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tation on Bible/Corinthians 2(고린도후서)

고린도후서 - 박영선 - 제10장

Four Seasons Daddy 2021. 12. 28. 14:45

 

(고후 10:1 ~ 18)  


바울의 사도권 설명 :  부모 된 마음



 사도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합니다. 자신이 복음을 들고 간 하나님의 종인 것을 증명합니다.

 이 변호는 누가 맞고 틀리느냐 하는 그런 얘기가 아니라 복음을 이해하고 있는 자가 이 상황에서 자신을 어떻게 설명을 하는가 로서 그 당사자가 복음에 대하여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는가를 대조시키는 것입니다.

 사도바울은 자신이 옳다는 것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먼저 고린도전서 4장에서는 너희에게 일만 스승이 있을지라도 부모는 나 하나뿐이다. 이렇게 자기를 소개합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에게 있어서 선생님이 아니라 부모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 고린도후서 4장에서는 나는 나를 증명하려고 너희 앞에 선 적이 없고 내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신 것과 그가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너희에 종 된 것을 증명할 뿐이라.

 내가 부모다 너희에 종이다 라는 이해 속에서 자신의 사도권을 증명합니다. 겸손이고 헌신이 아닌 예수입니다. 예수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당신이 죽는 일입니다.

 상대방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너희가 만들 수 있는 것은 죽음밖에 없지 않느냐, 이것이 십자가 입니다. 세상은 본인들의 옳음을 증명하기 위하여 사망을 결과 시키지 유익을 줄 수 없고, 특히 생명을 줄 수 없고 기쁨을 줄 수 없다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 그러나 그 자리를 아버지께서 기뻐하시고 아들이 기쁨으로 자원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어떻게 할 작정이죠  다같이 기뻐하고 감사하게,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고 우리에게 감사한다는 것이 얼른 이해가 안되시겠지만, 부모되서 자식 길러보면 자식 잘 크는게 감사합니다.

부모가 내가 잘 했다 그러는 부모는 없습니다. 고맙다 감사하다 그러죠 기독교는 이게 가장 큰 원칙이고 근간을 이루는 판단 기준입니다. 이것이 10장11장12장에서 반복적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 여러분의 삶에서, 현실속에서 원망과 불만과 이 절망이 쏟아져 나올 때 무엇으로 어떻게 이겨야 되는냐 하는 문제가 하나님 앞에서 와서 울고 불고 가 아니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고 우리에게 무엇을 하셨고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 측면에서 은혜가 되고, 깊은 뿌리가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 현실이라는 건 뭐죠 세상의 가치가 더 큰 폭력을 갖고 있는 조건, 환경 그것이 현실이죠 예수를 믿으면 이 현실이 더 큰 세계관 속에 붙잡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 너희는 이제 세상이 가졌던 최고의 권력 죽음이 너희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너희는 죽는 게 끝이 아니다, 너희는 져라 죽어라 괜찮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기독교이지요

 이 것을 현실에 적용하기란 담금질을 천번 만번을 해야하지요, 그렇게 우리는 점점 예수를 닮아 갈 것입니다. 왜요 그것이 더 큰 가치 더 위대하다는 것을 우리가 체득하게 되니까요

 우리는 복음을 반대하면 이단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복음을 믿고 있지만 아직 세상적 가치와 시험에 작은 것에 걸려서 본인의 신앙과 구원받은 내용들을 살아내지 못하고, 이렇게 잘 못된 길을, 이런 실수를 한다 입니다.

 사도바울은 내가 어떤 권력을 갖고 있는가를 증명하려고 드는 것이 아니라 너희를 세우려고, 예수께서 그리 하신 것 처럼 너희의 유익을 위하여 내가 어떤 권위를 어떤 진리를 단호하게 얘기한 적을 있어도, 그것으로 나를 보호하고 자랑하고 힘으로 갖고 있지 않다.라고 말합니다

기독교신앙의 최고의 싸움은 무엇이냐면 그 권위가 권력이 되느냐 폭력이 되는냐 섬김이 되느냐 입니다. 우리는 한 공동체에 있으면 일사분란하게 모두다 한 마음으로 일치되는 것이 아니라 사소한 것에서는 거의 견해가 다릅니다.

 사소한 문제에 관하여 보다 본질적인 문제인냥 싸우는 것을 사도바울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나는 너희의 종이고 예수도 너희에게 구원을 주기 위해서 나를 보냈다. 

 사도 바울의 대답은 내가 교만하고 지나친 것이 아니라 복음이 너희에게까지 나를 밀어 넣었다. 내가 간 것은 내 자랑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복음을 나를 밀어 너희에게까지 전하게 한 것이다.

 하나님이 일하고 계시다 라는 것을 더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모든 신앙이 도덕성을 기반으로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흠을 지우는 일에, 약점을 만회하는 일에 너무 민감합니다.

기독교는 뭘 잘못한 일을 일일이 다 만회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다 방면에서(직장에서,가정에서,교회에서,이웃앞에서) 도전하시고, 훈련시키십니다.

 하나님은 우리에게 동시다발적으로 여러가지 일을 시키십니다. 목표는 하나입니다. 훌륭한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이 이 세상을 이기시는 권능과 의지를 갖고 일을 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실입니다.

 이사야 40:27-30

하나님이 하십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얼마나 굉장한 것인지 아냐 그렇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하게 해 주신다고 합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와 우리가 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면 우리는 우리의 만족, 우리의 기분에 좌우되어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아무 유익이 없는 폭력과 분노의 싸움을 합니다그 인생에 기쁨이 없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인생이 헛되지 않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됩니다. 힘들게 산거, 억울하였던 것 다 괜찮습니다. 도통하거나 해탈한거라구요 아니요 그것은 이런 약속 속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를 만나주시고 예수를 알게 하시고 십자가가 무엇인지 깨닫게 하신 그 인생이 얼핏 보기에는 세상 권력만 못하고 세상에 능력자들과 약삭빠른자들에게 손해 보는 것 같았느데, 살아보니까 그게 아니더란 말입니다.

 이것은 굉장한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순교자 들이 그랬던 것 같이 이건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치열하거나 지극한 것이 아닙니다.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기쁨과 영광으로 불러내는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을 복되게 하사 사도바울이 기꺼이 이 오해와 모욕속에서 자기를 변명합니다. 자기의 억울함이나 분노를 보상 받으려고 하지 않고 끝까지 이 싸움을 하죠

예수께서 그리 하신 것처럼 내가 십자가를 져야 한다. 그것이 당신의 기쁘신 우리의 영광과 우리의 가치를 위한 하나님의 뜻을 당신이 기쁘게 받으신 것 처럼, 우리 모두의 생을 이 기쁨으로 부릅니다.

여러분은 세상에서는 십자가를 따르는 예수의 제자입니다. 그것은 명분과 책임이 아닙니다. 너무나 다른 것입니다.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져야죠 지는 것이 지는게 아니라는 거 아닙니까. 그 마음에 그 지위에 그 실력에 오는 것 그것이 예수를 믿는 자로 사는 현실인 것입니다.

위대한 현실입니다. 거기에 보냄을 받은 것 이니까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우리 만이 빛이고 생명이고 진리이고 영광이고 우리 만이 자랑입니다. 그런 인생을 사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여러분의 신앙생활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