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2:01~10
l 에베소서는 말하고 싶은 틀을 1장에서 미리 그려습니다. 하나님의 작정,의지가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신앙고백을 낳았다. 영원한 소망을 그리고 우리의 현실에서 구체화되는 하나님의 능력을 낳았다.
l 예수의 오심과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을 보라. 하나님의 그 약속하신 것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성취하셨는지, 이루어내셨는지 보라 이렇게 얘기합니다.
l 아버지를 알게 하시고, 그 하나님이 어떤 능력을 기울이셨는지, 얼마나 지극한 정성을 가지고 세상을 만들고, 우리를 만들고, 우리를 구원하고, 어디로 인도할려고 하는지 알기를 원한다.
l 그 하나님이 예수안에서 이루신 것을 바로 교회에 주셨다. 1장의 결론입니다. 에베소서 전체의 주제는 그런 의미에서 교회인 것입니다.
l 교회는 예수그리스도안에서 이루신 모든 승리,하나님의 의지가 고스란히 남겨진 하나님이 오고오는 세대, 하나님의 목적과 뜻을 이루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예수안에서 이루신 일을 시간과 공간안에서 동일한 승리,용서,구원,증거를 위하여 하나님이 세우신 하나님의 기관이다.
l 그러니 너희의 열심과 능력으로 헌신해서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말라 입니다. 자발적 결사체가 아니다. 뜻과 정성이 있는 사람이 이룬것이라고 생각하지 마라입니다.
l 교회란 모든 예수을 믿는 개인, 구약에서 이스라엘이라고 불렸던 이름이 모든 예수를 믿는자에게 불려지는 새로운 이름, 교회 그리스도의 몸,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
l 이스라엘의 이름이 한 민족과 국가와 하나님의 약속된 선민에게 주어진 이름인 것 처럼, 믿음의 공동체에게 주어진 가시적 교회의 이름입니다.
l 가시적 공동체의 이름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 각각에게 그 공동체에게 너희가 가진 영광을 알아라. 이것이 너희로 인하여 세워졌거나 유지된다고 생각하지 마라.입니다.
l 아무것도 겁낼 것이 없고, 모든 것에 신중해야되며, 그리고 겸손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막연한 이야기를 에베소서를 따라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가, 어디서 정신차려야 하는지 이야기 하려는 것이 이제 2장부터 6장까지 계속됩니다.
l 너희는 생각도 없었고, 너희는 딴길로 가고 있었고, 너희는 진노의 길을 가고 있었던 것일 뿐이다. 그곳에 내가 이 교회를 허락한 것이다.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이룬 모든 회복과 구원과 그리고 하나님이 뜻하시는 약속의 완성을 이룬, 엡 2:5,6
l 예수그리스도를 논할 때 당연히 그의 성육신과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이 따라오는 것이지만, 교회는 그 승리의 예수 그 위에 서있는 것이죠, 그 승리가 무엇을 회복하고, 무엇을 반전시켜, 무엇을 허락한 것인가가 그의 승리로 완성되어 나타나지만, 그 완성은 그 앞에 것 없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l 신약시대에는 예수의 부활과 승리와 약속의 성령, 즉 그 약속을 뛰어넘는 증거와 실현으로 소유하고야 출발하는 것입니다. 모든 교회는 승리를 가지고 출발합니다. 그 승리를 모두에게 나누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성육신의 길을 걷듯이 인생을 살것입니다. 갖고 있는 승리를 가지고 살것입니다.
l 소유하고 있는 하늘보좌에 그리스도와 함께 앉은 지위를 가지고 이일을 하는 것 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헌신과 고백으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우리도 수혜자로서, 먼저 안자로서, 우리를 통하여 아버지께서 그 기쁘신 뜻대로 얼마든지 부르는 사람을 위하여 진노와 심판의 연기, 구원의 문을 열고 계시는 하나님의 자비에 참여하여 사는 것입니다.
l 그래서 우리는 이길것이 따로 없습니다. 이긴것을 증언해야하는 것입니다. 질것도 빼길것도 없이 우리는 하늘위에 앉아 있는 자 입니다. 이러한 말을 1절에서 10절까지 하고 있는 것입니다.
l 8절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로마서 전체를 요약한 것 같습니다.
l 에베소서 2장에서는 어떻게 이렇게 구원을 얻었는가를 감격하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는 용서가 필요했던 자들이다, 너희는 구원이 필요했던 자들이다, 너희가 가지고 있던 것이 하나님이 필요로 했던 것은 없었다.입니다.
l 그러니 우리 각 개인이 교회이고, 공동체로 가시적 교회를 가진다는 것은 이 능력,하나님의 의지와 분리되면 큰일 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부족함에 의한 많은 의견 충돌이나, 많은 실수와 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우리가 다 장악하고, 우리가 다 해결해야 할 일은 없습니다.
l 나는 변하고 감격했는데, 환경이 변하지 않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대접하지 않습니다. 내가 훌륭한 사람이 된 것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물가물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거기에 예수께서 오셨듯이 우리가 보냄을 받아 이 충만한 교회,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으로 서있는 것입니다.
l 여러분의 인생에서 하나님이 무엇을 만드시냐구요. 하나님의 충만하심,만물을 충만케 하신이의 충만, 예수의 성육신과 고난과 죽음을 재현하는 교회 모두를 그리스도의 승리로 부르는 일에 여러분을 쓰고 있습니다.
l 여러분이 그 고난의 길을 걷지 않고는 죽음을 걷지 않고는 그 승리의 자리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자꾸 반복해서 가르칩니다. 너희는 승리한 자들이다. 예수안에서 영광의 지위에 이미 서있는 자들이다.
l 그러나 너희 자신을 위하여, 너희를 통하여, 완성되어야 할 하나님의 모든 충만,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모두 다 그리스도안에서 통일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일하심 속에 부름받은 줄 알고, 너의 인생을 살아라.하는 명령앞에 서있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l 교회는 얼마나 큰것이냐 하면요, 돈이 최고이고, 힘이 최고인 이 세상에서, 내 이웃을 죽여야 내가 살아남는 이 세상에서 십자가가 붇듬으로써 저들은 뭐냐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l 주일날 예배의 크기를 아십니까, 저 사람들은 왜 이 좋은 시간에 교회를 가냐,라고 그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이 우리에 아버지이십니다.주인이십니다.라고 말하여 온 세상으로 하여금 자기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궁극적인 실체가 아니라는 것을 도전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l 그들이 우리가 뭘 믿는지,자기가 누구인지 모르니까 그 도전앞에서 고통스러우니까, 비난을 하는 것입니다.
l 유진피터슨‘교회를 구미에 맞게 고치겠다는 기특한 마음으로 무엇을 이미 주셨는지를 놓치지 말라’
l 롬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l 여러분 삶에서 무엇이 이자리까지 끌고 왔는지 보십시요, 여러분이 형통하고, 자랑할 수 있었는데, 이 자리에 나올 수 있던 사람은 없었습니다. 너무 행복해서 예수 믿는 사람은 없습니다.말이 안되서 예수 믿었습니다.
l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지 않으면, 성공도 실패도 발목을 잡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셔야 성공이 비로서 가치를 가지고, 실패도 깊은 각성을 만듭니다.
l 하나님 일하심, 우리가 부르거나 요청하거나,필요를 시인하지 않았을 때 오셨던 예수같이,우리가 이루고,우리가 알고,우리가 책임지는 교회 이전에 하나님이 예수를 보내신 것 같이, 그의 승리로 허락된 교회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l 여러분이 영적인 사람이 되려고 작정하기 이전에 성령께서 일하셔서 이런 이 질문, 헌신에 까지 왔습니다. 우리는 자기가 시작하면 그때부터 자기가 아는 방식,자기가 할 수 있는 것으로, 하나님께 협조를 구한다는 것입니다.
l 우리의 개인신앙생활이나 교회가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모르는 길로 보내며, 답이 없는 길로 보내곤 합니다.거기서 무엇을 보게 될지, 어떤 결과를 얻게 될지, 하나님 손에 있습니다.
l 그러나 우리는 내가 알수 있는 길, 내가 알수 있는 것, 내가 안전한 곳에 서서 거기서 일을 하자고 합니다. 내가 아는 식으로, 그렇죠, 더 나아 가셔야 합니다. 그것은 원하던 원치 않던 현실입니다.
l 우리의 현실에서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늘 너무나 뻔한 것들입니다. 여러분 인생이 쉬운게 어디있습니까, 어쩌다 재미있는 영화 하나 만나면 잠깐 쉬고 가는 거죠
l 어디 쉴곳이 있나요, 그런데 하나님이 그곳으로 보낸다구요. 성육신의 길이거든요. 거기에 할일이 있다고 하십니다. 거기서 일하신다고 하십니다. 가난한 자들과 흑암에 앉은 백성들에게 보낸 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무슨도움을 받겠습니까, 예수가 누구인지 누가 알아요,먹고 배부른 사람들이 쫓아오는 사람들에 불과한데, 거기서 하나님이 일하신다고 합니다.
l 너가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너를 통하여 일하신다는 것을 기억하고, 겸손하고 기뻐해라 그런 이야기 입니다.
l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자 만이 그의 인생에 어떤 순간도,경우도, 헛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게 우리의 자랑입니다. 사도바울의 기도였습니다.
l 유진피터슨 ‘….’
l 여러분의 사명은 만물안에서 만물을 충만케하시는 자의 손길로 하나님이 여러분을 보낸 자리에서 하나님의 증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교회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의 성육신이 끌고간 부활의 자리를 위하여 존재해야 합니다.
l 목사님을 통하여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과 하나님이 어떤 식으로 그것을 우리에게 전달하고 말씀하시는 지를 듣는 일을 부탁하십시요. 나가서 여러분의 삶에다가 구체화 시키십시요
l 여러분의 평생에 걸쳐 하나님이 무엇을 만들어 냈는가 자신에게 물으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우기가나 거짓으로 속이지 마십시요
에베소서 2:08~13
l 2장10절의 말씀이 주된 말씀입니다. 2절의 말씀고 대조가 됩니다. 세상과 예수의 대조, 예수안에 있는 자와 예수 밖에 있는 자의 대조, 그것은 신앙생활을 하면 평생동안 싸워야 하는 갈등입니다.
l 세상은 우리가 살아야 하는 정황은,우리가 살아야 하는 세상이라는 권세,논리 앞에 있고, 우리는 그 속에서 예수를 믿는 자로 이 세상의 정신과 요구를 거스르며 살아야 합니다.
l 그게 어렵죠, 그것은 삶의 방법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지위나 조건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경우에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느냐로 나타납니다.
l 그 원칙과 방향을 무엇으로 채울것이냐에서 대조됩니다. 세상의 인정을 받느냐, 잠간의 해결책이냐, 성경에서 요구하는 것 같이 영원한 나라와 영원한 가치를 위하여 지금 받는 고난을 감수하고, 지금의 위협에 맞설거시냐의 싸움입니다.
l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은 것의 싸움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은 막막해 보이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자기가 만든 것으로 욱일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으로 제시되고, 예수로 구체화되고,우리에게 찿아오사 우리로 알게하신 예수를 보내신 하나님의 뜻과 예수로 보이신 모든 삶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그 방식말입니다.
l 너무나 그 정황마다 공통되게 나타나는 것이라, 우리는 그때에 상황에 대하여 불평하거나,핑계될 수 없습니다. 온유함은 가졌을 때, 이겼을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 털렸을 때, 아무것도 없을 때, 졌을 때도 하는 것이요
l 사랑은 만족하고 보상을 받을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지 않을 때도 희생을 각오하고 해야하는 것들이 세상과 우리를 나누고 있습니다.그것이 교회가 해야하는 일입니다.
l 교회가 용서를 한다,사랑을 한다는 말은,추상적인 개념이나 그런 단어로 설명되는 관념론적인 이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안에서 구체화된 그것을 우리 삶에 살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l 예수께서 이천년전에 유대땅 나사렛에서 살았던 것 같이,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삶을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누구를 납득시키거나, 누구에게 나를 설명하거나,누구의 동의를 끌어내는 것과 다릅니다.
l 예수의 삶을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를 따랐던 사람들은 다 오해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늘 감추어져 있어서, 세상은 늘 호기심을 가질 뿐입니다.
l 기독교에 대하여,교회에 대하여 호기심을 가진다는 것은 저렇게 답이 없는 길을 가는가 라는 질문으로 연속되지, 아 그래서 믿는구나 라고 세상은 모를 것입니다.
l 우리 신자들이 기억해야하는 것은 우리가 하는 이 일들이 예수안에서 허락된 신앙이라는 것이,우리의 소망이라는 것이 얼마나 굉장한 것이라는 것을 우리 스스로가 알아야 합니다.
l 예수,그를 믿는다는 말, 그분이 사랑하라 하셨다든가,용서하라고 하셨다는 것은 써먹으라고 하신 것이 아니고, 자기가 사는 세상의 도전과 현실이라는 사실속에서, 세상이 약속했지만 주지못하는 거짓된 것에 환멸을 느끼고 저건 아니다라고 알게 하신 하나님의 빛을 비추신 은혜속에서 인간의 가치와 운명을 비교할수 없는 명예와 영광에 다 거는 것입니다.
l 사랑을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방법으로 쓰이는 것이 아니고,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누구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고,스스로가 납득해야 하는 것입니다.
l 세상에서는 뭐가 안되고, 불편하면 모든 것을 정치에다 화를 냅니다. 거기서 무엇을 참으란 말인가,무엇을 용서하란 말인가, 거기에는 답이 없다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좋다는 것이 아니라 답이 없는 것입니다.
l 한 인생을 이렇게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정부가 해주는 것과는 다릅니다. 부모가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나 세상의 힘으로 정의나 복지를 실현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l 부모가 되는 것은 육신의 정,혈윤의 정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힘이나 제도에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부모가 갖는 책임이 아니라 명예입니다.
l 그런 이야기가 교회안에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다 책임을 떠넘기지 말고, 이 납득 때문에 왔다는 것을 서로가 존중해야 합니다.
l 롬 6:19~21
l 이 세상은 성공해도 헛되고, 억울하면 더 비참합니다. 내가 남보다 져서 비참한 것이 아니라, 세상은 우리에게 줄것이 없습니다. 줄게 있다고 하면 여러분은 여러분을 과소평가 하는 것입니다.
l 인간이 다만 편안하면 전부라고 이해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바보입니다. 비참한 현실입니다. 생각해보십시요, 여러분은 스스로에 대하여 무엇을 원하고 소원하고 있는 지 말입니다.
l 우리는 그것으로 답이 안되도록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다는 건 일단 세상에 대하여 진실을 알지 못하면 예수를 믿을 수 없습니다.
l 그러니 교회로 부름을 받고, 공동체로 모여 책임을 가지는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어느 한사람의 고집이나 괴팍함이 아니라,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제시해야 합니다.
l 어떤 보편성, 인생이 한번 태어나면 죽는다라는 보편성 만큼이나, 죽음이 끝이 아니다라는 보편성을 공동체에 의해서 증언하는 것입니다.생각이 다르고,취향과 관심이 다르고, 지위와 이해관계가 다른데 그 공통점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l 교회를 무슨 기관이나 조직으로 가는 문제는 그 다음,다음,다음 문제입니다. 얼마나 일을 잘하느냐의 문제도 그 다음,다음,다음 문제입니다. 교회는 이 자기납득이 없다면, 교회의 책임과 명예는 감당할수 없는 것입니다.
l 엡 4:17 ~ 24
l 이러한 단어들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고,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 열린시대,새로 주어진 인생은 세상이 요구했던 인생과 어떻게 다른가를 대조하고 있는 것이지, 그것 자체가 가치를 갖게되면 예수는 없어지고 우리 스스로 잘난사람과 못난사람의 구별만 남고, 정죄와 명분만 난무하게 됩니다.
l 고전11:23 성만찬의 가장중요한 메시지가 무엇인가요 주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부활을 기념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의 열매인 믿음과 운명을 가지고 죽으심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l 그가 오해받은 것, 그가 기다리신 것,주의 죽으심,
l 예수께서 새로운 운명을 확연하게 들어나지 못하게 하십니다. 예수께서 그리하신 것 처럼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이해못하고 반대하는 정황속에서 살게 하십니다. 죽으심을 살게 하십니다.
l 이런 가치들이 가치있는 덕목이라서가 아니라, 주께서 그의 일을 하신 방법대로 기다리심과 오해를 감수하는 길로 우리의 신앙을 지켜내는 것입니다.
l 엡4:25~32 이것이 다 가치있는 것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것이 소용없는 정황속에서 해라,입니다.이렇게 하면 일이 풀린다라는 것이 아니고, 주가 다시 오시는 날까지 이길을 가야된다,아무쓸데가 없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라고 그렇게 얘기하는 것입니다.
l 저도 여러분이 소원하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습니다. 아들딸 잘되고 자랑하는 부모되시고,예수 믿은 것 큰 소리 치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얼마나 쉽습니까,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인이 아니면 할 수가 없는 이야기 입니다.
l 어떻게 아무리해도 소용없는 일을 하고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을 해야합니다. 못하면 우리가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말들이 납득이 되시나요.
l 모두가 항복하고, 납득이 가는 일을 하라는 것이 아니고, 예수께서 그러신 것 같이, 그를 죽이고 그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십이요 라고 말하는 자들 앞에 서는 것입니다.
l 저것들 때문에 우리나라 망했습니다 라고 말하는 속에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살아야되는 인생을 살아야 됩니다.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까. 막막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그 길을 살아야 합니다.
l 예수 믿는 것이 무슨 보란듯한 증거들과 분명한 표가 없는 길을 살아야 합니다. 무엇을 가지고, 나는 예수안에서 참된 가치를 알았다라는 것을 가지고요, 다른 것으로는 그것을 채울 방법이 없습니다.
l 예수가 누구시길래 당신과 같은 사람을 만드셨습니까,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 답이 없는 길을 가신다는 말입니까, 그것을 위하여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말입니까, 그래야죠. 그것이 우리 모두가 가야할 길입니다.
l 얼마나 쫓아오느냐하는 문제는 매일 해봐야 합니다. 쉽게 판정을 내릴 수 없습니다.
l 롬 12:9 ~ 21
l 상대방에게 영향을 미치거나, 보상을 받아야 하는 정도로는 안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이유가 없습니다.
l 고전 15:50 ~ 58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 승리를 쟁취하지 마시고, 순종하십시요, 그리고 막막한 신자의 길을 가십시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죽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을 기억하십시요
l 우리가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당한 일 속에서 하나님이 승리를 만들어 주지 않는 이상 인생의 승리라는 것은 없습니다. 보상은 하나님께로만 있지 세상과 사람으로는 없는 것입니다.
l 예수를 믿는다는 말이 무엇인지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셔야 합니다. 대강 믿고 계시면 불만이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뒤집어 씌우죠. 제대로 신자의 길을 가면 자기 생을 살기에 바쁩니다. 그리고 감사하죠
l 내일의 어떠한 우여곡절도 겁날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실패 마져도, 죽는 것 마져도 손해가 아니니까. 그 고백을 가지셔야 합니다. 우리 생애 전체를 항복시키는 데는 시간이 걸리겠죠. 적당히 타협하고 이 길을 갈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놓아두시지 않습니다.
l 다른 것에다 책임을 변명하지 마시고, 각자의 생애를 하나님앞에서 확인하십시요. 그리고 승리하십시요. 기적과 축복이 여러분의 삶을 채울 것입니다.
에베소서 2:11~22
l 여기에 두 사람이 존재합니다. 두 사람 중에 하나는 유대인이고 하나는 이방인입니다. 선민과 그 밖에 나라입니다. 이 당시에는 유대인과 헬라인이죠. 유대인과 이방인을 하나로 묶어 예수안에서 한 성전을 만들어 가고 계신다라는 것입니다.
l 예수를 믿으면 그만이지라는 말이 당연하면서도, 그것이 선민, 유대민족과 유대인들로 있지않고, 교회라는 앞에 있었던 선민과 전혀 다른, 예수를 믿는다는 조건으로, 유대인이어야 하고, 할례를 받아야 하고, 히브리 민족이어야 된다는 것에서 이렇게 바뀌면서,
l 바울식으로 이야기하면, 유대인과 이방인을 묶어 21절’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l 교회란 완성된 자들이 모여 어떤 특별한 증언을 하는 것 보다, 예수로 인하여 시작하고 열어놓은 길을 예수안에서 채우는,’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안에서 충만케 하시는 이의 충만이라’에서 보인 것 같이 교회는 특별한 기관입니다. 특별한 조직이고, 특별한 약속입니다.
l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다 그 완전함을 바라고, 예수를 믿는 자로서의 어떤 성숙도,완성도에 대한 소원이 다 있게 마련인데, 그러한 요구들이 현실에서 잘 성취되지 않는 것이 또한 현실입니다. 소원과 간절함은 있으나 잘되지 않는 것이 신앙인데,
l 그 신앙을 교회안에 묶음으로서 그 안에서 완성된다고 얘기함으로서 그것이 시작에서 완성까지 어떤 과정이고, 그렇게 함으로써만 이루어지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에서 나타나신바와 같이, 하나님이 홀로하신일을 근거로하고, 그 일로 약속된 목적지로 가는 과정은 말하자면 이런 연합,함께함,관계, 우리 스스로가 참여함으로서 완성이 되며,허락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l 이것을 풀기위해서, 성화가 무엇이냐? 우리는 기본적으로 거룩하게 된 것,거룩함의 완성이라 성화를 이해하죠. 그러나 거룩하게 된 것으로서 아직 안된 것이라고 얘기 할 수 있습니다.
l 거룩하게 되어 가는 중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세상에서는 완성될 수 없다. 몸에 부활이 허락되는 주님다시 오시는 날에,이 모든 것이 완성이 되므로 그 전에는 과정이 있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l 그 과정이 있다는 말은, 완성되지 않은 것을 체념하라던가, 완성되지 않아도 괜찮다 라고 얘기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그것이 과정이라는 얘기속에는 우리의 참여, 우리의 적극적인 의지와 책임을 요구하는 부분이 있다.그런 이야기입니다.
l 다만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함께 지어져 간다는, 함께라는 말을 잘 이해하기 위하여, 성화자체에 대한 중요한 교리들을 비교해 볼필요가 있습니다.
l 성화를 루터교에서는 칭의,구원에 대한 더 깊은 이해라고 이해합니다. 칭의가 있고 성화가 있는 것이 아니라 구원속에 그것이 다들어있다.우리가 받은 구원이 무엇인지 더 깊이 알아가는 것이 성화이다.
l 웨슬리안 감리교도 신앙의 온전한 헌신과 사랑을 성화라고 합니다. 말로만하고 형식으로만 할 것이 아니라 정말 자기의 생애와 자신을 받치는 것을 성화라고 합니다.
l 오순절파는 성령의 임재,확인으로 성화를 이해합니다. 내가 믿고 열심을 부리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하나님이 찿아오사 확인시켜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마땅한 믿는 자의 체험이어야 한다.
l 신비주의자들은 어떤 영적인 신비한 각성,영성에 대한 신비한 깨우침 등으로 설명을 합니다.
l 개혁주의는 독특한 성화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화란 예수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l 예수님과의 연합, 이것이 우리에게 낯선이유는 모든 성화가 어떤 도덕적,종교적 완성도에 관한 것이라고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개혁주의 성화는 사뭇 다르죠, 예수그리스도와의 연합이 무엇이냐,오늘 그이야기 입니다.
l 우리가 교회를 허락받는 것은 하나의 공동체와 조직이나 기관으로서가 아니라 각 개인이 교회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선민 이스라엘에게 주었던 어떤 독특한 지위,독특한 사명의 민족적 연장선상의 새로운 기관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선민이라는 것이 도무지 도움이 되지않는 차별없이 선민과 이방인이 동등하게 은혜로만 들어오는, 다른 것이 오히려 장애가 되는 새로운 신약시대,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가 교회라는 이름으로 지난 이천년동안 예수그리스도의 오심과 구원하심과 부활하신 승리이후에 하나님의 약속하심을 승계하고 있습니다.
l 교회가 이방인과 선민이 함께 예수안에서라는 식으로 만물안에서 만물을 충만케하시는 이의 충만으로 교회가 허락되고 있다는 것을 묶으실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묶는다는 개념,예수와 우리가 하나로 되있다는 개념은 개혁주의에서 성화란 무엇인가라고 했을 때, 하나님이 예수안에서 시작하시고, 궁극적으로 약속하신 것을 어떻게 이루시냐의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와 묶여있다.이렇게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l 우리의 몫이 예수와 함께라는 이름으로 책임이 면제되거나, 핑계될 수 있다로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참여하고 우리의 것이매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와 묶여 있어, 신적 의지와 능력과 지혜에 붙들려 있다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l 롬 6:3~11 예수와의 연합, 예수의 죽음에 함께 붙들린 자라면, 그의 살으심에 함께 붙들린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우리가 모들 때 주께서 오셔서 우리를 당신의 죽음속에 다 붙들어 우리의 죽음을 끝내고 부활하사 우리모두를 함께 부활시켜, 부활생명으로 반전시키셨습니다.
l 예수를 믿고 신자다워진다는 성화와 신앙의 완성도에 관한 우리의 소원이 한 개인의 책임의 단계에 머물러서, 이 죄는 짓지말자,죄를 지었다, 안지었다,선을 행했다,안했다라는 식으로 구별하지말고, 나는 예수안에서 하나님의 통치아래 있는가, 아니면 홀로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l 구원이 하나님의 뜻이요,하나님의 능력이였듯이, 우리의 운명과 우리의 상태를 방치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간섭으로, 우리를 어떤 깨우침이나 능력있는 자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 밖에 있는 자를 붙들어 하나님의 통치안에 가두시는 것입니다.
l 그것이 죄냐 아니냐를 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냐 아니냐를 묻는 것입니다. 주인이 다른 것입니다. 그 통치에 순종하고 있느냐, 거부하고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l 우리를 묶어 놓았다, 우리를 하나님이 예수안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요구하고 계시는데, 이방인과 유대인을 묶어놓고, 우리 인류를 예수와 묶어 놓아 누구하나 다른 방향으로 간다고 해서 다 끌고 갈수 없는 그런식으로 교회를 허락했다 하는 내용을 성경이 선언하고 있습니다.
l 엡 5:22~25,31~32
l 부부는 어디까지가 나인지 모르게 묶여있어서, 평생가지 않은 길을 가게합니다. 엄마가 못가르친 것을 며느리가 아들에게 시킵니다.
l 무슨 고급한 명분으로 우리가 양보하여 타협하며, 얼마나 조마조마하겠습니까, 이기심에 덩어리인 인간이 누구를 위하여,나라를,정의를,평화를 위해서, 거짓말입니다. 나는 그렇게 위대하지 않습니다.
l 하나님의 섭리와 능력과 지혜에 대하여 우리가 그것보다 더 나은 방법이 있습니다라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만 못하거나, 진정성이 없다는 것입니까, 그럴수 없죠, 예수인데, 그 아들 예수. 교회는 그의 몸이니, 예수와 동등한 가치, 동등한 대접, 그것이 우리입니다.
l 그렇게 우리가 묶여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습니다. 어느 것이 최선인지는 모릅니다. 여러분이 만족하거나,불만이시던 그 인생이 여러분을 무엇을 만드는 가를 주의해 보지 않으시고, 다만 불평하고,자랑하면 그것이야 말로 어리석은 짓입니다.
l 우리는 우리의 인생이 우리의 이해와 통제와 결정속에 있다면 우리는 살 수 없습니다. 우리의 변덕은 횟수를 기억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매순간 잊으려하고, 누군가에게 책임을 떠 넘기려고 합니다. 그러고도 안되면 원망합니다. 국가를,민족을,시대를,태어난 것을, 다 원망을 합니다.
l 그것을 훌륭하게 만드는 이는 하나님 뿐이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 하나님의 자녀들이 각양각색의 형편과 경험속에서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다.
l 전전긍긍하고, 속수무책으로 영적인수 밖에 없는, 넋이 빠져있는 데 시간이 흘러서 고함지르지 않고 있는데, 옆에서 훌륭하다고 하는 것입니다.뭐가 훌륭하고 뭐가 영적이란 말입니까 넋이 빠져있었는데, 그렇게 하나님이 교회로 묶어놓으신 것입니다.
l 골 3:1~4 교회를 이렇게 반복적으로 설명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묶여있습니다. 지금은 감추어져 있습니다.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는 우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
l 이것을 놓치시면 안됩니다. 막막한 길을 걸으십시요. 답이 없는 길을 걸으십시요.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몸으로 묶였다는 것을 아십시요. 여러분이 가시는 곳에 주께서 함께 가시고, 여러분이 막막해하는 그 순간도 그리스도와 함께 묶여있습니다.
l 내가 무색,무안한 자리에서도,내가 불리한 자리에서도 그리스도가 나와 당신을 분리하지 않으십니다. 그 순종과 불순종, 그 자랑과 못남의 갈등과 뒤엉킴과 그 시행착오와 후회와 소망과 간절함과 허망함을 다 비벼서 하나님이 만들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l 놓치 않겠다. 교회이지요 교회, 교회란 그렇게 무시무시한 하나님의 의지와 섭리의 결과입니다. 약속입니다. 구체적인 기관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한번 모일 때마다, 그어떤 이해나 정도를 벗어나, 나와 다른 정황과 상황의 어떤 현실속에서 한 인격이 가지는 가슴아픈, 말할수 없는 각각의 현실을 딧고, 누구가가 나와 같은 교회에 나온다는 사실에 놀라셔야 합니다.
l 하나님의 성실하심의 보편성,오늘이라는 하루를 하나님이 쉬고 있거나 외면하고 있지 않다는 확인을 교회에 오시면 하는 것입니다. 부부가 그렇게 살듯이, 내가 혼자가 아니구나, 성경이 이야기 하는 교회입니다. 그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성전이 되어가는, 이방인과 유대인이,남자와 여자가,
l ‘너희로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우리는 뭐가 좋은 조건인지,무엇이 최선인지 우리는 모릅니다.
l ‘찬송하리로다.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져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l 이 선언이 에베소서 전체를 압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류와 각 개인의 인생을 압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선하심과 성실하심으로 압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일상입니다.
l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는 하루하루가 하나님이 이 성실하심으로 이 약속으로 그의 능력과 그 아들을 보내시는 정성으로 우리와 함께 일하시는 하루하루입니다.
하나님의 성의와 그 크기를 기억하시고, 여러분의 신앙과 인생을 소중이 여기십시요. 진지하게 절망하시고,답이 없어 쩔쩔매시되, 그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여러분의 인생으로 허비하지 마시고, 무게를 더하시고 채워넣으시기 바랍니다
에베소서 2:11~22
l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에베소서의 결론,1장22절 ‘교회는 그의 몸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신는 자의 충만이니라.’모든 성도들은 예수그리스도의 충만이요, 예수그리스도의 충만함이 각각에게 충만으로 나타나는 존재이고 인생입니다.
l 2장22절 ‘…함께 지어져 간다’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헬라인과 유대인을 묶으신,선민과 이방을 하나로 묶어서 완성을 이루신다는 오늘의 본문의 초점입니다.
l 우리가 바꾸었으면 하는 조건들에 대하여 성경은 관심이 없습니다. 골3:9~11 : 우리가 값으로 처주지 않는 것으로 하나님 일하시고, 우리가 싫어하고 이건 아닐거라고 부정하는 것으로 하나님 충만을 이루실수 있습니다.
l 그 역사적 증거가 예수그리스도의 성육신이요, 그의 고난받으시고,죽으심이고, 부활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말 속에는 이런 모든 내용이 들어있고, 확인되고 있습니다.
l 예수를 믿으면 그러한 조건을 바꾸어주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의 소원을 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예수안에서 하나님이 그의 신실하심과 그의 거룩하심으로 하신 약속을 역사와 인류에게 확증하셨다. 이미 다 내 주었다 라고 이해해야하는 것입니다.
l 양보하거나 보류해 둔 것이 없습니다. 다 주셨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싫어하는 우리의 위치,환경,조건,당하고 있는 어떤 어려움들, 자랑할것 없는 우리의 약소함, 같은 것들이 큰것이라고 합니다. 그것을 누리고 자랑하는 것과 동일하다고 합니다.
l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은 언제나 소수자의 지위에 있는 것입니다. 일반역사속에서 예수믿는다는 것은 값으로 쳐주지도, 보상해주지도 않습니다. 이상한 것이고, 이해할수 없는 일이지요, 소수자로,피해자로,외면을 당한자로,억압을 받는 자로, 쉬운상대로 대접을 받는자로 살고 있습니다.
l 하나님이 우리를 억울하게 하신 모든 것이,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과, 차별이 없는 조건이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l 고전 7:17 ~ 24 여러분이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신앙을 갖다쓰려고 하지마시고, 거기서 하나님과 함께 거하십시요.그 짐과, 고통과 그 해답이 없는 길을 주께서 그리하신 것 같이 걸으셔야 합니다.
l 하나님이 거기서 무엇을 만드는지 보십시요. 겸손은 노력해서 못한다고 했지요. 어떻게 해야 겸손하여 진다구요, 자기가 얼마나 못난나를 알아야 겸손하여 집니다.
l 인내는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다른 방법이 없어서 하는 것입니다.
l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주께서 거하실 성전이 되기위하여 지어져 가느니라 너희에게 손해되는 것이 없다. 너희가 원하는 것이 너희의 목적지가 아니다.
l 갈 5:22~23 ‘성령의 열매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l 우리의 한심한 것, 우리가 가치있게 여기지 않는 것 속에서 하나님이 금은 보화를 채내신다고 합니다. 만드신다고 합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l 골 3:10~14
l 시편 105편
l 그러므로 서로 용납하겨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l 예수믿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십시요. 교회에 나오시면 싱글벙글하십시요 누가 묻거든 비밀이라고 하십시요. 복된 인생을 살아가십시요
에베소서 2:20~22
l 교회에 대한 설명중에 하나가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움을 받았다는 20절의 본문입니다. 우리가 선지자들이라고 보통 부르는 엘리야,엘리사 그리고 선지서라고 하는 이사야,예레미아,에스켈,다니엘,호세아 이렇게 이어지는 모든 선지자들을 기억할 때,
l 그들의 사역이 이스라엘의 정치적,종교적 타락을 꾸짖고, 회개을 촉구하는 자로 나섰다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강열하게 우리가 기억하고 있습니다.
l 그러나 선지자들의 공통적인 사역중에 너희가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멸망당한다고 해서 그것이 끝나지 않는다 입니다. 멸망으로 패배로 끝나지 만은 않는다.
l 회개를 촉구하는 저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아주 날카롭고 무거운 추궁과 함께, 하나님 나라의 완성은 정치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잡혀간다고 해서,나라가 망한다고 해서 희망을 버릴 필요는 없다.이렇게 묶여 나옵니다.
l 하나님의 법을 사회적,국가적으로 지켜야 한다라는 요구와 함께 세상권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이렇게 묶여 나와서 우린 전자에 너무 많은 인상을 받고 있어서,선지자라 하면 부패한 권력자 앞에 하나님의 정의로 대항하는 사람으로만 깊이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l 우리는 이스라엘이 중요한 책임중에 하나가, 그들이 선민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민족들과 구별되면서, 동시에 모든 나라에 대하여 제사장나라로 부름을 받았다는 이중성을 늘 놓칩니다.
l 그들이 특별하게 부름을 받았다는거와 함께 그 특별함이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것을 놓치듯이, 선지자라는 인상속에 꾸중을 하고,대항을 하고,막아선 하나님의 심판과 분노의 목소리만 듣고, 그것이 어떤 하나님의 더 큰 목적과 완성을 위하여,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시야를 넓히는 완성에 내용을 하나님의 뜻으로 끌어올리는 가르침을 놓치곤 합니다. 지금 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l 선지자들은 보편적 하나님나라를 선포합니다. 보편적 하나님 나라라는 것은 선민과 이방인을 구별하듯이, 신앙이 좋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나누는 싸움이 아닌,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 뜻을 따르는 자만을 위한 복이 아닌, 하나님의 정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l 하박국이 그랬죠, 악인이 득세하여 의인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데 놔두십니까, 함게 멸망을 자리로 갈것입니다. 함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l 이사야 11:10~12 열방을 모으신다고 합니다. 선민들만을 위한 배타적인 구원이 아닌, 이스라엘의 회복은 그가 하신 약속이 신실하다는 것의 두드러진 특징입니다.
l 이스라엘의 회복은 모든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뜻의 보이는 시범입니다. 예언은 미래를 점치는 것이 아닙니다. 장차될일을 미리아는 것이 아니라,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언약이 훼방될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l 하나님께서 그의 약속을 결국 이루실 것이니,나라가 망하고, 성전이 훼파되고,하나님의 이름이 모욕을 받는 것을 감수할지라도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향한, 당신의 모양으로 지은 인류를 향한 약속,창조의 목적, 그의 신실함과 능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선지자들의 메시지입니다.
l 아모스 5:21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아닙니다. 너하나 옳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온세상의 통치자이고 모두를 향하여 가슴을 열고 있다는 것, 법을 지키는자, 이해하는 자, 개인에게 묻지말고 사회적으로 실천을 하라는 것입니다.
l 사회를 정의와 법으로 몰아가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회성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나를 모르는 자, 내 말을 거스르는 자들에게도, 너희가 정당하여 이기적이거나, 배타적으로 써먹지 마라.내가 너희 절기를,너희 성회를 기뻐하지 않겠다 입니다.
l 우리는 복음주의 영향속에서 개인구원에 깊은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질문은 구원받았어, 오늘 죽어도 천국갈 수 있어,이런 표현으로 가장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l 누구를 비난하고 욕하는 데만 써먹었지, 사회의 정의를 세우라는 것은 법을 지켜 모두에게 손해가 없도록 하라, 이런 것은 세상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인간에게 이기심을 버리고 이타심을 가져야 하는데 인간에게 이타심이란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만이 하시는 것입니다.
l 하나님이 나와 함께 일하시고 내가 사는 세상을 향하여 세우셨다는 것, 그것이 선지직입니다.
7
l 예레미아 7장1~7 하늘과 땅 모두를 지으시고 축복하십니다. 회복하시기로 결심하시고, 그 아들을 보내십니다. 이 곳이 여호와의 전이라,라고 해서 그 안에 들어가는 자와 않들어가는 자를 구별하여 나누지 말라 입니다.
l 너희 성전에 들어와 나를 섬기며, 나의 백성이라고 자랑하고 있느냐, 그러면 그러지 못하는 자들에게 가서 핍박하고 심판하지 말고, 너가 믿는 하나님의 자비로우심과 넉넉하심을 보여라. 과부를 대접하고,약한자를 돌아보라. 선행이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렇게 해야한다는 법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l 하나님을 알고,순종하는 자들에게 배타적이 아니고, 이분법적증명이 아니고 모두를 위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아는자가 보이라 이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l 그러니 신앙은 고함질러서 이기지 않습니다. 신앙은 은혜가 되야 됩니다. 옳바른 소리를 하는데 은혜가 안됩니다. 배타적으로 신앙을 확인하지 마십시요. 누구를 죽여서 확인하시지 말고, 모세와 바울처럼,에수님으로 돌아가십시요
l 여러분의 그때 실력만큼,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를, 여러분 매일 도전받는 현실앞에, 선지자가 그거죠, 나라가 망하고, 하나님이 심판하시겠다고 하는데, 정치와 권력을 진 자들은 책임이 없고,백성들은 죽겠다고 아우성 치는데, 그 답이 없는 국면에 선언 합니다.
l 그 답이 없는 국면에 선지자가 선언을 합니다. 정신차려라. 하나님이 계신다. 너희 회개하라, 길을 바르게하라. 그게 다만 꾸중이고,싸움이 아니고, 하나님의 하소연이죠
l 예수를 믿는 것이 어떤 능력,책임,영광인지 알고 살수 있도록 해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를 하십시요.
l 교회는 역사속에서 주류가 되서는 덕을 본적이 없습니다. 중세시대에 정치권을 가지자 잘한것보다 못한 것이 더 많았고, 부흥시대가 되면 하나님이 그렇게 많이 일하시는 것을 확인하는 것 보다, 주류가 되어 힘을 가지려 하여 언제나 부패하곤 했습니다.
l 하나님은 우리가 감추어져 있고, 아무것도 아닐 때 더 많이 일하시고, 크게 나타날때는 경고가 더 많으십니다. 우리가 일상 현실세상속에서도 성공이 더 많을 때는 우리에게 시험이 더 많습니다. 끈임없이 성공을 구하고 있지만, 성공을 해서는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l 사도들에 대하여도 생각해보겠습니다. 눅 22:28~30 너희는 모든 시험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 즉, 어떤 시험, 권력으로 목적을 이루라는 시험속에 늘 같이 있었다, 내가 가진 기적들은 권력이 아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능력이다.
l 그 시험, 교회를 힘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시험, 욕을 안먹고 싶은 시험, 오해를 받고 싶지 않은 시험, 억울하고 싶지 않은 시험, 욕할 것이 없는 신앙과 교회가 되는 시험,
l 예수님은 잘못한 것 하나 없이 죽으셔야 했습니다. 그들의 분노는 너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여든 거기서 내려와 보라 입니다. 그들의 분노는 죽은자를 살리고 오천명을 먹인 사람이 왜 죽는가 입니다.
l 교회가 억울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맡겼는지 보십시요.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을 모르니까, 여러분의 지위와 형편을 불만하십니다.
l 가지고,이겨야 한다고 생각하시죠, 그래야 역량이 있고,그래야 확인이 된다고 하는 거죠, 그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평생 그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l 한번 더 웃을 걸, 한번 더 양보할 걸, 그런 생각이 들어야 합니다. 예수를 믿었으면, 자신의 허망함을 알고,가치있는 것이 성공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인생이라는 이 진실앞에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l 내가 가진 것 보다 더 큰 힘을 가지고있다. 나누워 줄 것이 있다. 하나님 붙잡고 우리를 영광중에 승리하게 하시는 그 운명에 있다.라는 아는 자의 넉넉함으로 살아야 하며, 은혜를 끼치는 사도들,
l 행 2:22 베드로의 설교,성령의 오심이 무엇인가, 행 26:12~18 일어난 사실 예수께서 부활하셔서 내게 나타난 사실, 그가 살아나셨다, 살아나 그의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나를 종으로 삼으셨다. 바울은 자기에게 다른 어떤 조건을 원치 않습니다. 자기의 조건속에서, 하나님이 인도하신 그 형편속에서 증언을 합니다.
l 그렇게 베드로와 바울의 말한바, 그 사도들이 말하는 바 그게 교회입니다.행 26:29절
l 여러분들이 예수의 몸으로, 공동체로 모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아셔야 합니다. 어떻게 일하는 지를 이해 하셔야 합니다. 아무것도 남겨놓지 않으셨습니다. 교회를 남겨놓으셨습니다.
l 부활의 예수께서 사망을 이기시고, 세상을 심판하시고,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시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교회하나를 덩그랗게 남기고 가셨습니다.
l 모든 것을 약속하시고, 그러니 그 힘을 누리세요, 그 속에 일원이 되어 있다는 것을 그 위대함을 아시기 바랍니다.너희가 풀면 하늘에서도 풀고 너희가 매면 하늘에서도 매신다. 그약속입니다.
l 에베소서의 가장 큰 주제가 교회입니다. 교회가 예수의 충만이고, 예수안에서 허락한 충만이 구체적으로 허락되는 곳이 교회입니다.
l 이렇게 허락된 교회는 22절 ‘예수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입니다. 첫째는 시각적 측면을 강조하고 있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구체적입니다. 관념적이지 않습니다.
l 구체적이라는 것은 엡 1:3 ~ 12‘…그리스도 안에서…’ 이 말이 반복해서 나옵니다. 구체적으로 하셨다는 말입니다. 말로만하지 않고, 뜻으로만 하지않고,그의 권위로만 하지 않고, 구체적으로 하셨다는 말입니다.
l 그의 피로,말로는 쉽습니다. 예수안에서라는 말은 인성을 입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메시아라는 말은 그리스도,구원자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구체적인 곳입니다. 관렴의 덩어리가 아니라,
l 예수안에서 구체적으로 부름을 받고, 고백으로 같이 모인, 손과손을 맞잡은,그리스도와 십자가로 묶여진,마음에 들거나 들지않거나,유익이 되거나 손해가 되거나,자랑스럽거나 짐이되거나,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일하시는 것입니다.
l 두번째로 생각할 내용은 시간성입니다. 지어져 갑니다. 롬 12:9~11 시간성을 보면 더욱 이해할 수 있습니다. 9절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라는 말은 아직은 철이 없어 너가 다 모르는 것이다 입니다.
l 12절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갑자기 탁 끄집어 내어 너 이렇게 해야 되가 아니라, 결국엔 이렇게 가야 한단다 입니다.
l 14절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결국은 너희를 박해하는 자가 끝까지 저 힘을 가지지는 못한다. 결국 너가 이기게 되어 있단다.입니다.그러니 지금 바꾸어 달라고 하지말라 입니다.
l 긴 시간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안에 무엇을 만들고 있는가를 봐라 그것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구체적으로 이렇게 모여서 많은 시간을 보내왔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건너 왔을 까요, 열정도 겪어 봤고,자랑도 겪어 봤고,태만한 적도, 철없었던 적도 있었고,
l 다 쌓여와서 지금의 우리 분별, 넓은 마음,기다릴 수 있고,우리 자식에게 이래라 저래라가 아닌 하나님께서 은혜 베푸셔야 합니다라는 기도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l 저를 여기까지 인도하셨습니다. 인생에 자랑할게 하나도 없는데,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랑과 은혜의 비결을 알게하셨으니 너 요구할 것이 없습니다.라는 자리에 왔습니다.
l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에 함께하셔서 기도하는 자리까지 오게 하셔서 나 우리 자식을 위해 기도합니다. 교회가 지금 해야할 기도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여 하나님이 은혜 베푸시길 바라야합니다.
l 잘해야 하나님이 은헤 베푸시는 것이 아니라, 철없었을 때,잘못갔을 때, 하나님이 은혜 베푸시면 손해보지 않습니다.그것을 아니까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하십니다.
l 롬 12:16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
l 예수안에서 구체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적과 은혜의 크기의 구체적 증거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로 세우신 교회입니다.교회는 그 근거,뿌리,그 힘과 능력이 다른 것입니다.
l 하나님의 의지 신실하심 그의 사랑이 구체적으로 체워지는 곳이 교회입니다.
l 17절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말고 모든사람 앞에서 선한일을 도모하라’ 교회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어라, 모두를 내 마음 같게하고 나 편하게 하려는 생각,그 시험에서 지지마라. 선으로 악을 갚으라라는 말은 선한 일을 하여 악을 감동시키라는 말이 아니라,그것은 그 사람의 몫이다 너는 너의 길을 가라’입니다. 교회입니다.
l 교회안에 다른 견해가 나오기도 하고,싸우기도 하고,어려운일이 생기기도합니다. 실컷보았습니다. 교회가 깨지는 것도 보았습니다. 할 수 없는 소리가 나오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 와중에 흔들리지 말고 자기 길을 가십시요. 여러분이 가지신 신앙의 실력만큼 기도하며 자리를 지키셔서 하나님이 그것으로 무엇을 만드는지 보십시요. 겁낼것 없다. 그것입니다.
l 18절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싸워서 이기지 마라 입니다.힘으로 이기려고 하지 마라, 그것은 하나님께 맡겨라 입니다.
l 19절 결과는 하나님 손에 있다. 누가 잘했고 못했고는 하나님께 맡기고,은혜를 구하고, 교회가 무엇인지 기억하고,너가 가진 신앙고백을 실천하라.
l 20절 시간 싸움입니다. 우리가 철없는 자리에도 있었고,못난 자리에 있을 수도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의 디모데전서 1장 12절~ 오독을 합니다. 내가 그땐 몰라서 그랬다라고 아닙니다. 도덕성이 아닙니다. 몰랐다는 것이 가장 큰 죄입니다. 가장 큰 죄는 은혜로만 그것을 뒤집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l 내 안에서 하나님을 알고 회개할 능력은 만들어 지지 않습니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입니다.그러니 그 은혜를 구하십시요. 다른 조건과 방법으로 교회를 정상화 시킨다고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l 그러니 이런 못난 자리에 있을 때 하나님이 기다려 주사, 후회를 한다는 것은 그때 못났던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못난 자리에서 벗어났다는 뜻입니다.
l 그것을 기다려주시는 하나님, 그렇게 교회를 지어가고 있습니다. 쌓아가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 쇄잔하여 지는 것이 아니라, 뭘로 말할 수 없이 숙성되는 것입니다.
l 세번째로 기억할 것은, 교회로 세웠다는 것은,엡2:22로 돌아와서 ‘…예수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는 이런 차원에 서 있습니다.우주적 차원위에 있습니다.
l 우주적차원이라는 것은 예수는 구원받을 백성을 위해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엡1:7~10 우주적 승리,역사적승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믿는자와 믿지 않는 자를 나누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보낸 것이 아니라, 온 창조세계를 회복하려합니다. 승리하시려합니다.
l 그래서 교회를 보이는 형태로 세상안에 세워놓은 것입니다. 믿는자를 키울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을 향하여 문을 열고 끌어 안어 모두를 함께,함께 연결하여 지어가도록,
l 엡2:11~18 여기서 둘은 유대인과 이방인입니다.유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구원은 유대인에게 한정되어 있습니다.이방인은 하나님이 외면한 자들이었습니다. 십자가로 그들을 끌어 안으사, 유대인에게 허락했던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지위를 허락하십니다.
l 동일하게 교회를 세우므로써 예수그리스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이 고백위에 내가 교회를 세운다, 세상을 향하여 교회는 하나님의 끌어 안으심,베푸시는 구원의 구체적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l 교회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하나로 묶으신 것 같이,우리 신자와 믿지 않는자를 하나님이 구원으로 묶으려고, 우리를 먼저 부르셨고, 교회를 세우셨다는 선교적 사명과 책임을 잠시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l 여러분이 먼저 하나님을 믿었으면,하나님이 가지신 그의 아들을 보내사 십자가를 지우신 하나님의 마음에 참여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루 아침에 되지 않을 것입니다. 많은 과정을 거쳐야 그 자리에 올것입니다. 옳고 그릇된 것을 알고, 그것을 살아내는 법을 배우고,많은 나날들을 눈물과 탄식으로 보내고,가슴이 찢어지고,부끄럽고,큰 소리 치고, 이런 모든 것들 것 지나,드디어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교회는 그런 곳입니다.
l 그러니 교회를 섬기고,함께하고,그 속에서 크고,그리고 하나님의 손길로 존재한다는 것을 솔로몬의 지혜에서 보인 것 같은 어미의 마음으로 이해하지 못하면, 교회는 진정한 힘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어미가 되어야 기도할 수 있습니다.
l 자기 한계에서 포기하지 않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악에서 지지 않게하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것은 포기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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