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tation on Bible/Corinthians 2(고린도후서)

고린도후서 - 박영선 - 제2장

Four Seasons Daddy 2021. 7. 25. 06:34

 

 


고린도후서  2:01~11

교회는 이런 곳입니다  

 고린도 교회안에 바울을 극렬하게 반대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있었고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책망을 하고 교회앞에 교회를 지키기 위하여 이 사람들이 하는 것을 경계하고 또 경고하고 교회를 지키는 것에 책임을 다해라 라고 썼는데, 큰일났다 라고 근심과 걱정이 많은 성도가 생겨서 바울이 위로하는 글을 쓴 것입니다. 

 이렇게 쓴 것은 내가 사랑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이라. 교회 안에서는 책망이라는 것이 겁을 주거나, 정죄하는 것이나 심판하는 것이 아니다 입니다. 

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을 용서하였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진리문제나 질서 문제로 징계가 이루어지거나 어려운 말을 해야 할 때 조심해라 입니다. 사탄에게 속지 말고 입니다. 

 개신교의 교회의 3대 정체성은 복음적이고, 제대로 된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문제, 징계라는 것이 있습니다. 징계는 왜 필요하냐? 아무 질서도, 교육도, 진전도 없이 놓아두어서는 않된다는 뜻이지 징계라는 것이 누구를 벌해서 짤라버리고 마는 것은 아니다 라고 그렇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 공동체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 진리라는 말과 순전함이라는 말을 즐겨씁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신 목적은 이세상의 통치권 권력질서와 대조되는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백성된 정체성을 위하여 교회를 세워났습니다.

 관계와 교제라는 것이 폭과 깊이를 훨씬 크게 하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자신에게 충실한 것이 전부가 아니라 정체성이 우리는 상대방에게 배려를 어떻게 하며, 어떻게 함께 갈 것이냐를 가장 중요한 정체성의 실력으로 봅니다. 

 공동체의 순결을 지킬 때 교회가 가장 우선시 하는 정체성은 무엇이냐 순결이 아니고 용서입니다. 얼마나 많이 함께 가느냐 하는 싸움이지 얼마나 옳으냐의 싸움이 아닙니다. 

 문제를 같이 안고 가는데는 얼마나 많은 실력이 있어야 되는지, 이해하고, 용서하고, 짐을 나눠지고,오해를 받고,바보가 되고 까지 실력이 되야 같이 갑니다.  

 진리란 성경에서는 옳은 것이 아니고 은혜입니다. 꼭 기억해 두십시요. 예수의 십자가는 말이 안되는 사람을 위하여 진 짐입니다. 고난이고, 오해이고, 억울함이고,고통입니다. 

 아무리 명분이 옳더라도 공포로 가면 틀린 것입니다. 

 교회가 무엇을 훈련하고 있습니까. 용서하는 법. 용서받는 법.고맙다고 말하는 것,상대방이 나보고 고맙다고 말하는 것 그것이 교회가 가지는 적극적인 목적입니다. 

 무슨 세습이니,재정의 투명성이니 하는 것은 시비를 걸자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교회는 거기에 답하는 데 급급해서는 안됩니다. 그보다 훨신 상회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죠. 교회 다니는 사람은 다르다. 그에게는 공포가 없으며, 초초함이 없습니다. 상대방을 기다려 주며, 그게 교회가 제공하는, 교회를 세운 일입니다.


 

 

 

고린도후서 2:12~17

율법과 은혜의 판단기준은 생명의 향기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 바울은 드로아에서 성공적인 전도가 이루어지고 있었는데도 디도를 보내어 고린도 교회의 사정을 알아보라고 했는데 그를 만나지 못해서 성공적 전도 활동을 중단하고 교린도교회로 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과 고린도 교회가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야 한다. 생명의 냄새가 되어야 한다라고 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고린도 전서를 쓴 이유는 고린도 교회를 세우고 2년이 채 안되는 기간동안 세우고 가르치고 이제 떠난 후에 들려온 고린도교회의 어려움들을 바울이 듣고 쓴 편지가 고린도전서입니다.

 거기에는 파당이 생겨서 일어난 문제, 또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 은혜로 말미암는 자유가 방종으로 나타나는 문제, 음행이나,우상숭배,재물먹는 문제 그리고 은사문제 은사가 있어야 되고, 그 은사가 어떻게 이해해야 되어야 하는 문제.

 서신서들을 다 우리가 큰 눈을 가지고 보면 모든 교회마다 가장 중요하게 어떻게 하는게 신앙생활에 가장 충실한 것이냐는 문제로 혼란을 빗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 그런 혼란은 대표적인 표현으로 율법주의거나 은혜주의로 자주 나타납니다. 훨씬 작은 주제로 나누자면 구원의 확신이라든가, 열매라든가, 마음에 가진 헌신정도라든가, 진실함과 순도의 문제라든가, 종말론이라든가, 성령론 등으로 나누어지겠지만 크게 율법주의와 은혜주의로 나누어집니다.

 기억할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율법을 완성한다는 묶을 수 없는 율법과 은혜가 기독교 신앙에서는 묶여 있다는 사실입니다.

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것, 율법이 요구되고 은혜가 주어지어 우리를 영광되게 하며, 우리가 얻은 구원을 감사하며 찬송하게 하는 것 이런 것들 것 우리에게는 모순되어 보입니다.

 모순되어 보이는 것이 어떻게 묶일 수 있느냐 하는 문제와 그 각각이 하나의 과정일 수 있다는 순서상의 차이 율법주의에서 은혜로 나오고 은혜주의에서 율법으로 나가게 되는 이 둘의 신비한 조합에 대하여 우리는 고린도 전후서를 통하여 많은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회안에 있는 파당문제나, 은혜로 인한 방종문제나 사도바울의 답은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먹지마라 이렇게 된것입니다.죄냐 아니냐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지요

 이렇게 묶는 이런 문제들이 그 지적을 받은 당사들에게는 불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뭐가 불만이죠 잘 할려고 했다가 꾸중을 들은 것입니다. 그리고 은사를 받아서 감동과 증거를 받았는데 너 설치지 마라 사랑이 최고다. 이러한 불만은 바울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 고린도 후서에는 바로 이것 내가 나아가서 꾸중하고 불편한 얼굴로 만나고 싶지 않아서 안 갔다.이게 무엇 말인가, 그런 분별, 그런 지혜, 그런 결정은 어떻게 나오는가? 권위란 무엇인가? 결정과 책임은 누가 지는가? 하는 문제들로 자연스럽게 나아가게 됩니다. 

 우리는 조직상의 있어서의 어른이 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로 이 문제를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예수 믿은지 오래되고 나이가 들면 저절로 어른 노릇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가장 현실적으로 가정에서, 자식들 앞에서, 이웃들 앞에서 여러분들은 다른 선택, 다른 결정, 다른 이유, 그리고 우리가 가지는 결정의 근거가 가진는 영광을 증언해 내야 합니다.

 율법이 은혜를 부른다는 사실, 율법은 은혜를 배척하지 않는다는 사실 은혜를 받으면 율법을 다시 사모하게 된다는 사실.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이거든요

 우리가 볼때는 하나는 책임을 지라는 것이고, 하나는 모든 것을 허락하다는 용서와 사랑인데 용서와 경계의 요구와 용서와 허락과 풍성한 약속들이 어떻게 묶이니냐

 위대해지고 훌륭해지면 기꺼이 사양하고, 절제하고, 책임지게 됩니다. 누가 옳은 지 따지자 하는 것은 최악의 판정입니다. 

 책임의 소재를 나누고, 자기가 받을 것을 책임지자라는 것을 훨씬 넘어서서 그런 법을 지키는 것이 명예이고 자랑이라는 것을 아는 자리까지 가기에는 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 자신의 경지에서 상대방이 지금 걷고 있는 현실을 따뜻하게 볼 마음이 없으면, 무서운 말을 하게 됩니다. 그때 율법을 말해야 되느냐, 은혜를 말해야 되는냐, 위로해야 되느냐, 경계해야 되느냐, 기다려야 되느냐, 겪려해야 되느냐 이런 중요한 판정의 기준을 가져야 합니다.

 율법과 은혜의 판단의 기준은 생명의 냄새가 나느냐,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느냐 하는 것이다.

 공동체 안에서는 빈 자리를 해야죠. 어디가 비었다고 보이면 그 사람이 해야합니다. 다 하는 자리로 쫒아가시거나, 모두를 다 하나로 묶으려고 하지 마십시요, 다양하게 하십시요 은사에서 이미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습니까. 각각의 다른 지체로 한 몸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냐 그 다양함이 풍성함을 만들지 않느냐 그것을 우리가 기억하는 것입니다. 

 넉넉한 가장 중요한 냄새가 무엇이죠  그것은 위로 받는 것입니다. 감사가 나오는 것입니다. 각각의 한계가 오히려 일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 틀려서 잘못된 것이 아니라 옳은데 자기 역할을 놓쳐서 잘못된 것입니다. 여름에 모피코트를 입고 나온 것입니다. 모피 코트가 멋진데 여름에 입은 것입니다. 코드의 잘못이 아니라 입은 사람이 잘못된 것입니다.

 우리 각각 자기가 가진 은사를 자기가 가진 역할을 언제 어떻게 써야 하느냐, 바울은 지휘자입니다. 지휘자에게 어떤 악기를 불거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악기를 부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것입니다. 

 교회에 오시는 것 만으로 복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우리의 인생의 기회가 연주가 되는 그런 나날들을 누리신다는 그런 기쁨이 확인되고, 그런 공동체를 만들고 그런 인생을 살아 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