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tation on Bible/Corinthians 1(고린도전서)

고린도전서 - 박영선 - 제1장

Four Seasons Daddy 2016. 11. 17. 23:44

 

 

고린도전서 1:1~9

바울의 기본적 감사

 

l  고린도 교회는 많은 책망과 교정을 요구 받고 있지만, 기본개념은 감사입니다. 4절에 보면 너희를 향하여 어떤 요구가 아닌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합니다.

 

l  성경을 보면 세상의 이해로는 앞 뒤가 맞지 않은 역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일들은 하나님이 누구시냐와 예수 안에서 그 뜻을 이루신 역사적 방법에 의해서 압도되는 것입니다. 할말이 없습니다. 죽음이 부활을 만들어 내고, 믿음이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선하신 능력을 결과시킨다는 말에 우리가 보통 이해하고 판단하는 모든 잣대들이 허물어 집니다.

 

l  혼란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를 믿으면 여러 가지 권면을 해야 되고, 또 스스로 성찰을 해야 되고, 노력해야 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운명적 개념에서 감사하는 것 입니다.

     

l  고린도전서는 모두 고린도 교회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바울의 기독교 신앙적 해석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고, 겪고 있는 현실이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거기서 어떻게 길을 찾아야 하는가를 설명하는 것이지, 바울이 하고 싶은 일을 현실에 있는 것을 핑계 삼아서 독촉하거나 강요하는 식으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l  우리는 우리가 구원 받은 그 정황 속에 그대로 옛날과 다른 사람으로 현실을 살도록 그렇게 하나님의 일하심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를 믿은 다음에는 우리끼리 분리되어 모이지 않고, 어제까지 하나님 몰랐던 세상과 조건 속에 내가 변해서 윤리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서 그 자리에 섭니다.

 

l  동일한 삶의 조건 속에서 내가 변해서(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어서) 동일한 정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로 구체적으로 내가 누구인가를 세상 앞에 하나님 자녀라는 지위와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을 증언하도록 보냄을 받습니다.

 

그 길을 가야 합니다.

 

l  나침반은 방향을 가르쳐 줍니다. 그러나 길을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사막을 만나면 잘못 온 것이 아니고, 강을 만나면 잘못 온 것이 아니라, 나침판은 방향만 가르쳐 주고, 그 방향으로 갈려면 그 길들을 가야 됩니다.

 

l  그 길들은 직선으로 나있는 것이 아니라, 강을 만나면 건널 만한 얃은 물을 찾도록 상류로 올라가야 되고, 산을 만나면 산을 넘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야 할 경우가 더 많습니다.

 

l  어느 방향으로 갈려면 그냥 처다보면 되는 것이 아니라, 가야 되거든요.가다가 잠도 자야 되고 밥도 먹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이 그 방향으로 가는 방향을 증언하는 실제적인 자리라고 그렇게 가르쳐 줍니다.

 

l  그 조건 그 현실에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그 방향을 증언하는 것인가 그길을 가는 것인가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 고린도 전서입니다.

 

l  고난을 당하면 맨 처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을 잘못했을까부터 생각하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법인데, 이렇게 생각하라는 것 이지죠.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러한 조건 속에서는 어떻게 증거하라고 하시는 것인가?, 어떻게 해결이나 극복하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감수하느냐 하는 것이 고린도 전서입니다.

 

l  우리 모두에게 이 길을 가는 사람으로서 자기의 조건에 대하여 깊이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감수할 믿음을 늘 단련해야 됩니다. 조건을 바꾸려 들지 마시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다가 아니라. 우리가 거부하고 싶고, 부끄럽고, 분노하는 그 조건이 하나님의 손에서는 어떤 내용을 담아내는가를 물으라는 것입니다.

 

l  하나님이 예수로 말미암아 당신의 영광을 삼으시며 우리 모두에게 그것이 기적이 되도록 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우리는 우리의 현실을 하나님의 일하심이라는 지혜와 능력에 맡기는 믿음 안에서 매일매일 성숙해질 것입니다 그 기대와 마음을 가지고 고린도 전서를 읽으라는 것입니다

 

현실로 허락치 않은 은혜

 

l  하나님의 뜻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하나님의 의지와 거룩하심 선하심과 자비 능력 성실 같은 것들이 전제되어 먼저 압도적인 조건이 되어서 그 다음의 우리의 반응들이 거기에 붙어 묻어 나오는 것이지 우리가 본체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하나님이 일하시는 기뻐하시는 방법에 비교하면 우리 것은 너무나 사소한 것입니다. 영광된 것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l  예수를 믿는 것은 대단히 경이로운 경험입니다. 우리의 존재와 인생의 전부인 유일한 최고의 경험입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하면 그게 진부해집니다. 현실에서 실망감이 더욱 커집니다. 그게 뭔가? 왜 하나님은 아들을 보내어 십자가에 매 달아 우리를 항복시킨 그 놀라운 은혜를 현실적으로는 왜 허락하시지 않는가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하면 우리는 우리인생,교회 그리고 우리의 사회생활에 대하여 신자로서 가장 중요한 이해와 실천의 방법을 놓치게 됩니다.

 

l  네 작은 존재와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이 큰 일에 한 부분이란다. 네가 모든 세계를 품고 다 해결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너 하나 너의 결정, 너의 몸짓 너의 자세 하나하나가 전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손길이란다. 크게 생각해라 라고 얘기하는 것이 된다.

 

l  내가 작은 존재이고 전세계와 역사를 바라보면 우리의 존재는 정말 작은데, 전 우주와 역사의 운명 하나님의 은혜로운 뜻을 완성하기 위한 실제적인 존재와 삶이다. 라고 얘기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 하십시요

 

l  우리는 크지요, 굉장한 존재들입니다. 스스로에 대한 이해와 함께 신앙생활하게 된 우리 믿음의 식구들 그리고 내가 보내져서 나와 만나는 모든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 은혜롭고 거룩하신 뜻 안에 있는 존재들이다,라는 것을 잊지 마시고 여러분의 삶을 살아 내십시요. 하나님이 기적을 이루십니다.

 

l  이것을 모르면 하루하루를 살아낼 수도 없습니다. 너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서, 하나님이 침묵하시고, 안 쳐다보는 것 같아서, 내가 너무 작아서, 그렇지 않다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l  고린도 전서를 읽어 나가면서 우리자신의 삶과 현실이 가지는 하나님의 일하시는 신비와 기적과 그 구체성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 서신을 읽으면서 우리의 삶을 이해하고, 큰 믿음을 가지게 되고, 자기의 역할의 중대함을 아시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고린도전서 1:4~9)  

 고린도서신을 보낸 바울의 전제

 

l  4절의 하나님께 감사한다. 모든 경우, 모든 사건에 대하여 발언권과, 주장과 기준과 권위가 있는 분을 선포 함으로서, 그 모든 것을 감싸 안을 수 있는 범위,영역이라는 것을 상기시킵니다. 우리에게 일어난일 중에 하나님 통치와 하나님의 능력 밖에 있는 일은 없다 라는 것을 기억하라  

 

l  그것을 은혜로 표현하는 것은 그분이 선하시다는 사실 때문에 그것이 권력이거나, 방법이거나, 잣대거나 하는 것으로 나오지 않고 은혜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가 따라 나오는 것입니다.

 

l  그 모든 것을 끌어 안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의 역사적 증거인 예수 그리스도 그 구체적인 현실을 살아내고 있는 성도, 그들을 보내신 부모의 마음,하나님의 마음을 전제해야 합니다.

 

l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개혁주의 칼빈주의

 

l  하나님의 넓으심과 크심 그 안에 있다 .우리가 겪는, 생각하는, 만나는 모든 것을 포괄하시는 운영하시고, 다스리시고, 책임지실 수 있다 라고 크게 얘기하는 것이 개혁주의입니다.

 

l  잘한 것과 못한 것을 간섭하실 수 있고, 통치하실 수 있고, 그 크신 은혜 안에 담을 수 있다  왜 그런 얘기를 했을까요 ! 아무리 잘 하려 해도 잘할 수 없는 현실을 만나면 우리는 묻게 됩니다. 하나님 기독교 신앙과 복음이 잘잘못이 끝입니까?

 

l  그때 하나님이 괜찮다고 하시는 말씀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괜찮다고 하는 것이 아무래도 좋다는 걸까요. 그 질문의 공포에 직면하지 못해본 사람은 하나님의 주권의 칼빈주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입니다.

 

l  이해하지 못하면 잘못된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열심히 살고 은혜가 있으면 뭐가 달라지죠  잘못하는 사람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용서하기 위해 칼빈주의가 되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크신 하나님. 우리가 못 한 것으로도 실패로 끝나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을 아는 것을 칼빈주의라 합니다.

 

l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아무래도 좋다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의 엄정함이 그의 긍휼과 자비와 사랑이라는 하나님의 성품위에 서 있다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l  우리를 꾸짖을 수 있지만 그것은 공포가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진정성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면 신앙생활을 할 수 가 없습니다.

 

우리의 생활속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주권

 

l  7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이 은사는 확인이 아니고 주님 다시 오시는 날까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완성 시키시는 하나님의 개입, 간섭, 지키심 등을 증거합니다

 

l  9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주의 오심을 기다림을 살고 있는 시간이라는 길이와 우리 주와 교제하는 신앙공동체(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로서 교회공동체라는 공간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l  하나님의 주권이 시간과 공간이라는 구체적인 무대 속에서 그의 성도들을 완성시키고 있습니다. 각각의 조건 속에서 하나님 끊임없이 우리에게 질문하시고 우리에게 그것을 살아, 내가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가 내 자녀가 되었다는 것이 무엇인지 해보라고 하십니다

 

l  어디에서 질까요 ?  세상이 무서워서 지고, 하나님이 정말 이 조건 속에서 은혜와 승리를 주실 수 있을까 믿어지지 않아서 집니다. 지는 형태에 가장 많은 것이 꼭 오늘 결정할 필요는 없지 않는가 라고 대강 넘어갑니다.  매일을 그냥 넘어가죠

 

l  성경이 요구한 신자로서의 책임은 무엇인가? 표정 잘 짓고, 멋있는 말하고, 변명하고 납득시키려 하지 말고, 신자로서 사는 자 된, 세상사람이 지을 수 없는 자세를, 표정으로든, 말로든 한번 지어 보싶시요. 그게 고린도전서를 시작하는 전제입니다.

 

l  2000년 전에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나사렛에서 크고 갈릴리에서 복음을 전하시고 예루살렘에 들어가 반대파들에 의하여 억울한 죽음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로 우리를 구원한 하나님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의 구체적인 개입,역사,능력, 은혜들을 기억하라

 

l  누가 내 인생과 짐을 나누어 질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당신이 넉넉하게 상대방의 고민을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이 되십시요. 우리만이 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우리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우리만이 고난 가운데서 웃을 수 있는 넉넉한 자로 서있을 있습니다.

 

 

 

 

(고전 1:10~17)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보내는 이유

 

l  바울이 편지를 보내는 이유는 고린도교회에 현실적인 문제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여러가지 문제가 생겼는데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안에 있었던 분쟁입니다.

 

l  성경을 읽을 때 무엇이 정답인가를 가려내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10절의 말씀처럼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라는 말을 읽으면,주장하면,고백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l  이 일을 읽고, 이 일을 겪는 속에서 하나님이 모두에게 유익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누가 옳고, 그르다 하는 판정을 내리는 그런 정도로 끝나지 않고 잘잘못의 와중에서 각각의 역할에서 잘한 사람과 못한 사람 모두에게 하나님 만이 은혜를 베풀 수 있습니다.

 

l  잘잘못의 문제가 아니고 그 현실, 그 과정을 겪는 속에서 각자가 성경전체가 주장하는 창조주시요, 구원자시요, 심판자이신(하나님의 뜻이 완성되는)영광의 결말을 보고야 말 것이라는 것을 기억 해야 합니다.

 

l  여기 나오는 말들의 현실성을 여러분의 개인신앙생활 속에서나, 교회 안에서 겪을 때 놀라실 것이 아니라 그 구체성을 이해하고, 서로가 궁극적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그렇지 않으면 성경을 읽어낼 수가 없고,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고, 교회생활을 할 수 가 없습니다.

 

l  성경을 읽을 때 무엇이 정답인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잘한 사람과 못한 사람 모두에게 하나님 만이 은혜를 베푸실 수 있습니다.궁극적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받고 커야 합니다.

 

l  이것이 교회에 일어나고 있는 일일뿐아니라 우리 개인의 현실입니다. 이게 뭔가? 라는 그 길이 손해보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거기다 얼마든지 은혜와 구원과 기적과 복을 담으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구체적으로 담는 길을 걷고 있다고 성경이 얘기하는 것을 여러분 자신에게 적용하셔야 합니다.

 

 

 

분쟁의 이유,해결

 

l  분쟁과 십자가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분쟁에 서있는 자들마다 어떤 이유,어떤 기대가 있어서 그 자리에 섯을 것입니다. 십자가와 비교하자면 쉽게 이해하자면 이것입니다. 독점욕, 우월감, 그리고 배타성 등입니다

 

l  근본주의는 쓰는 사람들에게는 명예로 쓰이고, 반대파에게는 비난으로 쓰이고 있는 표시입니다

 

l  배타성은 상대를 누르기 위해서가 아니고 확실한 내 목소리를 내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경계를 지키는 지도자가 있어야 한다. 상대를 누루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말 자기의 음을 내기 위한 것입니다 화음을 내야지요

 

l  이런 독점욕과 우월감, 배타성을 버리고 십자가가 주장하는 것을 기억하여 내가 둘일 수 없는 내가 한음을 낼 수 밖에 없는 우리 각각의 지위 역할 조건이 고유한 특권을 가진다는 것을 알고 그것이 구체적이고 명예이며 기적이며 동시에 그것이 무한이 큰 것이다 라는 이해를 갖음으로 경탄의 눈으로 나와 다른 견해와 다른 존재를 바라봐야 할 것입니다

 

l  교회란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하고 모이는 모든 사람의 공동체입니다. 정치이념이 다르고, 사회적 지위가 다르고 개인적 취향이 다를 수 있습니다. 성격 관심사가 다르죠 그러나 예수를 믿는다는 이름 하나로 꽉 묶습니다. 어디서 확인 하냐면 성찬식입니다

 

l  3:19

 

l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나서 차별이 없느니라. 차별이 없다는 것은 아무나 받아준다는 것이 아니라 그 다양함과 그 포괄성과 심층성 같은 것들을 대변하는 것입니다.

 

l  2:18

 

l  우리는 예수와 연합된 자입니다. 자기가 전부라고 얘기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매우 고마운 말씀입니다. 우리의 최대치 온 인류의 역사를 다 담은 것이 그분의 몸에 불과하다 그 모두가 그것에 붙잡혀서 생명과 진리와 영광과 승리와 만족을 얻는 머리에 연결된 존재로서 인류의 존재를 역사를 인간을 자기를 이해 해야 한다고 합니다.

 

l  그 커다란 몸을 머리로 갖으신 예수는 얼마나 굉장할 까요 그것이 십자가 입니다.

 

l  3:16

 

l  무한한 생명의 근원과 영광의 기원으로부터 받아내는 넘쳐나는 풍성함을 여기 소개하고 있읍니다. 무엇을 하던지 주 예수 이름으로 하라 굉장한 것입니다.

 

l  나는 게바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속한  바울에게 참을 수 없는 복음에 대한 왜곡으로 들렸을 것입니다.

 

l  하나님의 일하심의 크기를 인정하셔야 합니다. 아무 때나 역전은 가능하고 아무 때나 구원이 일어나고 아무 대에서나 하나님의 영광이 들어납니다. 그 배짱이 없으면 교회를 섬길 수가 없고, 인생을 살수가 없습니다.

 

l  숨기고 산다는 것은 늘 도망가고 외면하고 미루고 살수밖에 없습니다. 직면 하십시요 온 세상과 나 하나가 충돌해도 우리가 이깁니다. 나가서 세상을 깨부수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그 안에 삼켜져 있는 것 같으나 걱정하지 마십시요 세상은 우리를 삼켰다고 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심었다고 하십니다.

 

l  나 어떻게 살라고! 여러분 실력 많큼 사십시요. 그러나 하나님이 그 안에서 일하신다는 것을 아십시요. 성가대의 가치는 실력 없는 자가 함께 영광을 나눈다는 것입니다

 

l  우리의 자랑을 알아보는 일이 우리에게 제일 시급합니다. 우리가 즐기고 감사가 넘치지 않고 나눌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권력으로 누구를 압도하려고 하는 생각을 갖는 한은 우리 스스로도 누군가 부딪치고 나와 다른 사람과도 부딪칩니다.

 

l  14:7

 

l  우리가 우리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큰 섭리 속에 붙들려 있습니다. 우리는 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이것들이 우리에게 힘을 줍니다.

 

l  너희는 작은 자가 아니다. 너희는 각각의 고유한 영광을 갖는다. 라는 십자가의 약속을 듣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무엇인데요? 죽음의 자리도 하나님이 외면하지 않는 그의 아들을 보내신 자리이다 가 십자가입니다.  가장 억울한 가장 실패한 자리까지도 하나님의 통치와 창조의 목적을 방해하거나 외면할 수 없다라고 선언하는 자리입니다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

 

l  하나님에게 나는 어떤 존재인가!!   모든 성도들에게 허락된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된 이름 하나님 아버지 입니다. 그 아들을 보내신 십자가 사건입니다.

 

 

 

 

 

(고린도전서 1:18-25)

 예수가 어찌 나뉘었느냐

 

l  본문은 내가 너희 안에 분파와 분쟁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라는 앞의 내용을 이어서 나오는 내용입니다. ‘어찌 그리스도가 나뉠 수 있단 말이냐하면서 그래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가르치는 내용입니다.

 

l  그것은 다만 분쟁하고 싸우는 것은 덕이 없다라고 그렇게 윤리로 명분으로 끌고가지 않고, 근본적인 이유를 설명하여 꾸짖습니다.

 

l  본문에서 미련하다라는 말이 18,20,21절에 계속해서 나옵니다. 여기서 미련하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것이다라는 뜻 입니다. ‘예수가 나뉠 수 없는 것이다와 같은 뉴앙스로 이해 해야 하는 것입니다.

 

l  바울 서신서들은 예외없이 시작을 고린도,에베소,빌립보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인하여 종 된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형제된 성도들에게 문안한다고 합니다.

 

l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라는 것은 원래부터 하나님의 자녀로부터 태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모르고,거부하고,관심이 없는 저들에게 하나님의 그 아들을 보내 구별해 낸 자들입니다.

 

l  하나님의 은혜가 구별된 자들에게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구원의 길을 찾을 수 없는,관심이 없는 자들에게 임하여 이들을 구별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커다란 영역과 통치 그 한도 속에 있습니다. 거기를 나갈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그러니 나뉠 수가 없지요.

 

l  우리를 위하여 그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은 예수를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 보내신 창조주시요. 우리에게 아버지가 되려고 결심하셔서 그 일을 이루신 분이다. 이런 큰 틀을 놓으므로서, 우리가 저지르고 있는 잘못들을 윤리적 가치와 명문으로 정죄하지 않고 하나님의 존재와 통치와 능력과 뜻과 주도권 안에 묶음으로서 이 문제들에 대한 통찰을 믿음을 확인시킵니다.

 

은혜에 맡기라

 

l  하나님의 은혜에 맡겨야 합니다. 무지한 것, 잘못한 것을 하나님의 은혜에 맡기고 서로가 불편을 감수해야지요. 그게 교회 안에서 있어야 할 믿음의 자세이고, 분별이고, 인내입니다.

l  모두가 한 마음을 가져서 편하면 틀림없이 몽땅 다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이다. 그것이 교회 역사의 증언입니다. 사람이 하는 일에는 늘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 반대할 때, 돌아보고 내가 스스로 좁아진게 아닌가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l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교리는 하나님의 의도와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목적이 우선하고, 우리는 그의 뜻과 능력과 기뻐하심에 의하여 은혜와 선물과 복과 그리고 승리과 영광을 얻게 되는 자들이다라고 우리의 지위와 신분과 운명을 이해합니다.

 

l  이것을 이해 못하고 말이 안 된다고 하는 것은 미련한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 달리신 십자가

 

l  십자가의 도 이미 일어난 사건, 이 천년 전에 일어난 사건을 어떻게 뒤집겠느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사람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왜냐하면 말이 안되는 것이거든요,

 

l  사람들 손에 죽어버리고, 사람들에 의해서 배신을 당하고, 사람들에 의하여 학대받아 비참한 최후를 맞은 이 일을 어떻게 구세주로 받으란 말이냐 이것이 말이 안되는 것입니다.

 

l  십자가란 하나님께서 그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그리고 당신이 누구신지를 증언하기 위하여 역사적 실체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개입, 역사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역동적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의 창조의 연장이라고 증언하는 것이 십자가 입니다.

 

l  우리가 말들어 내는 최후의 결과 사망, 실패 그것을 뒤집음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 최후의 결과를 뒤집어서 더 이상 도망갈데도, 실패할데도 없게 만드는 것 십자가 이천년전에 완성하신 일입니다.

 

l  이것을 모르는 것이 미련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l  예수를 믿음으로서 알게 된 하나님과 하나님의 목적과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하여 아는 자와 아직 모르는 자로 구별을 가져야지, 패를 나누어서 우리는 은혜를 받은 자이고 저들은 은혜를 받을 수 없는 자라고 말하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거룩함이라는 구별이 아닙니다.

 

l  하나님이 못 담으실 것은 없다 그것은 보상을 위하여 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영광이며,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고, 누구에게나 주시는 하나님은혜라는 것을 기억하는 너의 인생이 되라.

 

l  가난한 사람을 돌아 볼 수 있는 인생을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충만하심을 알기 전에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자랑 이외의 것으로 동기를 가질 수 없습니다. 우리만이 충만과 감사해서 하나님의 통치와 능력이 십자가로 증명된 그 자리에 들어간 자의 안목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자의 명예입니다.

 

l  겁이 날게 없습니다. 무엇 때문에 원망을 하시며, 무엇 때문에 억울에 하십니까, 고통스럽다구요 그건 충분이 이해가 됩니다. 그건 만만치 않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고난을 당하는데 시원하고 기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l  그러나 그속에 은혜를 담을 수 있고, 위대함을 담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위대한 길입니다. 예수를 믿은 자랑입니다. 그걸 내분을 일으켜 적을 만드므로서 상대방보다 우월감 정도로 만족하는 것은 미친짓입니다. 예수를 모르는 짓입니다.

 

l  여러분 각자의 충만함과 이해가 여러분의 생애에서 나타나지 않으면, 한국교회가 부흥을 하거나, 명성을 얻거나, 현재의 세계에서 세력이 된다 해도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l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한 존재의 항복, 한 개인영혼의 만족으로 증언하십니다. 전도는 방법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일하심에 한 영혼과 실존에서 그 영광과 승리가 인격과 삶으로 항복되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 이 누구시며 어떻게 일하시고, 무엇을 채워가는지 증언하는 것을 방법으로 택하셨고, 당신의 증언으로 삼으셨다고 합니다.

 

l  한국교회가 옛날의 명성과 지위를 갖고자 하는 것은 매우 가난한 소원입니다.

 

l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가 그를 죽인 인류를 구원하는 일이 십자가의 방법 하나님의 일하심의 지혜와 능력일 찐데 우리에게 일어나는 현실적인 어떤 조건과 정황이라도 우리를 실패케하거나 또는 우리를 영광스럽게 못할 장애물은 없습니다.

 

l  나에게서 확인하고 예수 믿는 사람끼리 확인하여 세상을 볼 때 그 눈으로 보십시요.

 

l  구체적인 길을 걷는 다는 것은 땀을 요구하고 눈물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쩔 수 없는 길이 아니라 구체적인 길이라는 것입니다. 위대한 이가 걷는 길 구체적으로 살아내므로 증언하는 시간들이요 증언하는 모습들이라고 얘기합니다. 멋지게 사십시요 여러분의 정황이 나쁠수록 본문이 더 많이 증언이 됩니다.

 

 

 

 

(고전1:26~31)

 하나님을 아는 것

 

l  고린도 교회의 여러가지 문제들, 그중에 제일먼저 분파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한 일들이 왜 일어났느냐 가를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라는 지위, 신분, 위치속에서 설명하려고 하는 것이 바울의 의도입니다.

 

l  교회는 다양성 때문에 풍성하기도 하고 어려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지금 일하심의 섭리가 우리의 이해를 벗어난다는 것입니다

 

l  너가 이해하는 것보다 크고 깊고 넓다. 너가 이해하지 못하는 종말이 올거야, 종말은 누구 옳으냐 그르냐 나눌려고 하지 않고 이것이 목적이였고 우리의 운명이고 승리고 영광이구나라는 우리의 항복과 찬송으로 결말을 이루겠다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종말입니다.

 

l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십자가에 메달아 죽이신 그 진정성을 결론으로 가지며 이루기 위하여 너희들을 불러 한 몸으로 삼았다것을 볼때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크다 놀랍다 우리의 이해와 다르다 라고 늘 항복하라는 것입니다.

 

l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늘 좋은나라 좋은이웃 좋은환경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우리의 단순함이고 우리의 가난한 입니다. 그것보다 큽니다

 

l  모든 계절은 자기 몫을 합니다. 그것은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일하심의 방법이고 지혜라서 그 속에 담겨져 있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은혜로 믿음으로 읽어내는 실력을 갖지 못하면 모든 것이 다 불평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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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하나님을 아는 것, 여기서 아는 것이란 지식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 하나님과 관계에 있어서의 지위를 갖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l  하나님과 관계란 무엇이지요 하나님이 아버지시고 우리는 그 자녀라는 지위입니다. 그 지위를 가지는 것입니다.

 

l  우리가 필요없고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우리가 필요하고 그것이 더 많아야 된다는 그 이상의 재료요 조건이요 과정이라고 얘기합니다.

 

l  요즘 가장 즐거운 일이 무엇인가요? 나이드는 것입니다. 술이 익는 것 같고, 요리가 익는 것 같고 맛이 베어나오는 것 같습니다.

 

l  십자가로 승리하시겠다고 하는데 우리는 늘 십자가를 휘둘러 덴다고 그랬죠 그 십자가가 하나님이 죽으신 자리라는 것 그것이 최선의 방법인 것은 그 깊이까지 깊고 그 넓이까지 넓고 충만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이 타협하지 않겠다는 이렇게 소개하는 것입니다

 

l  하나님의 우리에게 저지르게 하시고 돌아보게 하시고 후회하게 하시고 그래서 우리에게 일어난 과거를 어느 한 순간에 역전을 시킬수 있다. 우리는 가서 앉아 줍니다. 들어줍니다. 가보라고 해보라고 울어도 된다고 나이가 드는 것이 얼마나 충만해지는 것인지.

 

l  누구를 비난함으로서 여러분이 명예로워지지 않고 누구를 꺽음으로서 여러분이 승리를 얻지않습니다.이길은 여러분이 여러분의 삶과 존재를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름으로 내 자신의 생애에 담아내지 않으면 적극적으로 스스로 삶으로 표현에 내는 영광을 누리지 않으면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l  여러분의 인생과 구체적인 실존을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름으로 담아내고 즐기고 누리고 웃을 수 있는 기독교의 신앙과 그 종말과 그 약속이 이렇게 구체적이고 현실적입니다.

 

l  오늘 하루를 살았듯이 내일도 살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우리인생 속에 그의 영광과 신실함을 담아내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