를 하면서 율법적 확인하려는 자들을 종에 자녀라하고, 그리스도예수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자를 자유인이라 이렇게 부르고 있는 대목입니다.

 

l  이삭과 이스마엘을 대조시켜 자유인의 자녀는 자유인으로 종의 자녀는 종으로 역사적 사실을 끌어와 설명합니다.

 

l  자유인이란 부모와 같은 신분을 이어가는 자 유업을 이어가는 자로 자유인이고, 종은 유업을 받을게 없죠 사유재산 입니다. 이렇게 자유인과 종을 대조하여 설명합니다.

 

l  우리는 자유라는 것을 남에게 간섭을 받지 않는 선택권이라고 보통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자유인은 사라와 하갈의 대조를 보듯이 이삭과 이스마엘을 보듯이 본인들의 선택권이 아닙니다, 부모가 누구냐에 따라 갈리는 운명입니다. 본인의 능력이나 선택의 문제로 갈리는 것이 아닙니다.

 

l  15:11-17 탕자의 비유

 

l  탕자의 선택은 아버지의 보호아래에서 본인의 선택으로 옮겨갔습니다. 그선택은 못난 선택이였습니다.

 

l  성경에서 말하는 자유인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가지게 된 자의 부요함을 말하는 것이고, 자신이 자기를 책임져야하고, 하나님의 보호와 통치를 거부한 자를 종이라고 말하는 부분입니다.

 

l  기독교인이 가지는 자유는 전능하시고, 영원하시고, 생명과 영광의 주인의 상속자가 되었다는 의미에서 자유라는 말을 쓰고있지, 이제는 나 예수를 믿었으니 나 무엇을 해도 괜찮다라는 방임을 얘기하지 않습니다.

 

l  하나님 없는 사람들의 선택권은 자유가 아니고 타락입니다. 생명과 승리를 허락할 수 있는 하나님을 외면한 잘못된 선택입니다. 이것은 철저히 타락입니다.

l  4:17-20

 

l  예수를 믿지 않은 일반자연인들을 죄인이라고 합니다. 어떤 죄인이냐하면 자신이 자기의 주인이 된자를 죄인이라합니다. 인간이 피조물로서 자기가 자기의 필요를 생산해 낼 수 없다 이것이 우리 기독교 신앙이 가지는 이해입니다.

 

l  믿음과 순종은 하나님의 자녀된 증거이지, 그것이 우리를 속박하거나, 귀찮게하고, 손해케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l  우리가 우리의 통치권을 가지는 것이 자유인 것 같고, 그것이 진정한 인간의 가치인 것 같고, 자기 안에 자기가 확신할 만한 근거를 만들고 싶은 것 이것이 기독교 신앙에 많이 오해하는 부분입니다.

 

l  우리가 무엇이든지 기도하게 되어 있지만, 기도할 때마다 이점을 조심해야 합니다. 이 기도로 하나님을 찾아오는 일이 마지막이 되도록 해 주십시요 입니다.

 

l  우리가 가지는 믿음과 순종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가지는 특권들이지, 우리를 속박으로 묶는 차원이 아닙니다. 그런 차원에서 자유인이라는 것은 이삭을 사라가 낳듯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심으로 허락되는 자유이지 우리가 만들어내는 어떤 결과물이 아닙니다.

 

l  1:3-6

 

l  신자들의 자유,특권은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허락되어 있는 것이지, 우리의 자격이나 노력의 산물이 아니다 그것을 자유라고 합니다.

 

l  진리가 예수안에 있다는 것은 얼마나 통열한 지적인지 모릅니다. 탕자가 그랬듯이 자신의 선택권이라는 것이 자유를 보장하지 않더라구요 그것은 다만 미련하고 어리석은 선택에 불과했는데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본인은 그것이 특권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l  진리가 예수안에 있다는 말은 참다운 자유는 진리를 근거로 갖지 않으면 참다운 자유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한다하고 예수그리스도가 진리라고 하십니다.

 

l  예수그리스도 만이 진리를 만드시는 분입니다. 그분만이 창조주이시고,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하면 우리의 자유가 특권이 어디에 묶이야 하면, 예수를 아는 것,의지하는 것,순종하는 것에 묶이는 것입니다.

 

l  신앙생활은 불편하고 어려운 일이라고 합니다. 짐을 나누어지고 사랑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짐을 나누어지기 위하여 각자 자기의 몫을 해야한다고 말합니다.

 

 

 

 

갈라디아서 4:12~ 20

 

 나의 눈물과 한숨으로도 일하시는 하나님

 

l  오늘은 사도바울이 복음이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았고, 은혜에 속한 것이라는 것을 율법과 대비시켜 설명을 하고, 우리의 자격과 조건이기 전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자비의 선물이라는 이야기를 하던 중에 오늘 412절 이하에서는 이것이 어떻게 전 인격을 항복시키는 문제였는가 하는 갈라디아교인들의 심정에 호소하는 장면입니다.

 

l  4:12-13

 

l  너희가 나라는 사람이 멋있고, 위대하여 내말에 승복하거나 나라는 사람의 지지자가 된 것이 아니지않느냐, 복음이 내 전 인격을 통하여 너희에게 전달되고 증언된 것은 너희가 알지 않느냐 입니다.

 

l  사도바울은 참을 수가 없습니다. 논리를 떠나서 그 마음에 넘쳐 흐르는 복음과 하나님의 은혜의 위대함과 우리를 찾아오시고 허락하신,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작정하시고, 우리를 흔드시는 복음의 뜨거움을 참아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l  17절에 저들이 너희들에 대하여 열심내는 것과 비교하여 보라와 만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는 간단하지 않습니다.

 

l  이단에 빠져있는 사람들의 열심을 보면 대단한 열심을 가지고 우리가 증거하고 있는 이 내용에 앞서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단에 빠져있는 사람들의 큰 약점은 상식에서 벗어나 있다는 사실입니다.

 

l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와 신비와 복음의 능력을 논할지라도 우리가 육체안에 있고, 마음에 땀과 피가 있는 사람으로서의 자리를 놓치지 않는 건전함이야 말로 기독교 신앙을 분별하는 중요한 잣대입니다.

 

l  사도바울의 목소리를 높여 말하는, 그 끓어오르는 심정은 오늘날 목사가 가져야하고, 신자가 가져야 한다고 오늘 말씀이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l  우리는 우리의 책임을 면하기 위하여 기독교를 전하거나 기독교 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조건과 환경속에서도 예수안에서 하나님을 붙잡는 것 이외의 것과 바꿀수 없다라고 우리의 현실을 바치는 사람들로서 신앙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몸부림이 있는 것입니다.

 

l  마음에 소원하는 것 만큼 우리가 다 하지 못하는 몸부림이 있죠, 우리의 진실은 찬송과 환희와 그런 예배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눈물과 한숨과 절망 절규로도 나타나는 것이며,

 

l  우리가 누구에게 기독교를 전하고, 우리의 믿음을 증거하는 일에서도 우리가 더 이상 설명할 수 없는 가슴을 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진실한 것입니다.

 

l  하나님은 희한하게 사도바울의 생애를 보면 그에게 이렇게 언제나 사단의 가시를 주어서 그가 맡은 일의 중요함과 짝할 수 없는 유일한 진리를 전하는 사도에게 오히려 방해가 되는 일, 짐으로 되는 일들로 그의 생애를 채웠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압니다.

 

l  그러나 성경은 고린도후서 12장에서 보듯이 우리가 약할 때 그리스도께서 강하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l  고후12:7-10

 

l  우리는 돌이켜 이렇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세운 교회,사도바울이 가르친 성도들은 한번 가르침을 받고 다시는 흔들리지 않았다, 성경은 그렇게 얘기하지 않습니다.

 

l  사도바울 쯤 되는 사람이 세우고 가르친 성도들도 흔들리고 심지어 사도바울 자신에 대하여도 의심을 받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는 것들이 고린도 전후서는 이 갈라디아서에서 명백히 들어나고 있습니다.

 

l  바울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 진리 맡겨진 복음의 위대함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그의 전 생애에 걸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자신을 이 자리에 놓았다고 고백합니다.

 

l  그러나 우리가 잘 아는데로 그가 히브리인중에 히브리인이요, 할례를 받고, 바리새인이고, 로마시민권자이고 하는 모든 세상적인 준비에서 다른사람에 못지 않은 그의 구비조건들입니다.

 

l  그러나 성경은 그것보다, 그가 더 많이 옥에 같히고, 핍박을 당하고, 오해를 받고, 고난을 받고, 육체의 가시가 있고, 넘어지고, 자빠지고, 실패하고 한 일들이야 말로 하나님이 그를 통하여 쓰신 일이요, 그를 사용하신는 방법이요, 그에게서 요구하시는 것이라 입니다.

 

l  멋진 말, 멋진 능력,결과 보다 중요하게 바울의 언성을 높이는 이 안타까움과 비명과 절규를 요구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참으로 놀랍습니다.

 

l  고후 11:23-27 내가 이렇게 고생한 것이 사도의 증거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사도가 되면 더 능력이 있고, 효과가 있고, 더 결과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l  우리는 우리의 생애가 이 세상에서 형통하고, 여유가 있으면 하나님 앞에 더 많이 쓰여 질 것이라는 소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울고,한 숨 쉬라고 합니다. 그것을 쓰신다고 합니다.

 

l  고후11:28-33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한다.광주리 타고 도망한 사건

 

l  하나님은 이렇게 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과 한숨속에서 일하시고 우리의 뒤쳐진 것 같고, 실패한 것 같고, 삼켜진 것 같은데서 일하신다고 바울이 이야기 합니다. 그때에 물러서지 마십시요 쓰임받고 있는 것입니다.

 

l  내가 누구 하나를 돌려 놓을 수 없고,변화시킬 수 없지만, 내가 안타까워하고, 속상해하고, 기도하는 일이 그것이 큰일입니다. 우리가 아는 사도바울,엘리야의 위대함의 이러한 것의 절반입니다.

 

l  하나님은 나타나는 일에 그 이상으로 감추어지고, 지는 것 같고, 도무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상태에서도 일하시더라 라고 사도바울이 고백합니다.

 

l  사도바울이 갈라디아교인들에게 전하는 말씀속에서 이런 결론에 도달합니다. 바울이 갈라디아교인들에게 가지는 열심이 이제는 언성을 높일 수 밖에 없는 의심에 지경에 까지 왔습니다.

 

l  이때에 사도바울은 자신의 생애를 다시금 조명하여 우리에게도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누가 나를 쓰겠냐고,능력없다고 생각이 들때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용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l  하나님은 우리의 안타까움과 무력해보이는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해야할 일입니다.

 

l  여러분 스스로의 생애와 존재와 여러분의 삶의 조건들을 하나님께서 쓰시는 줄 아는 오늘의 이 바울의 고백이요 성경의 증언이요 하나님의 약속일 줄 들으시기 바랍니다.

 

l  여러분 스스로가 여러분의 생애와 존재와 예수 믿는 복음을 여러분 안에 붙잡고 씨름하며, 안타까워하며,괴로워하며,한숨쉬며 기도하며 나아가 하나님의 앞에 사도바울과 방불한 이름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쓰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며 나아가십시요

 

 

 

갈라디아서 4:01-11

 

예수 안에서

 

l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어떤 규칙을 지키거나, 도덕성을 함양시키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화 된 것이라 입니다.

 

l  율법아래 있는 때는 너희가 종이라, 종이란 아들과 다릅니다.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는 아버지와 아들은 대등한 관계입니다. 상속자라는 개념입니다.

 

l  율법은 강요할 뿐이고, 지키는 것을 도와주지도 않고, 지키지 못하면 정죄와 심판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녀는 혹독하고 냉정하게 대하지 못합니다.

 

l  갈라디아서에서는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이냐, 너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법 아래 놓여있지 않고, 강요와 강제 아래 있지 않고, 돌보심과 아끼는 대상이 되었다 입니다.

 

l  6:8-11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가 누구와 묶여 있냐라는 관계가 바뀌었다는 말입니다.

 

l  죄에 대하여 죽었고, 하나님의 대하여 산자 입니다. 우리는 평소에 그것을 구원을 얻었다라고 표현합니다.구원을 얻었다는 것은 죄와 사망이라는 정죄와 심판아래 있지 않고 우리를 아끼시고 돌보시고 편드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입니다.

 

l  6:12-13

 

l  갈라디아서 4장을 이해하고 이 내용을 읽으면 너희는 마음껏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되었다라는 구별을 가지게 됩니다. 마음껏이란 죄아래 율법아래 있을 때 강요되던 것 과는 다르다 입니다.

 

l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어 하나님이 우리를 종으로가 아닌 자녀로 묶으셨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강요하시지 않습니다.

 

l  하나님의 사랑의 놀라움은 당신의 사랑이 희생적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보상을 원치않습니다. 사랑은 주는 것이고 사랑은 강요하지 않습니다.

 

l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셨기 때문에 구원을 베푸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종이 두려워서 주인에게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자녀로서 아버지를 섬기는 것입니다.

 

l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보면 자신의 신앙생활에 대하여 만족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답지 못했다라고 늘 회개하고 후회하고 자책하는 것이 신앙인의 현실일텐데, 잘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돌아오시면 됩니다.

 

l  6:14-18

 

l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종과 자녀라는 대비를 통하여 우리에게 허락된 기독교 신앙이라는 것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이며 우리의 자격과 조건과 상관없는 하나님의 은혜이며, 그 신앙을 확인하는데 있어서 자신을 확인할 것이 아니라, 언제나 이 구원을 예수안에서 허락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알아야하고, 거기에 근거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l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부르셨다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심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필요하셔서가 아니라 기뻐하셔서 구원을 하셨습니다.

 

l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신다는 것은 빌 4:4-7 갈라디아서 시각으로 보면 주안에서 기뻐하라 입니다. 주안에서가 무슨 이유와 조건인지 알고 마음껏 기뻐하십시요

 

l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 다들 같은 정도를 걷습니다. 자책과 회한이라는 것을 길을 걷습니다. 우리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자신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자신안에서 조건과 근거가 없습니다. 자신을 근거로 한 신앙고백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예수를 보셔야 합니다. 예수를 보시면 그 안에 이유와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이 갈라디아서가 하고 싶은 이야기 입니다.

 

l  너희의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하라, 관용이란 넉넉한 자의 베품입니다. 우리가 왜 넉넉하죠, 주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주셨다는 의미와 뜻에 성경의 가르침을 제대로 적용한다면, 부족할 것이,모자랄 것이,걱정할 것이 없다 입니다.

 

l  데전 5:16-18

 

l  우리는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존재 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기쁨의 대상이고, 하나님이 그래서 우리를 그의 자녀로 묶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