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 9:1 ~ 15)
참여를 통한 기쁨의 확인
그리스에 윗쪽 지방을 마케도니아라 하고 아랫 지방을 아가야라고 합니다. 초대교회 당시의 이름은 고린도교회는 그 아가야에 있습니다.그런데 이 고린도 교회가 예루살렘의 기근을 당한 성도들에게 헌금을 하기로 했다 라는 사실을 그 위에 마케도니아 지방에서 얘기해 가지고 여러 교회들이 이일에 참여하기로 하고, 고린도교회가 이런 좋은 일을 했는데, 우리도 하자
그렇게 작정을 했고 또 바울 사도도 고린도교회의 결심과 헌신을 위하여 가서 실컷 자랑을 했는데, 너희가 준비가 안되고 우리가 자랑한 것이 헛된 것이 될 것 같은 걱정이 든다. 실제로 헌금 준비가 잘 안되고 있는 것입니다.
저희가 하는 일에 하나님의 복 주실 것이니까 걱정하지 마라 이렇게 9장 전체를 할애하여 헌금을 독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장에서 너희가 약속을 지켜라 나를 망신시키지 마라. 내 기대에 어긋나지 마라. 그런 너희가 자라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고 하나님이 복 주실 것이다. 이런 얘기들이 잘못 읽으면 약속한 헌금을 꼭 내라.이렇게 보입니다.
그러나 이 구장의 헌금에 대한 독려는 아주 깊은 사도바울의 신앙의 경지를 보여주고,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가지신 그 진심에 대한 살아있는 증거로써 대단히 유익합니다.
고후1장24절
나는 너희 믿음을 주관 하려 하지 않는다. 나는 기쁨으로 돕는 자가 되기를 원한다. 이 시작부터 있었던 고린도 교회가 바울에게 가졌던 어떤 섭섭함 어떤 불만에 대하여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를 보내면서 저들에게 내놓은 자신의 지위 자신의 진심에 관한 해명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강제력을 행사하거나 우월감을 가지고 너희를 가르치려고 드는 것이 아니라 나는 너희를 섬기려 할 뿐이다. 나는 너희에게 그런 식의 폭력이나 권력을 휘둘러 내 주장을 관철하려는 사람이 아니다.
고후4장5절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합니다. 나는 너희의 종이다. 너희를 섬기기 위하여 있지 나는 너희의 상전이 아니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런 얘기들은 다 왜 등장 할까요?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들의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그런 낮아짐과 양보하는 말들은 뭣 땜에 이런 성경의 중요한 자기 고백으로 등장하는 것일까요
빌 4장10절
사도바울의 내게 능력 주신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여기에 선언은 이중적인 이해를 가능케합니다. 자존심을 세우는 건지, 아니면 도움을 준 교회에게 쌀쌀맞은 답신을 보냈는가 하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바울의 의도는 이것 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일에 참여해서 고맙다는 것이지 내 필요를 채워 준 것은 그 다음 문제다.도움이 돼서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일에 하나님의 섬김과 격려와 기쁨을 나누는 일에 참여해서 내가 고맙다고 하는 것이다.그런 뜻입니다.
이 말은 사도 바울을 이해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증언이 되지요 내가 너희에게 주관하는 상전이 되려는 것이 아니고, 나는 너희의 종이다. 내가 너희에게 너희가 한 약속을 헌금을 꼭 준비해서 약속을 지키라고 하는 것은 헌금의 중요성이 아니라 너희가 이 기쁜 일에 참여하여 그 기쁨을 너희 스스로 확인해 보고를 바란다 이런 뜻입니다.
너희 한번 해봐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 누구를 돕는 일이 얼마나 굉장한 기쁨인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시는 어떤 중요한 성품인지 너희가 그 기쁨에 참여해 봐라. 너 이거 실패하지 마라 이렇게 얘기하는 것입니다.
빌 1:20
예수의 성육신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체면을 세우거나 자존심을 살리는 일이 아니라 우리의 기쁨과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이 양보하시고, 섬기시고, 인내하시고, 기뻐하신 하나님의 자기증명입니다.
자신의 정체성의 성실함입니다. 사도바울이 이렇게 얘기함으로써 우리는 모두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예수 믿는 다는 뜻이 그의 생애와 인생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발현되어야 하는지 도전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우리는 사도바울이 이런 면에서 내가 너희를 주관 하려는 것이 아니라 너희 기쁨을 돕기 위해서다 라는 말이 고린도후서 11장에는 이런 식으로 소개됩니다.
고후11:22 ~ 33
사도바울이 자신의 사도직을 설명하는,변명하는 이 고린도후서11장 이 얘기는 너무 놀랍습니다.내가 어떻게 사기꾼이겠느냐, 내가 어떻게 거짓교사이겠느냐 사기꾼이고 거짓교사라면 어떤 유익을 얻기 위해서 그럴 거 아니냐 나 한테 유익을 얻고 보상을 받을 일이 뭐가 있었느냐
40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번 맞고 3번 태장으로 맞고 돌로 맞고 여러 번 여행의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을 당하고, 굶고 춥고 헐 벋었던 일들에서 더 주려고, 내가 살아서 너희의 기쁨이 되고 싶고 너희의 자랑의 일조를 하고 싶다.
이렇게 말하는 사도 바울의 자신에 대한 설명은 그것으로 무슨 유익도 구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예수안에서 보이신 것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당신의 영광을 잠시 감추이신 것 같이 하나님께서 육신이 되어 우리 안에 찾아 오사 우리의 못난 자리에 오사 우리를 끌어 안으신 것 같이
사도 바울이 자신의 행복을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가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수안에서 무엇을 했으며 그것이 구체적으로 인생과 현장 속에서 어떻게 드러나야 되는가를 자기도 증언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28절 29절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 이게 사랑이지요
사랑은 추상적이지 않습니다. 환상이 아닙니다. 그 대상을 갖고 있고 그 대상을 위하여 애가 타는 겁니다. 애가 타는 것은 말로 해서 책임을 면하지 않습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지요
그것이 예수입니다. 예수가 오신 이유이고 목적이고 우리에게 행하셔서 우리 모두를 죄와 수치에서 불러내어 의와 진리와 영광과 자랑으로 가게 하신 것입니다. 이미 이루신 것입니다.
선교를 해야되고, 봉사를 해야되고가 아니고 각각의 자기인생을 십자가로 중생한 부활생명을 가진 자로서의 하나님의 예수안에서 요구하신 영광을 증언해야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 사건의 그대로 들어 나는 거 아닌가요, 우리가 죽어야 되는데 대신 죽으신 거 아닙니까 우리를 살리시려고, 영원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지시는 영원한 목적입니다.
우리가 매일을 살듯이 생각하지 않았을 때도 시간이 흐르듯이 하나님이 여전히 우리를 붙들고 바로 이 하나님. 모세는 출애굽과 광야 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죠. 하나님의 백성을 진멸하시면 나도 그들과 함께 죽겠습니다.
사도바울도 그렇게 합니다. 로마서9장에서 자기 백성에 대하여 이렇게 확신합니다. 내마음에 한가지 소원이 있다 내 동족 내 혈육 내 백성을 구원해 내는 일이라면 내가 저주를 받아 예수에게서 끊어져도 좋다.
우리는 그렇게 말 못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렇게 한 거 아닌가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우리 편을 드시기 위하여 하나님과 끊어 지시는 자리까지 가죠
이 것을 치열함이나 지극함이라는 명분으로 이해하지 마시고, 천지를 지으시고 우리를 만드시고 그의 영광과 주시고 싶은 복을 사랑이라는 정열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하나님이 역사속에서 지금도 그리고 영원토록 가지신 뜻입니다.
그것을 이해한 사람들 알게 된 사람들의 증언들이 그 중에 대표적인 사도인 바울이 여기에 등장한 거죠 여러분 헌금해라 그 기쁨에 참여해라 그 영광에 참여해라 그런 얘기입니다.
헌금하는 거 어렵습니다. 아깝습니다. 하나님이 복은 요만큼 주시고 헌금은 많이 내라 그러싶니다. 정말이요, 하나님이 더 많이 하셨지요 우린 다른 걸로 갚을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의 현실은 우리가 아직 어려서 그걸 감사하고 그걸 놀라워하고 감동스러워 하지 않습니다. 그 기간이 일을 한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 일에 메인 자들이 이렇게 죽을 고생을 하는 겁니다.
내가 애타하고 내가 너희들에게 실수한, 실패한 얘기를 들을 때마다. 목이 맨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 바울이라는 사람의 어떤 위대함을 만들며 동시에 우리에게 그 가능성을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니까라는 핑계를 막아서는 것입니다.
바울도 했어 너도 할 수 있어 바울은 훨씬 나쁜 경력을 가지 전과자야 그러나 너는 그것 보다는 낫잖아 이렇게 우리에게 격려하는 겁니다.할 수 있습니다. 위대한 것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앞에 서라는 것이죠가족 앞에서고, 성경이 우리에게 하는 격려입니다.
사도바울이 그의 전 생애에 걸쳐서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습니까 바울의 인생을 우리가 성경에 있는 증언대로 이해하려면 통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앞 뒤가 맞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기준으로 해서 우리는 세계관 인생관 가치 의미 그 현실 이런 이해가 완전히 변하는 것입니다. 위대한 것이지요.
사랑은 하는 것 입니다. 받기 보다 주는 것입니다. 그것에 참여하는 것은 인간이 가지는 어떤 행복도 견줄 수 없는 대단한 행복이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고 베푼 것이며 세상은 만들지 못하는 것입니다.
겸손은 자기가 죄인이라는 걸 알지 못하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겸손은 다 교만의 거짓말입니다. 겸손은 넉넉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들보다 더 못한 사람이다 라는 경험 속에서 나옵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하는 많은 원망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내가 잘하고 싶은데 하나님이 편 들이 않습니다. 건강이, 경제적인 이유가, 혹은 다른 이유들 때문에 제가 못합니다. 형편을 편하게 해주시면 저도 마음껏 섬기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십자가를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낮아지면 낮아지는 만큼 깊이가 생기고 흔들리면 흔들리는 넓이 만큼 폭이 생기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시는 놀라움입니다. 그것은 창조와 부활의 능력입니다.
시편 90편 유진피터슨
모세는 위대합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게 된거죠 그가 백성들 때문에 성질한번 부렸다가 가나안에 못들어가게 된 것이 벌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죠. 밎습니다. 저는 이들과 함께 운명을 같이해야 됩니다.고맙습니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 이 시대를 살면서 여러분 감사할 일이 하나도 없지 않습니까 원망과 불안 밖에 없지 않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은 달라야 합니다. 우리가 가지는 이 사회의 어떤 불안 어떤 두려움 어떤 걱정들 그것 보다 큰 세계 큰 힘, 큰 약속 이 세상은 만들어 낼 수 없는 가치와 소망과 운명과 그리고 명예에 관한 약속들을 성경이 하는 것이고 우리 인생의 적용하라는 초대를 받는 것입니다.
그런 위대한 신앙이 여러분 안에 허락되어 있습니다. 힘내셔서 다른 사람의 간증을 듣지 마시고 여러분들이 그 인생을 살아내는 멋진 여러분 각각의 인생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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