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tation on Bible/Matthew(마태복음) 45

마태복음 - 스텐리 하우어워즈 - 제4장 사명

마태복음 4장 사명 l “그 때에 예수님께서 성령님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우리는 “그 때에”에 함축된 불길한 느낌을 감히 간과할 수 없다. l “그 때에”라고 전하면서 마태는 성육신의 신비에 다가간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시간에 종속되도록, 육신에 종속되도록, 마귀에게 종속되도록 하신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성령님에 이끌려 광야로 가셔서 “시험하는 자”에게 던져지신다. l 그러므로 “그 때에”는 십자가상의 고뇌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마27:46)라는 외침을 내다보게 한다. l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이스라엘의 시험, 즉 하나님의 좋은 선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로서는 신실하게 살아갈 수 없음이 증명되었던 시험을 받기로 하셨다. ..

마태복음 - 스텐리 하우어워즈 - 제3장 세례자

마태복음 3장 세례자 l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막연한 시작이다. 그 때가 언제인가? 요셉이 가족들을 데리고 나사렛에 간 지 얼마 만이란 말인가?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자라나셨는가? 그분의 어머니와 아버지와의 관계는 어떠했을까? 그분께서는 왜 유대에 가셨는가? 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려고 하셨는가? 모두가 좋은 질문이지만, 마태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는 내용들이다 오히려 이것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다. l 예수님께서 나사렛 사람이라 불려질 것이라는 내용에서 요한이 갑자기 등장하는 장면으로 갑작스럽게 전환하는 것은 “그 때”가 하나님의 시간인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l 마태와 요한은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 기록한 것이 아니다. ..

마태복음 - 스텐리 하우어워즈 - 제2장 테러와 피신

마태복음 2장 테러와 피신 l ‘해롯 왕 때에’라는 어구는 현실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반면 묵시의 시간, 창조의 시간, 예수님의 수태의 시간은 - 우리가 세상이 움직이는 방식으로 가정하는 것에 비추어 볼 때 – 비현실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l 그러나 묵시의 시간은 일상의 시간, 헤롯의 시간을 가로지르며 정치적인 위기를 조성한다. 예수님, 성부의 영원하신 아들께서는 헤롯의 시간으로 탄생한다. l 예수님의 수태와 탄생의 이야기는 신화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을 형성해가는 이야기이다. l 그 시간은 통지자들이 통치하는 시간으로, 그들이 그 시간을 구성하는 이야기를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통치하는 자들은 시간이 권력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l 헤롯..

마태복음 - 스텐리 하우어워즈 - 제1장 태초에

마태목음 1장 태초에 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The book of genesis’는 소소한 시작이 아니다. 마태는 이 사람 예수님의 족보가 하나님의 창조 행위의 바로 그 시작을 다시 생각하도록 요구한다고 제안하면서 출발한다. 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마태에게서 이 구절은 이 사람 예수님의 이야기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메시아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시작해야만 한다.  그러므로 창세기가 하늘과 땅의 계보를 제공하듯이(창2:4), 마태는 예수님의 족보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곧 우리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을 때’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예수님의 족보를 이해해야만 되었다. 왜냐하면 이제 우리는 그 종말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 종말론..

마태복음 - 스텐리 하우어워즈 - 들어가기

부제 : 마태와 스텐리가 전하고 싶어한 하나님의 복된 소식 들어가는 글  마태복음의 신학 주석을 쓰는 것은 명예이자 짐이고 벅찬 과업이다. 신학자들은 주석이 아니라 논문과 책을 쓰도록 훈련을 받는다. 나는 단순하게 우리의 시대에서 그리고 우리의 시대를 위해서 말해야만 하는 것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  나는 마태에 관해서 쓰려고 하지 않았다. 대신에 복음이 우리를 위해 기록되었다고 가정하면서 마태와 함께 쓰려고 노력했다, 마태와 ‘함께’썼다는 것은 심사숙고하여 덧씌우기(ruminative overlay)를 함으로써 마태가 한 이야기를 내가 다시 말해 보려고 했다는 뜻이다. .  결과적으로 이 주석은 중세 시대와 종교개혁 사이에서 공통으로 사용된 주석 형식인 도덕적인 풍자를 모방하는 것이라고 생각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