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tation on Bible/Galatians(갈라디아서)

갈라디아서 - 박영선 - 제5장

Four Seasons Daddy 2022. 5. 24. 14:15

 

 

갈라디아서 5:2-12 

                                         

하나님 다스림의 순종

 

l  사도바울이 이방인을 위하여 하나님께 부름을 받고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서 그에 일을 수행할 때 그에게 가장 큰 대적이 되었던 세력은 믿지않는 이방사람들 자신이 아니라 유대인들이였습니다.

 

l  오늘날 까지도 이스라엘이 예수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여기지 않는 것 같이 당시에도 예수를 전하는 것은 유대인에게는 중요한 신성모독으로 간주되었습니다.

 

l  유일하신 하나님만을 섬겨야 하는데, 예수도 하나님이라 믿는 이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겐 예수를 주로시인하고 복음을 전하는 일이 큰 범죄행위로 이해되었던 것 입니다.

 

l  그래서 초기 기독교 사회에서 개종한 유대인들이 율법과 예수를 믿는 것의 구별을 분명하게 하지 못해서 율법적이기도 하고 예수도 믿고하는 일종의 타협안 같은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약화시키는 자기자신에게서 근거를 가지려 하는 율법적 사고로 가는데 대하여 초대교회에서는 크나큰 문제가 야기 되었던 것입니다.

 

l  할례를 포함하여 모든 율법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기백성으로 삼았기 때문에, 자기백성된 그 조건하에서 요구하는 신앙의 순종할 내용이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율법을 순종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스스로에게 구원의 능력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어야 하는데, 율법을 가지고 있고, 지킨다는 것으로 자기네들에게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갈라디아서에서 지적하고 있습니다.

 

l  율법과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공존할 수 없다고 사도바울은 단언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우리의 신앙과 우리의 신분과 운명이 예수를 근거로하여 생긴다는 믿음이고, 율법을 지킨다는 것은 나의 운명과 나의 신앙이 나의 선택과 의지에 근거하여 생긴다는 것입니다.

 

l  예수를 근거로 하던 나를 근거로 하던 착하게 만 살면 되지 않느냐 그건 전혀 복을을 모르는 생각입니다. 예수로 말미암는 구원,예수를 주로 섬긴다는 것은 천국에 가고, 착한 사람이 되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한다. 하나님의 나라 그가 주인인 나라로 부름을 받았다는 뜻이기 때문에 내가 나의 주인이면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내가 나의 주인이면서 예수가 주인인 나라에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l  고후 3:1-6

 

l  할례를 지켜서 종교를 성립시키는 것은 자기의 능력과 선택 자신의 근거한 왕국을 세우는 것이요, 예수가 주인이신 통치자인 하나님나라의 왕국을 세우는 것입니다.

 

l  율법을 지키는 것은 개인의 능력을 시험하는 것이지, 율법이 우리에게 율법을 지키고 우리에게 무엇을 하게 만들어 주는 힘이 되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l  율법은 돌판에 쓴것입니다. 율법은 자체로 인격체도 아니고 능력도 아니고 하나의 법 조문입니다. 그것은 누구를 도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 율법을 지키느냐 못지키느냐의 기준선으로 쓸수 있어도 율법을 지킬 수 있는 일에 도움을 줄 수는 없습니다.

 

l  율법과 예수를 비교할 때 성경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자가 되셔서 우리를 그의 백성으로 부르시고 만들고 완성시키는 나라다.

 

l  돌판에 쓴 것이 아니라 마음판에 쓴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사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돌이키시고 부르시고 변화시키시고 거룩하게 하시는 찾아오심이며 능력으로 개입하시며 변화시키는 간섭입니다.

 

l  율법은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법을 지킬 힘이 없다라는 것을 알게합니다. 우리가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려면, 하나님의 백성이 되려면, 우리의 능력으로는 될 수 없다라는 것을 알게하는 몽학선생에 불과했습니다.

 

l  그러나 신기하게도 자신에게서 근거를 찾으려하고, 내가 무엇인가 한것으로 욕심 때문에 본인도 모르는 순간에 신앙이 자기확인으로 흐를 수 있습니다.

 

l  그러한 차원에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우리의 선택이나,의지나,분별이나,단호함이나 이러한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를 찾아오셨고, 우리를 변화시키셨고, 자기의 백성으로 부르시고 자녀로 만드신다는 것을 아는 것이 예수를 믿는다는 뜻이다.

 

l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셨고, 능력으로 개입하셔서 우리로서는 도저히 갈 수 없는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전혀 선택과 결정의 우리의 의지적인 능력과 책임의 문제 이전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복음이라고 합니다.

 

l  예레미아 31:31-31

 

l  옛 언약은 시내산 언약이고 율법으로 맺은 언약입니다. 그 율법은 그것을 지킬 능력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새언약은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율법에 나타내었던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이룰 수 있도록 우리 마음판에 새긴 언약입니다.

 

l  옛언약과 새언약의 차이는 언약의 내용에서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언약을 성취하는 방법에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 주인공이 예수그리스도이시다. 그러는 것입니다.

 

l  8:1-11 신자된 정체성

 

l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에 가장 중요한 핵심은 예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값을 치르고 우리를 보낸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가 우리의 주인이 되어 우리를 다스리는 통치자로 우리안에 거하시기로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l  1:17 모세가 준 율법은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돕는 일에 무력합니다. 예수는 우리에게 은혜와 진리를 베풀죠. 예수께서 은혜와 진리라는 선물을 주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우리의 주인이 되사 은혜와 진리로 다스려 은혜와 진리가 우리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받는 선물이 되게 하십니다.

 

l  5:5

 

l  할례를 받으면 무슨 소망이 있느냐, 할례가 너희를 사랑하게 하느냐, 갈라디아서는 율법과 예수그리스도를 지속적으로 대조시켜, 우리를 성령의 열매에서 결국 사랑으로 우리를 끌고 갑니다.

 

l  사실 현실적인 신자들의 신앙실천 속에서도 이 문제는 늘 우리에게 걸리는 문제입니다. 우리가 열심있는 신앙생활을 해야한다, 실천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 더 깊은 사랑을 가져야 한다. 하는 것들은 우리들이 실천을 위해서 얼마든지 이런 식으로 표현할 수 있지만, 얼마든지 율법적으로 쓰여질 수 있습니다.

 

l  율법적으로 쓰이면 희안하게 그곳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사랑은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희열과 감격에 차있는 감정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l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사랑은 예수그리스도 십자가 지심이 꿈도 아니고 상상이 아니고 현실이였던 것 처럼, 사랑은 냉정하고 현실적인 분별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은 오래 참는 것이고, 무례이 행치 않는 것입니다.

 

l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 뿐이니라. 기억하셔서 참다운 신앙을 지켜내십시요

 

 

 

 

                                          갈라디아서 5:13-15 

자유에서 책임, 책임에서 섬김과 사랑으로

 

l  우리는 이제껏 율법과 복음의 그 차이를 배워오고 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고 있는 중요한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율법 자체가 우리에게 그것을 지킬 수 있도록 어떤 힘이나 도움을 줄수 있는 것은 아니다.

 

l  그것과 대조하여 복음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살수 있도록 하는 힘을 주시고 그 능력이 되신다는 면에서 율법과 대조된다고 여기까지 해왔습니다.

 

l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다. 우리가 자기 의를 세우거나, 자기확인을 하는 자리로부터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은혜와 능력을 힘 입었다. 그러면 이제 신앙생활의 결정적인 궁면은 그 힘과 은혜를 발휘해야 되는 것이죠 실천하고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l  여기서 등장하는 자유는 예수그리스도가 없었으면 할 수 없었던, 가장크게 자기의 자기확인 자기욕심이라는 개인적인 욕망과 부족함으로 부터의 자유인 것입니다. 예수안에서 하나님의 목적하시고 허락하시는 구원의 영광을 이루어내는 자유로 부름을 받은 것이죠.

 

l  로마서에서 등장하는 은혜가 결단코 무질서나 무책임한 방임이나 방종으로 부르는 것이 아니듯이 자유로 부름을 받는 것도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책임아래 있는 것이다 하는 가르침을 성경이 일관되게 하는 것입니다.

 

l  기독교인의 자유라는 것은 예수로 말미암아 달라진 인간,달라진 인생을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지못한다면 자기의 자유를 무엇을 해야되는 자유인지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l  5:13

 

l  육체의 기회를 삼는다는 것은 우리가 헛된것으로 자신의 시간과 기회들을 낭비하고 방향없이 자신을 방임하는 것을 말합니다.

 

l  살전 1:2

 

l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분명히 어떤 억압과 절망과 낭패로부터 벗어난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 반대의 극한까지 가는 것이죠. 성경에서는 충만,영광된 승리의 표현을 씁니다.

 

l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 이러한 것들이 지시하는, 우리 기독교 신앙이 목표를 가지고 있고, 그것이 예수안에서 어디까지 가야되는 것인지, 약속속에서 믿음에 인내와 순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l  이러한 것들은 우리 삶속에서 보는 이세상에서 정의를 구현하는 일, 봉사하는일, 옳은 일을 하는 것과 훨씬 차원이 다릅니다. 세상의 어떤 제도와 법을 만드는 것도 신자의 책임과 사회의 봉사하는 일이지만,

 

l  성경이 우리에게 지시하는 우리의 자유는 예수안에서 얻은 은혜가 가지는 사랑의 능력을 각 개인이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사랑의 영향력을 보이라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허락된 은혜의 힘입은 사랑의 실천을 하라는 것입니다.

 

l  그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느냐 하는지는 성경은 묻지 않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순종과 헌신이 어느만큼 효가가 있는지는 예수님의 생애속에서도 당대에는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정말 그냥 죽어버리셨습니다.

 

l  그러니까 교회나 개인의 신앙속에서 우리가 당황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믿음의 순종이 보상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우리에게 짐이 될때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l  우리는 결과로 우리의 일을 확인할 하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에 내가 가진 믿음과 사랑의 순수함이 결과될 때에 만 하나님께 열납되어 있고, 내가 제대로 기능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본성에 젖어있습니다.

 

l  그러나 사도바울의 생애나 예수님의 성육신이 그랬던 것 처럼, 사도바울의 생애만 볼지라도 그가 쓴 모든 신약성경들이 서신서들은 그의 수고들이 다 보이는 결과를 사실 다 가지지 못했다는 증거일 수 있습니다.

 

l  그는 그가 세운 교회들에게 생긴 문제들과 갈라디아서에 보는 바와 같이 가장 근본적인 복음의 핵심에서 벗어나는 일로 인하여 걱정하며, 때론 분노하며 편지를 써야 했던 사람입니다.

 

l  2:8-10

 

l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고 우리가 만든 구원이 아니고 하나님이 허락한 구원을 받았다.입니다. 행위에서 난 것이아니니 하나님의 선물이라.

 

l  예수로 말미암하 허락하신 구원, 하나님의 당신이 근거가 되시고, 이유가되시고,수단과 방법이 되시고, 능력이 되시고,목적이 되시는 구원 이렇게 얘기하는 것입니다.

 

l  갈라디아서 5장 나오는 말씀으로는 자유를 위하여 구원을 받았다라는 말씀은 우리를 우리의 욕심과 능력과 한계 속에 묶지마라 이런한 이야기가 포함됩니다

 

l  3:12-14

 

l  이러한 자유는 결국 사랑으로 끌고 갑니다. 12절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이것을 조목으로 지키려면 대단히 어렵습니다. 우리는 어디로 부름받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l  사랑은 상대방을 위한 것입니다. 기독교신앙에서 너희가 얻는 자유를 이런 하나님의 성품을 닮고, 그 뜻을 이루는 에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허락된 구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그아들을 보내신 사랑이 뿌리가 되어 자라난 열매로 보이라 라는데로 자기를 점검해야 되는 것입니다.

 

l  기독교의 신앙,믿음은 궁극적으로 사랑에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그의 믿음이 아무리 클지라도 그의 믿음이 사랑에 굴복되어 있지 않으면, 그것은 기독교 신앙이 말하는 믿음이 아니라 라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l  우리는 강요와 자랑을 벗어나 이웃을 위하여 스스로를 희생하는 자유로운 희생으로,자유로운 섬김으로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l  기독교 신앙이라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가, 예수안에서 허락한 구원이 얼마나 신비로운지를 교회를 보면 알수 있습니다.

 

l  많은 성도들이 교회에 나오지만 교회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어느시대나 그렇습니다. 교회는 뭔가 다 마음에 안드는 것이 있습니다. 마음에 안드는 것이 제도나, 예식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함께 나온 교인들이 더욱 그러합니다.

 

l  이러한 다양한 사람들은 한 가지 이유로 모입니다.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의 몸으로 부르심을 받습니다. 가족은 용서를 권리로 요구할 수 있습니다.

 

l  교회는 그런 가족과 같습니다. 예수로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둘째로 이웃사랑이 온 인류의 강령인 것 처럼, 교회에서는 섬기여야 합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l  사랑은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사랑입니다. 그것이 예수로 부름을 받는 것입니다. 그곳이 교회입니다. 그것이 교회의 신비입니다.

 

l  그곳에서 그런 교회의 신비를 느끼시는 성도들이 되기길 바랍니다.

 

 

 

갈라디아서 5:16-23 

                                          

사망으로부터 자유 그리고 순종

 

l  육체의 욕심과 성령의 이끄심에 대한 대조, 성경에서 육체를 따른다는 것은 자연인이라는 뜻입니다. 자연인이란 하나님을 통치자로 모시지 않고 자기가 자기의 주인으로 아는 자들을 육체라고 합니다.

 

l  문제는 자유인이라는 것이 다 죄인으로 태어납니다. 죄인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하나님 없이 태어납니다. 하나님없이 태어나기 때문에 죄아래 있습니다. 죄아래 있다는 것은 하나님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없으면 사망이 왕노릇합니다.

 

l  성령을 따르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동시에 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성령을 따르는 것과 육체를 따르는 것이 동시에 일어날 수 없는 이유입니다.

 

l  우리가 율법아래 붙잡혀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수 있느냐 하면 우리가 우리의 주인일 때는 죄의 종입니다. 죄의 종이라는 것은 하나님 없슴, 하나님 거부하는 성향이 죄성입니다. 자신을 자신이 책임질 때 하나님의 은혜의 통치 밖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은 사망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l  19절 육체를 따르게 되면 여기 나열된 것들은 가치가 없는, 결과가 없는 일들입니다. 부족하고 근본적으로 내용이 충실할 수 없습니다.

 

l  에베소서 4:17-19 

 

l  자연인의 한계를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자기가 무지하다는 것을 알지도 못합니다. 하나님을 떠나있으면 죽은자이고 죽은자는 아무 감각이 없습니다. 자신을 방탕에 방임합니다. 그가 가진 가장 중요한 소원도 더러운 것입니다.

 

l  윤리 도덕적인 이야기가 아니고, 신적차원과 피조물 차원의 다름을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영광과 비교할 때 인간이 만들는 것은 그렇습니다.

 

l  로마서 6:17-23  사망으로부터 자유

 

l  하나님이 없으면 거기는 거룩과 영광이 없다 입니다. 거룩과 영광이라는 것은 훨씬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통치와 은혜라는 하나님의 나라의 복주심안에 속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입니다.

 

l  하나님이 통치자일 때 인간은 비로소 인간된 가장 큰 특권을 누릴수있다. 그것이 예수안에서 구원입니다. 하나님이 창조주이시고 그분이 거룩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l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를 모르고 태어납니다. 우리에게는 자연인의 본성이 되었습니다. 성경적으로 그것이 죄입니다. 죄성을 타고 납니다. 하나님을 거부하고 외면하고 무지합니다. 그리고 그 무지한 것을 모릅니다. 감각없는자로 태어납니다.

 

l  우리가 예수안에 있지 않으면 하나님이 통치자이신 그 수혜자가 될 수 없습니다.

 

l  로마서 8:18-21 썩어짐의 종노릇한데서 영광의 자유로 불러낸 것이 구원

 

l  구원이란 하나님의 통치의 수혜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어, 자유를 얻었으면, 순종하는데 사용해야 하는데 써야 합니다. 순종은 누리는 것입니다.하나님의 통치를 누리는 것입니다.

 

l  우리의 마음에는 그 단어가 또다른 선택이 되어 또다른 율법이 됩니다. 내 통치 내 책임으로 신앙의 자유를 끌어와 다시 자신을 얽어매게 된다는 것입니다.

 

l  순종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에 나를 편안하게 누려야 합니다.그러나 편안하게가 않됩니다. 본성이 그렇기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경험이 필요하고, 자기가 알고 있고, 믿고 있다는 것을 적용 해보고 훈련해 보셔야 합니다.

 

l  그렇게 해야 하나님의 법칙에 대하여 익숙해지면,그 가치를 알게됩니다.그래서 맨처음에 해야하는 것이 순종해야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22-26 

 

자유로운 자의 성령의 열매 

l  육체를 따르는 일과 성령을 따르는 일에 대조를 보고있습니다. 육체의 속했다는 것은 자기가 자기의 주인이 되어 다스리는 세계,내용 그 결과를 말하고, 성령의 열매라는 것은 성령께서 다스리는 예수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이 하나님의 통치아래있는 그 통치가 가지는 목표 내용 결실들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l  하나님의 통치아래 우리를 맡겼을 때 하나님이 우리를 당신의 통치로 불렀을 때만이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결과와 목표로 살 수 있다 이것이 자유의 길이다 입니다.

 

l  자유란 자유로운 선택권만 관심을 가지기 때문에 내가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자유다 라고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를 주인으로 모시지 않고, 하나님께 그 통치를 맡기는 것이 예수안에 허락된 자유이다 그러는 것입니다.

 

l  자유라는 것은 그래서 성경적 차원에서 근거해야 합니다. 6:6-11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가장 중요한 차이는 죄아래 그냥 있느냐 하는 차이입니다. 예수안에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죄가 다스리는 나라 하나님 없이 자기가 주인이 되어 다스리는 나라로부터 예수로 말미암아 얻어진 구원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통치에 은혜 받는 자리로 나아오는 것과의 대조입니다.

 

l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아래 부름을 받아 하나님의 통치가 가지는 은혜로움 복됨의 자유를 가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아래 있을 때는 내가 나의 주인이였을 때는 생명을 만들어 낼 수 없고, 가치있는 것을 만들 수 없는 피조물의 한계로 인하여, 우리는 죄로 표현되는 하나님 없는 영역, 하나님 없는 나라에서 결국 생명을 만들수도 유지할 수도 충만과 완성으로 갈수 없는 사망으로 갈수 밖에 없는자 입니다.

 

l  자유는 한계로 부터의 자유, 멸망과 부패와 왜곡과 사망으로 부터의 자유 그리고 하나님의 허락하시는 영광과 은혜와 복된것의 충만과 승리로의 자유

 

l  하나님께서 이 자유로 부르신 것을 안다면, 6:12-14 드리라는 것은 어떤 헌신이나 책임이나 이런 식의 초점이 가진 표현이 아니라, 성령의 열매라는 것은 드림의 어떤 고급한 표현입니다.

 

l  우리가 기독교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의 알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신앙을 지켜야 하는 것은 이러한 자유로의 부름이며, 신자만이 가지는 특권입니다.

 

l  8:18-21 피조물이 바라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예수를 믿어 신자의 길을 가는 것들은 영광되는 것입니다.

 

l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훈련시키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시원한 답을 주시지 않습니다. 나보고 그 실력,하나님이 자녀라는 이름에 걸맞는 사람이 되라고 계속 반복된 실패를 혹은 시행착오를 또는 답답함과 거의 절망스러운 경험을 계속하게 하십니다.

 

l  한 두번 실패로 쉽게 고쳐지는 그런 정도가 아닌 더욱 깊고 놀라운 하나님의 자녀의 자리를 요구하십니다. 베드로서의 말씀처럼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리입니다.

 

l  5:1-2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성령의 멸매로 소개된 내용들 그 열매의 내용으로 우리를 부르시고, 하나님의 그것을 허락하시고 주시고 결실하시고 충만케하시는 분이시고 우리를 그런 내용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l  구원은 하나님에게 쓸모있도록 부르심을 받지 않습니다. 수단이나 소용으로 부르시지 않고 우리를 목적하십니다. 우리를 다만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이런 성령의 열매에서 소개하는 것처럼 사랑과 희락 온유와 절제입니다. 자비와 양선 그리고 오래참음 이런 것입니다. 참 어렵습니다. 우리본성에 없는 것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어렵습니다

 

l  그러나 하면 정말 승리가 무엇인지를 아시게 됩니다.

 

l  에베소서 1:3-6 구원 3절신령한 복주려는 것 4절 거룩한 것 5절예수 그리스도 모든 것이 예수그리스도와 십자가는 우리를 창조하셨다고하고, 당신의 형상대로 지었다하고, 우리를 사랑하여 당신의 자녀로 불러 하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명백하고 완전한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

 

l  5:24절 우리는 종종 하나님이 의로운 분이시다는 것에 치우칩니다. 옳다는 것이 제일 앞에 있으면 안됩니다. 제일 앞에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롬 3장에서 나오듯이 그 아들을 보내어 우리를 구원하는 의입니다. 사랑하는 의입니다. 옳고 그름만을 따지는 것은 이미 율법입니다.

 

l  여러분이 가장 옳으실 때, 하나님과 신앙에 불이 붙었을 때, 조심하셔야 합니다. 사람이 가장 분별을 잃을 때가 옳았을 때입니다. 여러분이 은혜를 입은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요.

 

l  하나님이 예수안에서 부르신 부름이 갖는 하나님의 대접, 존중 자유로운 부름 강요하지 않으며, 공포로 다스리지 않는 하나님의 따뜻함과 기다리심 여기에는 하나님의 온유와 절제의 하나님의 통치 이걸 우리가 보는 거죠 그럼 우리가 들어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빛이고 소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