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 12:19 ~ 13:4)
고단한 인생 예수안에 답이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19절에서 말하기를 하나님 앞에서의 변명이 아니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어떤 증언 내용,진심,헌신의 말로 대채될 수 없는 하나님의 종들이 해야하는 어떤 역할과 증언을 합니다.
모세는 온유한 사람이라, 온유하다는 것은 백성들의 원망을 다 받아냈습니다. 므리바 사건을 통해 가나안으로 입성을 못합니다. 시편 90편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한 말씀을 이해하고, 모세는 하나님 맞습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요셉은 억울하게 옥살이하고 나중에 총리가 되었지만 아무런 복수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이 요셉을 온 세계를 구하는 일에 하나님의 손실로 사용하신 것이 너무 영광스러워 억울했던 옛날일들은 보복할 이유가 없다고 항복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의 얘기는 그런 것들 입니다. 베드로도 그렇습니다. 마지막 만찬석 상에서 모두가 나를 버릴거라고 예수님이 얘기하자. 나는 죽을 때까지 함께 있겠다고 하자 시몬아 네가 닭 울기 전에 3번 나를 부인하리라. 그러나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들을 굳게 하리라 이렇게 됩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기왕할 것 같으면, 그 수치시러운 실패, 생각하기 싫은 그 자리를 면하게 해 주어야 할 것 같은데, 하나님의 일하심 속에서 이상하게도 경험케 하십니다.
십자가는 그런 것 입니다. 십자가는 지극함이나 희생이나 각오 같은 단어들로 넘어 가시면 안됩니다. 올 수 없는 자리까지 오신 하나님 진흙탕을 걸어오시고, 온 몸에 땀을 흘리고 피를 흘리고 오시는 하나님 이렇게 성경은 소개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원망하거나 분노하시지 않습니다. 바울은 자기의 자존심이나 고난에 대한 보상이나 위로나 이해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골고다로 가시관 쓰고 홍포를 입고 올라가실때에 여인들이 오면서 웁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인들아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신들을 위해 울라 하십니다.
오늘 성경 본문이 하고 싶은 얘기는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누구에게 보상받고 누구에게 확인하는데 쓸 것 없고, 그들의 복을 위하여 우리가 보면 이해가 안되는, 우리가 잘하고 있으나 손해보는, 너로 안타깝게 생각되는 바로 그 사람이 십자가를 지신 일에 목적자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 앞에 세워서 그들은 세상이 하는 일 밖에는 볼수 없지만 원망 불만 도망하려는 자들이지만 우리는 우리가 예수를 믿는 다는 믿음의 본질이, 우리가 선 자리가 십자가의 영광된 자리라는 것을 이해하는 순종하는 억지로라도 해야 하는 책임아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바울이 자신을 납득시키지 않습니다. 기억해야 합니다. 고난을 생각하는 기본적인 이해가 성경과 신앙인생에서는 다른 겁니다. 고난은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깊은 구체성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는 책임안지고 넘어가려합니다. 해설하지 마시고 들어오십시요
여러분의 인생을 직접 신자로서 사십시요 명분에 묶이지 마시고, 남에게 떠 넘기지 마시고, 이것은 무슨 강요도, 비난도 아닙니다. 바울이 말합니다. 너희 생애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고 살아라, 그 복을 누려라 쉬운 얘기하고 쉬운 답을 찾은 것으로 스스로를 속이거나, 자기 인생을 기만하지 마라,그러는 것 입니다.
사도바울은 변명하거나 이해시키려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을 살리셨으나, 그는 죽으셨습니다. 열 두 제자 다 순교하였습니다. 명분적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리로 몰았습니다.
마치 씨를 뿌리는 것 같이, 씨가 땅에 떨어지면 땅이 삼켰다고 하듯이 하나님이 심었다 하십니다. 고난을 당하면 우리는 다 겁을 냅니다. 고난이 내가 잘못해서 생겼다 정도가 아닙니다. 고난은 굉장히 귀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중 가장 중요한 두가지 사건이 있는데 하나는 출애굽이고 하나는 바벨론 포로입니다. 출애굽이 하나님의 권능인 것 처럼 바벨론 포로는 하나님의 진정성 입니다.
권능만에 문제가 아니라 권능을 행하시는 이유 내용 목적이 바벨론 포로에 나타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벌받아 죽으라고 보낸 것이 아니고 거기가서 깨우치라 합니다.
무엇을 깨우칠까요 다양한 문화와 종교를 포함한 말이 안되는 권력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이 포로된 자리에서 선조들이 들려 줬던 하나님의 기억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십니다. 권능의 하나님이신데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하신데로 신실하신 하나님입니다. 구원하셨고 수도없이 참으셨고 약속을 이행하셨고 .. 포로된 자리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이 그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처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축복하신 인류를 창조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자기의 모든 능력을 다 동원하고 계시다 인류의 역사입니다.
바울이 자기 속사정을 꺼내 놓는 것은 도움을 청하거나 납득을 시키려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길이 이렇다는 것을 설명함으로써 예수께서 십자가의 길을 걷은 것으로 우리에게 요구하는 인생 그것이 우리의 각각의 몫이며 책임이며 명예이며 복이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1:20 ~ 30
이것은 고난 당하고 있는 자들에게 해결책으로 주신 것이 아닙니다. 내가 오로 내가 걷는 인생이 이런 고단한 인생이다. 너희는 나한테 와서 배워라. 혼란스럽고 이해가 가지 않는 이길이 하나님의 지헤이고 하나님이 주시려는 복의 크기이기 때문에 지혜와 슬기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절대 듣지 않는 길 절대 생각할 수 없는 내용이란다 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쉬운 길을 걸으면 바보가 됩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낭비되고 소모될 뿐입니다. 인간이란 모름지기 이런 고급한 가치를 가져야 하는데, 답은 예수안에 있습니다. 예수가 우리에게 자기 인생을 견디라고 하십니다.그걸 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굉장한 은혜입니다. 기적입니다. 기회입니다. 명예입니다. 우리 만이 재대로 된 인생을 살 수 있고, 결국에 가서 만족과 자랑과 감사가 있을 것 입니다. 그 길 놓치지 않는 하루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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