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tation on Bible/Corinthians 2(고린도후서)

고린도후서 - 박영선 - 제1장

Four Seasons Daddy 2021. 7. 25. 06:24

 

 

고린도후서 1:01~11

바울의 예수와 십자가만 아는 곳으로의 초청 

 고린도후서는 전서에 이은 두번째 편지인 셈입니다. 바울은 후서에서 전서와 다른 심경과 목적을 가지고 내용을 진술하게 됩니다.

 그 진술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바울사도의 영웅적 모습이나 신화적 인물로서의 위대함이 아니라 한 인간 바울이 겪는 자기 인생과 사역에서의 진솔한 진술들을 만나게 됩니다. 

 바울의 사역에서 그 사역이 위대해지고 기적이 된 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고, 바울은 그 기적과 증언을 위하여 고생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바울 자신으로 볼 때는 지난한 인생이었을 것이고 그가 받은 모든 영광은 죽은 후에 후손들에 의해서 되어 진 것입니다. 

 그리고 그의 위대함은 하나님이 그를 통하여 담으시는 내용이 굉장하기 때문에 그것을 우리가 부러워하며, 칭송하며, 그리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 그가 자신의 인생에서는 오늘 나오는 가장 주된 주제,환란,고난,죽었다고 생각했던 경우들 속에 하나님이 얼마나 굉장한 것을 담으셨는가 하는 것을 대조 해 볼 수 있는, 분리해 볼 수 있는 

 그래서 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게 뭔가로 경험이 되고, 그가 담은 것이 흘러나가 우리 옆에 있는, 우리를 보는 사람들이 우리에게서 흘러나가는 그 귀한 보배를 보며 생명을 나눈다라는 위로와 확신이 있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 그리스도가 받은 고난을 우리가 살고 그리스도가 받은 위로를 우리가 동시에 가진다 라고 얘기하는 이말, 살 소망까지 끊어지게 하므로써 우리마음에 사형선고를 내리게 하여 끌고 가는 결론 우리를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라 하는 것입니다. 

 고전 11:23

 성찬식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주께서 다시 오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오시기까지는 그의 죽음을 경험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의 죽음,고난,구원 구원을 위하여 연기된,보류된 그의 재림, 사망이 주인인 것 같이 행사하는 폭력 속에서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찬식입니다.

 주께서 다시 오시기까지는 예수께서 죽어야 하는 정황과 조건이 신자들에게 주어져 있다. 우리는 재림하실 때 주어질 궁극적 승리와 영광과 보상이 지금은 보류되어 있다 은폐되어 있다 그 속을 사는 것 그것이 환난이지요. 

 그리고 그 환란은 다만 고생이 아니라 구원의 문을 넓히게 위하여 그의 백성들을 완성하기 위하여 당신의 구원,역사,재창조에 우리를 불러 함께 일하시는 동역의 기회라고 위로를 받는 것입니다.  
     
 빌 1:20

 신자의 삶에는 실패가 없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다. 하나님은 실수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실패하시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의 인생도 실패할 수 없고, 후회될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후회되는 것을 가지고도 하나님은 일하신다. 이것이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자랑입니다. 십자가 입니다.

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세상이 볼 때 가장 말이 안되는 것으로 하나님은 기적과 승리와 영광을 만드신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다. 걱정말아라. 그렇게 얘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 신자의 존재는 사나 죽으나 동일하게 하나님이 기적으로 은혜로 쓰신다. 그렇다 십자가도 일한다. 부활도 일한다. 하나님도 일한다. 나도 일한다 나의 죽고 사는 것도 일이 된다 내가 무엇이 겁나랴 이렇게 고린도 후서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 바울은 위대한 것일까요? 믿음이 좋은 것이지요. 여러분 그 조건으로 충분합니다. 

 빌 3:10

 바울은 전적으로 나를 경기에 뛰게 해달라. 이 경기는 이기는 경기요 명예로운 경기요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라. 나는 기꺼이 주의 죽으심을 본 받아 그의 고난에 참여하여 부활에 자리에 가겠다.

 우리의 인생을 그렇게 이해하지 못하면 뭐가 뭔지 모릅니다.

 마 11:20

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려고 하는 것, 맡기신것, 우리에게 허락된 것이 예수안에서 무엇인지를 보십시요 그의 죽음안에서 우리에게 허락된 은혜,기적,하나님이 우리를 그의 자녀로서 붙잡고 계시는 현실,세상의 법칙과 무장보다 큰 하나님의 도우심 은혜,보호, 능력이 함께하고 있다.

 고전 2:1

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나갈 때 세상적인 준비 세상적인 무기를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예수와 십자가만 알기로 했습니다. 죽어도 된다라는 각오와 비장함이 아닌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인 줄로 감수하고 기꺼이 나아가는 겁니다.

 로마서 12:1 

 산 제물, 삶으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매일 반복적으로 고린도 교회인 것입니다. 그 공격을 전부 대꾸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는 여러분의 현실 신통한 일도, 위대 할 것도, 극적일 것도 없는 그리고 해결이 되지 않는 고민하고,짊어지고,넘어가야 하는 하루하루들을 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라는 초청으로 초대받고 있습니다.

 예수와 십자가만 알기로 했다.



 


고린도후서 1:12~24

바울의 지혜로운 판단 

 바울은 에베소교회에서 고린도에 갔다가 그 위에 있는 마케도냐로 갔다가 유대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때에  고린도교회를 한번 더 방문할 계획이었습니다. 결국 많은 문제로 가지 않기로 합니다

 고린도전서에서도 보았듯이 고린도교회에는 분파 문제 등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으며 바울에 대하여도 오늘 본문에서 처럼 계획이 없는 사람으로 비난을 합니다. 

 바울은 세상사람들이 하는 식으로 어떤 결정을 내렸다가 세가 불리하자 변경한 일이 아니고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과 같은 그런 은혜로운 변경이다 라고 합니다.

 오늘날에 우리는 바울이 위대하다고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바울이 얼마나 믿을만한 사람인지는 우리처럼 확실하지 않았습니다. 고린도교회에서는  이게 현실적인 문제였습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은 시간을 두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었습니다.

 바울은 21절에서 성령까지 끌어드린 이유는 이 문제는 진실을 밝히고 설명을 하고 할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구원 시작하신 역사가 당연히 동일한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그러니 이런 때는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라고 바울이 판단했다는 것입니다.

 예수께서 하시는 일은 신실하다. 그의 약속은 유효하고,승리하고,궁극적으로 승리케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불러서 이 설명을 하는 대목은 신기한 것이 사실 이 모두가 예수께서 신실하지 않다, 실패했다고 생각했던 과정을 겪은 결과 입니다.

 예수가 메시아로 믿었던 모든 사람들이 그가 설마 잡혀서 가시관을 쓰고 십자가에 죽으실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자신이 스스로 메시아라고 증언하였고, 메시아적 증거로 많은 기적을 이루셨습니다. 그런데 세상 권력에 붙잡혀 수치를 당하시고 고난 받으시고 죽어버리셨습니다. 다 같이 도망갔죠 그때는 누구나 다 배신감을 느끼고 그들이 가졌던 기대와 그 환상이 깨어지는 그 분노가 예수를 등지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의 길이 정말 그 약속을 이룬 길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울의 변명입니다.

 우리가 이 세상에서 교회를 세우고 교회 안으로 부름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가 예수를 믿는 것과 다른 교회에 주신 분명한 선언은 이것입니다. 십자가를 내다 거는 것입니다. 

 십자가를 내가 건다는 것은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는 증언이 이것은 권력이거나, 능력으로서의 표가 아니라 세상이 알지 못하는 은혜와 하나님의 일하시는 지혜와 하나님의 권능에 관한 표로 세상이 가지고 주장하는 세상의 폭력 거짓됨 그리고 공포에 대항하여 진리를 생명을 구원을 증언하는 우리의 대표적 상징입니다.

 12절 다 설명할 필요 없다 다 알 필요가 없다 예수그리스도의 날에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될 것이다. 이런 선언을 할 수가 있는 것이지요. 이것이 교회입니다. 이것이 신자의 존재이고 신자로서 사는 인생의 신비입니다.

 이런 것들이 우리의 자랑이 되고 근거가 되지 않으면 우리는 사실 현실을 견딜 방법이 없습니다. 현실에 쫓겨서 도망오고 현실에서 가진 모든 원망이 분노로 와서 쏫아질 뿐이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을 같은 믿음의 식구들 끼리 나눌 넉넉함은 가질 수가 없게 됩니다. 

 이것은 억지로 강요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그리한 것같이 그가 당한 어떤 오해 어떤 배신은 시간이 지나서 예수 안에서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그들의 눈을 뜨게 하고 그들의 영혼을 살아나게 하고 예수를 믿게 하고 알게 하고 그의 인생 속에서 깊이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 라고 믿는 믿음으로 감수하는 것입니다,

 엡 4:13 

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를 머리로한 그의 몸으로 연합되는 것입니다.이제 존재론적으로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우리가 혼자 살지 않고 그리스도와 함께 삽니다.

 나의 모든시간, 모든순간, 어떤환경, 어떤경우도 그리스도와 함께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순간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며 영원히 하나가 되어 천국의 승리를 얻을 것입니다. 이 안에서 자라난다고 합니다. 

 인생의 중요함은 쓸모 있는 것보다 더 우선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이 어떤 충만, 어떤 영광까지 목적하고 있는가 라는 시간을 과정을 가진다고 합니다. 이것이 역사가 있는 이유이고 인생이라는 시간이 있는 이유입니다.

 그 일에 머리와 몸에 비유로 얘기하면서 각 지체를 언급한 것 같이 우리 각각은 교회로 모이면 합창대 같이 성가대 같이 함께 자기의 음을 내어서 혼자서는 만들 수 없는 음악을 합창을 예수를 만들 것 입니다. 

 그것이 교회와 교회로 부름을 받은 성도들의 특권이고 각각의 책임입니다. 

 여러분이 이렇게 교회에 나와서 앉아 있는 것이 얼마나 큰 것인지 모릅니다. 모두에게 위로가 됩니다. 갈급한 사람은 나 하나가 아니구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것은 모두에게 공감대를 형성하는 실제적인 현실이구나 이렇게 확인하게 됩니다.

 와서 웃는 사람을 봤을 때에 감격이 다르고, 와서 기도하는 사람을 받을 때 감격이 다르고, 우는 사람 봤을 때 감격이 다르고, 그 모두가 사실은 우리 인생의 누구나 경험하는 공통된 한 부분을 그가 지금 증언하고 있다고 우리 모두가 공감합니다.

 그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루고 있고, 간섭하고 있고, 인도하고 있다는 명명백백한 증거로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모릅니다. 

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 안에서 당한 이 일을 우리는 사실 우리가 사는 사회와 시대 속에서 우리가 당합니다. 세상사람들은 우리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 우리가 분명히 아는 것은 결과적으로 우리가 진리와 생명 안에 서 있다는 사실과 우리의 존재가 우리 뿐만 아니라 세상에게 유익하다는 사실을 압니다.

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두 번 은혜를 입게 하기 위해서 갈때와 올때도 들리려고 하였으나 내가 안 가는게 낳다 라고 생각했던 그 기간도 그 결정도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경우라는 것을 우리가 안다면 세상 속에서 우리가 대접을 받고 인정을 받았을 때 뿐만 아니라 우리가 오해를 받고 비난을 받을 때도 하나님이 일하고 있다고 성경이 증언하는 샘입니다.

 우리는 각각의 경우에 자랍니다. 자라야 됩니다. 그것이 교회를 세우고 교회에 모이고 교회라는 이름을 내고 십자가를 내건 이유이고 이렇게 약속된 시간을 만들어서 회집을 하는 이유입니다. 

 모두가 시간을 여기에 맞추어서 가능한 한 열심을 내어 이 시간에 나오는 것이지요 그런 일들이 하는 증언을 여러분들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아야 됩니다.  

 사도바울이 증언하는 식으로 말하면 그 모든 것이 그 시대에 필요한 나와 내가 속한 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권능이였다 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 그러니 여러분의 생애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묶여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보낼 뿐만 아니라 구세주를 머리로 하는 그의 몸으로 그의 실체로 그의 영광과 권능과 자랑과 그의 은혜를 분출에 내는 실체화하는 그의 몸으로 우리를 불렀다는 것을 기억하지 않으면 하소연에 불과해집니다. 감사와 자랑도 없게 됩니다. 

 가장 위대했다고 생각하는 인물들 조차도 다 이 고난을 겪었다는 것, 우리의 구세주이신 예수님이 이 길을 걸으셨다는 것 그것이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방법이였다는 것을 기억하시면 여러분의 생애가, 현실이 기적이라고 느껴지고 하나님의 권능이라고 이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