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tation on Bible/Corinthians 2(고린도후서)

고린도후서 - 박영선 - 제5장

Four Seasons Daddy 2021. 7. 25. 17:37

 


고린도후서 5:1~10 


                      

은혜에서 환란으로 환란에서 사랑으로 

 고린도 교회와 바울간의 갈등에 대한 바울의 답은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이중주와 같다. 보이는 현실과 하나님의 약속 사이에는 충돌하는 것 같기도 하고 모순되어 보이는 것 같으나 이것은 가장 중요한 비밀을 담고 있다 

 생명과 사망이 다투고 있다. 세상 안에서 우리는 지는 자 같고 잘못한 자 같이 취급을 받고 하나님의 일하심 속에서는 우리가 가는 길이 하나님이 승리와 영광을 채우시는 길이다 라고 4장에 설명 하였습니다.

 이것은 현실도피적이거나 천국에 간다는 이름으로 내세로 책임과 변명을 넘겨 버리는 일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고난을 받고 살고 있는 일이 고난으로 실패로 끝나지 않고 거기에 승리와 영광이 씌워진다. 생명이 사망을 이긴다.라고 얘기하는 것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 성령을 받은 것이 너무나 분명해서 잊을 수 없는 사건이매도 불구하고 성령을 받은 우리가 탄식하며 사는 현실도 또한 현실인 것이 사실이다. 이 둘의 충돌 우리는 어떻게든 하나로 묶고 싶은데 그렇지 않다는 

 기독교 신앙에서 하나님의 알고 예수를 믿고 헌신하고 하는 시작과 함께 들이 닥치는 주제가 됩니다. 그것이 무엇이죠  고난입니다. 우리가 차라리 예수를 믿지 않았다면 잘잘못으로 구별하고 감수하고 체념할 수 있습니다.

 그런데 이미 우리는 체념 할 수 없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현실은 분명히 내가 믿지 않는 자 보다는 좀더 나을 텐데, 믿지 않은 자들의 고통보다  심한 고통 속에 있는 것이 신자의 신앙여정에 필수적인 공통점이라는 사실입니다.

 롬 5:1~3

 롬 8:18 현재의 고난은 장차 올 영광에 비하면

 신자의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그 환란 속에 우리가 들어 가므로서 그 환란은 뒤집는 것입니다. 슬픔과 비극과 절망이라는 것이 하나님에게는 없다. 하나님은 우리가 환란 속으로 들어가 내가 그 환란 속에서 절망하고 있는 자들을 끌어내도록 내 삶을 인도하시지 우리가 믿으면 하나씩 천국으로 데려가는 그런 배타적인 하나님이 아니다. 

 환란은 우리를 자라게 하며 영광되게 하며 우리 옆에 있는 사람들을 함께 붙들고 가게 하는 하나님의 성육신 십자가의 방법인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일들은 다 우리로 하여금 안주하고 그리고 외면하고 적당히 타협하고 있는 것을 하나님이 매일 우리에게 와서 도전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이 다른 죄보다 우상숭배를 싫어하셔서 나는 질투하는 하나님이라.우상에 대하여 진노하십니다. 우리를 향한 화내심입니다. 너 그 정도로 만족해서는 안된다. 너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외면하면 안된다. 나는 너를 그렇게 만들지 않았다. 이것이 하나님의 질투입니다.

 우리가 늘 기도하는 그저 남한테 아쉬운 소리 않하고 망신당하지 않으면 됬어요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이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 갈 4:22

 다만 거짓말을 안하는 것이 정직한 것이 아닙니다. 정직하다는 것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정직이란 하나님의 우리에게 주신 복,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들어 내는 것 입니다. 

 우리가 얻은 자유는 마음대로 하는 자유가 아니라 적극적인 것을 담아내는 자유입니다. 

 롬 6:1

 은혜는 우리를 책임으로 밉니다. 명예로 밉니다.뭘 않하고 뭘 틀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세상은 할 수 없는 것, 사랑하는 것,용서하는 것, 편을 드는 것 그곳으로 우리를 내 몰로 있습니다. 복된 자리로 인도함을 받고 있죠

 예수님 만이 만들어 낸 새로운 존재 새로운 권리 새로운 명예의 실체가 되는 것입니다. 이거는 명분으로 법칙으로 강제할 수 없습니다. 그 실력이 되야 합니다. 여기를 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5:4~10 

시간속에 있는 명예의 기회

 사도권을 증명하는 고린도후서의 내용들은 상대방들이 한 인신공격이나 어떤 단점들에 대한 공격에 대하여 답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에 대한 깊은 이해로서 저들의 분노나 적개심이 또는 그 잘못된 확신과 주장이 어떻게 기독교신앙을 곡해해서 나온것인가 하는 설명에 전부를 할애합니다.

 가장 중요한 핵심되는 내용이 저들은 복음을 하나의 율법적 차원에서 이해하고 있다 라는 지적입니다. 율법적으로 기독교를 이해하는 것이 훨씬쉽고, 분명합니다.

 기독교를 제대로 이해하기에는 많이 모자라서 많은 부분을 거의 대부분의 내용을 믿음으로 가져야 하는데, 믿음은 지금은 설명할 수 없다 입니다. 

 율법의 무서움은 그것이 비난과 정죄밖에 만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옳고 그릇된 것에서 옳다는 것이 잘못을 안 한 것에 불과합니다. 적극적인 방향과 목적지를 설명하는데 있었서 율법은 부족합니다.

 고전 3:5 

 율법의 목적은 잘못을 지적하는 것 우리가 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 율법의 기능 효과 목적입니다. 그러나 예수로 말미암는 것은 죽음 위에 세워진 부활입니다.

 우리의 절망 실패를 넘어선 길을 열고 죽음을 삼켜 승리로 만든 길을 여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당신의 목적과 당신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그 아들로 인하여 영광을 받으신 바로 그 일을 우리의 생애와 운명에 담으시려고 한다라는 적극적인 대로 인도함을 받았음을 성경은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 고린도후서 5장에 와서는 시간속에 있다. 지금은 완성에 자리까지 시간을 가지고 있어서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한 그 약속의 영광들을 미뤄놓고 계시다 왜 그런가 우리가 여기에서 살아있는 동안 영광된 자리로 가는 자가 이 뒤를 잇고 우리를 통하여 이 영광을 나눠어야 할 자들 앞에서 명예의 기회를 가지게 하셨다.  

 하나님이 우리보고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구원을 이루신 방법으로 어떤 방법 베들레헴 마구간에 나시고 33년 생애를 사시고 오해받으시고 배신당하시고 능욕받으시고 라는 그 길을 하나님이 하나님의 영광을 만들어 내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특별한 권능으로 우리에게 요구하고 계신다 라고 증언하신다 살아내셨다.

 우리는 고난과 수치라는 것들이 고통으로만 느껴지지만 성경은 그것은 하나님의 지혜이고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한다.

 넉넉한 가운데 나누는 것과 부족한 가운데 순종하는 것은 각각의 임무가 동일한 것입니다. 가졌으면 잘 써야하는 것이고, 부족하면 더 많은 은혜를 구하여 무릅을 꿇게 됩니다.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십니다.

 가진 것을 사용하는 것보다 크게 핍절하여 울며 엎드린 그 기도에 더 많이 일하십니다. 겟세마네 기도의 재현이요 반복이요 모두에게 주는 특권들인 것입니다. 

 그러니 너희들이 요구하는 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과 하나님이 담아내려 하신 것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 것이냐 라고 고린도 교회를 꾸짖고 있습니다.

 누가 옳은가를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독교가 무엇이며 신앙인으로 사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 해야 하는 가를 복음의 차원에서 하나님의 일하심과 예수 그의 십자가 부활 승천 그리고 우리에게 보내신 성령으로 증언된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다시 해석하기를 다시 이해하기를 각자의 삶을 살기를 요구하고 계십니다.

 그리고 우리는 여기 교회에 함께 노래 부르러 온 것이고 함께 상대방을 자랑하러 온 것입니다. 

 바울이 하고 싶은 얘기는 율법에 매이지 마라 라는 것은 다만 율법주의를 벗어나라 라는 교훈이나, 선언의 문제가 아니고 기독교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 되고 그렇게 되면 우리의 인생이 여러분의 현실적 조건들이 다 하나님의 최고의 지혜이고 선택이고 우리에게 준 기회다 하는 것을 알게 되죠 그 길에 나오시겠습니까!
 
 엡 5:15 

 여러분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들에 가능한 다 채워 이 역할 생명을 가진 진리를 아는 하나님의 약속 속에 사는 자의 역할을 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빛이고 생명이고 진리의 증인입니다. 

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런 것들은 다 어떤 강요가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기회입니다. 그리고 책임입니다. 분별입니다. 특권입니다.

 

 

 

 


고린도후서 5:11~17 

하나님의 성실하심 

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우리로 자신을 위하여 살지않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게하신다 하는 말씀은 너무나 당연하면서도 너무나 깊은 성경의 의도까지 따라 들어가지 못하는 말씀입니다.

 예수께서 죽으시고 우리를 위하여 살아나셨으면 우리를 천국으로 부르면 되지 왜 이렇게 고단한 인생을 살게하시는지 이런 질문은 서로 안하는 것으로 되었습니다. 

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그 세상을 예수를 죽인 그 세상과 권력 속에서 주를 위하여 살게 하실려고 우리를 부르셨다고 합니다.

 보상과 심판의 그리로 끌고가지 않으시고 그렇게 살아보는 살아야 되는 예수께서도 이땅에 오사 우리가 당한 고난을 그대로 당하시고 그 보다 더 심한 고난을 당하시며, 변명하지 않으시고 그 문제를 힘으로 해결하지 않고 십자가의 죽음을 감수하신 것 같이 우리를 보고 주를 따라 그렇게 살으라는 그 대목입니다. 

 바울은 자신을 변호하려고 하지 않고 고린도 교회가 한 일들이 어떻게 복음과 위배되는가 복음을 너희가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구원 받은 성도의 특권을 놓고 구원을 받고 신앙적인 모든 용어를 동원했지만 결국은 시비와 원망과 폭력 이외는 행하지 못하고 있는 줄 모르겠느냐 라고 가르칩니다.

 너희에 주어진 구원의 명예를 행해야 되는 것을 놓치고 있다 못나게 구는 것을 꾸짖는 정도가 아니라 너희가 맡은 역할은 훨씬 영광된 것이다 그거 모르겠느냐 이렇게 얘기하는 것입니다.

 바울은 마치 부모와 자식에 관계 같이 자식의 못난짓을 꾸중하고 못난다고 징계하려고 덤비는 것이 아니라 저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특권 운명 기회 명예 위대할 기회들을 각성시키고 싶어 합니다.

 성육신이란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셔서 인간이 가지는 제안과 억울함과 비극을 감수하여 그것을 해결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 조건 그 정황속에서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와 사랑을 토로하므로서 그의 거룩한 뜻을 이루어 가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 여러분의 조건에서 신자다워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상대방의 폭력을 폭력으로 마주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에서 일어나는 어떤 어려움들을 좋은 조건으로 삼으셔야 합니다. 그 상황에선 절대 할 수 없는 것을 하라고 우리를 그 조건속으로 보내는 것입니다.

 가난한자를 도우려면 가난한 자의 자리를 들어가야하고 병든자에 자리에 들어가고 빛을 비추려면 어두움 속에 들어가야 되는 식입니다. 교회가 해야 될 일이 무엇이냐 하면 이것을 보여주야죠, 믿는 부모가 자식에게 어떻게 신앙 유산을 넘기느냐 부모가 달라야죠

 가장 사소한 조건에서 세상과 이기심이 없는 사람과 다른 사랑 은혜 관용 인내 어떤 순종 이런것들이 이미 파편들 처럼 생겨나야 되는 것입니다.

 우리 각각이 해결해야 겠다고 생각하는 지금의 정황과 조건을 제거하면 살야야 될 그릇이 없습니다. 요 1:14 충만하려면 어떻게 해야하죠 담는 그릇이 있어야 넘쳐나죠 구체화되야죠

 가장 작은 순종, 가장 작은 용서 겸손을 실제는 하나도 못담고 있어서 충만일 수가 없죠 그 한걸음 한 걸음 들을 못하고 있기 때문에 커다랐게 얘기 하므로써 변명하고 외면하고 비겁해지는 것이지요 그것이 고린도후서가 우리에게 가르치려고 하는 것입니다.

 여러분의 신자 된 그렇게 감사하고 그렇게 자랑하는 것이 실제 여러분이 직면한 시험 속에서 이기고가 아닌 그것을 어떻게 감수하여 자기 인생을 믿음으로 밀고 나가는냐 라고 자기 인생을 살아내야지요 해결되지 않은 인생을, 변명할 수 없는 인생을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듯이 내가 받을 잔은 따로 있다 그 길을 가야합니다. 

 매일 매일을 살게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지 못하게 하시며, 꾸짖으시며 다시 새로운 하루는 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성실하심

 80세 늙은 모세앞에 나타난 하나님에게 당신은 누구이십니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나는 하나님이기를 중단하지 않는 자니라. 

 엡 4:17

 새 사람이 되라  새 사람으로 자신의 정체성과 신분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내야 합니다. 

 우리 인생의 고단한 일은 무수히 많지만, 절망과 비극은 없습니다.그리고 우리가 해야하는 일은 전세계 복음화 등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자리를 채워야 합니다. 내 자리 하나님이 보낸 자리 

 겁낼 것이 없는 조건 속에 있는 사람이다. 바울은 자신을 비난하는 가운데 상대방에게 너에게 준 자리 영광된 자리를 살아내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17 ~ 6:2 
화목을 살아야하는 이유 

 사도바울은 자기가 세운 교회에 심각한 반대를 받고 인신공격을 받는 중입니다. 자기를 변명하려고 이 편지를 쓰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이라는 것이 어떻게 나타나고 결실되어야 하는가로 자신에 대한 공격을 변호합니다. 

 예수 전에는 예수가 이 구원 문제를 우리에게 허락하기 전에는 죽을 운명을 (무엇을 하든지 헛되고 말고,실패하고 말 존재였던데서) 예수의 부활로 인하여 이제는 어떤 일이 있어도 영광과 승리가 운명지어진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 그런 뜻입니다. 그러니 너희는 미운소리 할 필요없다 입니다.

 너희가 가진 생명과 그 생명의 아름다움과 그 명예와 그 기쁨과 그 격려를 살아라 그것이 여기서 화목을 명하는 근본적인 이유인 것입니다.

 우리는 이 문제가 생각같이 쉽지 않다는 것을 다 아실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니까 용서해야되, 사랑해야되 이렇게 하는 것은 그것을 담아내기 위한 근본적인 그릇,근본적인 조건 우리에게 일어난 일들을 다 이해하지 못한 채 다만 명분으로 확인하는 것입니다. 

 고린도후서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너희는 종족이 달라졌다. 너희가 해야되는 것은 명분이나 도덕성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너희가 말하자면 해고, 비고, 기쁨이고, 영광이다. 너희가 가지고 있고 너희가 나누어져야하는 것들이다.

 무화과 나무가 무화가 열매를 맺는 것 처럼 신자들은 신앙의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너무나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책임이전의 문제인 것입니다 이 문제를 이해 못하면 우리는 우리의 보상을 우리의 책임을 권력으로 확인하고 싶고 보복으로 확인하고 싶을 것입니다.

 사도행전 7:51 ~ 53

 스데반의 설교는 모세로 출발해서 간단하게 요약해서 예수로 끌고옵니다. 우리를 돌로 쳐 죽인자들에게 복음이 흘러간다는 것은 예수에게서 스데반에게서 보입니다.

 맞고 틀리고로 나누어 지고 잘한 것과 못한 것으로 나누어 지던 세계를 예수로 인하여 모두 하나님이 끌어안는 세계로 바꾸셨다고 합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그것을 아는 자들이라서 그래서 가지게 된 용서,화해 좋은 말하는 걸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이고 그런 영광과 명예를 알아야 되는데 우린 보복하려 듭니다. 

 용서, 화해를 할 수 있는 것 그것은 우리 존재와 명예의 넉넉함입니다. 

 우리는 보복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문제를 해결해야 되지 않습니다. 증거 해야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어떤 권력, 어떤 보상, 어떤 확인 보다 더 큰 권세 속에 있다고 그렇게 증언해야하는 자리에 있습니다. 그것은 강요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마땅이 알하야 할 진실일 뿐입니다.

 이 답, 이 진실, 이 명예를 이해하거나 실천하는데 실패하게 되면 당장 찾아 오는 현실적 증상이 무엇이냐면 예수 믿는 것이 억울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내 기도 안 들어 주시고 나를 그렇게 어렵게 하시는가?  이것은 다 하나님이 예수안에서 우리에게 무엇을 허락했는지 몰라서 그렇게 됩니다.

 여러분의 실력을 보십시요 여러분의 신앙 실천이 어디에서 근거한 것인지 확인해 보십시요. 우리는 더 큰 어떤 재능, 더 큰 우월감으로 앉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기 앉는 것을 복으로 생각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부족한 것을 들어 쓰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 내가 자격있고, 실력있고 우월하기를 바래서 보상으로 신앙이 작동되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은 조건 상 이미 충분합니다. 여러분의 지금 현실은 그 기가 막힌 현실은 따지고 보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 힝들지만 이 신앙행위를 신앙이해를 이 자랑과 영광을 누리실수있습니다. 증언하셔야 합니다. 힘에 겹겨든 우십시요 울면 여러분 곁에서 격려해 주십시요. 겁내지 마십시요.

 무한한 은혜 속에, 품속에, 권능속에 우리가 부름을 받았고, 보호받고, 하나님의 손길로 산다는 사실을 아는 귀한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고린도후서 5:17 ~ 6:2 


화목을 살아야하는 이유 

 사도바울은 자기가 세운 교회에 심각한 반대를 받고 인신공격을 받는 중입니다. 자기를 변명하려고 이 편지를 쓰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이라는 것이 어떻게 나타나고 결실되어야 하는가로 자신에 대한 공격을 변호합니다. 

 예수 전에는 예수가 이 구원 문제를 우리에게 허락하기 전에는 죽을 운명을 (무엇을 하든지 헛되고 말고,실패하고 말 존재였던데서) 예수의 부활로 인하여 이제는 어떤 일이 있어도 영광과 승리가 운명지어진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 그런 뜻입니다. 그러니 너희는 미운소리 할 필요없다 입니다.

 너희가 가진 생명과 그 생명의 아름다움과 그 명예와 그 기쁨과 그 격려를 살아라 그것이 여기서 화목을 명하는 근본적인 이유인 것입니다.

 우리는 이 문제가 생각같이 쉽지 않다는 것을 다 아실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니까 용서해야되, 사랑해야되 이렇게 하는 것은 그것을 담아내기 위한 근본적인 그릇,근본적인 조건 우리에게 일어난 일들을 다 이해하지 못한 채 다만 명분으로 확인하는 것입니다. 

 고린도후서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너희는 종족이 달라졌다. 너희가 해야되는 것은 명분이나 도덕성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너희가 말하자면 해고, 비고, 기쁨이고, 영광이다. 너희가 가지고 있고 너희가 나누어져야하는 것들이다.

 무화과 나무가 무화가 열매를 맺는 것 처럼 신자들은 신앙의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너무나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책임이전의 문제인 것입니다 이 문제를 이해 못하면 우리는 우리의 보상을 우리의 책임을 권력으로 확인하고 싶고 보복으로 확인하고 싶을 것입니다.

 사도행전 7:51 ~ 53

 스데반의 설교는 모세로 출발해서 간단하게 요약해서 예수로 끌고옵니다. 우리를 돌로 쳐 죽인자들에게 복음이 흘러간다는 것은 예수에게서 스데반에게서 보입니다.

 맞고 틀리고로 나누어 지고 잘한 것과 못한 것으로 나누어 지던 세계를 예수로 인하여 모두 하나님이 끌어안는 세계로 바꾸셨다고 합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그것을 아는 자들이라서 그래서 가지게 된 용서,화해 좋은 말하는 걸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이고 그런 영광과 명예를 알아야 되는데 우린 보복하려 듭니다. 

 용서, 화해를 할 수 있는 것 그것은 우리 존재와 명예의 넉넉함입니다. 

 우리는 보복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문제를 해결해야 되지 않습니다. 증거 해야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어떤 권력, 어떤 보상, 어떤 확인 보다 더 큰 권세 속에 있다고 그렇게 증언해야하는 자리에 있습니다. 그것은 강요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마땅이 알하야 할 진실일 뿐입니다.

 이 답, 이 진실, 이 명예를 이해하거나 실천하는데 실패하게 되면 당장 찾아 오는 현실적 증상이 무엇이냐면 예수 믿는 것이 억울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내 기도 안 들어 주시고 나를 그렇게 어렵게 하시는가?  이것은 다 하나님이 예수안에서 우리에게 무엇을 허락했는지 몰라서 그렇게 됩니다.

 여러분의 실력을 보십시요 여러분의 신앙 실천이 어디에서 근거한 것인지 확인해 보십시요. 우리는 더 큰 어떤 재능, 더 큰 우월감으로 앉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기 앉는 것을 복으로 생각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부족한 것을 들어 쓰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 내가 자격있고, 실력있고 우월하기를 바래서 보상으로 신앙이 작동되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은 조건 상 이미 충분합니다. 여러분의 지금 현실은 그 기가 막힌 현실은 따지고 보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 힝들지만 이 신앙행위를 신앙이해를 이 자랑과 영광을 누리실수있습니다. 증언하셔야 합니다. 힘에 겹겨든 우십시요 울면 여러분 곁에서 격려해 주십시요. 겁내지 마십시요.

 무한한 은혜 속에, 품속에, 권능속에 우리가 부름을 받았고, 보호받고, 하나님의 손길로 산다는 사실을 아는 귀한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