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tation on Bible/Corinthians 1(고린도전서)

고린도전서 - 박영선 - 제2장

Four Seasons Daddy 2016. 11. 17. 23:45

 

 

(고전2:1~5) 

바울의 주장

 

l  앞에서 우리는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바울이 편지를 쓴 목적과 가장 중요한 어떤 핵심을 설명할 때에 그것을 명분,윤리,도덕 같은 추상적 개념으로 그것을 분석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십자가와 예수라는 이름으로 요약되는 하나님의 일하심,하나님의 능력,하나님의 지혜를 그 근거로 제대로 기초를 놓아 다른 것 들을 판단하도록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았습니다.

 

l  십자가와 예수로 요약되는 기독교 신앙은 예수께서 인간으로 오시고 우리 손에 죽으신 것으로 그 이름이 불릴 때 마다 그 예수를 십자가와 분리시킬 수 없는 것 처럼 그 것은 우리의 생각과 다른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만들 수 없는 결과다. 그래서 우리의 기대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보다 큰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강력히 시사하는 그 자리매김을 합니다.

 

l  바울의 주장은 너희 교회를 세운 것은 어떤 세상적인 조건과 능력과 또는 필요나 의지의 산물이 아니고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이다.이제 돌아와 자기가 이유였다고, 조건이였다고, 필수적인 역할이였다고,자꾸 자기 가치를 거짓말하느냐 기만하느냐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l  꾸짖자고 하는 말이 아니고 예수를 믿는다 교회를 세웠다 라는 말들은 다 하나님이 일하실 때 그것이 온전이 당신의 의지와 당신의 조건의 선하심과 은혜와 자비와 성실하심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왜 자꾸 놓치느냐 하는 말입니다

 

l  부흥, 비젼을 가졌더니 되더라 하는 말은 다 거짓말입니다. 지나와서 은혜와 감사를 나누었는데 듣는 사람은 필수적인 조건이 되었습니다. 기도해라, 믿음을 가져라 가 조건이 되었습니다.그러면 다 되는 것처럼 하나님을 조작할 수 있는 것처럼 되었습니다. 그들이 알지 못한 것, 구하지 않은 것 능력 없는 것 위에 조건 없이 하나님이 한국교회의 부흥을 이끄셨음. 하나님이 아무데서나 누구와도 하실 수 있었습니다 라는 역사적평가를 진실을 알아야 합니다

 

l  예수를 믿는다는 말을 쓸데마다 하나님의 성실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우리가 구하지 않았을 때, 필요를 몰랐을 때, 찾아오신 하나님, 일하신 하나님, 우리를 붙드시고 놓아두지 않으신 하나님 이라는 생각을 예수라는 말에다 담을 줄 알아야 합니다.그 예수가 와서 우리 손에 죽습니다. 그게 십자가입니다.

 

l  하나님 우리를 지금 우리가 싫어하고 증오하는 이 자리에 보내셨습니다. 그것은 성육신입니다. 우리가 거절하고 원망하고 하는 것은 참으로 몰상식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고백을 하려면 우리가 간 자리가 우리가 참을 수 없는 그 자리가 그 조건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그 무한한 능력이고 성실하심이라고 아멘하셔야 합니다

 

l  이런 이해가 없으면 우리는 억울에서 살수가 없습니다 다만 울고 원망하다가 낭비되는 인생을 사는 것 같습니다. 예수가 그랬죠 십자가로 끝나니까요.

 

l  우리가 세상을 위해서 보내졌는데 세상은 우리는 대접하지 않습니다. 알아보지 못합니다.이게 바울의 얘기 입니다. 저들이 마음껏 조롱하고 농락하고 그리고 비난하고 우리에게 욕을 다 퍼 부어댑니다.

 

l  십자가입니다. 우리가 보통 생각 하듯이 억울한 것 참아 십자가를 생각하고 참아 그게 아닙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l  하나님이 힘으로 이기지 않고, 하나님이 설명하고 우리를 밀어뜨려 꺽지 않으시고 얼마든지 우리의 도망가는 것과 반발을 감수하시고 이기시는 하나님이신가를 생각하면, 우리는 사실 우리가 겪는 모든 일에 대하여 힘들지만 억울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l  예수를 믿는다고 할 때마다 십자가를 사랑한다고 할 때 마다 그것이 내 현실임을 알지 못하고, 그 말에 있어서 그 고백을 가지고 여러분의 현실을 모면하자는 것이고, 마취하자는 것이면 참으로 다른 방향일 수 밖에 없습니다.

 

l  하나님 여기까지 오신다고요, 이런 방식으로요 하고 놀라야 합니다.어느 신이 우리를 구원코자 오셔서 우리에게 죽겠습니까! 그 자비와 인자와 사랑과 용서를 가지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갖는 것은 얼마나 복된 것입니까!

 

l  하나님은 우리를 무기로, 권력으로 보내시지 않고 아무것도 아닌 자로 나를 보내고 있습니다.그리고 그 기간을 길게 합니다. 우리는 견디기 힘들지만 그런 하나님을 가진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l  하나님이 우리를 보낸 그 자리마다, 우리의 억울한 자리마다 나를 그곳으로 보내어 옆을 묶고 있는 것을 아십니까. 내가 간 자리에 이웃이 있고, 가족이 있습니다.

 

l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고 예수를 믿는다는 고백을 가진 자로서 그 지위와 그 하나님의 능력으로 누구와 묶이는 바람에 그는 나에게 묶여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의 대상이 됩니다.

 

l  내가 이 시대에 살고, 이 나라에 살고, 이 사회에 살아서 이 시대와 사회는 하나님의 은혜와 간섭과 붙드심에서 제외되지 않습니다. 저들은 우리가 누구인지 모르니까 비난하죠,

 

l  하나님은 우리를 옳고 그른것으로 기준을 삼거나 잘나고 못나고, 그리고 장래를 내다보고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예수안에서 관계를 먼저 맺으십니다. 관계란 법보다 우선됩니다. 유능함보다 우선합니다.

 

l  우리가 가는 모든 자리에 예수를 믿는다는 고백을 갖고 있는 한 그것은  성육신입니다. 그 길은 십자가의 길이고 하나님은 그 길 이외에 다른 길은 허락하지 않습니다. 예수 외에 다른 이름을 주지 않습니다.

 

l  그것은 고난일까요, 손해일까요,고통에 불과할까요 명예로운 것입니다. 기적입니다. 그것은 위대한 것입니다

 

l  바울은 사명을 이루기 위하여 광주리를 타고 도망하는 그 부끄러운 길을 감수합니다. 우리도 예수를 믿는다는 말이 가지는 그 진정한 내용이 무엇인가를 우리의 고백으로 채워야 합니다.

 

l  우리라는 존재가 보이는 것 속에 담긴 것으로 영원하며 영광되며 감사하다 라고 말할 수 있어야 신앙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스스로를 속이는 것입니다.

 

l  고난은 힘들지만 위대하게 감당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ㅇ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라고 고백합니다.

 

l  여러분은 잘잘못의 칼날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위대할 것이냐 더 위대할 것이냐 하는 자리에 서 있읍니다. 여러분의 존재와 처지,현실이 하나님의 손안에서 어떤 조건인가 하나님이 여기서 어떤 기적을 어떤 영광을 어떤 위대함을 빚어내고 계신가를 여러분 스스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의 고백이고 증언들입니다.

 

l  2장에서는 다른 사람의 죄를 지적한다고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며, 타인의 죄를 지적하는 것으로 자기 의를 채우려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자신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답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l  한 사람의 실체는 아는 것에 있지 않고 아는 것을 행하는 데에 있읍니다.

 

이스라엘의 실패

 

l  예레미아 7:1~7 여호와께 예배하러 들어가는 유다 사람들이 성전 문앞에 서서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3번이나 말합니다 이 성전을 자기네가 지었다는 뜻이죠.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나에게 성전을 바친 것으로 너희 임무가 끝났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나를 알고 내 앞에 엎드릴 신앙이 있거든, 그 실체를 보여라

 

l  유대인에게 있는 선민이라는 지위, 그들이 가진 율법과 할례가 신앙의 실체를 대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가지고 있있으면서도 그 율법을 행하여 자신의 실체로 만들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징계받은 이유

 

l  삼상 4:1~11 하나님의 궤를 빼앗긴 역사를 생생하게 기록한 장면입니다. 법궤를 갖고 있으면 하나님을 소유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이스라엘이 법궤없이 싸우자 사천명이 죽고, 법궤를 앞세워 싸우자 삼만 명이 죽는 일이 벌어집니다. 급기야 법궤를 빼앗기는 일까지 일어납니다.

 

l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하나님을 알아야 하고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는 말은, 이 앎을 실체화하여 자신을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자녀가 되라는 하나님의 목적과 의지에 부합하게 되는 것입니다.

 

l  하지만 이스라엘은 은혜를 입고도 그러한 일에 자신을 드리지 않았고, 선택받은 자로서의 책임을 지지 않는 불성실한 자로 남아 있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 사건을 비롯한 여러 힘든 일들을 거치며 막막한 세월을 지내야 했던 가장 큰 이유입니다.

 

행한 대로 갚으시는 하나님

 

l  성도들의 인생이 막막해 보이는 것은 자기 것으로 만드는 싸움에서 실패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말, 십자가를 따라간다는 말을 자기 삶으로 담아내는 일에서 그르치는 것 입니다

 

l  너희가 실제로 아버지의 말씀을 따라 행하지 않는다면 너희의 주장, 소유, 지식은 너희 자신의 실체일 수 없다, 또한 실체가 되지 않은 이상 심판을 면할 수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행한 대로 갚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l  모르고 못한 것과 알고 못한 것은 둘 다못했다는 점에서 똑같습니다.여러분이 행한 대로 갚으실 것입니다.

 

실체로 오신 예수처럼

 

l  성경은 네가 인내하느냐, 사랑을 행하느냐, 온유하게 살고 있느냐, 겸손히 행하느냐를 묻습니다. 하나님이 이루신 구원이 가지는 실제적 내용입니다. 알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우리의 실체가 되게하시는 것이 목적입니다.

 

l  말씀과 약속과 구원과 새 생명의 실체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갖고만 있지 말고 말씀을 살아내야 합니다. 단지 믿는다고 자랑하고 고함지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실체가 되는 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움켜잡으시는 은혜에 대한 반응

 

l  하나님이 우리에게 너희는 이렇게 하라고 하시는 것은 은혜입니다. 무엇이 벌이였습니까? 상실된 마음대로 버려두는 것이 벌입니다 이것이 1 18절이하에 나온 하나님의 진노의 구체적 현실이었습니다

 

l  이렇게 하지 마라는 복입니다. ‘여기를 넘어가지 마라는 말씀은 하나님이 쳐 주신 울타리입니다. 하나님의 움켜잡음이죠. 그러나 우리는 울타리 안에 있지 않고 단지 울타리를 외우고 주장하고 고함지르고 있습니다.

 

l  심판과 경고는 중요한 첫걸음입니다.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겠다, 포기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마음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붙잡고, 붙잡으러 오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구하고, 엎드려 하나님의 통치 아래 살겠습니다라고 간구하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야 합니다

 

l  구체적 삶에서,매일의 현실 속에서,도전하는 세상의 위협 앞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5 11,20,21절에서 바울의 깊고 깊은 고백을, 그의 바라는 마음을 이렇게 합해서 요약했습니다 내가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입니다.

 

 

 

                                           (고전 2:6~16) 

우리가 마땅이 살아야 할 삶

 

l  오늘 본문에는 세상의 지혜와 대비되는 하나님의 지혜, 이 지혜와 성령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l  믿는다는 것은 차원이 다릅니다. 살아있는 것과 죽은자와 같은 것입니다.빛을 장님에게 무슨 수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의 신령한 것일 아는 것, 하나님의 지혜에 속하는 것은 이와 같이 못 보던 것을 보게 되는 것 입니다. 생명과 진리와 영광과 가치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 안에 무궁무진한 내용이 있읍니다. 다만 눈감고 끌려가는 것이 믿음이나 순종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l  6절에 나온 온전한 자, 영적으로 성숙되어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일하심의 이해,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공감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신앙공통체 속에서 가장 큰 유익은 사랑을 나누는 것 입니다.

 

l  사랑을 나눈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정의를 나눈다 지식을 나눈다 크게 지적받고 있는 사람의 지혜, 옳고 그른 것보다 우선하는 사랑이 조건의 최우선이 되며, 모든 것이 된다는 차원에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l  처음에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면 맹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전에 몰랐던 세계,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일하심의 방법에 동참하는 것이다. 이것이 온전한 지혜다.라고 얘기하면서 세상은 그 지혜를 몰라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지 않았더냐, 그 세상지혜와 이 지혜의 차이를 십자로 딱 제시합니다.

 

l  세상의 지혜로 십자가를 통과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세상의 지혜로는 죽음을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l  예외없이 우리는 죽습니다. 죽음을 이렇게 떳떳하게 얘기할수 있는 이유는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우리가 한정된 시간 속에 있고 제한된 가치 속에 있다는 것을 깨우쳐 우리로 하여금 영원한 것을 준비하며 가지며 속하게 하십니다.

 

l  9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자는 뭐가 암묵적으로 전제되어 있을 까요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 입니다.성령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고 가르쳐줄 수 없는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신약성경에서 성령이 등장하면 예외없이 십자가를 들고 나타납니다.

 

l  보혜사 성령은 예수그리스도가 죽으시고 부활하여 승천하사 하나님 아버지께 가사 보내시지 않으면 오실 수 없는 분으로 묶여 있습니다. 성령의 오심은 예수그리스도의 부재증명입니다. 그가 우리를 위한 구원을 완성 하신 것입니다.

 

l  십자가를 빼놓고 얘기하는 것은 다 거짓말 입니다.

 

l  십자가 앞에 배타적 자랑이 있느냐 감사가 있는냐 하는 것입니다. 나를 구원하신 예수그리스도의 감사하여 너에게도 은혜가.. 오늘은 못알아들었으니 다음에 너가 알아들었을 때 내가 밥사마

 

l  예수 믿는 것을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변명할 수 없습니다.그러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있읍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현실을 더 좋은 쪽으로 바꾸는데 일하지 않으시고 우리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담아낼 수 있는가를 가르쳐 주십니다.

 

l  그 자리에 서있는 것으로 그 사람에게 이웃과 형제가 되는 것,동지가 되는 것 이것이 사랑이요, 십자가의 삶입니다. 어느 때나 자신을 증명하는 데 최우선과제로 삼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담으시는 일에 최우선으로 관심을 가지는 것 그것이 신령해지는 것입니다.

 

l  말로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묶인 그 형편에서 하는 것입니다. 그 말을 할 수 없는 조건에서 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넉넉하고 그 얘기를 하면 아무도 은혜를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의 신비입니다.

 

l  바울은 말합니다. 내가 너희안에 거할 때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다. 고린도 교회는 바울의 사도권을 집중적으로 공격했습니다. 바울이 격은 이 일은 오늘날의 성직자에게 한 말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우리의 삶에 대한 실존을 위한 답입니다.

 

l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이 십자가를 통과하여 말이 안되는 조건과 현실 속에서 하나님이 나에게 담으라고 주신 내용이 심판하고, 배타적이고, 분노하고, 정죄하고 끝장을 내는 것이 아니라, 기다리고 믿고 용서하고 끌어안고 십자가가 절망의 자리가 아니라 희망의 자리라는 것을 여러분의 몸으로 증언하셔야 합니다.

 

l  여러분의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하나님께서 일하시겠다고 하십니다. 무슨 불만이 있습니까. 무슨 변명이 있습니까,

 

l  신령한 일, 하나님의 지혜가 여러분의 용서와 인내와 온유와 덕목들로 아무데서나 하나님이 무제한 적으로 승리를 원하신다는 것을 안다면 자폭이나 정죄는 뒤로 미루어 놓으시고 그것이 신령한 것입니다.

 

l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의 기적의 임재라는 것을 알아서 성육신의 삶을 사십시오.