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 11:1 ~ 15)
진짜싸움
교회안에 분쟁이 있다는 것은 난감한 문제이고, 그리고 서로 잘하자고 열심을 부려서 생기는 문제라서 그 해결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진심과 열정을 가졌는데, 비난을 받거나 책망을 들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싫습니다.
이 일은 사도바울이 가짜였다고 이 불이 옮겨 붙어서 사도바울이 자신을 변호해야 되었고 그 변호의 내용속에는 기독교 신앙이 무엇이며 교회가 어떠 해야 하는 가 하는 것이 녹아나옵니다.
고린도교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거짓사도라 바울에 의해 지칭되어 있고 심하게는 13절에 나온 것 처럼 어느 쪽이 진짜이고 어느 쪽이 가짜이다는 것을 분간하는게 만만치 않은 것을 사도바울이 보이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이렇게 대담하게 저들은 사단의 일꾼이요 고린도전서4장에서는 너희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일 것을 알아야 한다. 자신은 그리스도일꾼, 상대방은 사단의 사자 이렇게 둘을 나누는 것은
가장 크게 기독교신앙과 교회의 존재가 예수그리스도로만 근거한다는 것을 뚜렷하게 밝히는 것입니다. 한쪽은 그리스도를 근거하고 한쪽은 사단에 의한 훼방 그리고 불란인데 그들이 자기네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라고 가장을 한다는 거죠 그것을 어떻게 분간 해야 되는냐 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이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느냐 하는 문제가 되는 겁니다.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 어떻게 이해되고, 어떻게 오해 될 수 있는가를 알야야죠
예수 그리스도는 권능과 기적의 주인인 정도를 넘어서서 그 권능과 기적이 십자가로 나타났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당신의 죽음으로 당신이 오셔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하나도 없고, 죽음으로 생애을 마치신다는데 우리가 아는 영광 우리가 아는 보상과 다른 예수그리스도께 복종케 한다. 예수그리스도로만 근거되어 있다라는 말을 쓸 때 확인해야 되는 핵심 요소들입니다.
그는 침묵하십니다. 분노가 아닙니다. 원망하지 않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짐을 나눌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그 건 당신의 짐이 신 것 입니다.
우리의 원망은 다 우리가 한 일에 대하여 세상적 보상이 없다는 것 때문에 싸움이 나옵니다. 지금 고린도 교회에서 있었던 분파나 거짓 사도라고 꾸중을 받는 이 사람들도 왜 사도 바울에게 지적을 받고 있냐면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그런 세상에서 말하는 어떤 엘리트를 만들거나 승자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으로 목적되지 않았다. 그것은 나누어주고 상대를 위하여 죽는 길을 가는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는 제일 큰 일로 영광으로 여기고 그것을 주기 위하여 신이 오셔서 우리 대신 죽었다
세상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하나님의 능력만 받고 싶어 합니다. 성경은 그렇게 얘기 안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뭘 목적하고 있는가, 뭘 만들려고 하는가에서 세상의 논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져라,죽어라’ 그렇게 얘기합니다.
성령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절대 받아 지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하루 아침에 하시는 일은 우리 부흥시대에 일어 났습니다. 하루아침에 하자 진도는 빠른데 그 다음 쌓는 일은 문제가 있다.
지금 맞이 한 부흥 후의 시대입니다. 이것을 하루에 하루만큼 일년에 일년 만큼, 10년에 10년 만큼 조금씩 쌓아 나가는 것이 더 많이 쌓이고 더 크게 쌓이고 더 놀랍게 쌓인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시대에 허락한 큰 복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정말신자인가, 하나님이 나에게 구원을 주셨다는 것을 내가 알아 먹고 있는가, 내 인생의 여러 어려움들에 대해서 하나님께 호소할 수 있고 간구할 수 있지만, 내가 바라는 답과 하나님의 목적하는 답이 다르다는 것을 어떻게 수긍하고 나갈 것이냐,여기에 진짜 싸움이죠
자주 넘어지고 자주 타협하지요 하나님은 그것 인정하십니다. 한번 더하자 이것 너가 다 할때까지는 안된다. 너가 오래 사는 이유는 너가 아직도 초급반을 수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완성하기 전에는 재림하지 않을 겁니다. 고통의 시간이 계속 연장 될 것입니다. 그것을 생각하셔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얼마나 많은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와서 해결을 요청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문제들을 해결 받았고 그러나 잊을 수 밖에 없게 됬습니다. 신앙은 자라지 않고 기적과 행운이 있기를 바라는 신앙인이 되지 않았습니까
예수께서 시험을 받은 것을 보십시요 공생애 시작 전에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시고, 하나님과 기도 깊은 준비를 하시고 사단의 시험을 받습니다. 첫번째 시험 존재의 문제가 아니라 정체성과 가치의 문제가 우선하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무엇으로 목적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둘째 시험 하나님의 진정성을 훼손하지 말라.
셋째시험 하나님은 이 세상 영원과 영생과 영광에 관한 문제이다.
우리가 그렇습니다. 오고 오는세대에 교회의 진정한 가치가 신앙고백과 이 정신이 이어져 오고 있느냐 하는 것이죠. 다른 사소한 것으로 싸우게 됩니다. 우리가 믿음이 연약하거나, 방법론에서 다른 점에서 기다리고 타협할 수 있지만
이 방향 이 내용 이 원칙 만은 타협할 수 없는 것입니다. 뭐가 차이가 있죠 너 자신이 희생되고 뭍쳐지는 것을 감수할 수 있느냐 이렇게 묻습니다.
겸손을 떠는 것으로 보상을 받지 마시고, 아무도 몰라주는 것을 기뻐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 편에 서 있는 줄 모르고 있지 이 말이 하나님은 아실 거야 입니다.
우리가 다 하지 못한 것 주께서 채워 만드실 것이지 우리 마음에 흔쾌하고 만족스럽게 인생을 마칠 수는 없습니다. 근데 그것이 우리에게는 우리의 생명력 같이 하나님이 나에게 일하고 있는 증거가 되죠. 끝난게 없습니다. 죽은 자리까지 하나님이 우리를 쓰십니다. 증거로 삼으십니다.
엡 4:13
비난과 정죄는 뭘 더 할게 있는지 모르는 자들에게서 나오는 자기확인입니다. 그것이 잘 못이기 보다 더 나가야 할 무궁무진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영광된 생과 기회와 책임과 길이 있다를 아는 자만이 자기 인생을 즐길 수 있고, 예수를 믿는다는 말의 의미를 알게 되는 거죠
뭐든지 좋은 쪽으로 결과 된다 겁내지 마라, 비가오면 비 와서 크고 해가 나면 해가 나서 크고, 바람 불면 바람 불어서 큰다 걱정마라 생명과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했다. 겁내지 마라. 시간은 우리 편이다. 이 것이 우리가 가진 믿음인 것입니다
그런 넉넉함과 자신의 책임과 정체성을 확인하시고 누리시는 복된 인생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고후 11:16 ~ 33)
하나님의 부르심이 나의 영광
l 고린도 교회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거짓교사들이 들어왔는데 진리를 왜곡시키고 나쁜 짓을 하는 문제가 아니라 복음이 증언하는 가장 핵심적인 것 섬기는 나라, 진리와 생명과 영광의 나라를 권력의 나라로 바꿔버렸습니다.
l 권력입니다. 세상의 진리이죠, 교회에도 들어옵니다. 그래서 하나도 없어야 된다. 이렇게 간단하게 얘기하는 것 아닙니다. 잘 분간해 봐라 나 사도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l 자랑을 하려면 나 얼마든지 자랑할 수 있지만, 나의 자랑은 무엇이냐, 나 고생한 것이다. 생각을 해 봐라, 누가 이익을 얻지 않고 일하는 사람이 있겠느냐, 보상받지 않고 일하는 사람이 있겠느냐, 내가 무엇을 얻으려고 이 고생을 했겠냐
l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하나님의 베푸시는 은혜에 일꾼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 일을 다 했겠는가 생각해봐라. 내가 자랑할 것이 있다면 다메석에서 그 성주가 나를 잡으러 해서 광주리 타고 도망갔다. 이걸 자랑하겠다고 합니다.
l 너희는 세상에 권력구조와 권력적 가치관 속에 사로잡혀 있는데 모르겠느냐, 우리는 누가 공을 많이 세웠느냐, 누가 영광되냐, 누가 큰 자랑을 갖고 있느냐 하는 거지만, 이 나라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안에서는 섬기고 낮은 것이 더 많은 일을 한다고 우리는 알고 있다.
l 그래서 우리는 그런 빛나는 훈장을 받으려 하지 않고 숨겨지고 억울하고 알아보지 못하는 자리에서 우리는 이 일을 행하고 있고, 이걸 영광으로 안다 그렇게 얘기합니다.
l 고린도후서 11장의 사도바울의 고생 얘기가 빌립보서 3장에서는 이렇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l 빌 3:4 ~ 12
l 그리스도의 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준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의 주시는 바 그의 성품으로 유지되고 목적되고 채워지는 나라로 그런 다른 나라에 들어 간 것입니다.
l 그 의는 다른 말로 해서 자비이고,긍휼이고,사랑이고,기쁨이고 한 그런 것 들입니다. 그것이 자꾸 도덕화 되어서 맞고 틀리는 것이 되어 가장 크게 무서워 지죠. 신앙이 무서워 진다구요
l 왜 고린도 교회가 시험을 받았죠, 권력,권세, 폭력이 되고 말았죠. 윤리적으로 잘못된게 아니라, 세상에서는 그게 다니까, 교회의 그 예수 안에서 허락된 하나님 나라와 세상에서 죽음으로 권세잡은 세상나라와 대비되고 거기서 구원받아 이 나라에 왔다고 가르쳤는데 다시 거기에 붙잡혀 들어갔죠
l 권위와 권력은 다릅니다. 권위는 용서가 있고,따뜻하고,고맙고,권력은 공포를 불러 일으킵니다. 사도바울은 공포로 가지 않습니다. 내가 지금 걱정하는 것이 무엇이냐 너희 중에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고난을 받으면 내가 걱정하지 않느냐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l 교회 공동체는 기독교 시작일에 역사상 한번도 완벽한 교회가 세워진 적이 없었습니다. 언제나 초신자가 있으니까요 신앙이 앞 선자가 있고 뒤에 온자가 있고, 그것을 어떻게 싸매고 가느냐 가 우리의 실력이고 본무입니다.
l 시62편 다윗의 시
l 다윗은 잘한 것이 골리앗 죽이고, 사울왕 죽이지 않은 것 뿐이고 그 다음부터는 고생만 합니다. 밧세바사건이 있고, 압살롬이 반역하고, 아도니아가 반역을 합니다. 아들에게 쫏겨다니면서도 밧세바사건으로 평생 낳을 들고 다닐 수 없습니다.
l 이 모든 고난을 다윗은 감수합니다. 그의 장점은 절망하여 자폭하지 않습니다. 이 모든 고난을 통하여 그는 하나님께 자신의 운명을 맡기고 하나님께 자신의 처지를 그대로 민닟 그대로 고백하여 내어 놓습니다.
l 그것이 무엇이지요 고통과 절망이 없이는 믿음은 생겨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의 믿음이라는 것은 쉽게 감사와 연결이 되는데 감사란 내가 나홀로 자족할 수 있는 사람은 감사할 필요가 없습니다.
l 부모에게 감사하는 자는 인생이 혼자 다 책임을 질수 없고 홀로 자족 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자만이 부모에게 감사하죠. 감사하지 않는 자들은 자기의 현재 형편에서 더 이상 필요를 더 이상 깊이를 느끼지 않는 자입니다.
l 다윗은 자신의 모든 고난이 자신에게 일을 했다고 고백하는 것이죠 나는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수치였다. 하루를 사는 것이 평생을 사는 것 같았다.인간은 무슨 가치가 있고 인생은 무슨 보람이 있는 것인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l 그리하여 하나님 맞습니다. 인생은 자기 소원과 자기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은혜를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은혜를 구하는 것은 다만 문제해결, 형통, 마음편한 것 아니고 가치와 운명과 존재에 있어서 하나님께 간구하고 하나님의 일하심에 감사해야 하는 것 입니다.
l 하나님이 이렇게 도전하시고 흔들어 나를 깨우시는 것이 감사합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것이지요. 바울이 오늘 우리를 흔듭니다. 나에게 자랑하라면 코로나 무랄리스가 성에서 올라간 자가 아니라 성에서 도망간 사람이고 광주리 타고 도망간 뺑소니 다. 나는 보잘 것 없는 자다. 나보고 자랑하라고 하면 나는 그것을 자랑하겠다.
l 그것이 왜 자랑이 되죠 내가 잘나고 못난 것이 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수안에서 준 하나님의 부르심이 나를 영광되게 하기 때문에 세상 가치 속에서 나를 결정하지 않고, 너희가 들어 온 세상이 어떤 곳인지 너희가 알기를 원한다.
l 내가 너희 스승 아니냐 내가 너희 아비 아니냐 내게서 무엇을 보았느냐 내가 너희를 위하여 섬기고 너희를 위하여 죄지은 것 같이 양보한 것이 그게 잘못되어진거냐
l 나는 예수 안에서 보았다. 너희가 다 그렇게 부름 받았다 속지 마라. 너희 자신과 너희 인생을 속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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