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
l 기독교 신앙인의 도덕적 윤리적 책임을 명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인에게 윤리성과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은 가장 중요하게 무엇이 옳고 그르냐가 아니고, 우리보고 이세상을 살아가라는 이야기 입니다.
l 도망갈수 없다라는 이야기 입니다. 예수를 믿고 헌신하면 천국에 대려가는 것이 아니라,현실을 살더라도 세상사람들과 다른 어떤 특혜를 입지않는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l 숨차게,어렵게,힘들게 살아야 하는데,거기에 도덕성을 가져야 합니다. 마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기억하시죠. 매일 하루는 그 하루동안 살아남기위해 발버둥을 치는 날이 아니라,주어진 하루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하루 또는 반복되는 일상,그 희망이 보이지 않는 그 하루하루를, 오늘을 살라는 이야기 입니다.
l 오늘, 오늘 같은 날이 또 오면 못살 것 같은 그 하루를 그 조건속에서 그 무대에서 도망가지 말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 하루를 살아내라는 것입니다.
l 기도원으로 도망가고, 성경읽고,철야하고 그랬습니다. 그것은 다 옳은 일이였지만, 도망가는 방법 중에 하나였고, 답이 없어 어떻게 해야할 줄 모르는, 회개하는 그런 자세였습니다.
l 그렇지 않습니다. 신앙이 좋으면 형통한 일이 생기지 것이 아니고,한 사람의 존재가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것은 본인도 다른사람도 모르는 눈에 안보이는 어느 자리에 있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l 1절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우리를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시려고 그 아들을 보내신 분, 그 아들이 우리 옆으로 오십니다. 너희가 세상과 이웃들 앞에 보냄을 받는 줄 기억하라
l 거기서 신앙인 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4절에 나열된 것 같이, ‘누추한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l ‘감사하는 말을 하라’구체적인 것 입니다. 예수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과 지혜였던 것 같이 우리의 생애와 존재가 하나님의 능력이고 지혜고 성의라는 사실을 깨닫는데는 평생이 모자랍니다.
l 우리가 아느냐 모르느냐와 상관없이 하나님은 우리가 모를 때 태어나기 전에 그 아들을 주신 것 같이 우리가 하나님의 기대에 대하여 오해하고 하나님의 일하심의 방식에 대하여 분노할 때도, 하나님은 성실히 당신의 거룩하신 뜻을 이루셨다는 것 같이, 우리 생애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입니다.
l 감사하는 말을 할수 있을 까요, 너무나 우리의 생각과 이해와 달라서 하나님이 안계실 것이라고, 호렙산에서 도망온 엘리야에게 하나님이 묻습니다.엘리아야 왜 너 여기에 있느냐?
l ‘하나님 다 죽고 나 하나만 살아 남았는데,나도 죽일려고 하는데’이게 무슨 말일까요, ‘하나님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무엇을 더 할 수 있습니까’거기에 대한 답이죠
l ‘바알에게 무릅 꿇지 않는 자 7천명이나 있고, 너는 가서 아람 왕을 세우고,이스라엘 왕을 세우고, 너 뒤를 이을 선지자를 세워라’ 이것이 무슨 말일 까요
l 지금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 아직도 더 하실 하나님, 하나님이 외면하거나, 포기한 시간은 없는 역사를 이어가게 하라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이것이 여기 나와있는 윤리와 도덕처럼 보이는 성경의 진정한 뜻입니다.
l 그가 자신의 신자된 인생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이것이 다만 도덕으로, 옳고 그름 이외에는 아무런 이유도 없는, 삶으로 녹여낼 수 없는, 정작 자신을 모르는 신앙인들의 현실입니다.
l 그런데 이것이 5절의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로 이어집니다.
l 하나님이 우리의 생애를,조건을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로 채우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살아라를 이런 도덕성으로 표현되는 것이라면,감사한자 넉넉한 자로서 명예를 지키고, 복된길을 가야한다는 것이 책임이 아니라, 자랑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면, 그렇지 않은 것은 우상숭배라 합니다.
l 우상숭배란 무엇일까요 골 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탐심이나 사심을 없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l 다만 죄를 짓지않고, 잘못하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그 지위가 가지는 책임을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합니다. 다만 욕먹지 않고, 잘못을 행하지 않는 것이 다인 것 같이 얘기해서 주님께 꾸중들었던 사람이 바리새인들이였습니다.
l 다만 사심이 없고, 대의를 품으면 구원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윤리와 도덕이 하나님을 대신하도록 만들었습니다.
l 오늘 본문 5장의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된 자들의 넘치는 감사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만 가지는 감사하는 자입니다.사랑받는자에게 넘치는 감사입니다.
l 창세전에 하나님이 그 아들을 기쁘신 뜻으로 목적으로 우리를 그 아들 예수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시려고 작정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작정을 목적을 예수의 성육신,수난,죽음,부활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이루셨습니다. 그것을 잊지 말라 이것입니다.
l 너희가 가지는 모든 약속된 복과 영광들이 구체적으로 너희 안에 만들어져 가고 있다.실제적인 시간과 공간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란다. 예수께서 이때를 위하여 저를 보내신 것을 제가 압니다 하고 감사하셨던 같이 신자가 되고 그 감사의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l 이사야 43:7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자를 오게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우리눈에 기이한자,형편없는 자를 포함하여 하나님이 역사와 모든 인생과 모든 존재속에서 그의 영광을 만들어 내십니다.
l 어떤 영광, 그가 목적하시는 인생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의 충만을 보게하고, 그 충만을 채우시는 것으로 말입니다.
l 이사야 42:8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여러분이 여러분을 소원하시는 정도로 놔두질 않겠다.
l 이것이 우리의 위로고 감사이고 두려움입니다. 타협은 없다.고맙습니다 하나님 이렇게 이야기해야 합니다.내가 원하는 정도로 타협하지 않는다.하나님이 목적하신 것을 이룬다.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하라 그런 우리란 것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l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쩔쩔매는 인생이 그렇게 굉장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피흘려 죽으신 것입니다. 5장 1절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입니다.
l 성경에서 전제하고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17절이하에서는 이둘을 구별합니다. 예수 밖에 있는 자들과 예수 안에 있는 자들
l 예수 밖에 있는 자들이란 예수께서 밀어낸 자가 아니라, 우리조상 아담이 선택하여 가지게 된 죄인의 자리입니다. 거기서부터 예수님이 오셔서 그의 백성들을 불러내셔서, 부름을 받은 자와 부름을 받지 못한 자를 무엇으로 구별하느냐 하면, 어느것이 더 영광스럽고 복되고 명예롭고 생명이고 진리이냐라고 이렇게 구별을 하고 있습니다.
l 당연히 죄인된 자들은 부끄러움과 거짓된 자리에 있습니다. 그것을 욕하자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부터 구원을 받아서 구원이 가지게 된 명예, 진정한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주시는 아름다움 들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l 우리는 그것을 보통은 도덕성으로 구별하고 있습니다. 옳고 그른 것, 그러나 성경이 구별하고 싶어하는 것은 한쪽은 거짓된 것이고, 한쪽은 참된 것이다.입니다.
l 거짓되다라는 것은 가짜이고 본질이 없는 것입니다. 헛된 것입니다. 그 헛된 것의 대표적인 목록,표현들이 거짓말,분노,도둑질 이라고 나왔습니다.
l 그러니 예수 밖에 있는 자들은 결정적으로 결함이 있는데, 도덕적 결함이 아니라 생명이 없고, 진리를 담을 수가 없고, 아름답거나 의미있는 것을 생산할 수가 없다는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l 예수를 믿으면 이렇게 해야된다는 것이 다만 윤리 도덕이 아니라 비로소 생명을 가졌습니다. 생명을 가져야 아름다운 것입니다. 생명은 그것이 생명인 것으로 이미 위대합니다.
l 에베소서 5장에 오면 이야기를 이런 배경에서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생명과 진리를 거짓되고,죽음으로 가득찬 한 복판을 지나가면서 채워라 입니다. 그것을 짊어지고 나아가라 입니다. 그것이 예베소서 5장의 이야기 입니다.
l 현실을 살아라 예수를 믿으면 보상을 받아 더 이상 슬픔과 눈물이 없는 곳으로 공간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 운명을 현실로 보상을 받는 것이 아니라,
l 우리가 저지른 죄악된 세상, 거짓이 충만한 곳에서 생명을 가진자의 명예를 아름다움을 하나님이 일하시는 성실하심과 능력으로 살아내라 그러는 것입니다. 그런 전제와 배경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l 도둑질하지 마라는 부족한 현실을 감수해라 입니다. 도둑질하는 이유가 뭐라구요 본인의 부족한 부분을 스스로 채울수가 없어서 내민 손입니다. 약탈해가는 것입니다. 야곱이 그랬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l 야곱이 창세기 28장 벧엘사건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오죠, 속이고 속여서 다 가졌는데 남은 것은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도망갈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찿을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벧엘에서 돌베게 베고 자는데 하나님이 찿아오십니다
l 내가 너 누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너의 자손이 동서남북에 편만할 것이고, 복이되고 내가 너를 이끌어 이땅으로 돌아오게 하겠다. 너가 어디로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하고, 내가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l 야곱은 계속 약탈을 합니다. 현실은 야곱을 그곳까지 밀었습니다. 얍복나루에 섯을 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 현실속을 살라는 것입니다.
l 우리가 가진 가장 큰 오해는 이것이였던 것 같습니다. 어려움은 잘못되었기 때문에 만들어진 재앙이라고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정직하고 겸손하고 진심을 품으면 형통해 질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l 너희는 빛이라 이것이 오늘 본문인데, 빛의 자녀들 처럼 행하라 이것이 무슨 말일까요 어둠속으로 보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어려워하는 부분입니다.
l 아무리 예수를 잘 믿어도, 최선을 다해서 거짓말 할 자리에서 거짓말안하고 욕심을 부려도 될 자리에서 욕심을 부리지 않고 양보와 희생하여 지면 그러면 보상이 올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l 세상에 대해서 내가 양보하고 희생했더니 나를 먹던 떡으로 알아 확 그냥 내가 기도하면 너희들 어떻게 되는지 알아,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주신 것 처럼 현실을 살죠
l 예수님은 살아 생전에 받는 보상이 없습니다. 바울처럼 일흔번씩 일곱번 그러면 무엇이 된다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우리가 살아있는, 살아 생전에 주신 영원한 약속입니다. 그 영광을 이 현실에서 누리라는 것입니다.
l 견디는 것이 아니라 누리는 것입니다. 영광을 형통한 자리에서 영광을 이야기하면, 그것이 영광인줄 모릅니다. 인내 겸손 용기를 그것을 부릴 수 없는 상황에서 부려야 실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l 하나님은 그에게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명예를, 그를 거부하는 자에게는 한없는 오래참으심으로 그의 영광을 들어내십니다. 어느 역할을 하시겠습니까, 선택하십시요
l 우리의 실력이 모자라서 원망을 하게 되는데, 원망하지 마지고 그냥 비명으로 스스로를 납득시켜야 합니다. 비명은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힘들다는 표시입니다. 제대로 그 길을 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l 그런데 틀렸다가 되면 모든 사람에게 원망스러워요. 내가 이렇게 잘했는데도 않됬다고 생각을 하면 하나님만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현실을 원망하게 됩니다. 욥도 그랬습니다.
l 모든 원망들이 나오게 되면 여러분 생각하세요 지금 우리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신비한 능력과 지혜를 기회로 부여 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멋지게 구세요
l 우리는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끼리 하는 믿음이라는 단어를 굉장히 오해합니다. 히브리서 12장1절에 이렇게 놀라운 권면,또는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l 히12:1-3‘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l 마치 도를 깨우치듯이, 무슨 신앙을 마음속에 정리하라가 아니라 살래는 것이죠. 살아내라는 것이죠. 그 길을 그 거역하는 길을 고통스러운 길을 살아내라 입니다. 무엇을 가지고,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서 우리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자’
l 다른 길로 보상과 목적을 삼으면 이 길을 못갑니다. 확인하느라고, 살아내는 그 놀라운 인생을 이해하지 못하면 늘 억울하게 됩니다.
l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보는 에베소서가 처음에 거짓,부끄러움,더러움들로 예수없는 생명없는 진리없는 자들의 존재의 본질을 허망함을 지적한 한 것 같이 이제 예수안에서 거듭난 우리는 ‘너희는 예수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나이다’로 시작된 새 사람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l 거기는 사랑하며 참되며 유익하며 빛이며 거룩한 길을 사는 그런 생명이 주어진 새로운 삶인 것입니다. 이런 새로운 삶을 잘하면 보상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실패합니다. 우리는 살아서 예수를 믿으면 이 복잡한 세상 속에서 믿는 자는 고통스럽지 않는 길로 인도될거라고 막연히 생각합니다.
l 히브리서 11장 4~16 아벨,에녹,노아,아브라함,사라
l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왜 그런길을 가시는가, 하나닙이시니까. 우리의 생각보다 크고 깊으시니까 거룩하시니까, 기독교란 그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을 믿는 종교입니다.그 하나님의 뜻과 방식에 항복하는 것 입니다.
l 무슨 방식, 그의 성실하심과 긍휼하심과 지혜와 측량못할 복을 믿는 것입니다.
l 히 11:17~ 아브라함은 시험받을 때 이삭을 드립니다. 성실함을 지켜내실 분은 하나님 이외에는 없습니다. 우리는 변덕스럽습니다. 고통에 집니다.하나님이 그 품에 우리를 품지 않았으면 우리는 벌써 다 자폭했을 것입니다.
l 여러분 살아 보시면 하나님의 성실하심은 정말 두렵습니다. 그리고 놀랍습니다. 공포가 아닌 ‘이렇게 될 것을 뭘 그렇게 하셨어요’라는 생각이 듭니다.
l 부모들은 돌아온 아들에게 너 순종해라 찍소리 말고 지금 몰라도 된다 순종해라 합니다. 세상은 거짓되다 속지마라. 그것이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l 엡5:6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속지 마세요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의 소원이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그것보다 더 크십니다.
l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께 붙잡혀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붙잡아서 세상에 내주지 않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그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었던 자들, 그래서 영원한 약속을 받았습니다.
l 저들은 믿음을 지켰다 물론 훌륭한 인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놓아주지 않으셨습니다. 세상이 위협하는 게 두려우십니까, 하나님이 그 것보다 크고 놀랍게 우리를 붙잡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꼼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l 믿음이 좋아서 새벽기도 나오는 사람은 없습니다. 안나올 수 없어서 나오다가 깨닫게 됩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l 진실한 친구를 만나는 것, 내편을 들어주는 사람, 나를 보면 반가워하는 사람, 만나면 내거를 다 주는 사람, 하나님이 바로 그런 분이 싶니다.늘 그러싶니다. 그것이 성경이 하는 이야기 입니다. 우리는 자꾸 놓칩니다.
l ‘너희는 거짓되거나 더럽거나 분노할 필요가 없어, 너희는 하나님 앞에 사랑을 받은 자녀야 마음 놓고 걸어’그런 명령앞에 서는 것입니다. 아니 그런 복된 약속앞에 서는 것입니다.
l 갈 6:7~10 서로 격려해야 합니다. 세상은 자꾸 우리를 위협하고 유혹합니다. 어디서 위로를 받겠습니까. 같은 부름을 받은 믿음에 식구들이 서로 확인해 주어야 합니다.
l 세상이 매일 위협하고 시험한다고 해서 저들이 옳은 것도, 답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 답과 내용과 진실은 하나님만이 주실주 있습니다. 거짓말하고 있으니 속지 말라고 하십니다.
l 너희 인생을 스스로 속이지 말라. 너희가 걷는 그 길,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맞바람을 맞는 것 같은 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이라는 것, 어둠속에 높이 쳐든 빛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입니다.
l 우리스스로의 조건과 형편을 성경으로 확인하셔서 지금의 형편과 조건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라고 이해하셔서 감사가 있어야 예수를 믿는 힘이 솟아납니다.
l 누가 최선의 신앙인인가, 여러분 자신입니다. 그것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것보다 더 굉장한 하나님의 능력은 없습니다. 예수안에서 빚은 새생명
에베소서 5:15-21
l 지혜란 무엇인가 어떤 분별, 똑똑함 능력 옳고 멋진것이라 생각하실 것입니다. 에베소서에서 말하는 지혜는 오늘을 사는 힘입니다. 오직 지혜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입니다.
l 세월을 아끼라라는 말은 오늘을 삽니다.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겁내서 오늘을 도망가지 말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오늘은 산다는 말은 그게 끝이 아니라 현실을 산다는 것입니다.
l 오늘 처한 조건, 상황, 할 수 있는 가능한 내 조건을 사세요 이것이 지혜입니다.
l 마 6:33 ~ 34
l 오늘 내가 한 것이 내일 어떻게 나올 것인지 모르는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외면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어떤불운,고통,후회 그리고 끝을 알 수 없는 불안 의심 답답함 모호함 무력함 그것이 현실입니다.
l 그 과거를 후회하는 것으로 변명하지 말고 미래를 낙관하거나 안심하려는 것으로 타협하지 말고, 그 막막함을 견디는 것 그것이 지혜입니다.지헤를 가르치는 잠언에서는 미련을 떨지말라, 게으르지 말라, 생각하라 성실하라 정직하라 하나님을 경외하라
l 오늘 나와 내 현실에 써먹을 말들 그것이 지혜입니다. 뻔한이야기 아닙니다. 세상은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복수하고 안전을 준비하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능력을 믿어라 입니다.
l 지는 것 같고, 돌봐주지 않는 것 같아도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겨라 합니다. 보복하지 말고, 늘 진실되고 겸손하라 져라 죽어라 살아있는 동안에는 세월을 아껴라
l 하나님의 일하심 그것을 아는 것, 예수믿는 자들의 힘입니다. 믿음이라고도 하고 지혜라고도 합니다. 믿음은 막연한 기대가 아닙니다. 오늘을 버티는 힘으로 있어야 합니다. 오늘을 사십시요
l 그 기가 막힌 하루를 사십시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오늘 있다 지는 들풀도 입히시는 주께서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예수님 친히 하신 말씀입니다.
l 예수 믿는 영광과 힘을 아셔야 합니다. 지는 힘, 감수하는 기적,
l 롬 14:22-23
l 믿음은 우리의 소원이거나 진심이 아닙니다. 우리의 기대나 소원이 아니고 그 대상을 가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 하나님의 일하심과 연결되지 않는 것은 다 죄입니다.
l 그것은 도덕과 윤리를 벗어나고 우리의 안심과 자랑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입니다.
l 방탕이란 낭비 허비 다만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을 하지 말고, 오늘을 살아라 오늘 할 것을 해라 그것이 성령충만입니다. 오늘은 하나님이 만드신 오늘이기 때문입니다.
l 시간은 다 같지만 각자에게 주어진 상황은 다 다릅니다. 그 현실은 다르지만 성령께서 붙잡아서 만들어온 정황입니다. 그것이 오늘인 것입니다. 그 오늘을 꽉 채워 사십시요
l 성령충만은 오늘 24시간을 꽉 채워 사는 것입니다. 시간은 엄정하게 지나갑니다. 내가 그 시간을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그냥 흘려 보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l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형편과 조건에서 위대하게 살아라. 하나님이 이것으로 일한다는 것을 알고 살아라.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누리고 가지고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요
l 내가 생각없이 한 한마디, 내가 의도하지 않은 눈빛 하나에 누구가 은혜를 받고, 격려를 받고, 자기 인생에 힘이 될 수 있는 일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입니다.
l 기독교인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님을 안다는 것으로, 매사에 습관처럼 노력하시고 몸에 익히셔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아무것도 아닌 하루는 얼마나 위대한 하루인지 아셔야 합니다. 그것이 성령충만입니다..
l 엡 5:19-21절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l 갈 5:16 ~ 23
l 여러분들이 항복하지 않는 여러분의 현실과 인생이 결단코 성령의 열매를 방해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이상하게도 세상이 알아주는 조건속에서는 아니며, 세상은 끊임없이 힘을 가지라고 하는 데, 세상이 말하는 힘을 가지고 훌륭해 진 사람을 본적이 없습니다.
l 세상이 말하는 힘을 가지면 진실을 말하지 않고, 도망갑니다. 자랑하느라고 누구를 굴복시키는 재미로 이런 것을 할 틈이 없습니다. 사람은 한계에 부딪치고 억울해져야 비로소 인간스스로의 가장 깊은 가치를 묻게 됩니다.
l 여기 나오는 성력의 열매들 같은 희락 화평과 오래참음이라는 것들은 누구것을 뺏어 오는 것이 아니고, 누굴 항복시키는 것이 아니고, 인간이라는 존재와 삶이 하나님이라는 특별한 간섭과 목적속에서 그 내용이 채워지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l 그 위대함은 그 열매를 가지지 않는 자는 모릅니다. 갈5:24~26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찌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찌니라
l 여러분의 하루를 어떻게 살것인가 후회하고 분노하며 살것인가 나이가 들면 웃어야 합니다.
l 우리의 자녀들은 우리의 옳음을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삶을 삽니다.역사를 이어갑니다. 하나님이 인류에게 하실 일을 계속해야 될 구체적 존재들입니다.
l 하나님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내 인생속에 이런 것들을 채워왔다. 그것은 언제 어떻게 채워지는 지 나도 잘 모른다. 나는 이제 죽어도 된다. 너는 지금 철없고 뭔지 모르고 있지만, 너 살아남아서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 너와 네 시대에 증언해라 이렇게 하는 것이 어른이 하는 것입니다.
l 지혜와 성령충만을 누리고 감사하라 복종하라 아멘 입니다.
에베소서 5:22-33
l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는 것 이것은 윤리나 신앙이기 보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이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신비한 인도입니다.
l 부부가 된다는 것은 무슨 도움이 되거나 책임을 지는 것보다 훨씬 크게 예수그리스도와 교회의 연합에다가 부부의 연합을 직접 연결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l 둘은 타협을 해야 합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일하심의 아주 신비한 하나님의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은혜와 지혜와 능력이 있다고 합니다. 부부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신적인 하나님의 방법이요 신비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l 엡5:15
l 지혜는 오늘을 살라는 것입니다. 지금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책임을 지는 것이 지혜입니다. 오늘 무슨일이 일어나나요 우리는 오늘이라는 시간속 일어나는 도전 시험 필요 같은 것들을 먼저 생각하는데, 오늘을 부부가 같이 산다고 합니다.
l 엡 5:1~2 이것을 희생 헌신 이런 덕목으로 이해하는 바람에 무엇을 놓치냐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우리가 간 모든 자리에 우리를 납득, 구원하기 위하여 어떻게 하나님이 우리와 자신을 묶으셨는가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l 우리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어디까지 가든지 거기까지 하나님이 당신을 묶으신 것이 예수입니다.그의 죽으심 그것을 지극하심이라고 덕목이라고 자르지 말고, 너가 간 어디까지이든지 너와 함께 있겠다. 그것이 성육신이고 십자가 입니다. 신약시대에는 성령의 임재입니다.
l 절대 홀로 놓아두지 않는 것, 우리의 비겁함이나 고집이나 못난것에 당신을 묶어 두는 곳 교회입니다. 교회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일차적으로 예수오신 이후에 호칭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이름입니다.
l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 그리스도와 묶은 존재 그가 얼마나 잘났느냐를 보상해주는 것이 아닌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목적하시는 바를 이루기 위하여 당신을 우리와 묶으신 존재 그것이 교회입니다.
l 롬 6:3~11
l 죽은 우리를 위하여 무덤에 오셨습니다.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고 죽음이 예수를 이길 수 없었기에 사망에 묶어 둘 수 없어서 우리의 부활을 막을 수 없었다면, 우리의 죽음까지 찿아와 우리를 묶으신 예수의 부활때 우리를 분리시킬 것은 없다.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입니다.
l 성화는 자꾸 윤리적 종교적 진전을 생각하게 됩니다. 저에게 성화가 주제가 된 이유는 말로는 못할 것이 없는데 오늘을 살 방법이 없냐 하는 질문이였습니다.
l 오늘 닥치는 현실과 나의 못난 조건 속에서 어떻게 하란 말인가 이것이 성화에 대한 나의 질문이였습니다.
l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혼자살다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된 것이 성화 입니다. 성화는 본인이 혼자가 아니고 그리스도와 연합 되어 있는 것입니다.
l 내가 하는 못난 짓과 모든 결정에 그리스도가 늘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입니다. 예수로 인하여 죽음을 이긴 것 같이 우리의 삶이 예수와 함께 하는 삶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l 그러니 경건해지고 멋있어지고 능력있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혼자살 던 존재가 예수와 함께 둘이 함께 가는 존재와 지위와 현실이 되었습니다. 부부란 무엇인가 혼자인데 둘이 되었습니다.
l 부부가 되면 더 이상 자기가 혼자 결정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엄연한 현실입니다. 서로 불만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하심의 풍성함을 몰라서 하는 이야기 입니다.
l 혼자서는 화음을 넣을 수 없습니다. 화음이란 다른 것 만큼 폭과 깊이를 가지는 것입니다. 멀수록 좋은 것, 먼 만큼 다 자기것인 것,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 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지금 일하시고 있는 구체적인 현실이 바로 부부라는 것입니다.
l 우리가 한번도 예수님과 연합하여 있다고 느끼지 못하고 그저 자기가 기도하러 올 때 그때만 만났고 그냥 혼자 사는 줄 알고 있습니다. 내가 와서 회개해야 비로소 아는 하나님이 아니고 우리가 언제나 눈물흘렸던 그 정황에 함께 하셨던 하나님
l 죽음의 자리까지 찿아와 우리를 부등켜 않아 죽음을 이기고 새 삶 새사람 예수와 함께 살게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언제쯤 알수 있을 까요 부부가 되어 살면서도 하나님의 일하시는 구체적 손길을 모르는 것입니다.
l 부부가 밤낮 원망만하고 싸우지 말고 둘이 함께 노래를 하십시요 둘이 묶여 있는 줄 알고 하나님과 묶여 있는 줄 아시고 하나님이 그 방식으로 일한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l 어떤 신자도 성령이 없이 예수를 믿는다는 고백을 할 수 없고 그의 존재와 모든 어떤 경우에도 혼자 내버려 두지 않는 성령하나님 충만을 살라는 것입니다.
l 갈 2:20 내가 더 이상 나 아닌 예수를 보는 것입니다. 그의 신분과 지위가 신이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다들 예수와 함께 성령하나님 안에서 더 이상 못나고 부족한 한 피조물에 불과하지 않은 존재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l 자기 마음대로 자기 한계대로 살지 않겠다는 고백입니다. 다만 책임을 넘기는 것이거나 종교적 헌신 같은 것이 아닌 그의 신비를 살겠다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l 하나님이 그의 능력과 정성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 겁내지 마라. 시와 찬미과 신령한 노래들로 화답하라. 기독교 신앙이 여러분의 공포과 필요를 만족시킬 수 없으면 그 모든 것에 답이 될 수 없으면 거짓말 입니다.
l 순교를 무슨 각오로 어떤 정성의 극치로 나타내면 않됩니다. 실재로 우리는 겁날 것이 없습니다.
l 우리의 인생이 결코 하나님의 능력과 성의에 부족함이 없는 길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면 감사가 없습니다. 괜찮다. 너가 부족하고 실패한 것으로도 손해보지 않는다. 그것을 어른들이 보여야 합니다.
l 같이 살고 노래를 부르는 그 신비와 깊이를 모르면, 어렵고 죽어나가는 인생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감사하고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입니다.
l 하나님이 오늘 일하고 계십니다. 기독교가 증언하는 하나님의 성실하심과 기적과 은혜와 그리고 능력에 대한 확인과 도전이 있는 여러분의 현실 가정 인생되시길 바랍니다.
박영선 - 제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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