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tation on Bible/Galatians(갈라디아서)

갈라디아서 - 박영선 - 제6장

Four Seasons Daddy 2022. 6. 8. 11:48

 

 


갈라디아서 6:1-6  



사랑은 기다림 

 우리은 갈라디아서에서 복음의 진정한 본질이 은혜와 사랑이라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어느시대나 기독교 신앙의 최대의 적은 율법주의 입니다. 

 율법주의라는 것은 공로로 보상을 받으려는 생각을 가르칩니다. 그렇게 되면 기독교가 전하려는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이 현저하게 약화되고, 율법주의로 가면 결국 노력한 만큼 결과에 이르는, 가장 중요한 신앙의 내용이 깨닫는 것, 노력하는 것으로 제한되고 맙니다.

 노력하고 깨닫는 것이 잘못이지는 않지만, 인간이 자신의 이해와 능력의 범주안에 기독교 신앙을 제한해 버리기 때문에, 창조주 되시고, 섭리자 되시며, 그 아들을 보내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약속하시는, 그리고 하나님을 본받게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드러낼 수는 없고, 그의 통치와 약속들을 배제시키게 됩니다.

 그래서 율법주의라는 것은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늘 경계해야 하는 것 입니다. 다만 자랑과 교만 정죄 갖은 것들이 문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이런 중요한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 오늘 다루는 6장에서 본문의 말씀 처럼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으라 라고 얘기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되는 원리나 내용이나 목표가 잘잘못의 문제보다 더욱 크다 입니다.

 누가 범죄하거든 ‘너 틀렸다 너 잘못했다’라고 하는 것이 기독교신앙에서의 중요한 본질이 아니라 그 잘못하는 사람을 고쳐내는 것인데, 그 고쳐낸다는 것이 교정하거나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짐을 나누어 짐으로서 그를 교정하라는 것입니다.

짐을 나누어 진다는 것은 당사자가 회복될 때까지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당사자가 돌와오고, 고치고 본인이 하나님의 은혜가운데서 치유되도록 참고 견디라는 것입니다.

 이 문제의 중요성은 기독교신앙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함께 실천하는 교회공동체 속에서나, 또는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서 어떤 사람의 잘잘못을, 그 사람을 빨리 교정시켜 내 마음에 들게하여 짐을 벗으려는 그 조급함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 우리가 다른 사람의 잘못에 대하여 또는 실수에 대하여 우리가 참아내지 못하는 것은 짐이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에 안드는 것을 참고 보고있어야 하는 것은 큰 짐이죠, 그래서 빨리고쳐서, 안되면 잡초를 뽑듣이 뽑아버리서 우리 마음에, 갈등을 해소시키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 어렵운일입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어렵습니다. 우리가 옆에서 그 어려움과 마음에 안드는 것을 우리가 사랑으로 희생으로 섬김으로 우리가 짐을 나누어 지고 있으면 그사람이 회복된다는 것입니다.

 그사람이 언제 어떻게 회복된다는 것은 하나님 손에 맡기셔야 합니다. 5절 말씀처럼 각기 자기 짐을 질것이니라. 입니다. 

 공동체 내에서 함께 신앙생활하는 믿음의 식구들의 짐을 여러분이 나누어 지셔야 하고, 여러분 삶에 현장에서 만나야 하는 각종 사건과 상대해야 하는 사람들의 어려움들을 여러분 감당해야 합니다. 

 우리는 너무 쉽게 신앙이라는 이름도 권력이기를 원한다라고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다 내 마음에 들기를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조급히 요구합니다. 그래야 내가 편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 우리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의 신앙생활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늘 큰 짐이죠, 신앙인들이 늘 쓰는 표현대로 하면 환란과 핍박이죠.그래서 그 짐을 지는 것이 6장5절에서 얘기하는 것입니다.

 그것이 세상사람들을 고쳐내는 우리의 중요한 신자의 책임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급합니다. 그 짐을 지기가 싫으니까, 너무 무거우니까, 시간을 단축하려 합니다. 

 내가 더 지극정성으로 빌어 하나님이 빨리 결과를 보여주시기를 원하거나, 상대방이 바뀌기를 바라거나,아니면 내 앞에서 빨리 없어지기를 바라는 그런 신앙이 되곤 합니다. 이걸 참아야합니다.

 천국은 섬기는 나라라고 합니다. 내가 편한 나라가 아니라고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이라는 것은 믿음의 공동체의 우리의 실천의 내용은 서로 견디고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 엡 2:20-22  

 우리가 그 사람을 위해서 만 참고 견디고 짐을 지는 것이 아니라 그 일로 인하여 우리에게 유익이 있다는 것입니다. 유익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값주고 산 영혼들을 완성시키기 위하여 그런식으로 성도들을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 우리는 어려움을 겪거나, 좌절을 겪는 것들은 뭔가 신앙상의 하자가 있어서, 문제가 있고, 부족함이 있어서 생기는 것이라는 그런 식의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완전주의적이기 때문에 우리가 가진 헌신이나 노력의 부족으로 참된결과를 얻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 그런데 참된결과가 무엇이냐 할 때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아니라 문제를 지고가는 실력이라고 가르치는 샘이죠, 짐을 지고가는 실력, 어려운 요구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훈련 속에서 예수님의 성육신과 그 십자가를 지신 능력을 배웁니다. 

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십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승리이고 성육신으로 이루신 하나님의 의며, 모든 성도들에게 요구하는 1-2절 ‘너희가 서로 짐을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입니다.

 한국교회은 이 문제에 약합니다. 능력과 완전한 방법에 치중하고 있고, 소원하는 결과가 이루어지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참다운 신앙의 하나의 증표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기도했더니 되더라 를 

 오늘은 이 말씀을 통해서 기도했더니 참아지더라, 짐을 지게 되더라, 기다리게 되더라’그 내용을 삼으셔야 합니다. 기다리셔야 합니다. 주님오실때 까지 구원의 문이 열려있고, 하나님의 기적이 열려있습니다.  

 문을 닫으면 안됩니다. 우리가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기도로, 헌신과 열심으로 그 문을 닫고 우리의 마음에 들기를 바라기 때문에 신앙인들의 그 내용이 좋은 것에 비교하여 우리는 너무 조급합니다. 그리고 거칩니다. 매우 

 고린도 전서 13장 사랑의 정의,본질

 우리는 사랑을 큰 명분으로 횡포로 쓰입니다. 당신을 사랑하니까 이 말을 합니다, 그 말 안하셔야 합니다. 기다리셔야 합니다.

 하나님이 사랑하시듯이 대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표정관리 안되실때에는 도망다니 싶시요. 그러면 실력이 붙습니다. 말이 쑥 나와 버립니다. 나니까 하는 말인데, 그말을 하지 마십시요

 사랑은 너그럽게 봐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고치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믿고, 바라고, 견디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은혜와 기적으로 일하심을 믿는 것입니다.그래서 여러분은 기다리셔야 합니다.

 사랑으로 기다리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기다리셔야 합니다.

 엡 4:13 – 16  앞선자도 자라게 합니다.

 예수안에서 함께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과 약속과 명령속에 있는 중요한 본질, 짐을 나누어지라, 서로 사랑하여 함께 자라가라 하는 방법이야 말로 세상에서는 없는 방법입니다.

 교회는 신비한 곳입니다. 세상처럼 멋진 명분있는 목표를 세우고 사업을 행하므로써, 교인들이 신앙상의 최고의 유익을 얻는 그런 곳이 아니라, 그저 허덕이고 늘 갈등구조속에 있는 그 안에서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그의 아들들을 완성시켜 나가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 우리는 성결해야 되며, 진실되어야 하며,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켜야 할 최선과 기대와 우리가 지켜야 할 책임들이 다 예수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에 의존되어 있어야 합니다.

 그것이 기다림입니다. 그것을 모르는 것은 3절 스스로 속이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6-10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충만, 성령의열매

 

l  갈라디아서 전체에서 다루고 있는 진정한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사랑이라 이렇게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라는 것은 육체를 자랑하는 율법주의는 너무나 분명하고. 성령을 쫒아 사랑을 행해야 하는 진정한 기독교 신앙은 그 증거와 결과가 분명치 않아 보인다라는 말입니다.

 

l  지금은 심는 때이고,우리가 무엇을 심었는가, 확실하게 들어 나는 것은 성경적으로는 종말론적인 심판으로 미루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정당히 성령을 좆아 성령의 열매을 맺고 우리가 생명으로가고 있고, 믿음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 분명하게 들어나는 것은 마지막때로 미루어져 있습니다.

 

l  신앙생활의 증거,분명함들은 우리의 본성이나 세상의 잣대로 보면 분명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제대로 가르치는, 잘가르치는 교사들을 귀히 여겨라 그리고 정당한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을 격려하라 라고 합니다.

 

l  우리가 기독교 신앙을 율법주의 적으로 지키게 되면 말하자면 죄를 짓지않았다, 신앙생활을 어떻게 잘했다라고 보이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하는 것들은 사실은 아직도 진정한 신앙의 내용에 이르지 못한것이다 라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l  왜냐하면 우리 잘아는데로 성령의 열매의 가장 큰 특징인 사랑하는 일 짐을 서로 지어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일은 사실 아무리해도 표가 나지 않습니다.

 

l  오래참고,성내지 않고,자기의 유익을 구하지않고,무례이 행치않고, 그런것들은 보이는 표가 나지 않습니다. 그게 무슨 신앙행위 같아 보이겠습니까,좀더 분명해야죠

 

l  국가를 위한 기도, 금식기도 이런 것들은 얼마나 분명합니까, 그러나 사랑해서 참고 기다리고 용서하고 웃고 넘어가고 이런 것들은 당시에 안보이는 일입니까.

 

l  그것 때문에 사도바울은 이 갈라디아서 그렇게 맹공을 가했던, 거짓가르침,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기독교신앙의 본질에서 동떨어진 자기의 자랑을 삼으며 보이는 보상을 목표로 하는 것과 진정한 기독교신앙과를 구별하면서 그렇게 맹공을 가했습니다.

 

l  그러나 이렇게 아닌 것은 분명한데, 기독교신앙이라는 것이 사실 얼마나 물을 흘려보내는 것 같고, 마음을 열어 울타리와 대문은 없앤 것 같은지 거기 무엇을 가두고 보이게 모으고 쌓은 것 같은 그런 표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l  그래서 이 오늘 본문이 있습니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하라. 우리중에 정당한 신앙의 본을 보이는 자들이야 말로 모두 정당한 말씀의 교사들입니다.

 

l  정당한 신앙을 가지는 것 어렵고, 정당한 신앙을 실천하는 것 어렵습니다. 의지적인 차원에서 어려운 것이 아니고, 이해는 하지만 실천이 어려운 이유는 보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l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들이 율법주의와 진정한복음과 다른 것이 어떻게 다르냐 하면, 이웃과 싸우느냐 이웃과 끌어 안느냐 입니다.

 

l  7절 이 반복된 가르침 ,사랑은 상대방과 나를 구별하여 내가 누구냐가 분명해 지는 것이 아니라, 나는 마치 상대방의 종인 것 같이, 빚진자 같이 섬겨야되고,져야하고 기다려야 되고 쩔쩔매야 하지 않습니까.

 

l  믿지 않은 자를 대할 때, 우리는 먼저 은혜를 입은 자에 불과하고 저들도 장차 은혜를 입을자로 생각하셔야 합니다.

 

l  3:9 -11

 

l  예수 믿는 자들의 정체성은 세상사람들의 잣대로 구별할수 있는 것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종,민족,사회적지위,문화 그무엇으로도 신자들을 확인하는 내용으로 삼을 수 없다.입니다.

 

l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모든 것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로 전부입니다. 그리스도로 충분하고 남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기독교인된 자기 확인입니다. 그 정체성의 확인입니다.

 

l  고전 2:1-5

 

l  고린도 교회 복음전도 시 사도바울이 가장 조심하였다는 것이 바로 구원은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보내어 성립시킨 것입니다. 예수안에서 예수로만  성립된 것입니다. 거기에 우리의 이해나,동의나,소원이나 노력이라는 여지가 없습니다.

 

l  우리가 예수를 자랑한다는 것은  우리가 은혜를 입은 자의 고백이며,우리가 사람앞에 우월감을 가지고 설수 없다는 고백입니다.

 

l  우리는 사도바울이 가졌던 약하며,두려워하며,떨었다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우리는 상대방이 걸린 문턱을 두려워, 상대방이 미끄러진 그 자리를 늘 인정하면서 같은 믿음의 식구를 만나야 합니다.

 

l  상대방이 진 짐이 모두 내 짐인 것 같이,상대방이 안타까움이 모두 나의 안타까움인 것 같이 그렇게 같이 울고 웃어야 합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이 가르치는 진정한 신앙생활입니다.

 

l  신앙생활은 우리가 생내적으로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안에서 구원함을 얻고,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새로운 성품을 부여받으며, 그 훈련과정에 노력하고 애쓰고 인내하고 순종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늘 말씀으로 자신을 점검하고 사랑하고 있는가 입니다.

 

l  우리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성령을 따르는 것입니다. 성경이하라는대로 합니다.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 이웃과 나를 차별하지 않는 것입니다.

 

l  적극적으로 신앙의 순종을 이루어 여러분의 신앙을 확인하셔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으며, 그 말씀에 순종하며, 인내하며, 충성하며, 그리하여 성령으로 심어 성령으로 거두는 날을 고대해야 합니다.

 

l  신앙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믿음과 인내의 싸움입니다.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바뀌며 충만해지며 성령의열매로 확인되어 집니다.

 

 

 

 

갈라디아서 6:11-14

 

 믿음의 승리

 

l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를 마무리 하면서 그 정리 골자가 무엇이냐하면 십자가 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로 인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이세상과 다른 나라,통치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l  기독교인으로 산다는 것은 예수그리스도를 주로 모시고 그에게 복종하며 산다는 것이다. 순종을 요구받고 있는 신앙생활이 세상적가치,이해를 벗어난다 기억해라 입니다.

 

l  사도바울이 14절에 자랑으로 끌고 나오는 이유는 그가 믿은 예수는 죽은영혼을 살리는 하나님의 부활생명이라는 차원에서 자랑하는 것입니다.

 

l  이 자랑은 세상적인 공감을 받아내는 데 유효하다는 자랑 아닙니다.

 

l  그래서 우리의 싸움은 전혀다른 통치 누가 주인이냐 누구의 명령을 따를 것이냐 하는 문제로 귀결됩니다.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해야하는 다른 것으로 대채할 수 없는 것이다 입니다.

 

l  우리가 참으로 십자가로 말미암아 세상에서는 우리가 진정으로 소원하는 영혼의 문제를 답할 수 없고, 예수그리스도의 그 부르심 앞에 내가 답할 수 밖에 없다, 책임을 져야한다 라는 문제로 늘 어렵고 부담스럽다면 정상적인 길을 가고 있습니다.

 

l  신앙은 확신과 희열 가운데 가는 싸움이 아닙니다. 그럼 믿음은 쓸모가 없습니다. 십자가가 유보되거나, 십자가가 타협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를 봅며. 그안에 함께 붙잡혀진 우리 자신을 매일 봅니다. 그건 고통스럽고,수치스럽고,오해받는 길입니다.

 

l  이 세상에서 신앙생활은 그렇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그것을 통해서만 십자가로만 우리가 부활생명을 얻는다는 사실을 인하여 우리가 그 고통속에서 진정한 하나님의 통치와 그 아들을 보내신 사랑을 만납니다. 십자가를 외면하고 다른 것으로 하나님이 누구신가을 알수있는 다른 길은 없습니다.

 

l  예수의 성육신은 그 고통과 고난은 예수께서 나를 붙잡아 끌어안아 십자가에 나를 못박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려내셨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인생 내 고통과 긴장과 공포 불안 속 통과하여 나를 만들고 계시다고 이해해야 합니다

 

l  고후 12:7-9

 

l  십자가로 내가 세상과 분리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통치의 역설 섬김 너의 고난이 어려운것도 지는 것도 아니다, 그것을 배우라 입니다.

 

l  고후 1:3-6

 

l  여러분의 고난받는 것은 예수를 믿는 것은 세상적 보상을 위하여 가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기 위하여 여러분들에게 고난의 길을 걷게 하시며, 그 보상이 세상적 가치에 있지 않다는 것을 우리가 우리의 인생과 존재 속에서 구현하라고 명령하신다 이렇게 이해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14-18 

모든 것 되신 예수그리스도

 

l  갈라디아에 보내는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결국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세상에 속한것과 어떻게 다른 것이냐 하는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교회안에들어온 예수안에 들어온 은혜와 복음을 회손시키는 유혹과 시험을 답하고 있습니다.                                                                                                                                                                                         

 

l  그 다름은 어느것이 좋고 나쁜 것이 아니라 다른 것입니다. 세상은 죄악된 원리 가치 통치속에 놓이는 것이고,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에 놓이는 것입니다.

 

l  14절 십자가를 기준으로 세상과 하나님의 나라는 완벽하게 분리 됩니다.

 

l  하나님 나라의 소속되어 하나님 통치아래 들어오는 것, 그리로 구원함을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한 복음의 핵심이고, 그 믿음을 지키는 것과 하나님의 이스라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백성들 이라는 평행표현으로 거듭 강조되고 있습니다.

 

l  고후 5:14-17

 

l  죽음이란 원래 소속되어 있는 곳에서부터 소멸되는 것입니다.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로운 피조물이라.

 

l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근거하여 기독교신앙이라는 것이 허락되고 우리에게 요구되고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신앙의 발전을 위하여 세상의 가치들과 욕심들을 찾아갈것이  아니라 15절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하려 함이라 하는 말씀에 자신을 묶어야 합니다.

 

l  세상에서 자랑하는 것들로 자랑과 확인을 예수안에서 내용으로 확보하는 일에 시험받지 마라 입니다.

 

l  3:9-11

 

l  예수안에서 허락된 우리의 신분은 세상에서 가졌던 우월의 개념은 그곳에서 허락되지 않습니다.

 

l  예수로 말미암고 인도받고 채워지는 것으로 가야합니다.그리스도를 닮는것, 성령의 열매을 맺는다는 것,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것으로 채워가야 합니다.

 

l  2:6-10

예수안에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이 세상의 죄악된 통치를 벗어나, 예수가 근거일 뿐아니라, 내용이고 목적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l  4:13-16

 

l  약속을 성취하시는 하나님,

 

l  오해와 억울함을 감당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의 의지와 능력위에 하나님나라가 세우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 위에 세워집니다.

 

l  고통이 당연하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의 죽음위에 서있습니다. 우리의 신자된 증거는 예수

 

l  사도바울의 예수의 흔적은 무엇일까요. 내가 아는 하나님의 나라의 증거 나 안다, 너희도 알아야 한다, 그거 지켜야 된다 그것이 복된것이다.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는 참으로 놀랍고 감사하고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것이다라고 갈라디아서를 마감하고 있습니다.

 

l  그것은 성경에 기록됨으로 갈라디아교회 뿐만 아니라 오고 오는 모든 시대의 모든 형편속에 있는 교회와 믿음의 식구들을 위하여 남긴 신앙의 고백이며 지적이며 위로이며 경고입니다.

 

l  여러분의 신앙도 이 말씀을 근거로하여 예수로 시작하고 예수로 말미암는 예수안에 모든 것이 있고 예수 밖에는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여러분의 신앙이요,자랑이요,기도요,간구요,책임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