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tation on Bible/Ephesians(에베소서)

에베소서 - 박영선 - 제1장

Four Seasons Daddy 2023. 6. 14. 15:02

 

 

      에베소서 1:01~06

                                            

 

l  에베소서는 6장으로 이루어진 짧은 편지 입니다. 옥중서신이라 분류를 하는데 사도행전 했을 때 보았듯이 로마로 잡혀간 바울이 그때 쓴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l  1장부터 3장까지는 그리스도인의 지위에 관한 것 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지위, 그 지위가 얼마나 영광되고 명예로운 신분이고 자리인가 하는 것을 얘기하고, 4장부터 6장까지는 그리스도인 된 실천에 관한 교훈들입니다.

 

l  앞에 그리스도인의 지위라는 것은 3절에 보듯이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너희에게 주었다를 확인하는 것이고

 

l  또는 15절이하 사도바울의 기도 17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영적지위에 관한 것들입니다.

 

l  4장에서 6장으로 가면, 이런 저런일을 해라 라는 요구들은 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영광된 신분에 따라오는 위대함에 관한 실천입니다. 다만 윤리와 도덕이 아니며, 다만 어떤 수단이나 조건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자랑인, 그리스도인이 된 영적이 부요함에서 흘러나오는 마땅한 명예를 요구하는 것들입니다.

 

l  그러니까 새 사람을 입으라는 요구는 얼마나 우리가 세상이 만들어 낼 수 없는 하나님의 백성된 영광된 존재인가를 스스로 알고 누리라 하는 요구들이 4장에서 6장까지의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l  시작하면서, 에베소에 보낸 편지는 주로 무엇 때문에 기록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교회는 지금 터기라 알고 있는 옛날 소아시아에 있던 소도시이름이고, 거곳에 세워진 사도바울에 의해서 세워신 교회입니다.

 

l  서신들은 두가지 문제가 중요한 문제였는데, 하나는 유대주의 또는 율법주의에 대한 지적 교정 이것이 시급하였고, 또하나는 영지주의였습니다. 영주주의는 당시 헬레니즘에 속에 살고 있는 로마시대에 헬레니즘의 가장중요한 사상적 내용이 이원론이였습니다.

 

l  물질은 악하고 정신은 선하다라는 이원론에 의해서 구원이란 육체의 속한 영혼이 육체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것 이라고 당시는 종교를 그 해방 그 자유로 가는 수단으로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렇지 않다. 하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 에베소서는 주된 논조입니다.

 

l  영지주의에 관한 것인데, 우선 쉽게 유대주의,율법주의에 대하여 에베소서를 시작하면서 한번 짚고, 그다음에 영지주의를 들어가고 그리고 크지는 않지만 초대교회의 또 하나의 문제가 있었다면 종말, 예수님께서 언제언제오실 것이냐 오실 때 어떤 징조가 있느냐 하는 것이 데살로니가서에서는 가장 중요한 주제가 되었습니다.

 

l  유대주의 율법주의는 갈라디아서를 쓰게된 이유이고, 유대주의란 유대인들이 가졌던 민족적 우월감을 묘사할 때 유대주의라 합니다. 하나님의 선민으로 이방인 유대인들이 아닌 다른 민족들과 차별화하여 자신들의 우월함을 확인했던 종교적 민족적 우월감을 유대주의라고 하는데, 그 유대주의에 핵심에 있는 것이 율법입니다.

 

l  하나님이 주신 법을 가지고 있다. 그 법을 우리만 받았다. 우리는 그 법을 받은 만큼 그 법을 지킬 명예와 자격이 있고, 이방인에게는 없다.이렇게 차별하여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한 것입니다

 

l  갈라디아서 2장에 가면 핵심이 되는 20절이 갈라디아서를 쓴 배경을 알면 그 의미가 사뭇 다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l  배경없이 읽으면 감동 그 자체 입니다.신앙의 어떤 최절정의 고백, 상태 그 고백으로 들립니다. 그러나 갈라디아서의 2:20의 고백들은 율법이 대표하는 것과 기독교되는 정체성이 얼마나 다른가를 대비하기 위하여 등장하는 단어들입니다.

 

l  우리가 가진 신앙에 어떤 고백과 감격을 얘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율법으로는 묘사할수도,도달할수도 없는 영역 다른 경험을 말하는 것이지요. 율법은 내가 했다. 율법을 지킨 내가 있습니다. 복음은 다르죠 내가 해야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l  율법은 외우든 선포하든 그때부터 무시무시한 책임을 요구하는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다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그 아들을 보내셨데, 거기에는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하나님이 등장하여 내 책임과 자격을 다 면제시켜주고 있습니다.

 

l  바울의 고백이 그것이죠 내가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못박혔나니는 내가 고백하고 원하기 전에 예수께서 이미 죽으신데 내가 묻혀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고 결정하고 선택하기 이전에 하나님이 하셔서 나를 그안에 잡아 묶은 고백이 기독교인들의 고백이고, 율법은 절대 할 수 없는 고백입니다.

 

l  10:1 ‘형제들아 내마음에…’

 

l  바울이 겪은 경험입니다. 율법을 모두 지키자로 예수 믿는자들을 박해했습니다. 법을 지키다보니 하나님과 멀어졌습니다.

 

l  율법주의가 가장 무서운 폐해가 무엇이냐 하면, 법을 지키고 범법하지 않고 실수하지 않느라고, 하나님의 법을 지켜 하나님을 찾을 일이 없게 되었다는 사도바울의 고백입니다.

 

l  우리가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의를 세우려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외면하였다는 것을 기억해라 입니다.

 

l  율법주의는 우리 인간들에게 가장 보편적인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명분입니다. 옳은 것이 뭐가 잘못이겠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옳은 것이 누구와 누구의 관계를 위해서 쓰여야 하는데, 관계가 깨지는데 많이 사용됩니다.

 

l  옳게 될때까지 너를 놓지 않겠다. 이것이 사도바울의 고백입니다.

 

l  사도바울이 시내산에서 율법받으러 올라갔을 때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하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백성을 멸하고 너로 새 민족을 이루겠다 하시자 모세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이 백성을 멸하시려거든 제 이름도 지워주시죠, 바울도 그얘기합니다. 내 골육친척들의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내가 저주를 받아도 좋다. 그 연장선장선상에 예수가 있는 것입니다.

 

l  하나님이 홀로 하나님이시기를 포기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여 우리의 찬송을 받으시겠다고 우리의 자리에 내려오신 것성육신이요 십자가 입니다. 기독교의 옳음은 그 앞에 용서와 부활이라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연결되어 있지 않고 법이 되면 사람을 잡는 것이 됩니다.

 

l  교회안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옳은 사람입니다. 그게 무엇이 잘못이겠고 옳은게 뭐가 잘못이겠습니까마는 옳게 될때까지 기다리는 마음을 가지지 않으면 날선 칼이 됩니다.

 

l  스스로에게도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이 제일 많이 해야하는 기도는 옳게 해주십시요, 쓸모있게 해주십시요 기도하지만, 내가 기도한 만큼 안되었지만 결국 되고 말것이다 그렇게 하려고 하나님인 그 아들을 보냈다. 라고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l  예수를 믿는 기쁨입니다. 소망이지요, 우리가 다 하지 못하는 것 하나님이 해주실 걸로 믿는것이요. 증거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l  그러면 에베소에는 무슨 문제가 있으냐, 영지주의가 있다고 했죠. 소원,이상,상상,소망은 있고 실제은 안하는 것입니다. 멋진 말만있고, 현실은 외면되는 것입니다. 내가 죄를 짓는 것은 이 육신이 짓는 것이지 나는 아니다.

 

l  내속에는 선한 것이 있다 내소원은 이것 아니다, 나는 멋진사람이고 나는 착한사람인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라는 식으로 분리를 시켜 죄를 짓는 것은 겉이고 실제나는 순결하고 선한 존재라고 책임을 회피하는 이원론이 많이 당시 세상을 지배한 사상입니다.

 

l  그것은 굉장히 애매해서 신앙에 있어서 실제의 삶을 못살게 했습니다. 훈련하고 발전을 가져야하는 신앙훈련을 외면하고, 다만 기도하고 금식하고로 자신의 책임을 다했다고 그냥 넘기는 일이 비일비제 했습니다.

 

l  따지고보면 초대교회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 언제나 교회에서는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리의 종교적 본성이 성경에 나타난 예수그리스도로 증거된 하나님의 거룩하시매 못쫓아 가고 있는 것이죠

 

l  기도하는게 뭐가 잘못이겠습니까마는 죄가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죄가 무엇인데요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는 것, 다른 것으로 하나님을 대신하는 것 나의 진심,헌신 감동이 하나님을 대신하는 것 말입니다.

 

l  늘 조심해야 되는 것이 회개입니다. 회개는 늘 해야되는 것이고 감동이 있는 것이지만, 회개해서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 남는 유일한 것이여서는 않됩니다.

 

l  내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 신앙의 궁극적인 자리가 아니라 맡기는 겁니다.

 

l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여 제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라고 기도를 마칩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가 있는 것입니다.

 

l  맡겨서 예수께서 상상치 못하고 기대치 않았던 길을 잡혀갔다고 고백하는 것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입니다.

 

l  이제는 분별이 그때보다 더 생겼습니다. 이 초대교회 때보다 이 천년의 교회 역사 속에서 별아별꼴을 다 보았습니다. 잘된 것이 꼭 복이 아니고, 못된 것이 꼭 손해가 아닌 그리고 죄란 참 교묘하다는 것과 하나님의 은혜는 모든 절망과 폐허속에서도 피어난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l  많은 분별을 가져야지요.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라는 것은 본질을 잃지 말자라는 뜻이지 이 천년의 아무소용도 없었다라고 결단코 아닙니다.

 

l  지금은 왜 이렇게 분열되어 있냐구요? 각각 진리의 한자락을 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걸로 너무 간것입니다. 결국 같이 있을 수 없는 만큼 깨졌습니다. 그래서 분가하는 것이 나았습니다.

 

l  장로교,감리교,침례교,성결교로 해서 각각 열심을 내고 그곳에서 이걸 가져야 합니다. 상대방에 대하여 존경심을 가지고 각 자기 장점을 살려야 하는 것이지, 상대방을 공격해서 자기를 증명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입니다.

 

l  하나님께서 어느곳에서나 주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 함께 축복하시는 줄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러니까 영지주의 싸움속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아마 이것일 것입니다.

 

l  12:1

 

l  가장 중요한 단어 너희 몸을 입니다. 내 몸이 있고, 내몸이 하는데 까지가 나입니다. 내가 속에 어느 만큼에 소원과 기대를 가졌느냐는 방향이고 목표이지 가는 곳이 아닙니다.

 

l  간 지위와 수준은 지금 내 몸으로 내 표정으로 내 말로 하는 것까지가 내가 간것입니다. 그것이 성경이 주장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주장하는 것은 인간이 영혼 만으로 되어 있지 않고 육체를 포함하여 한 인간이라하고, 인격적 존재이고, 그가 선택을 해야하고 결정을 해야할 자유와 함께 책임을 져야하는 한 몸둥아리라고 실존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l  예수께서도 인간으로 오십니다. 죽으십니다. 죽음이란 육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자에게 일어날 수 없는 사건입니다. 죽고 부활하십니다.

 

l  갈라디아서에서도 율법이야기를 할 때 율법은 외치는 것이 아니라 살아야하는 것이다 하는 이야기, 영지주의에서도 결국 네가 얼마나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어디까지 했느냐를 봐라라고 이야기를 하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집니다.

 

l  5:16 ~

 

l  이것은 정신과 육체를 나누고 있지 않습니다. 정신과 물질이 대적하고 있다고 하지 않고, 성령을 따르는 것과 육체를 따르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육체가 다만 생물학적 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적 욕심과 죄악된 원리를 따라가는 길을 묘사하는데 육체를 쓰고 있습니다. 성령과 대조되고 있습니다.

 

l  육체를 따라가면 무엇을 했느냐 같이 성령을 따라가면 무엇을 했느냐 입니다. 하는 행동들이 이런 열매를 맺는 나무가 되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을 열매맺는 존재가 되지, 사랑과 희락을 외치지 않습니다.

 

l  성령을 따라 사는 것이죠 성령을 따라가면 이 열매를 맺고, 육체를 따라가면 저일들이 일어나고를 말하고 있죠. 이제 이게 예베소서가 하고싶은 이야기 입니다.

 

l  우리의 신앙이 실제로 무엇인가 묻고 있습니다. 예전에 했던 것 처럼 기도하십니까, 성경보십니까, 헌신하고 있습니까 이렇게 막연하지 않습니다.훨씬 구체적인 것이죠. 우리가 살고있는 현실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산다는 것을 이해하고 실천하고 있습니까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l  싸움은 이것입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경쟁이 아니라 예수안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라고 묻고 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l  죽으면 지옥가지 않고 천국가는 것이 미루어진 구원으로 되어 있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예수안에서 시작되었고, 내가 예수믿을 때 시작되는 각자 모든 신앙인의 거듭남에서 출발하는 마땅히 실현되어야 하는 현실인 것입니다.

 

 

 

 

 

에베소서 1:03~06

 

l  에베소서는 쓰여질 때 중요한 배경이 초대교회들이 당시에 사회적 시대적 문화적 정황을 그 배경에 갖고 있는 편지라고 했습니다. 로마시대지만 정신적으로 헬레네즘에 지배되었던 고대사회에서 기독교 안에까지 영지주의가 들어왔다고 했습니다.

 

l  영지주의란 기독교안에서도 기독교신앙을 왜곡시키는데 그 부작용을 일으킬만큼 당시에는 만연했던 그리스 사상입니다. 이원론적으로 물질은 악하고 정신은 선하다라는 이분법을 가지고 있고,

 

l  그런면에서 물질세계는 악한 것들이 세력을 잡고 있는 것이고 그 물질세계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운 정신으로 나아가는 것이 구원이고 해방이라 이렇게 믿는 사상이였습니다.

 

l  이런것은 기독교안에서도 기독교신앙과 묘하게 손을 잡을 때가 있습니다. 영지주의 말 그대로 영적이고 지식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상이였습니다. 그 깨우침이라는 것이 중요한 특징이였고, 그 깨우침의 중요한 내용이 신적비밀을 깨우치는 것, 그리하여 악한세력이 판을 치는 혼돈속에 있는 물질계에서 구원을 얻는 것 이것이 가장 중요한 핵심 진리입니다.

 

l  그것을 깨우친다 하는 것을 오늘날 영성에서 쓰고 있는 것이고, 초대교회에서는 신에 특별한 찾아오심으로 이해를 했습니다. 기독교가 말하는 계시를 차용하게 되었는데, 기독교가 얘기하는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있는 것이고, 영지주의에서는 설명을 위해서 신을 도입했을 뿐입니다.

 

l  인간이 스스로의 내부에 가치있는 무엇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로 한것이 영성입니다. 외적으로는 그것이 어떤 모습을 해도 상관이 없는 것이 되었죠. 불교든,힌두교든,이슬람교 든 기독교든 상관없이

 

l  말하자면 거룩,순결,진심,평화,정의 이런 단어들로 인격적 신이 배제되고 개념들로 그 자리를 메꾼 것 이것이 오늘날 영성입니다. 현대에 와서 개개발된 것 아니라 인류역사 내내 인간들은 갈증을 느끼는 자신의 영혼을 만족시키기 위해 하나님께는 돌아가지 못하고 그럴 능력은 상실하였으니까, 죽은 존재이니까 자꾸 만들게 된 것입니다.

 

l  보이는 우상을 만드는 것은 이스라엘 후기 역사에서도 충분히 봤습니다만 보이는 우상으로 만 하나님을 떠나고 종교적으로 타락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내적인 성찰로도 하나님을 자꾸 배제합니다. 그것이 영지주의 였고, 오늘날에 와서는 영성으로 되어 있습니다.

 

l  대단히 영성을 주장하는 사람들끼리 추상적이고 모호한 단어들만 왔다갔다하지 구체적으로 누구가 없습니다. 본인 자신도 구체적이지 않고, 본인의 안심,기쁨,깨우침 갖은 실존적이지 않는 인격과 실존과 무관한 그냥 개념과 가치들로 대치되고 있습니다.

 

l  여기에 대하여 에베소서가 얼마나 강력히 그 문제 말하자면 꾸중을 하고 기독교 신앙의 독특함을 강조하느냐 하면 3절이하의 모든 14절까지 이어지는 삼위의 하나님의 영광 베푸신 구원에 대한 찬송에서 반복하여 구절마다 하나님이 예수님이 성령님이 인격적으로 분명하게 강조됩니다.

 

l  1:3 ~ 6

 

l  격한 표현만 겹쳐서 나오지 않습니까, 어떤의미에서 거룩한 분노로 사도바울을 탁 막아서는 것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만드는 자기 안심,자기확인 그것이 기독교가 아니다. 기독교는 심리치료제가 아니며 스스로가 전부인것 같이 속이는 것으로 대신할 수 없다.

 

l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작정과 그 의지의 속한 것이며, 그의 능력과 약속에 속한 것이다 라고 시작부터 꽝하고 문을 여는 것입니다.

 

l  5:16

 

l  성령을 따르는 것, 육체를 따르는 것 성령과 육체가 대비되는 것 보다 더 중요하게 내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성령을 부르고 죄를 지적하고 하는 나, 나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l  내가 어느쪽을 따라갈 것이냐 라고 묻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따라가는 문제를 성령을 운운하고 악한 일을 비난하고 하는 데서 그치지, 따라가는 구체적인 책임있는 일에 대하여 이해가 부족합니다.

 

l  이 책임있는 일은 그 시대를 구하고, 교회를 구하고, 하나님의 일들을 구하고 하는 일들이 아니고 나 자신에 관한 것입니다. 육체를 따라 갈것이냐, 성령을 따라 갈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l  나라를 구하고, 교회를 구할 것이냐 하는 것은 우리의 권한 밖에 일입니다. 우리가 질 수 있는 책임보다 큰 것입니다. 그 앞에 것은 빼놓고 이런 큰 명분으로 본인이 해야할 것은 안합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영지주에 빠집니다.

 

l  아는 것이 자기라고 생각하고 행하지 않고, 행하지 않는 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더 보죠,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l  말을 하고,어느게 옳다고 분별하고, 이해하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사느냐 못사느냐 입니다. 그렇게 사느냐 못사느냐는 무엇을 하고 않하고의 문제가 아니고, 실천여부보다 더 중요하게 나라는 존재를 무엇으로 채울것이며, 내가 아는 것으로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내느냐에 관한 것으로 등장합니다.

 

l  육체를 좇으면 자신을 소모하고 탕진하고 더럽힐 수 밖에 없다라고 얘기합니다. 우리 자신을 망가뜨리는 것입니다.

 

l  4:17

 

l  성령을 따르는 것은 자신을 내어 맡겨 그 길을 따라 살므로서 22절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 나라는 존재가 그 인격적 존재가 성품과 실력에 있어서 이 내용으로 차는 것입니다.

 

l  내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이 되어 열매가 달리는 것입니다. 포도 장사가 되지 말고, 포도나무가 되라입니다.

 

l  얼마나 우리 집에 과일이 많은 가의 싸움이 아니라 내가 그것이 되었는 가라고요. 신앙이 좋다는 것은 사랑과 희락과 온유와 절제와…’ 이런 것들은 무엇일까요. 윤리와 도덕이고 가치이기 이전에 하나님이 가지신 속성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l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공급받을 수 없고, 만들어 질 수 없는 열매입니다. 에베소서가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입니다. 영지주의나 오늘날 그 연장선상에 있는 영성에서 사람들은 거룩해지기를 원합니다. 의롭기를 원합니다.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l  스스로 그것을 만들 실력이 없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물이라서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만이 우리를 만족시킬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만이 채워질수 있게 크게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l  인간은 자기가 느끼고 이해하고 상상하는 소원하는 것보다 더 큰 능력과 내용으로만 채워질 수 있습니다.

 

l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스스로가 만들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만들었다고 생각하여 스스로를 속입니다. 교회안에 있는 모든 구성원들의 공통적인 죄입니다. 자꾸 하나님을 뺍니다.

 

l  하나님으로부터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스스로 만든 것 같이, 차이는 무엇이죠, 스스로 만들었다고 하는 사람들은 차별화를 하죠 자랑과 정죄가 나오고 하나님에게로부터 나왔다고 아는 사람에게는 감사와 찬송이 있습니다.

 

l  예수를 믿고 마음이 따뜻해지지 않으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찬송하리로다…. 막을 수 없이 터져나오는 찬가입니다. 예수를 믿은 감격입니다. 구원의 감격에 비교할 수 없이 크게 그 감격에 이어져 나오는 것입니다.

 

l  하나님의 자녀라는 지위 신분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축복하시는 예수안에서의 인생 우리의 현실 이런 것들로 인하여, 고통속에 있고 해결할 수 없는 곳에 있다 할지라도 우리의 영혼의 닻이 예수안에 있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자비하심과 성실하심에 묶여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자기를 확인할 필요가 없는 깊고 무한한 감격속에 있는 것입니다.

 

l  성령의 열매가 무엇이라구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원하시는 하나님의 하나님되시는 모든 영광들입니다. 성령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지죠

 

l  믿음이란 하나님아버지를 믿는 것이요,신뢰하는 것이요,그를 기뻐하는 것이요, 감사하는 것이며 그래서 그분께 나를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만들지 않고,내가 나를 채우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걸로 나를 채우기로 하는 것 이것이 순종입니다.

 

l  이것이 바로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라고 터져나오는 감격의 표현들인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있지요

 

l  감사와 찬송이라는 것은 큰소리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없는 것으로 우리의 영혼에 우리의 존재와 인격에 우리의 어떤 깊은 운명에 각인되어 있는 것입니다.  

 

l  15:1~5‘나는 참 포도나무요 …’

 

l  하나님이 당신의 명예와 영광으로 지은 그의 영광의 찬송입니다.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은 다른 것으로 인간된 영광을 다른 것으로 채울 수 없습니다.

 

l  15:7-10

 

l  계명은 왜 나와요? 순종하라고, 왜 순종하라고요? 하나님께로부터만 진리와 생명이 복과 영광이 명예와 가치와 자랑할것들이 옵니다. 다른데로부터는 나오는 데가 없습니다. 윤리나 법이 아닙니다.

 

l  11기쁨으로 연결됩니다. 예수안에는 비교할 수 없는 큰 기쁨과 명예속에 있다는 것을 누리는 것입니다.

 

l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아버지의 깊으신 뜻이였고, 성경어디에서나 이야기하는 것 같이 그 일로 아버지는 영광을 받으셨다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l  우리의 고통,억울함,약함,우리의 감추어진 것들은 하나님의 일하심의 신비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것은 한알에 밀알이 떨어져 썩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이죠. 우리 모든 존재가 그렇습니다.

 

l  끊임없이 우리의 지위와 가치를 세상에다 확인하려는 우리 마음 때문에 우리도 모르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진실한 가치들을 위대한 진리들을 세상적인 것과 자꾸 섞습니다.

 

l  초대교회는 율법으로 영지주의로 예수를 믿지않는 인류들에게는 우상으로 권력으로 탐욕으로, 종교로 사상으로 인류를 현혹하고 넘어뜨리곤 했었죠.예수를 믿으면 여기를 벗어나는 것입니다.

 

l  그 아들을 버리신 하나님 아버지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풍성한 하나님의 통치와 사랑과 능력안에 있습니다. 이 외침과 감사를 여러분 것으로 만드십시요

 

 

 

   

에베소서 1:03~06

 

l  예정이란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섭리와 능력과 계획안에 있다는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 바깥에 있는 것은 없다 이것이 예정론입니다.

 

l  하나님의 통치와 그 통치자인 그 인격이 가지는 깊으신 뜻, 그것을 이루시려는 의지로 말미암는 궁극적인 승리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l  예정이라는 것은 즉 택함이라는 것은 우리의 찬양을 불러일으키는 자비와 경이로 선포됩니다. 하나님의 경이로운 자비

 

l  우리가 사는 세상이 우리에게 시험하고 위협하는 우연, 불행 같은 변덕속에 우리가 내던져저 있지 않고, 우리 성경에서 선언하는 그 하나님 은혜롭고 자비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성실이 풍성한 하나님 손에 있다는 요약한 표현이 예정론인 것입니다.

 

l  1031

 

l  32 25절 모세의 고백으로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십니다.

 

l  마땅이 심판의 자리에서 용서를 베푸신 일에 하나님은 뜻을 돌이키셨다고 합니다. 그의 기쁘신 의지 목적은 우리모두를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는 데 그 예정이 묶여있습니다.

 

l  1:7~12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도록 하나님은 그의 의지를 꺽지 않으실 것 입니다.되게 하기 위하여 그의 의지가,그의 능력이 그의 성실함이 이어지실 것입니다. 그것이 예정입니다.

 

l  1039절 우리의 못난 것을 덮으시고, 우리의 떨어져나감과 배반과 우리의 무지와 게으름에 보응하시지 않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깊으신 뜻을 이루시는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보이신 우리의 구원,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는 것) 이 일을 위해서라면 하나님은 그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으십니다.중단하지 않으십니다,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l  10312동이 서에게서 먼 것 같이…’하나님은 우리의 못난데로 갚지 않으신답니다. 그것이 예정이라는 표현에 담긴 성경의 선언입니다.

 

l  20장 천국의 비유 하나님의 일하심은 마치 이와같으니, 하나님의 통치는 마치 이와 같으니,하나님의 예정입니다.

 

l  시편 105:16 요셉이야기 : 타협하지 않으시고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요셉은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응할 때 까지 단련하는 것입니다.

 

l  2:12  예수는 하나님이 그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치르신 희생과 그리고 그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l  예수는 인격이십니다. 하나님이 인간으로 찿아온 구체적 개입입니다. 절대 놓지않으실, 포기하지 않으실 하나님의 성실하심,능력,의지 예수그리스도 입니다.

 

 

 

 

에베소서 1:7~10

 

l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라고 우리를 부르시는 것이 아니고,하나님이 예수안에서 이루십니다. 이루셨고 완성하실것입니다. 우리 보고는 증인이 되라 하십니다.

 

l  구체적으로 나가 전도를 하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안에서 하나님이 부른 하나님의 백성은 누구인가를 자신의 삶과 존재로 보이랍니다. 다만 도덕성이야기가 아닙니다. 비교할수 없이 큽니다.

 

l  그것은 거룩으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별,하나님에게 속한 것이란 뜻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만족하시고, 하나님이 목적하신것에 여러분이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l  2:5 ~

 

l  예수님은 죽음의 자리까지 순종하십니다. 오해받고, 고통을 받아 수치와 모욕속에 하나님이 가자는 데에 자신을 복종하십니다.

 

l  어디까지 하나님이 끌고가시던 그자리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이루시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여 감수하셔야 합니다. 무력해지라는 뜻이 아닙니다. 내가 다수가 되고, 내가 원하는 것이 권력이되고, 모든 걸 조정하는 것이 되는 세상 그런건 약속된적이 없습니다. 망할 각오를 하셔야 합니다.

 

l  교회가 영향력과 권력을 가지고 세상에게 책임을 지도록 요구받은 적이 없습니다. 존재적으로 구별되어야 합니다. 기독교인은 기독교인이라는 세상이 가지고 있지 않은 특별한 본질을 가져야 합니다.

 

l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내신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그의 주인되심과 예수안에서 찿아오신 그의 성의,긍휼에 답하는 것입니다.

 

l  기적이란 밖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부터 생겨나는 것인데, 그것은 늘 험악한 조건과 경우에서 생겨난다고 합니다. 기대치 않은 곳에서 아무것도 바랄 수 없는데서 생겨난다고 합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말구유에서 때어난 것처럼이요

 

l  우리가 겪는 아무것도 아닌 자리, 우리가 꺼내 놓기도 부끄러운 우리의 자리 그 감감하고,막막하고,아슬하고,불안하고,납득치 않고 내가 아니였으면 하는 그런자리 거기에 예수님이 오실 수 있다고 성경이 증언합니다.거기서 기적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l  그러니 하나님이 일을 어떻게 하시는 지 안다면, 우리는 우리의 자리와 우리가 겪는 현실이 기적의 무대라는 것을 인정해야 됩니다.

 

l  이 일은 우리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일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자신이 희생하여 이룬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말입니다. 우리에게 희생을 요구하여 이루실 것입니다. 보상이 아닙니다.

 

l  예수님은 성부하나님과 동등한 지위와 영광의 자리에 계신 분입니다. 그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안에 낮춰 찾아오십니다. 낮춰 오해받으며 찾아오십니다.

 

l  역사와 우주의 권력을 가지신이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 오해받고, 무시당하고, 지고 죽는 자리까지 자기를 내주어 마치 오늘 날 꼭 우리 같이 아무것도 아니고 망하는 것 밖에 남아있는 것이 없는 현실을 자살하지 않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l  어떻습니까!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것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예수를 믿을 때는 은혜인데, 믿고 나서는 하나님 이제는 가서 쉬쉽시요 이제는 제가 다 하겠습니다. 그대신 제가 요구하는 권력을 주십시요라고 돌변한답니다.

 

l  오늘에 본문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뜻과 그 뜻을 이루시는 방법이 예수안에 있다는 것은 한 개인에게 적용되는 문제이기보다는 더 크게 우주와 역사에 관한 것이라고 합니다.

 

l  1: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어떤 운명, 어떤 결과도 그 방법이 아닌 것으로 되는 것이 없다고 하십니다. 이걸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l  16:16 ~ 19…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l  우리와 함께 일하겠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결정하고 우리가 하는 그 자리에 내가 함께 일하겠다.하십니다. 너가 들어가는 자리까지 내가 같이 들어가고, 너가 않들어 가면 나도 안들어 가겠다라고 이야기 하십니다.

 

l  하나님 저자리는 못들어 갑니다.하면 나도 않들어 가겠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하실래요? 저 불명예와 수치를, 저 고통을 뒤집어 쓸 수 없습니다.라고 하면 그런 나도 안가마! 그게 무슨 말일까요.

 

l  우리가 권한을 쥐고 있다는 말일까요? 하나님께서 같이 들어가자는 권면입니다. 같이 가자, 나와 함께 일하자. 여러분이 외면하면 주께서 안하시겠다고 합니다.

 

l  여러분이 인생에서 만나는 모든 경우는 그 자리까지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손길로 되어 있습니다. 성질을 부려 억울하다고 하지 말고, 그 자리에서 무엇을 해야되는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이 자리에서 무엇을 해야되는 가를 증언해서 하나님나라가 임했슴을 보이십시요.

 

l  고전 1:18~

 

l  십자가란 무엇이죠. 거리끼고 미련한 것입니다. 누가 십자가에 달련 죽는 신을 믿겠느냐! 하나님이 일하심을 모르면 한 개인의 부름과 억울함을 호소하는데 그치게 됩니다.  

 

l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이고,지혜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헬라인에게는 미련한것이되, 믿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입니다.

 

l  고전 2:1

 

l  십자가만 보기로 했답니다. 십자가 이외의 방법으로 사람을 설득시키거나 항복시키려는 시험에서 벗어나고, 누구라도 기회가 있다. 자격이 있다라는 마음으로 나가기로 했다 입니다.

 

l  하나님이 우리를 만들어 가려고 하는 곳에 우리의 타협이 자꾸 끼어듭니다. 그래서 아직까지 인생이 힘들어지는 이유입니다. 이정도면 됩니다. 이만하면 되겠습니다.라는 것을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은 결과입니다.

 

l  의심하고 불안에 떨어 하나님 앞에 나오고 부르짖을 수 밖에 없는 것이 그것이 복이라구요 하나님이 일하고 계시는 증거입니다.

 

l  그 십자가의 연장선상에 우리의 인생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이 십자가 아래 내려 놓지 않는다면, 이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끊임없이 시달리고 도망가게 됩니다. 현실을 살지 않게 됩니다. 비난하고 변명하는 것이 전부일 것입니다.

 

l  늠름하게 살아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 무엇을 이루는가 우리 다같이 봅시다. 나의 인생과 우리의 인생을 이시대와 역사와 종말을 말이죠. 예수가 있기 때문에 어느것도 우리를 흔들수 없다는 그 약속속에서 아무도 견디지 못하는 경우를 우리는 견딜 수 있는 것입니다.

 

l  질 수 있습니다. 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여러분 모든 생애 축복이 있음을 기억하십시요

 

 

 

 

에베소서 1:11~14

 

l  에베소서는 에베소서의 성도들에게 예수를 믿는다는 것,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그 믿음을 가지고 사는 목적과 소망에 대한 것을 확신시키기 위하여 기독교에서 말하는 복음, 구원이 하나님의 의지요, 작정이요, 예수안에서 구체적으로 행하신 일이요, 성령으로 우리안에 허락한 실체이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입니다.

 

l  우리가 본문에서 확인하려는 내용은 성령께서 오셨다는 것이 이 하나님의 약속과 목적에 있어서 어떤 위치와 중요성을 가지느냐 하는 것입니다.

 

l  성령님에 대하여 이야기하면 우리는 늘 체험적이고, 넘치고, 감격적인 분명한 어떤 감동과 확신을 논하곤 하지만,성경은 그렇게 실제적으로 경험하는 성령의 임재가 어떤 약속과 무엇을 위한 보증 인가를 우리로 알게 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l  13절의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는 것과 14절 그 기업의 보증이 되었다 라는 것은 그의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입니다.

 

l  하나님의 크신 의지 목적은 6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라고 등장했고,7그의 피로구체적으로 성취되었느니라. 이것은 그냥 말로 하신 것이 아니라, 어떤 개념이나 설명이 아닌, 그냥 약속으로 그치는 것이 아닌 실제적인 것이라.

 

l  실제적으로, 구체적으로 우리를 끌어 안은, 하나님의 약속과 의지의 성취이라, 그리스도안에서 그의 피로 이었죠. 8,9절예수안에 일어난 것도 그의 의지에 따른 약속의 성취였다

 

l  11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사..’자꾸 혼동할까봐 반복적으로 나옵니다. 우연히,우발적으로,할수없이,다른 방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처음부터의 뜻과 작정과 우리를 향한 약속을 실제적으로 성취하여 그 작정을 성취하고 완성한 것이 예수이며, 그 목적은 처음부터 똑같이 그 작정속에서도 우리로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는 것이요 예수안에서 일어난 일도 바로 그일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는 구체적 성취이다 입니다.

 

l  성령의 오심은 경험적으로 체험적으로 느낌이나 확인으로 확인한 것보다 훨씬 큰 내용을 담고 있다 하는 얘기를 성경이 하고 있다는 것이죠. 성령을 받았느냐 안받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성령이 오신 것이 성경에서 무슨 뜻이냐 하는 것입니다.

 

l  28:18 ‘예수께서 나와 말씀하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너희에게 주셨으니 …’

 

l  약속으로만 있던 것이 예수로 인하여 그 약속이 성취되어 하나님의 약속이 구체화된 역사적 사실입니다. 새시대가 열립니다. 예수께서 오셔서 구원해 주는 것을 기다렸던 구약시대에서 예수가 오셔서 구원을 이루시고 부활의 시대를 여셔서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한 진실로 하나님의 자녀로 살수 있는 새시대를 열었습니다.

 

l  승리의 시대, 하나님나라의 임재를 누립니다. 그러나 아직 완성은 아직 보류되어 있습니다. 어떤 완성, 환경과 모든 조건까지 바뀌는, 새하늘과 새땅을 받는 것은 아직 않되어 있고, 우리는 그러나 믿음안에서 천국백성이 되어 있습니다. 새시대입니다. 부활의 능력으로 삶니다.

 

l  구속을 기다려야 하는 자가 아니라 구원을 받은 자로 삶니다. 그러나 세상은 아직 새하늘과 새땅으로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세상 사는 동안 고난이 있을 것입니다.

 

l  새하늘과 새땅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안에서 성취된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가 실현된 것이기 때문에 임마누엘은 연속되는 것입니다. 성자하나님은 승천하사 하나님 보좌 우편으로 가시고, 성령하나님이 오사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l  그러니 마태복음 28:18 이하의 말씀, 땅끝까지 그날까지 라는 시간과 공간의 모든 것을 예수께서 유일한 권세자로 그시대의 주인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통치가 믿음안에서 허락되어 있는데,

 

l  아버지 뜻을 성취하기 위하여 그것이 약속에 그치지 않고 예수그리스도로 구체적으로 성취되었던 것처럼, 성령하나님이 오사 실패할 수 없게,물 샐틈없이 우리와 함께 그 일을 하실 것입니다. 그것이 약속의 성령입니다.

 

l  그러니 부활하시고 이 모든 명령을 주신 예수께서 무엇을 유보시키시고 올라가시죠, 약속한 성령을 받을 때 까지 기다리라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자꾸 오해가 일어납니다.

 

l  오순절 성령강림은 교회를 시작하고, 예수의 권세가 실천되는데 있어서 우리 모두의 믿음과 헌신,충성과 인내를 받아내는 것으로 연장되지 않고, 우리가 바라지 않았을 때, 요구하지 않았 때, 예수께서 오신 것 같이, 성령은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의 완성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l  예수님이 우리가 그를 부르지 않았을 때 오신 것 같이, 성령은 예수그리스도의 사역으로 허락된 선물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삼위 하나님의 처음부터의 우리를 향한 약속이고,의지이고,기쁘신 뜻이였습니다.

 

l  그래서 성령을 체험하시거든 그것이 무슨 의미를 가진 그분을 확인하는 것인가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만나는 것 이상으로 고린도전서 12장에서 말하는 것같이 성령이 아니고는 아무도 예수를 주라 시인할 수 없느니라

 

l  예수를 믿는다는 말은 성령강림을 다른 것으로 확인하는 것보다 더 분명한 성령께서 계시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l  예수님이 시간과 공간속에 오셨다는 것은 무엇을 상징하는지 기억하셔야 합니다. 취소될 수 없는 것, 욱일 수 없는 것,뒤집을 수 없는 것,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언제나 우리에게 든든한 영혼의 닷같이 되는 것입니다.

 

l  예수를 믿는다는 말이 가지는 그 넓이와 깊이와 무조건적인 그 무한한 은혜말입니다. 예수가 그렇게 와서 우리가 모를 때 죽었던 것 처럼, 그의 구속사역에 완성으로만 허락된 성령이 오신 겁니다.

 

l  우리 안에 계시고, 함께하시고, 지난 이천년 인류역사를 붙잡고 계십니다. 그 성령의 오심은 이러한 뜻을 가집니다.

 

l  고후 12:1~10 ‘사도바울의 삼층천 체험과 사단의 가시

 

l  하나님의 약속과 목적은 너무나 분명하고 그것은 취소할 수 없고, 그 의지와 성실하심은 무한하십니다. 예수안에서 구체적으로 그 일을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보내어 그 일을 완성하실겁니다.

 

l  여러분 모두 성령이 오셔서 여러분과 함께하는 인생입니다. 여러분의 한숨과 못남과 실패와 눈물과 여러분의 말이 안되는 그 모든 현실 속에 성령께서 계시고 떠나지 않으십니다.

 

l  예수께서 내가 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 내가 가지 않으면 보혜사 성령이 너희에게 올 수 없느니라. 내가 가면 아버지께 구하여 성령을 너희에게 보내리라.

 

l  성령이 오신 것은 예수께서 승천하시면 반드시 일어날 일입니다. 아니면 예수께서 안올라 가셨을 겁니다. 오신 성령님은 육신을 입고 오신 성자하나님과 동일하게, 동일한 삼위의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하나님의 붙드심입니다.

 

l  우리의 약한 것은 다만 우리의 못난 것과 실패의 문제만이 아니고, 우리가 보냄을 받은 장소에 갈, 보냄을 받을 경우에 가야할 조건들입니다. 땅끝까지 가야하는 것입니다. 땅끝은 다만 지리적인 문제 만이 아니고, 모든 조건과 환경에 관한 문제입니다.

 

l  낙오된 자, 버림 받은 자, 아니라고 생각되는 자리까지 가야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보냄을 받아서 가지고 없는 자를 찿아가는 것 보다 더 우선하게 주께서 성육신으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신 것 같이, 우리가 동일한 자리와 조건에 들어감으로써 땅끝까지가 모든 경우 시간과 공간과 그 조합의 그 무한한 구체적인 실존을 하나님의 손길안에 붙잡는 겁니다.

 

l  이것이 싫죠, 자랑하고 싶은 자리에 보냈으면 좋겠죠. 그거 안하고 보냄을 받는거죠 끝없이.

 

l  26:48~54‘잡히시던 밤의 현장…’

 

l  54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 이런 일이라는 것은 사건을 알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사건이 일어나는 그 현실,그 비극,그 배신,그 말도 안되는 것까지 오겠다는 약속. 피조물이 빚어내는 최악의 상태,그러니까 담아내는 모든 데까지 붙잡는 그 자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l  시간과 공간속에서 온 인류를 붙들어 매기 위하여 그의 종들을 그의 백성들을 땅끝까지 보낼 것입니다. 예수께서 걸으신 바로 그 길, 모두를 잡으러 가는 그 자리, 그들이 있는 자리까지 가야하는 것입니다.

 

l  처음에는 신자들이 예수를 믿으면 거룩해지는 것이요, 더러운 것에서 피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거는 보냄을 받은 자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거기에 동화되거나 타협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곳이 보냄을 받은 자리입니다.

 

l  성령이 우리의 보증이 되었다는 말은 우리가 그곳에 보냄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찿아가는 발걸음입니다. 그것을 놓치면 우리끼리 모여있게 되지요. (가로등이 모여있다는 것입니다)

 

l  고전9:24~27‘운동장에서 달음질…’

 

l  아브라함은 믿음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그는 실제로 어떤 생애를 살았을까요, 그는 나그네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상징으로 부름을 받았는데 막막하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가 믿음을 생산해내는 대가를 받는 자여서는 안되기 때문에, 그는 막막하게 살아야 믿음이 들어나는 것입니다.

 

l  모세는 온유한 자입니다. 지면에서 가장 승한 자로 하나님 앞에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에게 구원자였습니다. 위대한 지도자였습니다. 위대했기 때문에 능력을 대표하지 않고 온유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l  다윗은 회개의 상징입니다. 모든 것이 완벽하였으나, 회개하여야 하는 자입니다.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게 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습니다.

 

l  바울은 복음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그는 어떤 생애를 살았을까요, 고난의 생애를 삽니다. 연약한 길을 걷습니다. 죽을 길을 걷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거기까지 가야 됬었다는 말입니다.

 

l  말하면 되고,선언하면 되고,고백하면 되는 정도가 아니라 살아있는 한 땅끝까지 내발로 가야되는 만나야되는 선언하고 증거해야하는 몸둥아리로 그 일을 해야해서 그는 고난의 인생을 걸어야 했던 것입니다.

 

l  여러분이 있는 자리은 위대한 자리입니다. 성령이 함께하여 하나님이 예수안에 이루신 것을 선포하며 증언하며 부르기 위하여 보낸 자리입니다. 못낳기 때문에 못낳자 옆에 갔습니다.실패했기 때문에 실패한자 옆에 갈수 있습니다.

 

l  우리안에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을 알게 되면 성령을 보내셨다는 말을 알게 됩니다. 베드로의 배신,부인,통곡 속에서도 큰 일을 하셨던 하나님을 기억하십시요

 

l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무슨일을 당해도 부활로 가는 길입니다. 그 길에 서있고,부름받았고, 성령하나님을 보내어 함께 사는 것을 기억하여 여러분들도 힘들면 우세요,기도하세요, 말씀으로 확인하세요. 네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이는 내 능력이 약한대서 온전하여 지니라.

 

 

 

 

 

에베소서 1:15~23

 

l  에베소서 11절에서 14절까지 하나님이 역사에 무슨일을 행하셨는가, 어떤 목적을 가지셨는가,그가 얼마나 크신가,크심이 가지는 의지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성취되었는가,

 

l  그것이 하나님이 만세전부터 우리를 예정하시고 작정하시고 약속하시고 하는 단어들에 표현된 것 같이, 온 우주와 역사에 기원이시고 시작이시고 주인이시다 하는 것이 가장 크게 선언이 됩니다.

 

l  그리고 그러한 하나님의 크심과 약속의 진실하심은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역사적 사건으로 성취됩니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하나님의 성취는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시대를 열고, 성령을 보내어 그 예수그리스도로 시작한 일을 우리의 역사속에서 구체적으로 완성하는 현실을 만들어 냅니다.

 

l  우리가 눈을 뜨면 만나는 이 세상이 현실이듯이 우리가 잠자고 있을 때에도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것이 현실인 것입니다.

 

l  믿음을 가져야 현실이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이미 행하셨고 구원하셨고 보내신 그리하여 그의 약속을 예수그리스도로 성취하여 영광의 자리,완성의 자리로 인도하고 계시는 그 순간 순간들이 현실인 것입니다.

 

l  그래서 17절의 기도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l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라는 것이죠. 그의 인격,성품,그의 인간됨 인격을 가진자의 존재의 무게를 갖는 거죠.

 

l  하나님이 누구신가, 창조주이시고,심판자이신데 그 창조와 심판을 그 선하심과 은혜로운 약속으로 우리를 지으신 태초의 목적대로 이루시고 말 하나님 우리 아버지 그 일을 위하여 배신한 우리의 죄를 묻지 않고, 당신의 능력과 은혜와 용서로 그리고 기적으로 회복하여 우리를 마침내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시는 그 하나님 이렇게 그 기도문을 적습니다.

 

l  그의 부르심의 소망, 하나님이 가지시는 궁극적인 목적과 약속이 무엇이냐 이거죠, 우리로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항복시킬것이요 그것이 우리 자신의 영광이 되게 할 것입니다.

 

l  우리는 하나님께 기업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기업을 잇는다. 우리가 기업이라고 여기서는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이어 받는다. 하나님의 기업을 잇는 자, 후사라는 표현을 쓰고, 에베소서에는 더 우리가 하나님의 기업이라고 합니다.

 

l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이며,소원이며,자랑이며 하나님의 표랍니다.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의 기업이 된다 입니다.

 

l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질수있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은 무슨 뜻입니까!

 

l  하나님이 우리로 자랑을 삼으시며,소원,목적,영광으로 삼으신다고 하십니다.

 

l  1:19~23

 

l  예수그리스도를 강조하여 교회로 이끌어 갑니다.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지극한 구체적 간섭이 무엇인지 아느냐 라고 묻습니다.

 

l  유진피터슨은 메시지에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분은 교회 안에서 말씀하시고 활동하시며, 교회를 통해 만물을 자신의 임재로 가득 채우십니다.

 

l  그가 임재하시기 위해서 교회를 그의 몸으로 묶으셨습니다. 그러니 교회가 얼마나 큰지 아셔야지요. 보이는 어떠한 힘으로 교회가 영광과 힘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지와 그 크신 약속 그의 권세와 지위와 창조주라는 권세자가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목적하고 어떻게 일하셨는가

 

l  교회는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하늘보좌 우편에 앉은 그 지위와 권세로 현실에 허락된 권세인 것입니다. 은혜입니다.

 

l  교회는 예수그리스도의 성육신과 부활을 함께 가진 존재로 하나님의 뜻과 그 뜻을 이루신 성취에 주인되신 예수그리스도와 연합된 존재로 이세상에 현존함으로 모든 실존을 끌어안은 하나님의 구체적인 손길이 되는 것입니다.

 

l  그리스도의 승귀가 가져온 이미 성취된 지위를 가지고 아직도 그 성취하신 구원을 인류에게 적용하시는 구체적인 하나님의 성육신으로 교회는 현실속에 있는 것입니다.

 

l  하나님이 일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어느곳엔가 이 삶을 사는데 세상의 부조리와 불의와 악행들, 세상의 하나님 모르는 어떤 세력들에 의하여 신음하고 고통받는 자리에 있는 것을 하나님이 신원해주시지 않는 것은 여러분이 그 자리에 가야 성육신이 지속되기 때문입니다.

 

l  여러분이 누군가의 그의 억울한 자리에 같이 있는 것으로, 그의 답없는 절망에 같은 자리에 있는 것으로, 예수그리스도께서 찿아간 손길이 된다는 것입니다.

 

l  주께서 이세상 사는 동안에 주님이 누구신지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침례요한이 예수에 앞서 선지자이면서도, 당신이 메시아가 맞습니까?라고 물었던 것을 깊이 생각하십시요

 

l  여러분이 실력이 없고 나 같은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그 자리 그 막막하고 여러분이 납득하지 못하는 형편에 여러분이 하나님의 손길로 하늘보좌 우편에 앉으신, 모든 무릅을 그 앞에 무릅꿇린 권세, 만물 위에 계신 그 권세로 교회를 통하여 찿아가는 손길로 존재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l  베드로전서 1:3~7 여러분을 통하여 일하시는 성육신의 연장이라는 여러분의 존재 가치와 우리가 증거하고 지켜야할 믿음에 늘 못미치는 일로 갈등하고 어려워 하는 것이 결국 나를 단련시켜,나를 수단으로 쓰지 않고 그 일로 예수께서 가신 길, 예수의 승리로 우리를 가도록 우리를 만들어 간다. 입니다.

 

l  베드로전서 1:8~12 예수의 오심은 계속 예언된,약속된,선지자들이 미리 하나님의 약속으로 미리 알려준 것이데 자신을 위하여 오신게 아니라 너희를 위하여 오신 것이라 그의 받으신 고난과 그가 이루신 영광이 너희를 위한 것이라, 이게 너무도 놀라워서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l  베드로전서 1:13~16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내가 영광되니 너희로 영광된 길을 가라는 축복이지 강요가 아닙니다.

 

l  성경에서 요구하는 모든 신앙적인 요구와 명령들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영광에 관한 것입니다. 명예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으로의 부름, 복을 받으라, 이리와서 나와 함께 노래를 부르자. 부르시는 축복입니다.

 

l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우리가 가진 성경의 증거들과 약속과 그리고 세상이 주는 위협과 도전과 시험앞에서, 산다는 것은 계속 그 양측의 진실을 볼수있는 기회를 가지는 것이지요

 

l  세상은 계속 거짓말이라는 것이 들어 납니다. 성경의 말씀은 계속 거기 밖에는 길이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 줍니다. 살아보십시요 세상의 것으로 채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l  성경에 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에 답이 있습니다. 그것이 명예입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안에서 만물을 충만케하시는 자의 충만입니다.

 

l  믿음의 공동체가 된다는 것은 매우 큰 영광입니다. 거역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일하심입니다.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보다 크게 교회는 하나님의 일하심과 성실하심을 보이고 싸워이기는 하나님의 간섭입니다.

 

l  매일 현실입니다. 여러분이 어디에 속해있다는 것을 아시고, 이길 수 밖에 없다는 싸움이고 우리에게 답이 있다는 것을 아시면 진지하고 지지않고 살수 있습니다. 고통을 면하게 해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오늘 하루를 명예를 가지고 살수 있도록 기도가 나옵니다.

 

l  그 기도속을 거닐면 놀라운 신자의 위험과 명예를 하루의 삶의 위대함을 살게 됩니다. 그길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담대하게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