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tation on Bible/Ephesians(에베소서)

에베소서 - 박영선 - 제3장

Four Seasons Daddy 2023. 7. 11. 12:47

 

 

에베소서 3:01~06

 

l  지금 우리가 이방인으로써 기독교에 주된 구성원이 된 마당에서야 이방인이란 말이 무슨 특별한 것이 없지만, 사도바울이 이 복음을 전할 때만해도 그것은 말이 안되는 것이였습니다.

 

l  이방인들의 사도가 되었다는 말은 안믿는 사람들의 사도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예수를 믿는 일에 중요한 편견중에 하나가, 마치 자기는 운명적으로, 혈통적으로, 자격으로 하나님에 백성으로 속한 자였고, 안믿는 자들은 원래부터, 혈통으로나, 가문으로나, 나쁜 종자이다 라는 배타적 이분법이 있습니다.

 

l  3:4 당시에는 사도바울이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말이 이방인에게도 유대인과 동등하게 이루어진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를 한 것입니다. 상상할 수 없는 선언이었던 것입니다.

 

l  이 시대에 이방인들을 향하여 예수와 복음의 사도가 되었다는 의미가 바울 스스로에게 얼마나 큰 깨우침이였다는 것입니다. 한 민족, 한 나라가 아닌 온 인류와 우주적 영역으로, 역사와 운명에 있어서 하나님의 힘이 얼마나 큰가 입니다.

 

l  신약시대에도 믿는 자와 안 믿는자와의 관계를 그으면 그을수록 사실은 편협하게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야 된다는 말은 선택과 결심 보다 크게 하나님이 이 뜻을 가지고 계시다. 하나님이 우주와 역사를 온통 그의 뜻으로 목적하시고,개입하시고,바꿔 놓으셨다 라는 개념으로 이해하지 못하면, 끝없이 안믿는자, 잘 못믿는자, 자신을 구별하는 일에 모든 정력을 쓰고 자기 자신의 정체성의 확인을 누굴 비난하는데 쓸수밖에 없습니다.

 

l  1:3~6  창세전에 예수그리스도 안에 예정

 

l  오늘날 신약시대에 교회가 가진 책임과 크기를 증거를 확실한 이유에서 외면하곤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사명은 일차적으로 선교적입니다. 선교적이라하면 맨 먼저 찿아가는 선교를 떠올립니다. 그런 의미가 아니고 증거로서 선교적이라는 것입니다.

 

l  어떤 증거, 하나님이 역사에 현실에 우주에 주도권을 가지고 일하고 계신다입니다. 선교적입니다. 십자가를 걸고 교회라고 써 붙이는 것이 선교인 것입니다. 하나님 일하신다. 예수안에서 구체적으로 증거를 삼으셨다. 겁내지 마라.

 

l  구제,봉사,전도 들이 우리가 가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어떠하심에 증거하는 구체적인 실천들과 손길이 될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작아지시면 안됩니다.

 

l  창세전에 예수그리스도안에서 우리를 예정하신 그의 깊은신 뜻이 이러한 것들을 가지고 있다.라고 크게 하나님을 알게 되면 그의 크신 능력을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보이신대로 자신의 인생을 마음껏 맡기실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이 어려움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l  3:5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은 유능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그의 베푸시는 복을 나르는 것입니다. 그들에 의해서 하나님이 없었던 것을 만들어 내시거나,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나누고 있습니다.

 

l  우리가 가진 복음은 안 믿는사람에게 보내집니다. 그것이 현실인 것입니다. 회사가 그렇고 시장이 그렇습니다. 관리가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이 보내신 그 시장에서 하셔야 합니다.

 

l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가, 구원이라는 것이 어떤 차원의 이야기인가, 얼마나 많은, 전 인류를 대상으로 전 역사에 걸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라. 네가 믿게 된 것과 네가 믿어서 살게된 인생과 보내신 환경이 무엇인지를 알아라 입니다.

 

l  6이방인들이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l  은혜를 받는 다는 것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자신의 존재와 자기의 현실에서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손길이구나, 이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이구나,내가 그의 손에 붙잡혀 위대한 길을 가고 있는 중이구나를 아는 것입니다.

 

l  12:1~3

 

l  이 무시무시한 약속이 지금 우리의 현실입니다. 우린 지금 나그네된 인생을 사는데,하나님의 도구로 살고 있습니다.

 

l  3:6~9

 

l  모든 이방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셨읍니다. 그러니 정죄하러 돌아다니지 마시고, 복에 근원으로 돌아다니고 있다,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모든 이방이 복을 받도록 보냄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l  내 존재가 얼마나 굉장한 존재인지 아셔야 합니다. 아브라함으로 부터시작하여 아브라함의 후손은 하늘의 별같고 바다의 모래같게 하기로 약속하셨고, 그래서 본토 친척 아비집에서 꺼내 나그네 생활을 하게 하였다 입니다.

 

l  예수를 믿는다는 것, 교회를 허락하셨다는 것, 그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의 믿음과 현실이 어떻게 묶여있는지 이해를 하셔야 합니다.

 

l  은혜는 하나님의 여러분을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아브라함의 믿음으로 동일한 약속속에서, 여러분을 만드시고, 여러분의 인생을 보내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l  아브라함의 약속이 에수안에서 그 약속이 얼마나 크고,깊고,놀라운지 내가 그리스도의 신비를 비밀을 알았노라. 라고 사도바울이 외칩니다. 이방너희들이 유대인과 동일하게 부름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이 그 모두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그의 사랑과 주시려는 복에서 제외되는 사람은 없단다.

 

l  너희의 인생중에 먼저 믿은 자의 인생은 나머지들을 위하여 있고, 그 나머지들은 하나님의 복이 저들에게 허락되도록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그 기쁘신 뜻대로 만든 자들이다.그것을 기억하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l  여러분은 아브라함이고,바울입니다. 기억하십시요.

  

 

 

 

에베소서 3:07~13

 

l  성경말씀을 읽으면 늘 어떤 기대가 있습니다. 어떤 풀어야 할 숙제가 있고, 소원이 있고, 확인이 필요한 그런 절절한 현실속에서 성경을 펴게 되어 있습니다. 또는 지금보다 더 나은 자리와 실력으로 가는 일을 위하여 가다듬고 정리하고 더 쌓기위하여 성경을 엽니다.

 

l  그러나 성경을 읽으면 기대와는 사뭇 다른 진술들이 반복적으로 나옵니다. 오늘 본문도 7~12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군이 되었노라

 

l  얼마나 큰 선언입니까. 온세상과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복 의지 그렇게 크게 선언하고서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라고 합니다.

 

l  9절에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그것이 교회라고 합니다. 그것이 10절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얼마나 크냐 하면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너무나 큰 권세인데,

 

l  11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것이라신적 의지인데,

 

l  13‘…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치 말라…’이렇게 끝나는 것입니다. 이중구조를 읽어낼 줄 모르면,

 

l  왜 나는 성경에 잔뜩있는 약속들이 이루어지지 않는가, 라고 스스로를 탓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그렇게 밖에는 갈데가 없는 것입니다.

 

l  지금 이야기한 것 같이 이런 능력,지극히 작은 종,교회의 권세와 영광,그래서 가지는 담대함이 네 환란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라,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고 끝나는 데까지 이걸 담아오고 꿸수 없으면 성경말씀은 힘을 가져올 수 없고, 여러분들에게 그것은 은혜가 될 수 없는 것이죠.

 

l  마태복음 28:19 ‘…너희는 가라…’권력이나,술책이나, 기술로 가라하지 않으시고,

 

l  죽어나간 이천년 역사,언제나 소수자의 지위에 있는 교회,지금은 찿아가면 관광지의 불과한 터키에 있는 소아시아의 교회,지금은 동일한 현실에 온 유럽의 성당들,한국교회의 현실 절정을 지난 모습들,무슨 잣대로 보았길래 그러한 것을 쇠퇴기라든가,무슨 부정적인 단어들을 쓰시죠

 

l  당연히 많은 서신서를 쓰셨던 바울의 죽어나가는 방법으로 그런 인생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을,영광을 그리고 본인이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지 않습니까. 전달하는 내용뿐만아니라 어디다 어떻게 실어가야 하는지 알고있습니다.

 

l  하나님이 예수안에서 세우신 나라, 하나님이 예수안에서 결정을 낸 하나님의 궁극적인 의지, 십자가의 승리였습니다. 우리가 기대하고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사망에 묻어버린, 우리가 보이는 것으로 짐작하고, 쌓고, 기도하고 욕심내는 모든 것을 묻어버린, 보이는 것 말고 하나님께로 가는 길, 피조물에게 경배하지 마라, 너를 만든 하나님께만 경배하라.이것이 구약 역사에 되풀이 되는 선지자들의 경고요 고함이였습니다.

 

l  신약시대가 되어 교회가 서고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터위에 서있는 교회라에서 가르치는 것 같이 우리는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 줄, 우리가 알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l  하나님은 위대하고 큰 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만들고 나와 일하고,내 인생을 붙드시고, 나와 함께 비밀을 풀어가십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나,내가족,내인생,내 이웃 앞에 나를 세워놓고, 하나님의 임재를 하나님의 현존을 증언하십니다.그 영광을 깨닫지 못한다면 교회가 무엇인지 모르게 됩니다.   

 

l  다만 모여있어서 공동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궁극적인 승리를, 온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성실함과 그 승리를 여기서 구현하고,확인하는 곳 교회입니다.

 

l  교회가 우리끼리 모여 결국 완성된 하나님나라에서 어떻게 자랑스럽게 하나님을 부르며, 예배하며, 찬송하며, 영광의 자리에 설 것인가를 확인한 그대로 세상속에 들어간다는 것을 이해하고 확인하는 날들이며, 세워진 교회입니다.

 

l  우리가 선포하고 믿는 것들을 세상에서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보이게 약속하고 구성원이 되는 것, 거기가 교회입니다.

 

l  3:10~17  무엇을 본받으라 합니까, 하나님이 예수안에서 하신일의 신비를 나에게 맡기셨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바로 그런 길로 나를 보내셨다. 나는 내가 한일이 어디서 어디까지 무엇이 되는지 모른다. 그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난 보냄을 받은 자이다.입니다.

 

l  나는 보냄을 받은데로 간다. 나는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른다. 그것을 다 감수한다. 이것이 바울이 말하는 나를 본받으라 입니다. 훌륭하고,유능하고,쓸모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보다 더 크다.

 

l  고전 11장에 나오는 바울이 받은 고난 그것으로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지금은 부활의 승리를 전하는 때이지만, 그것을 전하는 방식은 죽음으로 전한다.

 

l  3:13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에 대한 복음은 얼마나 깊은 정성,능력,크기와 무게를 가진 것인지 아느냐 입니다. 그것을 내가 지고 오느라고 허리가 휘었다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l  고후 10~13장 사도권에 관한 도전, 근본적인 도전이고, 마지막도전입니다. 고후 108~13절 나를 너희에게 까지 이른 것이라. 복음이 너희 손에까지 갔다는 것을 기억해라 입니다.

 

l  고후 11:28 ~ 33 난 잘나지 않았다. 나를 증명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너희의 이야기를 들을 때 마다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l  고후 12:7 ~10

 

l  한국교회가 세계위에 우뚝서서, 그것을 원하시나요, 네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우리가 그토록 벗어나고 싶은 내 팔자, 네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l  걱정말라고 하십니다. 답답하면 기도하십시요, 기도하고 기다리십시요. 기다리는 동안 많은 일을 하나님이 하십니다. 다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인내가 아니고, 그것을 견디는 것이 그것이 영광입니다.

 

 

 

에베소서 3:14~19

 

l  우리는 이미 123절에서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하는 말씀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충만이 그 교회에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l  교회의 충만은 우리 각각이 합쳐서 충만이기 보다 각각의 충만으로 인하여 충만할 것입니다. 모인 각각의 충만함으로 그 충만이 구체화될것입니다.

 

l  그런데 이 에베소서를 쓰며 교회에 대한 이 놀라운 선언을,하나님의 뜻을 밝히는 바울은 3:1에 가시면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은이방인을 위하여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나 바울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l  소극적이거나 수동적인 표현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의지와 능력의 장중에 붙잡혀 있다라는 뜻으로 갇힌 자 된 나 바울인데,이방인들은 누구냐하면 에베소교회 교인들이 다 이방인입니다.

 

l  이방인은 유대인이 생각하기에는 버리운 자입니다. 버리운 자를 위하여 붙잡힌 바 된 나 바울입니다.

 

l  복음주의란 인간을 둘로 나눕니다. 믿는자와 안믿는자, 복음의 가치를 강조하기 위하여 이 이분법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배타적 정체성이 되곤 합니다. 배타적이 된다는 것,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l  예수를 믿는다는 중요성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말하는 것과 유대인들이 그 호칭으로 자기들과 분리하여, 자신들의 독특한 지위를 배타적으로 확인한 것 같이 이렇게 하는 것은 이방인을 위하여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나 바울은 설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l  교회란 지금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가 된 것 같이, 에베소서에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시고 그 교회가 만물안에서 만물을 충만케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라는 하나님의 일하심의 거대한 크기, 무한한 하나님의 약속들을 제한 시켜서는 안된다는 의미에서, 다시 말해서 교회안에서 잘하고 못하고 마음에 들고,않들고로 계속해서 일어나는 어떤 불편함,어떤 적대감 같은 것들을 크게 감싸안아야 한다는 사실을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l  1:12~18 예수그리스도 피로 세우신 교회안에 손해보는 건 없다라는 말입니다. 어떤 모양으로 하던지 그리스도가 전파되더라 입니다.

 

l  교회안에는 당연히 다양한 관심사를 가진 여러 사람이 단 하나의 공통분모 예수를 믿는다는 사실, 하나님의 부르심 때문에 모입니다.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이나 관심을 가지는 주제가 다른 사람들로 엮기고, 또 사람은 잘하는 일을 보상받지 않고 잘하기가 어렵습니다. 잘하면 잘난척을 해야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용납해 주셔야 합니다.

 

l  여러분 신앙생활을 비평하고, 흠잡고 난 안해 가지고는 안되고,무엇을 하는지를 보셔야 합니다. 교회안에 다양한 역할을 합니다. 바울이 잡히자 누구는 분발하고,누구는 자기 이기심으로 이용하더라 괜찮다 입니다.

 

l  바울이 갖힌게 괞찮했듯이, 죽어도 괜찮다. 1: 20~21 입니다. 이일은 우리에게 무슨 생각을 가지게 하느냐 하면, 인생을 살고, 교회를 섬기고 한다는 것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느냐 하는 것인데, 그 마음을 명분으로 가는 바람에 하나님의 일하심이 아니고 옳고 그름으로 끌려갑니다.

 

l  예수그리스도라는 분명한 역사적 증거를,그 성육신을 그 십자가를 분명하게 확인해야 합니다. 교회안에는 원치 않는 사람들끼리 모여 있습니다. 부정적인 이야기가 아니라,예수를 믿는다는 공통분모이외에는 만날이유가 없는 사람들이 모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마치 가족과 같습니다.

 

l  자식을 ,부모를 원하는데로 선택할 수 없습니다. 도망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셔야 합니다. 마음에 드느냐 않드느냐가 아니라, 혈연이면 도망을 가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가족인데요 어떻게 잊겠어요

 

l  교회는 그렇게 하나님이 묶어주는 것입니다. 기쁨은 평생에 몇번이나 있을까 하고, 하루에도 몇번씩 뒤로 자빠질 만한 일들이 벌어지는 그 현실 거기에서 할 수 있는 일, 사랑하고 편들어 주고,그것이 남는 후회입니다.

 

l  교회를 나온다고 하면, 맨 먼저 가져야 할 각오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묶어준 가족이다. 여러분의 담임목사에 대해서는 부모이다. 이렇게 기억해야 합니다. 부모인것과 그 부모가 훌륭한 것은 다른 것입니다.

 

l  부모가 마음에 들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천지 차이입니다. 마음에 드느냐 않드냐의 문제가 아니라, 지붕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입니다. 참으로 이상하죠

 

l  그 이야기는 날 잘 섬겨라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목사님에 대하여 권리와 책임을 가집니다. 이렇게 묶여있습니다. 목사님도 모든 성도들에 대하여 권리와 책임을 가집니다. 도망갈 수 없고, 외면할 수 없고 각각 자기 것을 나눌 수 없는 연대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l  3:14~19

 

l  우리가 평소에는 상상할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그 자리까지, 우리가 확인하고 안심하는 그 범위를 얼마든지 벗어나는 그 자리까지, 그 넓이와 깊이와 높이와 깊이가 그것이 다 하나님이 예수안에서 하실 일 충만함을 위한 넓이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l  5:31~32 부부가 되는 일의 신비,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신비

 

l  부부에게 뭐라고 명령을 하죠, 아내들이여 남편들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남편들아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입니다. 그것이 다만 명령,명분일까요.

 

l  사사건건 충돌하는 그 아내,남편 때문에,하는 수 없이 내가 벗어날 수 없는 개인의 한계를 벗어납니다. 같이 죽는 수밖에 없고, 하자고 하는 거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해 보면 뜻 밖에 결과들이 생기지 않았나요

 

l  교회가 불편하고 깨지면 그것보다 무서운 것은 없습니다. 아무일도 없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런 이해와 실력으로 나올 믿음과 근거를 가지지 못하면, 다른 것으로는 여러분을 만족시킬 수 있는 근거가 없습니다.

 

l  교회를 이 마음으로 견디고,이 마음으로 나오고,포기할 수 없는 외면할 수 없는 무서움으로 그 마음을 가지지 않으면, 명예를 모르게 됩니다.그걸 하셔야 합니다. 성경이 이야기 합니다. 부부 이 비밀이 크도다.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l  그러니 사실 겁날 것이 없습니다. 교회를 허락했다는 것이 무엇인지 부부를 허락 했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성경의 증언에 입각하여 우리 신앙을 세우고 있다면,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순종할 책임밖에 없습니다.

 

l  그것은 답이 없어서 마지못해 선택한 길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수안에서 선택한 신비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무 문제가 없고, 내 마음에 들고가 아니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의 백성으로 부름을 받은 모든 존재는 명예롭다, 위대하다.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부름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무슨 길이든 갈 수 있습니다.

 

l  고후 11:22~27  자칫 잘못읽으면 그가 얼마나 성실하였는가, 그가 얼마나 희생하였는가로 읽힙니다. 그의 열심이 얼마나 대단한가로 읽힙니다. 바울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재로 했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위하여,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그의 생애를 실재로 했고, 삶으로 담아냈다고 합니다.

 

l  고후 11:28~29 이것이 가족이 갖는 짐이며, 그의 인생에 있어서의 자리입니다. 그것을 위대한 것이라고 합니다. 자식을 위하여 속이 터지고, 부모한테 매맞고, 그것이 크는 것이라고 합니다.

 

l  나라를 위하고,민족을 위하는 것, 이 방법으로 구체적으로 하면 됩니다. 말로하는 것 말고,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것, 여러분 아니면 할 수 없는 그자리 그 형편에서의 충성,애타고 걱정하고 실재로 살아가는 것, 말로는 갈수없는 길, 그렇게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l  어느 교회가 훌륭하냐구요, 자기가 나가는 교회를 사랑하는 교회가 훌륭한 것입니다. 내 자식은 외면할 수 없습니다. 속썩이는 자녀가 없으면 부모를 위대하게 만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l  그러니 여러분은 교회를 부모의 품으로도 만들고, 그것을 하는 자식으로도 이중적인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예수와 그의 십자가의 피로 만든 교회 무엇을 목적하시고,어떻게 일하시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빈말밖에 할수 없습니다.

 

l  그것이 잘못이 아니라, 그러면 예수믿는 일이 공허해 집니다. 여러분 자신의 인생과 교회의 공동체라는 이 크고 복된 하나님의 약속속에서 가지는 영광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구체화할 방법이 없습니다.

 

l  바울은 우월감을 가지고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이해시키려고 하거나 보상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이어집니다. 고후 11:30 ~ 33

 

l  부끄러운 일을 이야기 합니다. 여러분 인생에서 가장 부끄러운 일은 누구에게 당했습니까, 자식에게 당했습니다. 자식이 아니였으면 절대 꺽지 못했을 자존심을 꺽습니다. 그래야 합니다. 이렇게 사람은 위대해 집니다.

 

l  그것이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과 기적 속에서 예수라는 실재적인, 역사적인 한 성육신한 인격 속에서 그것이 증거되었기 때문에 믿음을 가질 수 있고, 확신을 가지고 이 길을 갈 수 있습니다.

 

l  어떻게 될지 모르는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분명한 승리와 영광의 길을 가게 됩니다.

 

l  3;14~19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고 어떻게 일하시는 가,어떻게 우리를 묶어 놓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떻게 인도하시는 가 넉넉한 믿음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웃으시고, 마음을 여시고, 하나님 부르시는데로 마음을 가지고 따라가십시요. 하나님이 우리 인생속에서 하신 일들을 확인하게 되고, 우리가 기대하지 않았던 자리에 오게 된 것을 알게 됩니다.

 

l  부부로 사는 것이 그렇듯이 30년쯤 살면 서로가 다 훌륭해 집니다. 내가 기대했던 그곳에 와 있는 것이 아니라, 둘이서 멋진 자리에 오게 됩니다. 하나님의 일하시는 신비입니다. 그 복을 그 명예를 지키시고 누리시는 우리교회 성도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에베소서 3:20-21 

                                         

l  놀라운 말씀입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하실, 교회안에서와 그리스도안에서 그가 이루실 영광,이미 주신 영광을 찬송합니다.성경을 읽으면서,기도하면서,신앙생활하면서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하죠 맞아 하나님이 내가 구하는 것 보다 더 주실거야

 

l  그러나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지,여기가 이제 중요한 문턱입니다. 우리는 진심이나 간절함 옳은 일 선을 위한 것 주의 영광을 위하여 라는 것을 붙이면 자기의 구하는 것과 책임이 다 된것으로 생각하곤 합니다.

 

l  12:1~3 아브람을 불러 이 말씀을 주실 때 아브라함을 불러 그 주실 사람을 한꺼번에 주시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우리는 이 약속에 내용들을 이렇게 알고 있습니다. 너희 자손이 하늘의 별같고 바다의 모래 같다고 하십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시간이 걸립니다.

 

l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삭의 하나님,야곱의 하나님이란 말은 시작하시는 이도,완성하실 이도 하나님,이 과정을 지키실 이도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진심이나 선한 일로 시간을 무시한 답을 달라고 합니다.

 

l  여기 하나님이 아브람을 통하여 인류를 구원할 일을 시작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일을 이스라엘안에 계속 반복적으로 약속을 확인하시고 비로소 예수께서 몇천년이 흘러야 오시고, 우리에게 확인되는 것은 그리고 이천년이 흘러서 입니다.

 

l  그 시간은 아무 필요도 없는 시간이 아니고, 억울한 시간 다만 지나가야 하는 시간이 아니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신비라는 것입니다.

 

l  1:3~5 예수그리스도 그의 백성을 구원할 자 그 약속한 선지자,종입니다. 구체적인 시점과 환경속에 오시고 살아낸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 시간과 공간속에 일하시고 살아낸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l  하나님의 약속들이 우리가 확인하는 육체와 감각과 생각과 결정과 느낌과 공감과 의심과 두려움을 묶어 구체적으로 만들어져 가는 것입니다.

 

l  우리의 기도보다 더하실 그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증명이 되었습니다. 죽음을 이기신 하나님의 능력을 구체적인 우리가 속해있는 무대와 조건 속에서 이루사 우리모두로 마치 모세를 앞세워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것 같이, 우리로 죽음을 통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입니다.

 

l  하나님이 창세전에 시작전에 시간전에 그 순서보다 먼저 이 일을 준비하이 예수안에 있는 우리입니다. 시간과 공간에 묶인 것이 아니라 담은 시간을 뒤집을 수 없고, 공간을 뛰어 넘을 수 없는, 단단한 보호막에 속에 있는 것 같이 품에 있는 것 같이 설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l  교회는 그의 몸, 하나님이 일하시고 그의 복을 채워 구체적으로 채워나가시는 하나님의 능력,하나님의 성실하심 교회입니다.

 

l  교회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위에 약속하시고, 제자들이 모여 최초의 교회가 에루살렘에 생깁니다. 너희는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공간적인 순서가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속에서 하나님은 그것을 뛰어 넘지 않으시고 시간의 여정을 채워가시고, 공간에서도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우리에게까지 오십니다.

 

l  그러니 교회로 모였으면, 우리가 어떤 공동체인가, 기억하고 모이셔야 합니다. 이 시대에 이사회에 하나님이 못박아 놓은 시작, 손길에 구체적으로 시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모여야 합니다.

 

l  너희 완벽하라,뜻이 같아라 하지 않습니다. 예수그리스도로 우리는 모였다. 잊지마라 하나님이 일하신다. 우리가 제각각 일지라도 하나님 일하신다. 돌아보아 자랑할 것 없으나, 하나님이 그것을 은혜로 묶은 오늘을 나 감사한다 그 마음으로 모여야 합니다.

 

l  내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른다. 한국사회에서 한국교회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예수의 이름 하나로 모였다. 내일은 내일또 하나님의 사람으로 내가 내자리지키고 교회로 모일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 일하신다.

 

l  예수를 보라, 가장 나쁜 환경 로마의 지배때 선지자가 끊기고 사백년간이나 침묵한 때, 유대인들이 막막하기 짝이 없을 때, 이름없는 베를레헴의 말구유에서 태어나십니다. 나사렛에서 사십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 라고 그렇게 이야기 되었죠

 

l  거기서부터 하나님일하셨습니다. 갈릴리에서 일하시고, 예루살렘에 들어와 죽으십니다.

 

l  16:16~19 모든 권한과 책임을 교회에 주십니다. 성도들에게 주십니다 늘 이기고,분명하고,옳은 정도가 아니고 비틀거리고 후회되는길 내가 따라가겠다고 하십니다. 걱정하지 말라. 천국열쇠를 네게 준다. 교회요 우리 각자의 존재입니다.

 

l  교회란 신약성도들을 말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말하고, 허락하신 공동체를 말합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모든백성들을 총칭하기도 합니다. 여러분 늘 이겨야 되고, 늘 옳아야 되는 부담에서 벗어나십시요 여러분이 할 수 있는 만큼 하십시요,그리고 견디십시요 하나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l  3:20~21절 예수안에서 보이신데로,증거하신데로,이루신데로 구체적인 하나님 임재와 지혜를 따라 하나님 모든 경우에, 모든 곳에서 일하실 것입니다.  

 

l  나와 뜻이 다른 자, 내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이 붙어 있어야 합니다. 같이 가시는 것입니다. 교회가 욕을 먹거는 같이 먹으십시요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l  제자들은 자신의 배신과 실패와 비겁함 속에서 하나님이 그 뜻을 다이루셨다는 사실을 체득했습니다. 그러니 더 가져야되고, 더 알아야하고, 더 훌륭해야 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십시요

 

l  그럼 아무래도 좋다는 죄가 만드는 생각입니다. 신앙없는 생각입니다. 그말을 듣거든 두려워해야 합니다. 잘못했으면 잘못한 결과를 감수해라. 욕을 먹고, 책임을 져라.괜찮다 입니다.

 

l  고전4:1~4 잘못한 것이 없는 것이 의가 아니다.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신데, 그 말은 나도 모른다 입니다. 나는 내가 모른때 주께서 구원과 은혜를 베푸신 것을 알고 지금 나를 들어 일하고 계신 것을 안다 입니다.

 

l  내가 잘했나 못했나 하는 문제는 답할 수 없다. 하나님께 물어봐라 입니다.

 

l  고전 4:9~16  바울의 권면입니다. 너희는 나를 본받으라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